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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3 17:44:14

매듭 자르기의 오류

1. 개요2. 설명3. 예시4. 반론법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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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라틴어로 Ergo Decedo라고 한다. 한국어로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라고 번역할 수 있다.

문제 상황을 건설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닌 논점의 화두 자체를 없애버리려는 논리적 오류이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라는 유명 일화처럼 복잡하게 묶인 매듭을 풀지 않고 매듭을 잘라버리는 것에 비유했다. '논점 포기의 오류', '결과 배제의 오류' 등 다양하게 불린다.

2. 설명

근본은 논점일탈의 한 유형으로 보고 있지만, 논점일탈+부적절한 결론이 복합되어있는 식이다. 매듭 자르기의 오류는 문제 해결 상황이 동반되지만 논점일탈은 그로부터 자유롭다는 차이가 있다.

애초에 매듭을 잘라버리면 묶이기 전 원형의 모습을 되찾기 힘들다.(여기서는 비가역적 상황을 전제로 한다) 후속적인 문제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을 불허하고 단순무식하게 무언가를 잘라버리려는 사람을 비꼴 때 쓰이기도 한다.

해당 논증은 돌려막기가 상당히 쉬운 편이라, 매듭을 잘라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매듭을 자르는 해결책을 제시하기 쉽다.[1] 그렇게 매듭을 미분하듯 자르고 자르다보면, 결국 형체가 남아나지 않는 극단적인 주장으로 흘러버린다.

어떤 주장이나 행위를 그 내용과 관련된 정당한 근거에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어떠한 소속에서 문제점을 인지한 사람이 무조건 떠나라는 건 잘못된 주장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라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2] 즉, 자신의 주장을 고수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 들기보단 상대를 이야기에서 배제하는 오류이다. 반론법은 해당 오류의 근본이 논점일탈의 오류기 때문에 이를 지적하면 되고, 전문성을 운운하면 "전문성이 없어도 인간으로서 갖춘 최소한의 분별력은 가지고 있다"고 하면 된다.

'군대식 일처리'도 대표적으로 이러한 오류를 범하는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령 어떠한 병영 갈등이 존재한 경우 아예 다시 논의되지 않도록 발화 주제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대표적 사례

3. 예시

예문)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한국에서 대단히 자주 쓰이는 관용어이다. 원래는 떠나는 측에서 자조적으로 쓰는 표현이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이 문제해결을 요구하는 에게 윽박지르는 용도로 변질되어 쓰이고 있다. 영어권에도 ‘If you can't stand the heat, get out of the kitchen’[3]라는 유사한 표현이 있다.
예문) 甲: 이 힘든 일을 어찌 쉽게 해결할 수 있을까?
乙: 힘들면 하지마.

가장 자주 쓰이는 유형의 오류이다. 힘들다고 하지 않고 도망갈 수 있는 일은 일당 주는 아르바이트 정도 뿐이며, 그런 곳 외에서 저 소리를 한다는 것은 '짤리기 싫으면 닥치고 일하라'고 협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예문) 甲: 나는 대한민국의 세금 시스템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해. 실제로 여러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乙: 그럼 세금 시스템이 잘 짜인 곳으로 이민해.

(오류 설명) '대한민국'의 세금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였고, 이에 대한 문제 해결 의지가 甲 측에 있는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그러나 乙은 대한민국이 아닌 외국 이야기를 꺼내었고, 정작 갑이 꺼낸 문제 제기를 묵살하고 포기하라는 듯한 뉘앙스를 주고 있다.

이른바 절싫중떠, 꼬북이, 꼬접, 콰아아아, 누칼협이 이런 유형의 오류이다. 다만 해당 논증이 더 좋은 곳으로 가라고 하면 꼬북이는 '그럼 더 나쁜 곳으로 갈래?'라고 협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게 차이점.
예문) 甲: 이 작품은 별로야. 문장의 가독성도 떨어지고, 글의 기본적인 형태조차 잡지 못하고 있어.
乙: 그럼 읽지 마.
(오류 설명) 甲이 논하고자 하는 것은 '작품의 수준'이며, 그것이 결론적으로 책을 '읽고 안 읽고의 여부'로 이어지는 건 많고 많은 가능성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乙은 이를 비약적으로 이끌어 甲의 문제 해결 방법을 억지로 도출시키고 있다.

팬이 많은 곳에서 그들이 선호하는 것을 비판할 경우, 매우 높은 확률로 볼 수 있는 유형이다. 보통 비판을 듣기 싫다는 것이 그 이유가 된다.

인터넷 환경에서는, 갑이 유명한 분탕이고 해당 주장이 억까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너는 이 컨텐츠를 향유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또 다른 억지에 불과하다. 이런 경우에는 '너 안 읽었지?' 식의 반응이 더 자연스럽다.
예문)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시면 됩니다. 로마의 법이 싫으시면 로마를 떠나주세요. (중략) 왜 회원님이 카페 공지를 가지고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시나요? 싫으시면 나가 주세요.

