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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4-15 14:57:27

바랑키야

<colcolor=#fff> 파일:콜롬비아 국장.svg 콜롬비아 공화국의 도시
바랑키야
Barranquilla
파일:바랑키야 시기.svg
<colbgcolor=#CE1126> 국가 콜롬비아
아틀란티코주
면적 154km²
인구 1,206,319명[1]
인구밀도 8,618명/km²[2]
시간대 UTC-05:00
링크 바랑키야 행정 사이트
1. 개요2. 역사3. 경제4. 바랑키야 카니발5. 출신인물6. 자매 도시

1. 개요

콜롬비아 아틀란티코주의 주도이자 콜롬비아에서 4번째로 인구수가 많은 도시로 마그달레나 강 삼각주에 위치해 콜롬비아 최대의 항구도시이자 공업도시이다. 그래서 '콜롬비아의 황금문'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다.

2. 역사

콜롬비아의 다른 대도시들과 달리 바랑키야는 스페인 식민지 시절 설립되지 않았다. 단지 마그달레나 강을 오르고 내리면서 정박하던 곳에 불과했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 항구 도시는 바랑키야 바로 옆에 있는 카르타헤나이다. 바랑키야가 도시가 된 것은 콜롬비아에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전쟁을 하던 시기였다. 카르타헤나의 지도자인 마누엘 로드리게스가 바랑키야 일대에 살던 원주민들에게 콜롬비아 독립 지지를 얻기 위해 1813년 4월 7일 바랑키야를 도시로 승격시켰다.

이 때 쯤 산업혁명이 시작되어서 콜롬비아에도 증기선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수심이 깊고 콜롬비아의 내륙을 연결하는 마그달레나 강이 위치해 커피를 수출하는 관문 도시가 되었다. 강과 항구가 국내외로 연결되면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콜롬비아에서 가장 국제적이고 다문화적인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1893년에 만들어진 푸에르토 콜롬비아는 세계에서 가장 긴 부두 중 하나이자 콜롬비아의 주요 항구로, "콜롬비아의 황금문"이라는 별명이 붙어졌다. 그로인해 유럽, 시리아, 레바논, 일본, 중국 등에서 이민자들이 몰려왔고 이로 인해 콜롬비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콜롬비아에 내전이 일어나고 마약 카르텔이 설치면서 주요 산업 활동 부문의 붕괴로 이어져 도시 경제는 급전직하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전이 어느정도 잠잠해지고 마약 카르텔의 두목들도 하나 둘 체포되면서 도심을 재개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와의 교역이 증가함에 따라 태평양 연안의 항구 도시인 부에나벤투라가 성장하였다. 이에따라 대서양 연안의 항구인 바랑키야의 중요성과 경쟁력은 점차 떨어지게 되었다.

3. 경제

바랑키야는 콜롬비아의 최대 항구 도시이자 공업 도시로 식물성 지방, 기름, 의약품, 화학 제품, 신발, 유제품, 육류, 비누, 버스, 보트를 생산함과 동시에 농촌 지역에서 생산되는 면화, 커피 및 석유를 수출하는 허브이기도 하다. 19세기 후반에 바랑키야로 이주한 레바논인유대인은 바랑키야의 사회 및 정치 엘리트로 성장하였고 이들을 코스모폴리탄 부르주아라고 부른다.

4. 바랑키야 카니발

세계에서 가장 큰 카니발 중 하나로 보통 2월이나 3월 초인 재의 수요일(사순절의 첫날) 직전에 나흘간 개최된다. 참가자들은 전통 의상을 입은 채로 쿠럼비아[3], 마풀레[4], 가이타[5] 등을 연주하거나 춤을 추면서 퍼레이드를 한다. 유네스코는 2003년에 이 축제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5. 출신인물

6. 자매 도시



[1] 통계인구, 2018년 기준.[2] 통계인구, 2018년 기준.[3] 콜롬비아의 전통 춤으로, 아프리카 드럼, 스페인 기타, 원주민 피리의 요소가 섞인 리듬이 특징이다.[4] 아프리카계 전통 춤으로, 빠르고 리듬감 있는 동작이 특징으로 에너지 넘치고 관능적인 움직임이 많다.[5] 전통 피리 ‘가이타’를 중심으로 한 음악으로 축제에서 사용되는 퍼레이드 음악에 자주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