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82e59><colcolor=#ffffff> 민병석 閔炳奭 | Min Byung-seok | |
출생 | 1929년 |
충청남도 천안군 (現 충청남도 천안시) | |
사망 | 1983년 10월 9일 (향년 54세) |
버마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랑군 아웅산 묘소 (現 미얀마 양곤 관구 양곤시 아웅산 국립묘지) | |
묘소 | 국립서울현충원 제1유공자 묘역-19호 |
본관 | 여흥 민씨[1] |
호 | 인산(仁山) |
부모 | 아버지 민익동(閔翊東)[2], 어머니 진주 류씨[3] |
형제자매 | 형 민병철(閔炳哲)[4] 남동생 민병선(閔炳宣)[5], 민병우(閔炳祐)[6] 여동생 민정숙(閔貞淑)[7], 민혜성(閔惠聖)[8] |
배우자 | 김보경[9] |
자녀 | 아들 민도준(閔度準)[10], 민남준(閔南準)[11] 딸 민윤희(閔允希)[12] |
학력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 / 학사) |
병역 | 대한민국 육군 대위 전역 (군의관) |
서훈 |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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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의사.대한민국 육군 군의관(육군 대위)으로 복무를 마친 후 1955년 도미하여 텍사스 대학교 병원과 Philadelphia General Hospital에서 내과수련과정을 마쳤다.
1959년 귀국하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내과에서 잠시 재직 후 1983년까지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내과에 몸담았으며 1980년 11월 전두환 대통령 주치의로 임명되어 이후 1983년 10월 9일 아웅산 묘소 테러사건 때 순국하였다.
현재까지 의학 교육학자로서 내분비, 신장, 면역학 분야 선구자로 관련 논문에서 많은 업적을 남기며, 후대의 관련 의학계의 연구에 밑거름이 되고 있다.
2. 약력
- 1952. 2.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 1955. 7. 미국 텍사스 대학교 병원에서 내과 수련
- 1958. 7. 미국 Philadelphia General hospital 에서 내과 수련
- 1959. 12.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내과 전임강사
- 1960. 9.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1964. 2. 미국 내과 전문의 취득
- 1969. 3. 25. 국내 최초 신장이식 성공 (국내 최초 장기 이식)
- 1972. 3.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내과 주임교수
- 1976. 11. 대한당뇨병학회 회장
- 1980. 11. 대통령 주치의
- 1980. 12. 대한신장학회 부회장
- 1982. 1. 대한면역학회 회장
- 1982. 7. 대한내분비학회 부회장
- 1982. 9.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장
- 1983. 10. 9.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당시 순국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 1983. 11. 대한의학협회에서 신장이식에 기여한 특별공로패 추증
3. 생애
1929년 충청남도 천안군(현 천안시)에서 아버지 민익동(閔翊東, 1907년생)과 어머니 진주 류씨(1905년생) 이류계 류성구(柳聖九)의 딸[13] 사이의 4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1952년에 졸업하였다. 졸업 후 육군군의관 복무를 마친 후 1955년 도미하여 University of Texas Hospital과 Philadelphia General Hospital에서 내과수련과정을 마쳤다. 이후 전임강사로 근무 중 1962년 선진의학에 대한 학구열에 또다시 도미하여 텍사스 주립대학 부속 M.D. Anderson 병원에서 수련과정을 마치고 1964년 당시 국내의료계에서는 거의 없었던 미국 내과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여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이후 다시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으로 복귀하여 명동성모병원 내과교수로 내분비-대사학 진료와 연구 및 교육에 전념하면서 1969년에는 외과 이용각과 함께 국내 최초로 신장이식을 성공시키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이는 수많은 만성신부전증환자들에게 크나큰 복음이 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장기이식분야의 기초를 이룩하였다는데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이와 함께 당뇨병과 갑상선질환을 비롯한 내분비-대사질환의 진료뿐만 아니라 이에 관련되는 기초연구에서도 국내에서는 최초로 방사 면역측정법에 의한 인슐린 측정과 경쟁적단백결합법에 의한 혈장 코르티솔(cortisol) 측정, 또한 방사수용체측정법에 의한 적혈구 및 지방세포 인슐린수용체 측정법 등의 임상응용을 통하여 관련 임상질환의 연구에 필수적인 수단을 제공하는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
1972년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내과학교실 주임교수를 역임하면서 내과학교실 발전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고 1976년 가톨릭의과대학 임상의학연구소장과 대한당뇨병학회 회장, 1977년 대한핵의학회 회장, 1980년 대한신장학회 부회장, 1982년 대한면역학회 회장 및 대한내분비학회 부회장 임무를 수행하여 우리나라 내과학 관련 전문분야의 정립과 발전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이와 같은 우리나라 의료계 발전에 미친 공적과 함께 뛰어난 임상진료와 연구평가에 힘입어 1980년에는 대통령 주치의에 임명되었다.
1981년에는 태국 정부로부터 `Knight Grand Cross of the Most exalted Order of the White Elephant', 1983년에는 가봉공화국으로부터 `Ordre National de Merit Republic of Garbon'의 훈장을 수훈하였다. 이와 함께 1982년에는 새로운 가톨릭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탄생한 강남성모병원의 병원장을 역임하면서 오늘날의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의 중심 부속병원인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탄생의 초석을 다졌다.
3.1.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순국
1983년 전두환 대통령 서남아시아 순방에 대통령 주치의 자격으로 동행하였다가 첫 방문지인 미얀마 수도 양곤의 아웅산 묘역에서 북한 간첩의 폭발물 테러에 휘말려 사망하였다. 향년 54세.사후 10월 13일 국립서울현충원 제1유공자 묘역에 안장됐으며 순국 20주기인 2003년에 강남성모병원에서 내과외래에서 흉상이 제막되었다.[14] 1983년 이후 지금도 매년 현충일과 추모일(10월 9일)에는 병원 가족들과 후학들이 국립현충원을 찾아 헌화하고 고인의 뜻을 기리고 있다.
[1] 공목공파-지애공파 31세손 병○(炳○), 경○(慶○) 형○(炯○) 항렬.(족보)[2] 1907년생.[3] 1905년생.[4] 1926년생.[5] 1935년생.[6] 1946년생.[7] 1938년생.[8] 1942년생.[9] 김해 김씨로, 1937년생이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차의과대학 소아청소년과 교수로 재직하였다.[10] 1966년생.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가톨릭의대 성모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현재 민도준류우마내과의원 원장으로 있다.[11] 1968년생.[12] 1962년생.[13] 다음은 이하 출처 사진들이다. [14] 지금은 2009년 개원한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외래공간으로 옮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