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 모스크바 물리기술원 Московский Физико-Технический институт | ||
<colbgcolor=#265b9e> 모토 | Sapere Aude Dare to know | |
국가 | [[러시아| ]][[틀:국기| ]][[틀:국기| ]] | |
분류 | 과학기술원 | |
설립 | ||
총장 | 니콜라이 쿠드랴프세프 | |
이사 | 드미트리 이바노프 | |
재학생 | <colbgcolor=#265b9e><colcolor=#fff> 학부 | 4,288명 |
대학원 | 1,751명 | |
교직원 | 1,110명 | |
링크 | ||
위치 | ||
[clearfix]
1. 개요
모스크바 물리기술원은 이론과 실험및 응용 물리학 인재를 양성하고 이론물리, 실험물리, 응용물리를 포함한 전범위의 물리학의 연구를 수행하는 러시아 학술원 산하 연구 중심 고등교육기관이다.대외 명칭은 영어 명칭인 MIPT를 쓴다.
모스크바 주 주콥스키에 위치해 있으나, 분과별로 모스크바에 산재되어 위치한 여러 물리 연구원[1]과 협력하여 연구를 진행한다.
2. 설립
소련은 과학적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로써 건국 직후부터 과학기술의 중요성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1930년대에는 이오시프 스탈린은 중공업위주의 육성 정책을 펼치면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기 시작했다.한편, 러시아 혁명으로 인한 어수선한 나라 사정으로 러시아의 과학기술 인재들은 대부분 서유럽으로 가서 연구를 지속하게 되었다. 소련 사회가 비로소 안정되자, 다시 소련으로 귀국하는 인재들도 있었는데, 그중 대표적인 석학 한명이 표트르 카피차이다. 표트르 카피차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케번디시 연구소에서의 전자기장 관련 연구를 정리하고 귀국했는데, 스탈린은 그런 그를 높이 샀다. 대숙청으로 사회 분위기가 매우 경직되어있었고,석학 과학기술자마저도 숙청당하는 상황에서 정부에 직접 본인의 의견을 말할수 있는 사람중 한명일 정도였다.
표트르 카피차는 1945년 후반에 정부에게 기존 소련의 교육시스템과 차이가 있는 전공 특화 고등교육기관의 설립을 촉구하는 의견을 보냈고, 1946년 2월에 스탈린이 허가를 한다는 서한을 카피차에게 보냈고, 1946년 3월에 소련 과학원의 선임 연구원 이사진들이 운영하는 고등교육기관, College of Physics and Technology가 발족되었다.
하지만, 카피차는 대숙청기부터 2차대전 종전까지 독선적으로 과학기술계를 주무르려는 소련 정부에 회의감을 느꼈고, 소련 정부가 극비로 진행하는 핵개발에 불참한다는 서한을 보내면서 인가가 지연되었다. 결국 소련 정부는 1946년 11월 25일에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산하로 물리기술학부를 설립하게 되었다.
3. 여담
충북 영동군 출신 유명한 만학도 공근식 씨가 본 학교에 진학, 2022년 '화성 대기에서 하강하는 우주선 주변의 흐름을 모델링하는 특징' 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작성, 동 년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기사[1] 레베데프, 쿠르차토프, 란다우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