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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런 스캇

바이런 스캇의 수상 이력 / 역대 등번호
{{{#!fold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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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1987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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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올해의 감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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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수상자 소속팀 성적
1962-63 해리 갤러틴 세인트루이스 호크스 48승 32패 .600
1963-64 알렉스 해넘 샌프란시스코 워리어스 48승 32패 .600
1964-65 레드 아워백 보스턴 셀틱스 62승18패 .775
1965-66 돌프 셰이스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55승 25패 .688
1966-67 조니 커 시카고 불스 33승 48패 .407
1967-68 리치 게린 세인트루이스 호크스 56승 26패 .683
1968-69 진 슈 볼티모어 불리츠 57승 25패 .695
1969-70 레드 홀즈먼 뉴욕 닉스 60승 22패 .732
1970-71 딕 모타 시카고 불스 51승 31패 .622
1971-72 빌 셔먼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69승 13패 .841
1972-73 톰 하인슨 보스턴 셀틱스 68승 14패 .829
1973-74 레이 스캇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52승 30패 .634
1974-75 필 존슨 캔자스시티-오마하 킹스 44승 38패 .537
1975-76 빌 피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49승 33패 .598
1976-77 톰 니살크 휴스턴 로키츠 49승 33패 .598
1977-78 허비 브라운 애틀랜타 호크스 41승 41패 .500
1978-79 코튼 피치먼스 캔자스시티 킹스 48승 34패 .585
1979-80 빌 피치 보스턴 셀틱스 61승 21패 .744
1980-81 잭 맥키니 인디애나 페이서스 44승 38패 .537
1981-82 진 슈 워싱턴 불리츠 43승 39패 .524
1982-83 돈 넬슨 밀워키 벅스 51승 31패 .622
1983-84 프랭크 레이든 유타 재즈 45승 37패 .549
1984-85 돈 넬슨 밀워키 벅스 59승 23패 .720
1985-86 마이크 프라텔로 애틀랜타 호크스 50승 32패 .610
1986-87 마이크 슐러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49승 33패 .598
1987-88 더그 모 덴버 너기츠 54승 28패 .659
1988-89 코튼 피치먼스 피닉스 선즈 55승 27패 .671
1989-90 팻 라일리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63승 19패 .768
1990-91 돈 체니 휴스턴 로키츠 52승 30패 .634
1991-92 돈 넬슨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55승 27패 .671
1992-93 팻 라일리 뉴욕 닉스 60승 22패 .732
1993-94 레니 윌킨스 애틀랜타 호크스 57승 25패 .695
1994-95 델 해리스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48승 34패 .585
1995-96 필 잭슨 시카고 불스 72승 10패 .878
1996-97 팻 라일리 마이애미 히트 61승 21패 .744
1997-98 래리 버드 인디애나 페이서스 58승 24패 .707
1998-99 마이크 던리비 시니어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35승 15패 .700
1999-00 닥 리버스 올랜도 매직 41승 41패 .500
2000-01 래리 브라운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56승 26패 .683
2001-02 릭 칼라일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50승 32패 .610
2002-03 그렉 포포비치 샌안토니오 스퍼스 60승 22패 .732
2003-04 허비 브라운 멤피스 그리즐리스 50승 32패 .610
2004-05 마이크 댄토니 피닉스 선즈 62승 20패 .756
2005-06 에이버리 존슨 댈러스 매버릭스 60승 22패 .732
2006-07 샘 미첼 토론토 랩터스 47승 35패 .573
2007-08 바이런 스캇 뉴올리언스 호네츠 56승 26패 .683
2008-09 마이클 버튼 브라운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66승 16패 .805
2009-10 스캇 브룩스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50승 32패 .610
2010-11 톰 티보도 시카고 불스 62승 20패 .756
2011-12 그렉 포포비치 샌안토니오 스퍼스 50승 16패 .758
2012-13 조지 칼 덴버 너기츠 57승 25패 .695
2013-14 그렉 포포비치 샌안토니오 스퍼스 62승 20패 .756
2014-15 마이크 부덴홀저 애틀랜타 호크스 60승 22패 .732
2015-16 스티브 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73승 9패 .890
2016-17 마이크 댄토니 휴스턴 로키츠 55승 27패 .670
2017-18 드웨인 케이시 토론토 랩터스 59승 23패 .720
2018-19 마이크 부덴홀저 밀워키 벅스 60승 22패 .732
2019-20 닉 너스 토론토 랩터스 53승 19패 .736
2020-21 톰 티보도 뉴욕 닉스 41승 31패 .569
2021-22 몬티 윌리엄스 피닉스 선즈 64승 18패 .780
2022-23 마이클 버튼 브라운 새크라멘토 킹스 48승 34패 .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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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등번호 4번
아드리안 댄틀리
(1977~1979)
바이런 스캇
(1983~1993)
프랭키 킹
(1995~1996)
프랭키 킹
(1995~1996)
바이런 스캇
(1996~1997)
론 하퍼
(1999~2001)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등번호 00번
제임스 워디
(1987)
바이런 스캇
(1988)
벤와 벤자민
(1993)
인디애나 페이서스 등번호 4번
마이클 윌리엄스
(1990~1992)
바이런 스캇
(1993~1995)
트래비스 베스트
(1995~2002)
밴쿠버 그리즐리스 등번호 4번
팀 창단 바이런 스캇
(1995~1996)
스트로마일 스위프트
(2000~2005, 2006~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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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런 안톰 스캇
Byron Antom Scott
출생 1961년 3월 28일 ([age(1961-03-28)]세)
유타 주 오그던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출신학교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신장 193cm (6' 4")
체중 93kg (205 lbs)
윙스팬 200cm (6' 7")
포지션 슈팅 가드
드래프트 1983 NBA 드래프트 1라운드 4순위
샌디에이고 클리퍼스 지명
소속 팀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1983~1993)
인디애나 페이서스 (1993~1995)
밴쿠버 그리즐리스 (1995~1996)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1996~1997)
파나티나이코스 BC (1997~1998)
지도자 새크라멘토 킹스 코치 (1998~2000)
뉴저지 네츠 감독 (2000~2004)
뉴올리언스 호네츠 감독 (2004~2009)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감독 (2010~2013)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감독 (2014~2016)
등번호 4번 - 레이커스 / 인디애나 / 밴쿠버
00번 - 레이커스[1]

