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3-15 20:11:01

슈웨다곤 파고다

쉐다곤 파고다에서 넘어옴

{{{#!wiki style="word-break: keep-all;"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fecc02 33%,#30b42f 33%,#30b42f 66%,#eb2337 33%)"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color=#fff><colbgcolor=#34b233> 상징 국가 · 국기 · 국장 · 국호
역사 역사 전반 · 따웅우 왕조 · 꼰바웅 왕조 · 영국령 버마 · 버마국 · 버마 연방 · 버마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 미얀마 연방
외교 외교 전반 · ASEAN · 일대일로
경제 경제 전반 · 미얀마 짯
국방 땃마도네 윈 · 탄 쉐 · 테인 세인 · 민 아웅 흘라잉 · 카렌 민족해방군 · 카친 분리독립군 · 로힝야 구원군 · 몽타이군 · 시민방위군
행정구역 행정구역 전반 · 네피도 · 양곤
문화 미얀마어 · 바간 · 쉐다곤 파고다 · 황금바위 · 양곤순환선 · 죽음의 철도 · 야자 타니 대로 · 띤잔
민족 버마족 · 카렌족 · 카친족 · 샨족 · 로힝야족 · 인도계 미얀마인
}}}}}}}}} ||}}}
파일:external/pixabay.com/shwedagon-pagoda-666763_960_720.jpg

공식 홈페이지

1. 개요2. 역사3. 구조4. 방문 팁5. 다른 파고다6. 대중 매체에서

1. 개요

Shwedagon Pagoda
미얀마 양곤에 있는 높이 112.17 m (7.17미터 정도인 첨탑까지 포함)인 황금 . 미얀마 전체의 랜드마크이자 미얀마 불교도들의 정신적 지주.

이름의 쉐는 황금, 다곤은 언덕이라는 뜻이다.

미얀마 설화에 따르면 인도에서 석가모니가 보드가야의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고 아직 보리수 밑에 앉아 있을 때, 지나가던 미얀마 출신 상인 형제(따뿌싸Tapussa와 발리까Bhallika)가 꿀을 바른 빵을 정성스럽게 공양 올렸다.[1] 그러나 공양받은 대가로 해줄 만한 것이 없어서 석가모니는 상인 형제들에게 자신의 머리카락 여덟 가닥을 뽑아 선사하였다. 상인 형제는 고국으로 돌아와 머리카락을 임금에게 바쳤는데, 임금이 그중 두 가닥을 봉안해 언덕에 묻고 그 위에 쉐다곤 파고다를 만들었다고 한다.

불교 전설에 따르면 석가모니가 출가해서 처음 머리를 깎자 제석천 인드라가 머리카락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받아서 수미산 꼭대기 도리천에 안치하여 첫 불탑을 세웠다. 이후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수행하기 직전 수자따라는 여인에게 우유죽을 공양 받았는데, 다 먹고 남은 그릇을 네란자라강에 버렸더니[2] 그것을 네란자라강의 용왕이 가져가 자기 궁전에 안치하여 두 번째 불탑을 세웠다.

쉐다곤 파고다의 창건설화는 위에서 설명한 전설을 전제로 한다. 쉐다곤 파고다는 전 우주에서 세 번째 불탑이자, 인간계에서 만든 첫 번째 불탑이라는 것이다. 쉐다곤 파고다에 권위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미얀마가 아주 일찍부터 불교와 인연이 깊다고 강조하는 설화이다. 역사적 사실과는 별개로 미얀마 불교의 자기믿음, 또는 프로파간다로 이해해야 한다. 과거 신라에도 서라벌이 석가모니 이전 시대의 부처(과거칠불)와 인연이 깊다는 전설이 퍼져 삼국유사에도 기록되었는데 비슷한 맥락이다.

2. 역사

미얀마에 전해지는 전설과 별개로 역사적으로는 11세기 전후에 창건했다고 추정한다. 이후 지진에서 온갖 재해, 여러 나라 멸망을 거치면서 약탈되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번번히 재건하며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1608년에는 포르투갈인 용병이자 탐험가인 필리페 데 브리토 에 니콜테가 쳐들어와 약탈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대가로 니콜테는 1613년 미얀마군에 잡혀 참수당했다.

1700년대, 미얀마의 정복군주신뷰신 시대에 현재와 같은 99미터 높이로 증축했다. 신뷰신의 왕비 몸무게와 같은 황금을 기존에 있던 파고다에 덧입혔다고 한다.

이후 1824년 벌어진 영국의 침략 때도 수난을 당해야 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30px-Shwedagon_pagoda.jpg

이 당시 영국인이 그린 쉐다곤 파고다.

영국군은 2년 넘게 이 근처에 주둔하며 요새로 썼고 실컷 약탈해갔다. 하지만 이후에도 미얀마인들은 재건했고 영국 식민지 때는 그나마 재건된 이 탑에 대해 보호를 받긴 했다.

