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 오트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멜 오트 | ||||||||||||||||||||||||||||||||||||
헌액 연도 | 1951년 | |||||||||||||||||||||||||||||||||||
헌액 방식 | 기자단(BBWAA) 투표 | |||||||||||||||||||||||||||||||||||
투표 결과 | 88.2% (3회) |
멜 오트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MLB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 |
1933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 |||
1934 | 1935 | 1936 | 1937 |
1938 | 1939 | 1940 | 1941 |
1942 | 1943 | 1944 | 1945 |
193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홈런왕 | ||||
척 클라인 (필라델피아 필리스) | → | 척 클라인 (필라델피아 필리스) 멜 오트 (뉴욕 자이언츠) | → | 척 클라인 (필라델피아 필리스) |
1934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홈런왕 | ||||
척 클라인 (필라델피아 필리스) | → | 멜 오트 (뉴욕 자이언츠) 리퍼 콜린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 | 월리 버거 (보스턴 브레이브스) |
1936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홈런왕 | ||||
월리 버거 (보스턴 브레이브스) | → | 멜 오트 (뉴욕 자이언츠) | → | 멜 오트 (뉴욕 자이언츠) 조 메드윅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1937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홈런왕 | ||||
멜 오트 (뉴욕 자이언츠) | → | 멜 오트 (뉴욕 자이언츠) 조 메드윅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 | 멜 오트 (뉴욕 자이언츠) |
1938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홈런왕 | ||||
멜 오트 (뉴욕 자이언츠) 조 메드윅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 | 멜 오트 (뉴욕 자이언츠) | → | 조니 마이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194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홈런왕 | ||||
돌프 카밀리 (브루클린 다저스) | → | 멜 오트 (뉴욕 자이언츠) | → | 빌 니콜슨 (시카고 컵스) |
1934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타점왕 | ||||
척 클라인 (필라델피아 필리스) | → | 멜 오트 (뉴욕 자이언츠) | → | 월리 버거 (보스턴 브레이브스)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000000>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역대 감독 |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뉴욕 자이언츠 시대 (1883~1957) | ||||
1대 존 클랩 (1883) | 2대 짐 프라이스 (1884) | 3대 존 몽고메리 워드 (1884) | 4대 짐 머트리 ★★ (1885~1891) | 5대 패트릭 T. 파워스 (1892) | |
6대 존 몽고메리 워드 (1893~1894) | 7대 조지 데이비스 (1895) | 8대 잭 도일 (1895) | 9대 하비 왓킨스 (1895) | 10대 아서 어윈 (1896) | |
11대 빌 조이스 (1896~1898) | 12대 캡 앤슨 (1898) | 13대 빌 조이스 (1898) | 14대 존 B. 데이 (1899) | 15대 프레드 호이 (1899) | |
16대 벅 유잉 (1900) | 17대 조지 데이비스 (1900~1901) | 18대 호레이스 포겔 (1902) | 19대 하이니 스미스 (1902) | 20대 존 맥그로 ★★☆☆☆☆★★☆ (1902~1924) | |
21대(임시) 휴이 제닝스 (1924) | 20대 존 맥그로 ☆ (1924~1925) | 21대(임시) 휴이 제닝스 (1925) | 20대 존 맥그로 (1925~1927) | 22대(임시) 로저스 혼스비 (1927) | |
20대 존 맥그로 (1928~1932) | 23대 빌 테리 ★☆☆ (1932~1941) | 24대 멜 오트 (1942~1948) | 25대 레오 듀로셔 ☆★ (1948~1955) |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시대 (1958~) | |||||
26대 빌 리그니 (1956~1960) | 27대 톰 시한 (1960) | 28대 앨빈 다크 ☆ (1961~1964) | 29대 허먼 프랭크스 (1965~1968) | 30대 클라이드 킹 (1969~1970) | |
31대 찰리 폭스 (1970~1974) | 32대 웨스 웨스트럼 (1974~1975) | 33대 빌 리그니 (1976) | 34대 조 알토벨리 (1977~1979) | 35대 데이브 브리스톨 (1979~1980) | |
36대 프랭크 로빈슨 (1981~1984) | 37대 대니 오자크 (1984) | 38대 짐 데이븐포트 (1985) | 39대 로저 크레이그 ☆ (1985~1992) | 40대 더스티 베이커 ☆ (1993~2002) | |
