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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07 02:52:04

버마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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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연방 [1]
ပြည်ထောင်စု မြန်မာနိုင်ငံတော်‌
Union of Burma
버마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2]
ပြည်ထောင်စု ဆိုရှယ်လစ်သမ္မတ မြန်မာနိုင်ငံတော်
Socialist Republic of the Union of Burma
파일:미얀마 국기(1974-2010).svg 파일:Variant_of_1974-1988_State_seal_of_Myanmar.png
국기[3] 국장
1962년 ~ 1988년
성립 이전 멸망 이후
버마 연방 미얀마 연방 공화국
<colbgcolor=#da2d1c><colcolor=#fff> 국가 세상이 끝날 때까지
수도 랑군
언어 버마어
정치 체제 군부독재
집권당 버마 사회주의 계획당
통치자 네 윈
통화 버마 짯
역사 1962년 3월 2일 군사반란
1988년 8월 8일 8888 항쟁

1. 개요2. 역사3. 출처

[clearfix]

1. 개요

1962년부터 1988년까지 독재자 네 윈이 통치하던 미얀마사회주의 국가로 집권당은 버마 사회주의 계획당(BSPP)이었다.

2. 역사

우 누가 집권하는 버마 연방서구식 민주주의에 기반한 정치를 했으나 불교 국교화에서 소수 민족들의 반발을 가져오자, 모든 종교의 자유화를 선언하고 소수 민족에 대한 자치권을 논의하자 불교 승려들이 반발을 샀다. 같은 시기 물가는 갈수록 치솟아 민생이 위협받고, 관료들은 부정부패를 일삼는가 하면 도시고 농촌이고 할 것 없이 소수민족 무장단체들의 게릴라전으로 일반 주민들이 공포에 떨어야 했다.[4]

이것 때문인지 1961년 3월 2일, 의회에서 소수 민족에 대한 자치권을 논의한 지 하루가 지나자 네 윈 장군이 이끄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는 쿠데타를 일으킨 이유가 소수민족들 때문이라 보며 연방제를 폐지하고 우 누 등 구 정부 인사들과 소수민족 지도자들을 체포하겠다고 선언하여 버마족들의 박수를 받아냈다. 집권 뒤 네윈 지지파 장교들로 구성된 혁명위원회가 네 윈을 보좌하며 국정을 수행했고, 1962년에 '버마사회주의계획당(BSPP)'을 발족하고 1964년부터 유일합법정당으로 인정받았다. 물론 민주주의 국가로서 구색을 갖추기 위해 의회도 있었긴 하지만 총선에선 BSPP의 승인을 받은 후보만 출마할 수 있어서 '짜고 치는 고스톱' 수준이었다.

네 윈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버마족 우선주의와 반외세, 쇄국정책 등을 기조로 '버마식 사회주의'를 구축해 친영/친일파 세력을 대거 숙청시켜 식민잔재 척결에 주력했다. 그러나 그의 개혁정책은 또다시 국민들 사이에 혼란을 불러일으켜 서구화된 버마인들과 화교, 인도인 상인들이 해외로 도피해 막대한 자금이 유출되어 자주 경제정책은 실패했고, 1974년엔 의회마저 해산한 후 헌법을 고쳐 '버마사회주의연방공화국'으로 개편했다.

경제가 점점 나빠지는데도 경제를 모르는 네윈 정권은 외국인들의 투자를 막고, 돈만 무작정 찍게 하거나 마약 밀거래를 하는 등 경제 발전과 관련없는 것만 독단적으로 수행하다 보니 1987년 유엔으로부터 '세계 최빈국'으로 지정됐다. 1981년에 네 윈 총리는 대통령직을 우 산유에게 넘기고 막후에서 권력을 행사했다.

이미 1974년에 대학생들이 우 탄트 장례식을 계기로 반군부 투쟁을 벌였으나 오히려 군부는 이를 폭력으로 진압했다. 그럼에도 시위는 수그러지지 않았으며 1987년 화폐 무효화 조치를 계기로 1988년에 '8888 항쟁'이라 불리는 대규모 반군부 투쟁이 벌어졌다. 이에 진압군이 시위대 수천명을 무참히 학살하자 이 참상이 세계 외신에 보도되어 국제사회의 비난을 샀다. 그 사이 셰인 르 윈과 마웅 마웅으로 대통령이 두 번 바뀌다가 같은 해에 소 마웅 장군을 주축으로 한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LORC)'가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네 윈을 축출하고 '미얀마 연방'을 세웠으나, 군부 내에서 권력이 교체된 것에 불과하였으며, 미얀마의 군정은 2011년까지 20년 넘게 계속되었다.

3. 출처



[1] 1962–1974[2] 1974–1988[3] 1974년부터 사용한 국기. 대만청천백일만지홍기 혹은 사모아국기와 비슷하다.[4] 당시 온갖 무장단체의 준동으로 버마 중앙정부의 통치력이 온전히 미치는 곳은 랑군 등 수도권 일대에 불과했고, 그로 인해 '랑군 정부'라는 비아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