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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리아 왕국 3대 군주 მირიანი | 미리안 1세 | ||
제호 | 한국어 | 미리안 1세 |
조지아어 | მირიანი | |
라틴어 | Mirian I | |
생몰 년도 | 미상 ~ 기원전 109년 | |
재위 기간 | 기원전 159년 ~ 기원전 10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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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베리아 왕국 3대 군주.2. 생애
미리안은 고래 페르시아어 Miθrāpāna(미트라의 보호를 받는 자)의 파생어다. 카르틀리 왕실 연대기에 따르면, 그는 페르시아인으로 본래 이름은 네브로티스(Nebrotis)라고 한다. 아버지의 신원은 알려지지 않았고, 어머니는 아제르바이잔의 페르시아 총독의 누이이자 이베리아 2대 군주 사우로마케스 1세의 아내의 외숙모였다. 그는 사우로마케스 1세의 딸과 결혼하는 동시에 사우로마케스 1세의 양자가 되었고, 기원전 159년 사우로마케스 1세가 사망한 뒤 이베리아 왕위에 올랐다.당시 국제 정세는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베리아 남쪽 국경과 접한 나라인 아르탁세스 왕조 아르메니아는 세력을 확장할 기회를 노렸고, 기존의 중동 패권 국가였던 셀레우코스 제국은 갈수록 강성해지는 파르티아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한편, 북부 이베리아에서는 이베리아 왕국의 우호 부족이었던 두르주크 족이 왕국 북쪽의 카케티아와 바잘레티 지방을 침략하면서 적대 관계로 돌아섰다. 그들은 이 일대를 황폐화하고 많은 이베리아인을 끌고 갔다. 이에 그는 8명의 스파스패티(spaspeti)를 소집하여 군대를 집결시킨 뒤 스바네티에서 두르주크 족을 격파했다.
이후 두르주크족을 추격하기 전에 키스캅카스인들이 점령한 영토를 해방하는 원정에 착수했다. 다리알리 계곡에서 격전을 벌인 끝에 이들을 격파하고, 뒤이어 두르주크 족의 영역으로 쳐들어가 각지를 황폐화시켰다. 이후 다리알리 계곡에 일련의 요새를 세웠는데, 이를 다리알리 대로라고 한다. 이 요새들은 19세기까지 역대 조지아 국의 유목민족 침략에 대한 첫 방어선으로서 기능했다.
한편, 그는 셀로우코스 제국 대신 파르티아의 봉신이 되었지만, 아르메니아 왕자 아르탁시아스에게 자신의 딸을 시집보내 아르메니아와 동맹 관계를 구축했다. 그러나 이러한 동맹은 미트리다테스 6세가 이끄는 폰토스 왕국이 이베리아 왕국의 이욱 국가인 콜키스를 공략하는 걸 저지하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기원전 109년 사망했고, 아들 파르나좀이 왕위를 이어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