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27 10:54:38

멜루지네 폰 데어 슐렌부르크

<colbgcolor=#C2CDD7><colcolor=#000000> 켄달 여공작
멜루지네 폰 데어 슐렌부르크
Melusine von der Schulenburg, Duchess of Kendal
파일:Melusine_von_der_Schulenburg.png
이름 에렌가르트 멜루지네 폰 데어 슐렌부르크
(Ehrengard Melusine von der Schulenburg)
출생 1667년 12월 25일
신성 로마 제국 마그데부르크 엠덴
사망 1743년 5월 10일 (향년 75세)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런던 아일워스 켄달 하우스
자녀 안나, 페트로넬라, 마르가레테
아버지 구스타프 아돌프 폰 데어 슐렌부르크
어머니 페트로넬라 오틸리에 폰 슈벤켄
1. 개요2. 생애3. 여담

[clearfix]

1. 개요

영국 국왕 조지 1세정부. 켄달과 먼스터의 여공작에 임명되면서 왕비 못지않은 권세를 누렸다.[1]

2. 생애

1667년에 브란덴부르크 선제후의 신하인 구스타프 아돌프 폰 데어 슐렌부르크 남작의 딸로 태어났다. 1690년에 하노버의 선제후비이자 조지 1세의 어머니인 팔츠의 조피의 시녀로 들어가면서 하노버의 공자였던 조지 1세의 정부가 되었다. 당시 조지 1세는 아내 첼레의 조피 도로테아와 매우 사이가 안 좋았다. 주변의 신하들은 차라리 조지 1세에게 정부가 생겨 부부가 덜 부딪치는 게 낫겠다고 여겼다. 그러나 조피 도로테아는 임신 중에 남편이 멜루지네와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따지다가 남편에게 목이 졸리기까지 했다.

1694년에 조지 1세는 아내와 정식으로 이혼했다. 이후 조지 1세는 재혼하지 않고 멜루지네를 아내처럼 대했다. 1714년에 조지 1세가 영국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멜루지네는 조지 1세와 함께 영국 런던으로 향했다. 영국에서 멜루지네는 공식적으로는 왕의 정부였지만 왕비나 다름없었다. 1716년 7월 18일에 먼스터 여공작, 던개넌 여후작, 던개넌 여백작, 던도크 여남작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3년 뒤인 1719년 3월 19일에 켄달 여공작, 페버샴 여백작, 글래스턴베리 여남작에 임명되었다.

1723년에 신성 로마 제국 황제카를 6세에 의해 에버슈타인 여공에 봉해졌다. 이는 오스트리아에서 멜루지네를 영국의 왕비로 인식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막대한 영향력과 지위를 가진 멜루지네는 이를 이용해 재산을 불렸다. 그녀는 관직과 여러 특권을 팔아서 많은 돈을 벌었다. 뇌물을 받기도 했는데, 남해회사(The South Sea Company)가 주식 일반 공개를 위해 뇌물을 준 유명인사들 중에는 멜루지네도 있었다. 이 때문에 남해회사 거품 사태가 발생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멜루지네를 비판했다. 그러나 실상은 멜루지네 또한 남해회사의 주식으로 손해를 보았다고 한다.

조지 1세와의 사이에서 딸 3명을 낳았다. 장녀 안나 루이제 폰 데어 슐렌부르크와 차녀 페트로넬라 멜루지나 폰 데어 슐렌부르크는 멜루지네의 언니의 딸들로, 삼녀 마르가레테 게르트루트 폰 외인하우젠[2]은 멜루지네의 여동생의 딸로 키워졌다.

3. 여담



[1] 이는 조지 1세가 아내와 사이가 너무 안 좋았고, 이를 넘어서 아예 일찌감치 이혼해버렸기 때문. 때문에 조피 도로테아는 영국 왕비는커녕 하노버 선제후비조차 되지 못했다.[2] 양아버지의 성을 따랐다.[3] 유럽의 민속 축제 때 중앙에 세워지는 기다란 나무 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