41대 펠리페 알루 (2003~2006) | 42대 브루스 보치 ★★★ (2007~2019) | 43대 게이브 캐플러 (2020~2023) | 44대 카이 코레아 (2023) | 45대 밥 멜빈 (2024~) | |
★: 월드 시리즈 우승 / ☆: 월드 시리즈 준우승 / ★: 첫 월드 시리즈(1903년) 이전 내셔널 리그 우승 |
{{{#fd5a1e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뉴욕 자이언츠]] 등번호 5번}}} | ||||
결번 | → | 멜 오트 (1932) | → | 트래비스 잭슨 (1933~1935) |
{{{#fd5a1e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뉴욕 자이언츠]] 등번호 4번}}} | ||||
빌 테리 (1932) | → | 멜 오트 (1933~1948) | → | 영구결번 |
{{{#fd5a1e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뉴욕 자이언츠]] 등번호 3번}}} | ||||
빌 테리 (1933~1936, 영구결번) | → | 멜 오트 (1937) | → | 행크 레이버 (1937) |
}}} ||
<colbgcolor=#000000><colcolor=#fd5a1e>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No. 4 | |
멜빈 토머스 "멜" 오트 Melvin Thomas "Mel" Ott | |
출생 | 1909년 3월 2일 |
루이지애나 주 그렌타 | |
사망 | 1958년 11월 21일 (향년 49세) |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그렌타 고등학교 |
신체 | 175cm / 77kg |
포지션 | 우익수 |
투타 | 우투좌타 |
프로 입단 | 1926년 자유계약 (NYG) |
소속팀 | 뉴욕 자이언츠 (1926~1947) |
지도자 | 뉴욕 자이언츠 감독 (1942~1948) |
[clearfix]
1. 개요
뉴욕 자이언츠의 프랜차이즈 스타. NL 최초로 500홈런을 돌파한 선수다. 통산 성적은 22시즌 2,730경기 11,348타석/9,456타수 2,876안타 511홈런 1,859득점 1,860타점 1,708BB/896K .304/.414/.533 .947OPS/155OPS+ 110.7bWAR.
1926~1928년에 NL 최연소 선수였으나 은퇴한 1947년에는 9번째로 고령인 선수였다.
2. 선수 및 감독 생활
멜 오트는 1926년 명장 존 맥그로 감독 덕분에 17세의 나이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맥그로 감독은 고교생인 오트를 영입해 마이너리그로 보내지 않고 메이저로 데뷔시켰는데, 그 이유는 그의 학다리 타법(레그킥)이 마이너리그 감독들에 의해 고쳐질까 염려해서 였다고 한다.#덕분에 뉴욕 자이언츠에서 17세의 나이로 데뷔한 오트는 첫 2년간 벤치 신세였다.[1]
작은 체구(175cm 77kg)였던 멜 오트는 레그킥(타격 전 다리를 들어올리는 동작)을 통해 강한 타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 결과 내셔널 리그 최초의 500홈런 달성자가 되었으며 30홈런 8차례, 홈런왕 6회를 수상하는 등 내셔널리그를 대표하는 슬러거로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멜 오트는 단순히 홈런만 많이 치는 타자는 아니었다. 멜 오트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선구안이었다. 한 경기 5개의 볼넷을 얻어낸 경기가 5번이나 있었고, 하루에 6번 볼넷으로 걸어나간 적도 있었을 정도이다. 이런 선구안을 바탕으로 10회의 100볼넷 시즌/7시즌 연속 100볼넷을 얻었고 6회의 내셔널 리그 볼넷 1위를 기록했다. 동시에 통산 3할이 넘는 타율을 기록할 만큼 정교한 배트 컨트롤 능력을 지녔던 선수이기도 했다.
강견으로도 유명했다고 한다.#
멜 오트는 1942년 부터 선수 겸 감독으로 자이언츠를 이끌었는데, 부임 첫해 거둔 리그 3위가 그의 최고의 성적이었다. 감독으로서의 재능은 그리 뛰어나지 못하였다. 멜 오트는 감독을 하기에는 너무 사람이 좋았던 것이다.
당시 달변과 독설로 유명하던 브루클린 다저스 감독 레오 듀로셔는 어느 날 인터뷰 중 한 기자가 멜 오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사람은 좋지, 근데 그럼 뭐하냐? 팀은 꼴찌인데..." 라며 답했고 여기서 나온 "사람 좋으면 꼴찌(Nice guys finish last)"라는 말은 지금도 회자되는 격언으로 남아 있다.#
3. 은퇴 이후
오트는 자이언츠에서 감독을 사임한 후 마이너리그에서 관리직을 맡았었고 1950년대 말에는 방송 진행자로서도 활약했다.그리고 자동차 사고로 얻은 부상 후유증으로 1958년 49세에 사망하였다.
1951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올랐으며 그의 등번호 4번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영구 결번이 되었다.
4.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블랙잉크 | 그레이잉크 | HOF 모니터 | HOF 스탠다드 | |
멜 오트 | 50 | 277 | 216 | 69 |
HOF 입성자 평균 | 27 | 144 | 100 | 50 |
- JAWS - Right Field (4th)
career WAR | 7yr-peak WAR | JAWS | |
멜 오트 | 110.7 | 54 | 82.4 |
우익수 HOF 입성자 평균 | 71.9 | 42.4 | 57.2 |
[1] 17세에 35경기를, 18세에 82경기를 출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