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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31 08:21:33

바바 노부후사

다케다 4명신
야마가타 마사카게 바바 노부후사 나이토 마사토요 코사카 마사노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0px-Baba_Nobufusa.jpg

馬場信房 (ばば のぶふさ)
(1515년 ~ 1575년 6월 29일)

불사신의 오니미노(不死身の鬼美濃).[1][2]

1. 개요2. 대중 문화에서

1. 개요

전국시대의 무장. 통칭 미노노카미(美濃守)[3].

본래 이름은 쿄라이시 카게마사(教来石景政)로 다케다 노부토라 때부터 다케다 가문을 섬겼으며, 다케다 신겐이 처음으로 출전하는 운노구치 성 공격에 참가하여 히라가 겐신을 죽였다. 1541년에 신겐의 노부토라 추방 계획에 참가하여 그 직후에는 스와, 이나 공격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다.

1546년에 바바 일족을 계승하면서 선대 노부토라 때 멸문했던 바바 성씨를 계승하는 것을 허락받아 사무라이 대장으로 임명되고, 바바 노부후사(馬場信房)로 이름을 고쳤다. 시나노 공격에도 참가하여 1559년에는 후다이가로슈에 임명되었으며, 1561년에 후다이가로슈의 1명으로 가와나카지마 회전에서 우에스기군의 후방을 치는 별동대를 이끌었다.

1562년에는 전년에 병사한 하라 토라타네를 닮아 미노노카미의 자칭을 허락받아서 바바 미노노카미 노부하루로 개명하였으며, 그 후 1568년의 스루가 침공[4], 1569년의 호죠 가문과의 미마세토우게 합전에 참여하였다. 또한 1572년의 신겐의 서상 작전에 참가하여 다다라이 성을 공략하거나 도쿠가와 가문과의 미가타가하라 합전에 참전하여 무공을 세웠다.

신겐 사후, 야마가타 마사카게와 함께 다케다 카츠요리를 보좌하였으나 소외당하였으며, 1575년 오다 노부나가와의 나가시노 전투에서는 카츠요리에게 후퇴를 진언했지만 묵살되었다. 다케다 군의 우익을 이끌었으나 오다, 도쿠가와 군에게 막혀 돌파하지 못하였으며, 원래 수적으로 불리한데다 장수들이 죽어나가며 다케다 군은 대패한다.

61세의 노신이었던 노부하루는 주군 가츠요리가 퇴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 적진에 뛰어들어 전사한다. 오다 측 기록인 신장공기에 따르면 '바바 미노노카미의 전의의 움직임, 비교할 자가 없다.'며 높게 평가하고 있다.

장남인 바바 마사후사(馬場昌房)는 1582년 죽었기 때문에 노부하루의 동생인 노부요리(信頼)가 가독을 계승하였다. 바바 가는 그 후 에도 막부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2. 대중 문화에서

2.1.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

파일:馬場信春1.jpg 파일:馬場信春.jpg
100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
파일:ny_babanobuharu01_shinsei.jpg
노부나가의 야망 신생
파일:GFyXUjxbQAASo3p.jpg
노부나가의 야망 출진

신생에서 능력치는 통무지정순으로 90/85/88/75.

2.2. 영상물

풍림화산에서는 쿄라이시 카게마사 시절부터 등장. 하급 무사였으나 주인공 야마모토 간스케와 나란히 다니면서 첩보전으로 공을 세워 대가 끊어졌던 가문[5]인 바바 씨를 승계하게 하여 신분을 상승시키고 바바 노부하루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갑툭튀해서 높은 자리를 받은데다가 허풍선이로 오해받기 일쑤인 간스케와 시종일관 친한 사이.


[1] 다케다 3대를 섬기며 40여년 간 70여차례의 회전(會戰)에 나가 싸웠으나 나가시노 회전에서 전사하기 전까지 단 한개의 작은 상처도 입지않아 '불사신의 오니미노'라고 불렸다.[2] 하라 토라타네의 별명 중에 오니미노(鬼美濃)가 있는데 이쪽은 그냥 오니미노로, 앞에 수식어가 붙지 않았다는 차이가 있다.[3] 미노는 일본 도산도에 있던 옛 구니를 말하고 카미는 "태수"를 의미한다.[4] 이마가와 우지자네를 멸망시킨 전쟁이었다. 이마가와 우지자네의 집에는 보물이 많았으며 이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신겐은 부하들에게 그 보물들을 모두 가져오라고 명령했으나, 다케다 군의 명예가 떨어지는 것을 염려한 바바 노부후사는 바로 우지자네의 저택으로 달려가 아군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저택을 불질렀다고 한다.[5] 노부토라의 학정 내지는 숙청 사업으로 인해 가이나 시나노의 많은 명가들은 대가 끊긴 집이 많았다. 신겐은 아들이나 신예 무사들의 성을 바꿔 해당 가문들을 잇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