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축구 국가대표팀 | ||
Echipa națională de fotbal a Românie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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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cd300><colcolor=#0033CC> 이름 | 미오드라그 벨로데디치 Miodrag Belodedici[1] | |
출생 | 1964년 5월 20일 ([age(1964-05-20)]세) | |
루마니아 인민공화국 소콜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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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키 185cm|체중 75kg | |
직업 | 축구 선수 (수비수[2] / 은퇴) | |
소속 | <colbgcolor=#fcd300><colcolor=#0033cc> 선수 | 미네룰 몰도바 노우아 (1978~1981 / 유스) 루체아파룰 부쿠레슈티 (1981~1982 / 유스) 미네룰 몰도바 노우아 (1978~1981) 루체아파룰 부쿠레슈티 (1981~1982) CSA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 (1982~1988)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1989~1992) 발렌시아 CF (1992~1994) 레알 바야돌리드 CF (1994~1995) 비야레알 CF (1995~1996) 아틀란테 FC (1996~1998) FC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 (1998~2001) |
국가대표 |
1. 개요
루마니아의 前 축구 선수. 1980년대 중반과 1990년대 중반까지 동구권을 대표하는 수비수로 동유럽 클럽이 들어올린 2개의 빅 이어를 모두 들어본 선수. 우아한 태클 스타일 덕분에 '사슴(Căprioara)'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루마니아 내에서는 알렉산드루 아폴잔, 크리스티안 키부, 게오르게 포페스쿠 등과 함께 역대 최고의 중앙 수비수로 꼽힌다. 1991년에는 발롱도르 투표에서 8위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으며, 가제타 스포르투릴로르가 선정한 루마니아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는 1986년 2위, 1987년 3위를 차지했다. 또한 벨로데디치는 스테아우아와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유러피언컵 우승이라는 엄청난 업적을 달성했을 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소속팀에서 승부차기로만 챔스 우승을 두번한 선수[3]이기도 하다.2. 선수 경력
2.1. 클럽
미오드라그 벨로데디치는 1964년 5월 20일 세르비아 국경과 가까운 루마니아의 소콜(Socol)이라는 마을에서 세르비아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때문에 벨로데디치는 초등학교 시절까지는 세르비아어만 사용했으며, 5학년부터 루마니아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의 루마니아어 실력 향상에는 후에 국가대표 동료가 된 가비 발린트와 게오르게 하지가 큰 도움을 주었다. 1978년, 다소 늦은 나이인 14살에 미네룰 몰도바 노우아의 유스팀에 합류했고, 3년 후인 1981년에는 루마니아 축구 연맹이 전국의 유망주들을 한 곳에 모으기 위해 만든 루체아파룰 부쿠레슈티로 이적했다.1982년 여름, 벨로데디치는 루마니아 최고의 명문 CSA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에서 성인팀으로 데뷔하였다. 클럽 회장 이온 알렉산드레스쿠가 우수한 스위퍼를 찾던 중 그를 영입한 것이었다. 첫 시즌에는 17경기 출전에 그쳤지만, 이후 주전으로 자리잡으며 팀의 5연속 리그 우승[4]에 기여했다.
그가 뛰던 무렵의 스테아우아는 리그 5연패, 국내컵 총 4회 우승, 그리고 스테아우아 창단 이후 첫 유러피언컵 결승 진출이라는 업적을 달성했다. 이후 FC 바르셀로나와의 결승전에서 그는 120분 풀타임을 소화했으며, 승부차기 끝에 바르셀로나를 꺾고 스테아우아는 창단 첫 빅 이어를 들어올림과 동시에 동유럽 최초로 유러피언컵에서 우승한 구단이 되었다.[5] 이어진 유러피언 슈퍼컵에서도 디나모 키예프를 상대로 선발 출전하여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독재 정권 하에 있던 1988년, 벨로데디치는 이웃 국가 유고슬라비아로 망명하게 된다. 그는 후에 자신의 망명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벨로데디치가 베오그라드에 도착한 후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회장에게 연락을 시도했으나, 팀이 지역 라이벌 FK 파르티잔과의 더비에서 패한 직후라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한 세르비아 친구가 그를 파르티잔에 데려가려 했지만, 벨로데디치는 오직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만 뛰겠다고 고집했다. 결국 회장과 대화가 성사되었고, 그가 1986년 유러피언컵 우승자임을 알게 된 회장은 즉시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첫 해에는 합법적인 계약 없이 친선 경기에만 출전할 수 있었다. 루마니아 당국이 그의 프로 계약서를 위조했고, UEFA는 그 정보를 바탕으로 1년간 출장 정지 처분을 내렸기 때문이다. 또한 차우셰스쿠 정권은 유고슬라비아로 망명한 그를 반역죄로 기소하여 궐석재판을 통해 벨로데디치에게 10년형을 선고했지만, 1989년 루마니아 혁명 이후 모든 혐의가 철회되었고 벨로데디치는 부쿠레슈티로 돌아올 수 있었다.