1. 개요2. 일생
2.1. 현역 시절2.2. 지도자 시절2.3. 기타

[clearfix]

1. 개요

미국의 농구인으로, NBA에선 현역 선수 시절에는 쇼타임 레이커스의 준수한 롤플레이어였으나, 지도자가 된 이후에는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성적도 다 망쳐가지고 팬들에게 무지막지하게 욕만 먹은 농구인이었다.[2]

바이런 스캇의 명언으로 코비 브라이언트에겐 많은 슛을 던질 특권이 있었다, 한 경기당 3점슛 시도는 15~20 개가 적당하다 등이 있었다. 선수시절의 성공과는 정 반대의 꼰대질을 감독이 되면서 해버린 특이한 멘탈리티의 소유자. 릭 아델만, 에디 조던(전 워싱턴 위저즈 감독) 등처럼 프린스턴 모션 오펜스를 구사했다.

2. 일생

2.1. 현역 시절

1961년 유타 주 오그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로스앤젤레스 인근 지역인 잉글우드에서 보냈고, 모닝사이드 고등학교 재학 당시 칼 프랭클린(1946~2020) 감독 밑에서 농구를 배운 후 1979년 애리조나 주립대학교에 진학하여 선배 팻 리버, 앨튼 리스터와 함께 네드 울크(1920~2003)[3]와 밥 웨인하워 감독에게 가르침을 받고 1983년 NBA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4순위로 샌디에이고 클리퍼스에 지명되었지만, 놈 닉슨과 교환권을 얻어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로 트레이드 되었다.[4][5]

파일:external/cdn.mirror.wiki/Byron-Scott-Lakers.jpg
당시 루키 시즌이었던 1983-84시즌부터 선발로 출전해 평균 10.6득점을 기록하면서 올 루키 퍼스트 팀에 선출되었다. 2년차인 1984-85시즌에는 라이벌인 보스턴 셀틱스를 누르고 처음으로 우승반지을 얻으며 슈터로서의 능력을 발휘해 3점슛 성공률 43.4%로 1위에 올랐고, 평균 15득점 이상을 넣은 유력한 득점 기록원으로 성장했다. 그 후 2년 뒤인 1986-87에도 보스턴을 상대로 또 한번 우승을 얻게 되었다.

1987-88시즌에는 커리어 처음이자 유일하게 평균 21.7득점을 넣으며 20득점을 넘었는데, 제임스 워디나 매직 존슨 등을 누르며 팀 가운데에서 최고 성적을 기록하였고 결승에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를 만나 백투백 챔피언에 성공했다. 그러나 1988-89시즌 파이널 1차전을 앞두고 햄스트링 부상을 당해 전력 손실이 엄청나게 커졌고, 공격 3옵션을 잃었을 뿐 아니라, 아이제아 토마스조 듀마스를 수비해야 할 빠르고 작은 스타팅 가드가 없어져 버리면서 시리즈 내내 매직에게 부하가 크게 걸릴 수 밖에 없었다. 준우승 이후 카림이 은퇴했어도 Big 3 멤버인 워디, 매직에 이어 3번째로 득점을 기록하며 리그 중에서도 가장 강호팀으로 꼽혔으나, 1989-90시즌 플레이오프 준결승에서는 피닉스 선즈에게, 1990-91시즌 NBA 파이널에서는 그 분이 이끄는 시카고 불스에게 패하며 우승에는 실패했다. 오프 시즌에는 매직 존슨이 HIV 양성반응 판정이 나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선수생활을 마쳤고, 팀도 암흑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황금기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레이커스 시절 당시를 정리해 보면 카림 압둘자바, 매직 존슨, 제임스 워디, 마이클 쿠퍼 등 황금기 시절 화려한 속공을 중심으로 한 닥공 어태커들의 두를 받치고, 카림의 리바운드를 하고 난 뒤에 매직이 패스한 공을 3점슛으로 넣거나 또는 덩크를 꽂으며 팀의 중요한 득점 패턴의 하나가 되었다. 우수한 디펜더로서 매직 존슨의 매치업을 한결 편하게 해준 1번 전문 수비로 팀의 활약에 공헌하였다.

