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재 文成在 | Moon Sung-jae | |
<colbgcolor=#878787><colcolor=#fff> 출생 | 1952년[1] ([age(1952-12-31)]~[age(1952-01-01)]세) |
제주특별자치도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제주상업고등학교(1972년 졸)[2][3] |
데뷔 | 1974년 '언제라도 갈 테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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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가수. 문성재라는 이름은 잘 몰라도 ‘부산 갈매기’를 부른 가수라고 하면 기억하는 이들이 꽤 있다.2. 생애
1952년 제주특별자치도에서 태어났다.1974년 언제라도 갈 테야라는 곡으로 데뷔했지만 이렇다 할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1976년에는 일본 후지TV에서 제작하는 신인 발굴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3주 연속 우승까지 했지만 비자가 만료되는 바람에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후에는 한동안 충청남도 대전시 유성관광호텔 내 나이트클럽에서 5인조 밴드와 함께 노래하며 지냈다.
그로부터 8년 뒤인 1982년 그의 인생에 길이 남을 인생곡을 만나게 되는데 이 곡이 1집 수록곡 부산 갈매기다. 부산 갈매기는 당시 문성재가 활동하던 대전 유성 지역의 어느 '형님'으로부터 "주먹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아[4] 탄생한 곡이다. 노랫말과 가락은 작곡가 김중순이 직접 작사/작곡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노래는 전국적인 대히트를 쳤고 같은 음반에 수록된 '춤추는 작은 소녀'도 인기를 얻었다. 어쨌든 부산 갈매기라는 노래 덕에 문성재 본인도 스타덤에 올랐는데 1982년 7월에는 KBS 2TV 가요톱10에서 3위까지 올라가봤고 12월에는 KBS 가요대상에서 올해의 가수상(10대 가수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듬해인 1983년 88올림픽고속도로 건설을 축하하기 위해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열린 기념 TV 쇼[5] 공연을 마치고 대전으로 올라오던 중 호남고속도로에서 대형 교통사고를 당해 얼굴만 270바늘을 꿰매는 중상을 입었다. 이 사고 이후 음악 활동을 중단하고 고향 제주로 내려간다.
3. 기타
- 제주특별자치도에서 태어나서 고등학교 때까지 제주에서 자란 사람이지만 본인의 대표곡인 부산 갈매기가 워낙에 대히트를 치는 바람에 부산 출신이냐는 오해가 빚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가수의 삶에서 부산은 연고가 일절 없는 곳이다. 물론 본인은 부산을 제3의 고향으로[6]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1990년대 부산 갈매기가 롯데 자이언츠 응원가로 정착한 이후부터는 롯데 구단의 초청을 받아 시구도 하고 노래도 하는 등 부산과의 인연이 어떻게든 이어지고 있다.
- 데뷔 당시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터를 잡고 라이브 음악클럽을 운영하며 노래도 불렀다.
-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다고 한다.
- 특종세상에서 확인된 바, 갤럭시 Z 폴드 3 휴대폰을 사용한다.
4. 대표곡
- 1974년 언제라도 갈 테야
- 1982년 부산 갈매기, 춤추는 작은 소녀
특히 부산 갈매기는 KBO 리그 롯데 자이언츠의 대표 응원가이자 부산광역시를 상징하는 노래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고 있다.
[1] 2008년에 나온 기사에서 56세로 확인되었다.[2] 1972년에 졸업했다는 걸로 보아선 문성재가 태어났던 1952년 무렵 영아사망률이 높았던 탓에 호적과 실제 출생연도의 불일치가 거의 흔한 일이었다보니 호적 상 출생년도나 실제 출생년도가 1953년일 가능성도 있다.[3] 현재 제주중앙고등학교.[4] 물론 문성재에게 그 부탁을 한 '형님'도 대전에서 활동하던 조직 폭력배의 일원이었다.[5] 당시에는 시대 분위기가 분위기였던지라 정부의 각종 치적을 기념하는 특별 쇼가 잦았다.[6] 제2의 고향은 그가 음악 활동을 왕성하게 했던 대전이라 생각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