1989년, 벨로데디치는 마침내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공식 경기에 출전할 수 있게 되었고, 곧 팀의 핵심 선수가 되었다. 츠르베나 즈베즈다 시절에는 죄다 유고슬라비아 선수인데 반해, 벨로데디치만이 유일한 루마니아 선수였다.[6] 1990-91 시즌에는 벨로데디치의 커리어에서 두 번째 유러피언컵 우승을 차지했는데, 결승전에서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를 상대로 승부차기에 참여해 세 번째 키커로서 골을 성공시켰다. 이로써 그는 결승전에 출전하여 서로 다른 두 클럽으로 유러피언컵을 우승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으며, 동유럽 팀으로만 두 번 우승한 유일한 선수라는 기록도 세웠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는 총 3년 연속 유고슬라비아 리그 우승과 1번의 컵 우승을 차지했다.
1992년, 즈베즈다에서 활약하던 벨로데디치는 발렌시아에 입단하면서 스페인 라리가에 입성한다. 발렌시아에서는 두 번째 시즌에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팀은 7위를 기록했다. 그 시즌에는 거스 히딩크를 포함해 4명의 감독이 팀을 거쳐갔다는 특이 사항이 있다. 1994년에는 바야돌리드로 이적하게 된다. 오자마자 주전으로 뛰었고 팀은 19위였지만 라 리가가 기존의 20개 팀에서 22개로 확장되면서 운좋게도 강등을 피할 수 있었다. 스페인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1995-96 시즌에는 비야레알에서 뛰었는데, 이는 발렌시아 지역으로의 복귀를 의미했다.
1996년부터 2년간 멕시코의 아틀란테 FC에서 활약한 벨로데디치는 1998년, 34세의 나이로 친정팀 스테아우아로 돌아왔다. 복귀 후에도 수비의 중요한 축으로 활약하며 2001년 리그 우승을 포함한 두 개의 메이저 타이틀을 추가했다. 2001년 6월, 그는 루마니아 최상위 리그에서 총 235경기 출전, 21골을 넣었고 11개의 우승이라는 기록을 남기고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루마니아 축구 연맹에서 일하며 국가 유소년 팀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았다.
2.2. 국가대표 경력
벨로데디치는 1984년 7월 31일, 1-0 승리를 거뒀던 중국과의 친선경기에서 20세의 나이로 루마니아 축구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1987년에는 국가대표로 5골 중 3골을 기록했는데, 그 중 하나는 UEFA 유로 1988 예선에서 알바니아를 상대로 5-1 승리를 거둔 경기에서 넣은 것이다.유고슬라비아로의 망명으로 인해 3년 이상 국가대표팀에서 제외되었다가 복귀했다. 국가대표에서는 발칸의 마라도나라고 불렸던 게오르게 하지와 발을 맞췄는데 1994년 월드컵에서 하지와 함께 팀을 8강까지 이끄는 활약을 한다. 다만 8강전 스웨덴과의 승부차기에서 아이러니하게 벨로데디치가 실축하면서 팀은 8강에서 떨어지고 만다.
또한 UEFA 유로 1996과 UEFA 유로 2000에도 출전하여 총 4경기를 뛰었으며, 유로 2000에서는 8강까지 진출했다. 국가대표로는 총 55경기 출전에 5골을 기록했다.
3. 여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2013년 1월 6일 라리가 18R 레알 소시에다드와의 홈경기에서 후반 35분에 역전골을 기록하였고, 2분 뒤에 무회전 프리킥으로 추가골을 기록하면서 멀티골에 성공하였다. 이는 호날두의 리그 16호골이다. 결국 이 경기에서 4대3으로 승리를 거두면서 이 경기에서의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다.
[1] 세르비아어로는 Миодраг Белодедић라 표기한다.[2] 스위퍼[3] 다만 결승전에선 풀타임을 뛰었지만 승부차기 키커로 나서지는 못했다. 애초에 자기 차례가 오지도 않고 상대팀이 알아서 자멸해준 덕에 찰 기회가 없었다.[4] 그 중 4번은 더블 달성.[5] 바르셀로나가 승부차기에서 사연뻥을 시전하였다! 그렇게 스테아우아가 우승.[6] 물론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세르비아계 루마니아인이다. 성인 벨로데디치(Belodedici)를 세르비아어로 발음하면 Белодедић 즉, Belodedić이다. 벨로데디치가 태어난 장소는 소콜(Socol)이라는 작은 마을인데, 여기가 세르비아 국경 바로 옆인지라 세르비아계 루마니아인이 많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