커뮤니티의 관리자들이 소수 여론을 억압할 때 주로 사용되는 문장이다.

(오류 설명) 어떤 조항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을 말할 수 있다. 잘못을 제기할 때 언제나 해결법을 동반해야 한다는 의무는 없다. 그러나 발화자는 그 의무를 은연중에 감춰놓고 행사하고 있는 동시에, 그 해결법조차 자기가 나서서 말하고 있는 상황이다. 해결법 역시 논점에서 '떠나라'는 식으로 주어졌다. 이 논증은 매듭 자르기 오류일 뿐더러 다른 논리적 오류의 유형이 여러 개가 복합되어 있다.
예문) 甲: 이런 영상은 내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乙: 싫으면 그냥 보지마세요.

유튜브 댓글에서 정말 많이 보이는 상황.

(오류 설명) 甲은 영상의 존재 필요성이나, 영상의 내용에 대해서 논의하려 시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보지 말라며 싹을 잘라버린다. 甲이 이 영상을 안 본다고 해서 이 영상을 보는 사람들의 불만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영상의 내용과 상관없이 영상을 볼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하는 것 자체부터가 잘못됐다. 틀린 말을 했다면 모르겠지만, 이건 명백한 매듭 자르기 오류다.
예문) 甲: 방음이 나쁜 곳에 같이 사는데 진동 좀 하루종일 새벽까지 일으키지 마세요.
乙: 난 괜찮은데 네 귀가 예민하니 내가 고소해버린다?

층간소음에서 흔히 일어난다. 실제 소음유발자가 협박으로 매듭을 자르기도 한다.

4. 반론법


매듭 자르기의 오류를 쓰는 사람들은 정말로 사색 의지가 없을 수 있다. 이 경우, 생각하기 싫어서 대화를 거부하는 논리적 오류를 저지르게 된다. 또는 그냥 대놓고 안 고치겠다는 의지를 표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더 이상 대화해도 별 의미는 없을 것이다.[4]

혹은, '이거 외엔 방법이 없다' 등 더 이상의 해결 의지가 없다는 의사표시를 할 수도 있다. 실제로 답이 없는 경우도 있긴 하겠지만, 거의 대부분은 '답은 있지만 내가 실천할 수는 없다'[5]로 요약되는 경우다.

온라인 어그로꾼들은 '매듭 자르기의 오류'를 즐겨 쓴다. 전술했듯이 이 오류는 돌려막을 수 있기 때문에, 반론에 더더욱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논리를 펼치며 스트레스를 발산할 수 있다. 또한 스스로 이긴 기분을 느낄 수 있고 또 자기 자신이 범한 오류에 질린 사람들을 공격하는 목적으로 이를 쓰는 것이다.[6]

최선의 해결책으로, 반론을 하지 않거나 관심을 주지 않으면 대개 이렇게 질문 자체를 잘라내는 대답을 하는 사람들은 사라지고 감정 소모를 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질문을 인정할 마음도, 질문을 고찰할 생각도 없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상대해 봤자 조롱만 당할 뿐이며, 얻을 것도 없다.

5. 관련 문서


[1] 예시: 한국에서 먹고 살기 힘들다 - 그럼 한국을 떠나 - 그럴 돈이 없는데 - 그럼 자살해
한국의 사회적 문제로 운을 뗐는데 결론은 대뜸 자살하면 그만이야로 귀결된다.
[2] 내부고발 등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공격하는 것과, 단순한 문제 개선이 아니라 찬반이 나뉘는 대화를 반드시 구분하자. 단, 둘 다 '매듭 자르기의 오류' 식으로 끝나면 안된다.[3] 열기를 못 견디겠으면 부엌에서 나가라[4] 예를 들어 "그게 내 생각인건데 내 생각이 맘에 안든다 말할거면 굳이 왜 물어봤냐? 그럴거면 다른 사람한테 물어봐라."라는 식의 대답이 돌아올 수 있는데 정말 반드시 이 사람에게 답을 얻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더 말하는 것은 싸우자는 것 밖에 되지 않아 매듭을 자르려는 사람 의도에 따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나온다. 다만 애초 원 질문이 뜬금없다거나 별 의미 없는 것이라면 모를까, 현실적으로 봤을 때 꼭 어떤 사람에게 얻어야만 하는 답이 있는 상황을 의외로 자주 접할 수도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이런식의 답변이 돌아온다면 상대의 대화예절이 부족하거나 상대가 상급자인 경우일 것이다. 이 경우 대화로 해결을 보기는 상당히 힘들어진다.[5] 예시: 내가 권력이 있으면 해결되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다[6] 이런 경우에는 반론을 해봤자 진지충, 씹선비, 근첩 소리르 듣기 때문에 그냥 무시하는 게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