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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6 22:31:34

모전석탑

파일:external/www.ablenews.co.kr/c_1_17362.jpg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안산암을 다듬어 벽돌처럼 만들어 쌓았다. 본래는 7~9층으로 더 높았지만 현재는 높이 9.3m의 3층까지만 남았다. (국보 제30호)

1. 개요2. 유래3. 장단점4. 한국의 모전석탑 목록

1. 개요



을 가공해 벽돌모양으로 만들어 전탑과 비슷한 형식으로 만든 석탑. 모전석탑의 원조는 인도로, 주로 인도와 한국에서 발견되지만, 한국의 모전석탑의 모습은 오히려 중국의 전탑 및 석탑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1] 반면, 중국에서는 모전석탑 문화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일단 611년에 세운 것으로 알려진 산둥성 지난시에 있는 신통사(神通寺) 사문탑(四門塔)이 이러한 양식에 영향을 줬다는 설도 있으나 사문탑에 사용된 벽돌의 크기는 한국의 모전석탑들에 사용된 벽돌의 크기와는 다르게 매우 크고 단층탑에다 봉안물도 달라 한국에 있는 모전석탑들은 최초에 양식이 전파된 후, 독자적으로 발전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2. 유래

전탑을 만들려면 먼저 점토를 구해 벽돌을 구워야 하는데, 충분한 양의 재료를 확보하고 벽돌을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또한 석탑을 만들려면 큰 석재를 구해야 하는데 여의치 않은 지역도 있었을 것이다. 이에 전탑도, 석탑도 만들기 어렵거나 전탑은 만들고 싶은데 멋을 내고 싶은 경우 등이 분명 있었을테니 가공이 쉬운 사암이나 석회암, 한국에 흔한 화강암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탑의 재료로 사용했고, 이렇게 만들어진 탑을 돌을 가공해 벽돌처럼 흉내내 지은 석탑이라는 뜻의 모전석탑이라 부른다.

3. 장단점

전탑이나 목탑보다는 강한 편이다. 일단 과거에는 벽돌을 튼튼하게 굽기가 어려운데다가, 벽돌로 쓰이는 재료도 저질인지라 현대의 벽돌처럼 튼튼하지 않으므로 수시로 보수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원래 이었던 것을 벽돌같이 깎아서 만든 모전석탑이 강하다. 단, 벽돌쌓기의 특성상 균형이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폭삭 주저앉는 경향이 있으므로 석탑보다는 약할 수밖에 없다. 목탑은 잘 만들면 석탑에 준하게 튼튼하지만, 화재가 나면 그냥 잿더미가 되므로 종합적으로는 강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모전석탑이 그렇게 많지 않은 이유는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당장 건설시에도 석재를 다듬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가공하기 쉬운 석재를 쓴다지만 벽돌 모양으로 잘게 나누어 다듬으려면 얼마나 품이 많이 들어갈까? 그리고 모전석탑이 완성된 다음에 수리나 보수를 위해 다시 돌벽돌이 필요하면 또다시 돌을 캐다가 벽돌모양으로 잘게 나누어서...

따라서 굳이 전탑처럼 보여야 할 필요가 없다면 차라리 석재를 큼직하게 써서 석탑을 쌓는 것이 훨씬 튼튼하고 보수하기 쉬우므로 모전석탑을 많이 건축할 필요가 없었고, 일단 파손된 모전석탑을 보수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방치돼서 파괴될 확률도 높다. 그래서 모전석탑이 많지 않은 것이다.

한편 어디선가 벽돌을 조달할 길이 열리면 전탑을 흉내낸 모전석탑이 아니라 그냥 전탑을 쌓을 확률이 높아진다. 예를 들어 낙동강을 낀 안동시 지역에서는 양질의 점토를 구하기 쉬워 전탑을 많이 쌓았다. 물론 벽돌을 가공하는데는 알맞은 흙과 더불어 벽돌을 만드는데는 진흙을 햇볕에 말리는 원시적인 방법이 아닌 이상 연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주변환경에 따라서는 노동력을 좀 더 들이는 편이라 전탑보다 비용은 더 적게 들어간다. 이 때문에 예부터 돌이 흔하고 석재가공기술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 유독 이런 양식이 나타났다고 추측한다.

4. 한국의 모전석탑 목록

문화재로 지정된 모전석탑 중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국보 제30호)과 영양군 산해리 오층모전석탑(국보 제187호) 등이 유명한 편이며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은 유홍준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3권에 소개되어 있다.

모전석탑은 크게 전탑계와 석탑계로 나눌 수 있는데 영양 삼지동 모전석탑, 영양 현리 오층모전석탑, 정선군 정암사 수마노탑(水瑪瑙塔)은 분황사에서처럼 벽돌 대신 돌을 썼을 뿐, 형식은 완전히 전탑 모양인 전탑계 모전석탑이다.

반면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이나 빙산사지 오층석탑처럼 형식은 모전석탑이지만 좀 더 석재를 크게 써서 모전석탑과 석탑의 과도기 같은 형태와 경주 서악동 삼층석탑,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처럼 석탑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몸돌이나 지붕돌은 모전석탑의 양식을 모방한 형태의 탑들은 석탑계 모전석탑이다.

현재 문화재로 지정된 불탑은 국가지정문화재(국보, 보물) 196기, 시도지정문화재 296기로 모두 492기가 존재하지만 이 중 모전석탑은 그 수가 많지 않아 굉장히 희귀한 편이다. 또한 이들 모전석탑 중 대부분은(전탑 포함) 안동시를 기점으로 경북 북부 인근의 내륙 지방에 있기 때문에 과거 이 지역에서 전탑의 형식이 유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1] 인도의 모전석탑은 대부분 원시적인 적석탑에서 발전해 반구상의 스투파 양식을 띄고 있지만, 한국의 모전석탑은 중국의 전탑의 영향을 받아 고유의 형태로 발전했다. 다만, 박경식 등 일부 학자들은 한국의 모전석탑이 중국의 전탑의 영향과는 별개로 서역과의 교류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아 독자적으로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근거는 중국 석탑이나 전탑, 특히 한국의 모전석탑에 영향주었다고 기존 통설에서 설명되던 몇 안되는 모전석탑인 신통사 사문탑등은 전부 단층구조인 반면, 한국의 모전석탑은 다층고탑구조를 띄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