2021년 미얀마 쿠데타가 발발하면서 군부 불법 정권이 들어서자, 미국 등 해외 국가에서 군부에 대한 자금을 동결하였는 데 이로 인해 자금줄이 말랐는지 이 파고다의 황금판을 떼어가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3] 하지만 원래 이 황금판들은 비바람에 손상되기 때문에 5년에 한번씩 교체하는데, 마침 작년부터 정기 교체 시기에 들어가서 정기 교체 중인 것이 쿠데타와 맞물려 이런 루머가 생겼다는 주장도 있다.2020년에 작성된 기사, 정기적 교체 주기에 들어갔음을 알리고 있다. 아무리 자금줄이 없다고 해도 미얀마인의 정신적 상징물을 훼손한다는 것은 미얀마 불교도는 물론[4] 민주화 운동에 소극적인 미얀마인도 항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만드는 자폭 스위치이기 때문. 단순 교체인지 아니면 떼어가서 파는 지에 대해선 이후 향방을 봐야 할 것이다.

3. 구조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hwedagon-Pagoda-anatomy.jpg

본탑의 구조

보다시피 금판으로 뒤덮여 있다. 대탑 주변으로 72개의 작은 탑이 있으며 모든 탑 안에 크고 작은 불상이 가득 있다. 원래 처음에는 16m에 불과했는데 신 소부 여왕이 자기 몸무게만큼의 금(약 40kg)을 보시한 이후 역대 왕들이 앞다퉈 금을 기증하고 일반인들도 불교의 믿음대로 금을 보시해 계속 붙여나가면서 지금처럼 거대한 황금사원이 됐다고 한다. 금의 무게는 무려 60톤에 꼭대기에는 수천 캐럿의 다이아몬드들을 비롯한 보석으로 장식돼 있다. 1년에 두 번씩 불자들이 시주한 금을 추가로 붙이고 있어서 현재도 점점 커지고 있다. 2016년 8월 기준 높이는 무려 112.17m에 달한다.

확인할 수는 없으나 현지인들의 말에 따르면 탑 내부에 처음 건립될 때를 비롯해 중간중간 대대적인 보수작업이 있을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기부한 엄청난 양의 보석이나 금불상 등이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미얀마는 IMF 걱정은 안해도 될것같다

실제로 미얀마인들에게도 말 그대로 성지인 장소로 항상 순례객으로 북적북적한다. 탑뿐만 아니라 수많은 불상, 불교 박물관들, 보리수나무, 불교용품 상점, 인도 마하보디 사원의 복제품 등등 거대한 관광단지 같은 곳이다. 거대한 황금 탑이니만큼 해가 질 때 빛을 받을 때나 저녁 야경도 매우 아름답다. 양곤에 가면 반드시 찾는 장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 방문 팁

5. 다른 파고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30px-Naypyidaw_--_Uppatasanti_Pagoda.jpg

미얀마에서는 유명한 절이나 불탑들을 다른 지역에도 똑같이, 혹은 비슷하게 건립하는 것이 상당히 보편화되었다. 2006년에 건립된 미얀마 네피도의 Uppatasanti Pagoda와 같이 미얀마뿐 아니라 동남아권 국가 많은 곳에서 아류작처럼 보이는 파고다들이 많다. 다만 무작정 A는 B의 아류작(혹은 표절)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원래 파고다는 불교라는 공통된 종교적, 철학적 사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건축양식을 적용해서 건립하다보니 전반적으로 비슷한 양식과 구도, 건축방식을 사용해서 지어지기 때문이다.

위 사진에 찍힌 Uppatasanti Pagoda 또한 슈웨다곤의 아류작이라기보단 슈웨다곤 파고다 네피도 지점(...) 정도가 좀더 정확하다.

6. 대중 매체에서



[1] 이때 석가모니에게 아직 음식을 받아 먹을 발우가 없었는데, 사천왕이 저마다 하나씩 발우를 가져왔다고 한다. 그러자 석가모니는 사천왕이 바친 발우 4개를 신통력으로 하나로 합쳐서 사용했다고 한다.[2] 이때 석가모니가 "내가 수행을 성취할 수 있다면 이 그릇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리라." 하면서 그릇을 강물 위에 올렸더니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3] 하술하지만 이 파고다는 그야말로 미얀마 불교계의 성지라 할 수 있는 곳인데 그런 곳까지 침탈할 정도면 정말 자금줄이 말랐다고 볼 수 있다.[4] 2007년 시위 당시 불교계가 나서자 군부가 결국 항복했다.[5] 미얀마 전반적으로 대중교통이 상당히 낙후되어 있다. 2016년까지만 해도 그나마 있는 버스 시스템이 명확한 노선도나 정거장 표지판도 없이 차장과 차장 보조들이 정거장마다 "어디어디 거쳐서 어디까지가는 버스요!"라고 외치던 상황이었다. 2017년 1월부로 대대적으로 개편되어 이젠 노선도도 생겼고 정거장 표지판도 생겼으며 에어컨이 나오는 신형 버스들도 점점 늘어가고 있다.현재는 버스 어플도 있어 조금만 신경쓰면 대중교통도 이용할 만 하다[6] 특히 수요일 출생자는 출생시간이 오전이냐 오후냐에 따라 방위가 완전히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