이후 스캇은 1993-94시즌부터 인디애나 페이서스로 이적해 우승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역할을 요구하며 레지 밀러의 교체 선수로 활동했고, 1995-96시즌에는 창단 멤버로 밴쿠버 그리즐리스로 이적하였지만 창설 이후 플레이오프에 들어서지도 못하고 불과 1년만에 떠나 3시즌만에 친정팀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로 복귀했다. 당시 스캇이 없었던 사이 올랜도 매직에서 센터 샤킬 오닐, 고졸 신인이었던 코비 브라이언트을 얻으며 팀 재건에 성공하였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칼 말론, 존 스탁턴 등이 이끈 유타 재즈에게 1-4로 완전히 제압을 당해 탈락해 버렸다.

파일:바이런 스캇 유럽에서 뛰었을 때.jpg
이후 그리스로 건너가 명문 팀 파나티나이코스 BC와 계약을 체결해 플레이오프 결승전에서 PAOK 테살로니키[6]를 만나 5차전에서 23득점을 넣어 팀을 우승으로 이끔과 동시에 파이널 MVP를 수상한 뒤, 선수생활을 마감하였다.

2.2. 지도자 시절

1998년부터 2시즌 동안 새크라멘토 킹스에서 코치를 맡아 릭 아델만 감독과 아버지뻘인 피트 캐릴 코치에게서 프린스턴 모션 오펜스를 터득했고, 슈팅 전문과 3점슛 성공률 향상에도 공헌하였지만, 그저 그럴 뿐이다.

파일:뉴저지 네츠 감독 시절의 바이런 스캇.jpg
2000년부터 뉴저지 네츠 감독에 취임하였는데 첫 시즌부터 많은 선수들이 부상에 시달리며 26승 56패라는 최악의 기록을 세웠지만 오프시즌에 스테판 마버리제이슨 키드를 맞트레이드 시킨 2001-02시즌에는 킹스 때 배운 프린스턴 모션 오펜스를 성공적으로 이용해 작년 시즌과는 달리 52승 30패를 기록해 동부 컨퍼런스 1위를 확정지으며 플레이오프에서 인디애나, 샬럿, 보스턴을 잡고 동부 컨퍼런스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이후 결승전에서는 한때 친정팀이기도 한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 맞붙었으나, 샤크-코비 콤비의 활약과 트라이앵글 오펜스에 막혀 전경기 완패를 당하며 창단 첫 우승을 놓치고 말았다. 이후 2002-03시즌에도 결승전에 진출했으나, 샌안토니오 스퍼스에게 패해 또 한번 타이틀 획득에 실패했다.

2003-04시즌에는 초반부터 안정감이 없었고, 제이슨 키드와의 불화로 사이가 좋지 않았고 작전 타임중에도 싸우기 직전까지 지시한 등 키드 본인이 거부하며 관계가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시즌 중반에 로렌스 프랭크 코치에게 감독직을 넘긴 뒤 사임했다.

2004-05시즌부터 뉴올리언스 호네츠 감독에 취임하였다. 당시 1년차는 구단이 침체기를 겪고 있었으며, 다음해인 2005-06시즌을 앞두고 NBA 드래프트에서 크리스 폴을 지명하면서 상황은 호전되었다. 2년차에 들어선 2006-07시즌에는 한때 선수 시절 그리스 파나시나이코스 BC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팀의 우승에도 공헌했던 세르비아 출신의 페자 스토야코비치를 영입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을 향해 대폭 보강시켰지만, 스토야코비치가 부상으로 시즌 대부분을 결장했고, 다른 부상자들도 속출하면서 승률 5%를 기록함과 동시에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2007-08시즌에 완벽하게 태세를 갖춘 지도력으로 56승 26패를 기록해 팀 창단 이후 처음으로 사우스 웨스턴 디비전 우승을 하는데 기여했다. 비록 플레이오프 준결승전에서 샌안토니오에게 패했지만, 이와 같은 활약을 인정받아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했다.

2008-09시즌에는 49승 33패를 기록해 서부 컨퍼런스 7위로 아슬아슬하게 플레이오프 순위권에 들어와 덴버 너기츠와 맞붙었으나 1라운드에서 곧바로 탈락했다. 특히 문제의 경기는 4차전에서 121-63으로 대패하면서 포스트 시즌 가운데 최악의 사태를 만들어 놓았다.

2009-10시즌에는 3승 6패를 기록하면서 팬들에게 까임과 동시에 시즌 초반에 감독직에서 물러나 ESPN에서 잠시 해설진을 맡았다가 2010-11시즌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감독에 취임했다. 당시 르브론 제임스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해 버리면서 팀의 재건에 힘을 쏟아 내었으나 3년동안 플레이오프 순위권에 들어오지 못하고 결국 사임했다.

2013-14시즌에는 스펙트럼 스포츠넷의 전신인 타임 워너 케이블 스포츠넷에서 친정팀 레이커스의 분석가를 맡았으며 이후, 2014-15시즌부터 그 팀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유명한 선수는 지도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성적을 완전히 망치며 팬들에게 무지막지하게 까였으며 2015-16시즌을 끝으로 사임했다.

2017년 8월 6일에는 ESPN에서 해설자를 최근까지 맡았는데, 사실상 지도자 생활을 완전히 접어 버렸다고 한다.

2.3. 기타

코비 브라이언트의 루키시즌과 은퇴시즌을 모두 지켜본 인물중 하나이다. 한번은 커리어 말년에 팀 선배로써, 한번은 감독으로써.

루키시즌에 팀 연습도중 선배였던 매직 존슨, 마이클 쿠퍼가 필꿈치로 얼굴을 가격하는등 매우 거칠게 몰아부쳤던 모양이다. 절친했던 놈 닉슨이 트레이드 되고 받아온게 신인애송이였던것에 대한 반발심리도 있고, 바이런이 NBA에서도 잘할수 있을지 일종의 시험이었던 모양인데 처음에는 선배들인지라 찍소리 못했던 바이런도 결국은 참지않고 "다음에도 팔꿈치쓰면 니들 얼굴에 죽빵을 갈겨버리겠다."고 강하게 나오자 두 사람도 바이런이 깡따구있는 친구라는걸 인정했고, 후에는 셋이 함게 어울일 정도로 친해졌다.

고향인 잉글우드가 갱단에 의해 마약범죄에 오염되고 그의 친어머니가 마약중독으로 재활센터에서 치료를 받는걸 보고 심적으로 굉장히 괴로워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 그지경이 된것도 마음아픈데 어머니까지 마약중독이었으니...그때 사정을 알게 된 레이커스 동료들이 "걱정마, 우리가 있잖아" 라고 진심으로 그를 보듬어줬고, 구단주인 제리 버스 역시도 그를 위로해 주었다고 하며, 이때 바이런은 레이커스의 끈끈한 동료애과 가족애를 느낄수 있었다고 한다.


[1] 1988년 11월 23일에 개최된 마이애미 히트전 한정으로 착용했다. 참조[2] 특히 클리블랜드와 레이커스에서 심했다.[3] 위스콘신 주 매리언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라크로스 주립 사범대학(현 위스콘신 대학교 라크로스 캠퍼스)을 다니며 야구, 미식축구, 농구를 섭렵했고, 졸업 후 고등학교 체육교사로 일하다가 1948년 제이비어 대학교 미식축구 및 농구 코치로 체육 지도자 생활을 시작, 1949년부터 야구감독도 겸하며 1951년 농구감독으로 승격되었다. 1957년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농구부로 전근간 후 임기 25년 동안 NCAA 전국대회에서 세 번 8강을 찍었고(1961, 1963, 1975년), 스캇, 리버, 리스터 외에 조 칼드웰, 라이오넬 홀린스 등을 육성했다.[4] 알려진 대로 이는 놈 닉슨과 매직 존슨의 불화로 발생한 트레이드이다.[5] 허나 레거시 : 레이커스 트루 스토리에선 전말이 전혀 다르게 나오는데 당시 단장이었던 제리 웨스트는 놈 닉슨과 매직이 함께 뛰는것이 효율성에서 떨어진다고 판단해 이전부터 주목해온 바이런 스캇과의 트레이드를 추진한것. 정작 불화설이 있었다던 매직은 놈이 트레이드 되자 상실감에 빠졌다고 회고하기도 했고, 마이클 쿠퍼는 자신과 매직, 놈을 리그 최고의 가드 트리오라고 자부할정도로 놈을 신뢰했다.[6] 당시 새크라멘토 킹스의 레전드인 페자 스토야코비치가 뛰었던 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