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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다 득점 | 레지 밀러 (Reggie Miller) - 25279점 (1987~2005) | |
최다 어시스트 | 레지 밀러 (Reggie Miller) - 4141개 (1987~2005) | |
최다 리바운드 | 멜 다니엘스 (Mel Daniels) - 7643개 (1968~1974) | |
최다 블락 | 저메인 오닐 (Jermaine O'Neal) - 1245개 (2000~2008) | |
최다 스틸 | 레지 밀러 (Reggie Miller) - 1505개 (1987~2005) |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레지 밀러 | |
헌액 연도 | 2012년 |
레지 밀러의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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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애나 페이서스 등번호 31번 | ||||||||||||||||||
워커 러셀 (1986–1987) | → | 레지 밀러 (1987~2005) | → | 영구 결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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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2d62> 인디애나 페이서스 No. 31 | |
<colcolor=#fff> 레지널드 웨인 밀러 Reginald Wayne Miller | |
출생 | 1965년 8월 24일 ([age(1965-08-24)]세) |
캘리포니아 주 리버사이드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출신학교 | UCLA |
키 | 201cm (6' 7") |
체중 | 88kg (195 lbs) |
포지션 | 슈팅 가드 |
드래프트 | 1987 NBA 드래프트 1라운드 11순위 인디애나 페이서스 지명 |
소속 팀 | 인디애나 페이서스 (1987~2005) |
등번호 | 31번 - 인디애나 페이서스 10번 -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 |
SNS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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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前 농구선수. NBA 생활 18년동안 묵묵히 인디애나 페이서스에서에서만 뛴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영구결번이 된 선수이며, 당대 최고의 오프볼 무브와 3점 슈팅을 자랑하던 3점슛의 대명사였다. 본명은 레지널드 웨인 밀러지만, 보통 레지 밀러(Reggie Miller)라고 부른다.
2. 생애
자세한 내용은 레지 밀러/생애 문서 참고하십시오.3. 플레이 스타일
당대 최고의 오프볼 무브와 3점 슈팅을 자랑하던 선수. 다만 슈팅이 가진 능력의 전부일 것 같은 이미지와 달리[2] 전체적으로 평균~평균보다 조금 큰 육각형 슈팅가드에서 3점슛과 오프볼무브 능력이 특히 높은 유형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48분 내내 하프코트 전체를 미친듯이 뛰어다니며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는 3점슛. 뉴욕 닉스의 전력분석 리포트가 공개된 적이 있는데, 레지 밀러에 대해서 '공이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선수'라는 평이 있었다. 볼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스크린을 타고 돌아다니며 순간적인 오픈 찬스를 만들고, 패스를 받아 빠르게 캐치앤슛을 날리는 오프 더 볼 무브(Off the ball move)는 역대 NBA 최고로 평가 받는다. 페이서스와 자주 붙었던 올랜도의 데니스 스캇은 오픈 코트에서 "스크린을 (한 게임당) 39번이나 타는[3] 레지를 내가 안 맡은건 참 다행이었다고 회술한 적도 있다. 특출난 볼핸들러가 없던 인디애나의 팀 전략상 킥아웃 패스보다는 빅맨의 무한 스크린과 밀러의 활동량을 바탕으로 한 3점슛 시도가 대부분이었다. 이는 산왕전에서 체력 떨어진 정대만의 플레이와 유사.
이러한 오프더볼 무브로 후대의 3점 슈터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선수이기도하다.
'동네 한바퀴'라고도 불리는 이러한 플레이스타일은 외곽에 머물러있다가 노마크 상황에서 킥아웃 패스를 받아 오픈 3점을 쏘는 받아먹기와는 달리 높은 BQ, 순발력, 빠르면서 정확한 슈팅 능력이 요구되어 이를 효과적으로 구사하는 선수는 의외로 찾아보기 힘들다. 역대로 따져봐도 밀러 수준에 가깝게 오프 더 볼 무브를 구사할 수 있다고 평가되었던 슈터는 리처드 해밀턴, 레이 앨런, 카일 코버 등 소수에 불과하다. 이런 플레이 스타일을 슈터의 로망으로 생각하는 팬들도 꽤 많다. 또한 슈터를 제대로 활용할 줄 알던 래리 브라운을 만나서 스타일을 확립한 것도 밀러의 선수시절 행운 중 하나.
풀경기 영상을 보다보면 의외로 1대1 돌파가 많고, 공을 잡고 드리블 치면서 풀업점퍼를 던지는 등의 모습도 많이 볼 수 있다. 사실 밀러의 핸들링이나 퍼스트스텝 자체는 슬래셔로 이름을 날릴 정도로 뛰어난 편은 전혀 아니었지만,[4] 3점 라인 밖에서 수비수와 1대1로 붙은 상태에서 바로 3점 슛을 올라가는 옵션이 있었다는 점이 돌파를 용이하게 해주었다. 슛을 막기 위해 수비수가 달라 붙으면 '떨어지면 슛, 붙으면 돌파'라는 1:1의 기본에 맞게 수비를 뚫고 들어가고, 여기서 롱2 지점에서 곧바로 풀업점퍼를 던지거나 좀 더 들어가서 러너나 레이업을 던지는 것이 그의 가장 주된 득점 루트였다. 또한 오프볼 무브에서도 오픈찬스에서 3점 슛만 던지는 건 아니고, 스크린을 돌아나와서 패스를 받아 빠르게 치고 들어가서 풀업 롱2나 레이업, 러너도 잘했다. 오프볼무브에서 선택지가 워낙 다양하니 수비수들도 미칠 노릇.
자주 언급되는 '플라퍼'라는 평가도 이 과정에서 파울콜을 대단히 많은 것에서 나온 것으로, 비쩍 마르고 약해보이는 몸에 살짝 외계인스러운 인상이 더해지면서 접촉 이후에 조금만 몸짓을 해도 다른 선수들에 비해 훨씬 심한 접촉을 당하는 느낌이 들었기에 심판들이 매우 잘 낚였다. 마치 감전이 된 듯 팔을 주욱 뻗는 풀업 점퍼 자세도 한 몫 했으며, 그렇게 던진 풀업점퍼를 잘 성공시키고 자유투도 좋았기에 4점 플레이도 많이 성공시킨 편.
사실 밀러가 그저 오프 볼 무브, 스팟 업&무빙 3점만이 특출나다는건 그의 하이라이트 필름만 봤을 때 생기는 오해이다.[5] 밀러는 당대 선수로써는 파격적인 3점 시도수를 자랑했지만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현시대의 스테판 커리나 데미안 릴라드 마냥 3점을 경기당 평균 10개씩 던져댈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고, 실제로 커리어 내내 3점 시도는 5개 안팎을 오가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평득 20 이상을 수차례 기록하며 인디애나 페이서스라는 시대를 풍미한 팀의 에이스로 활약할 수 있었던 건 외곽을 미끼로 미드레인지 풀업 점퍼, 돌파 후 림어택, 컷인, 자유투 삥뜯기 등 다양한 공격 옵션을 두루 갖춘 덕분이었다.
슛에 대해선 어떤 경지에 오른 선수인 것이 분명했고, 자유투도 대단히 정확했다.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유투를 잘 넣는 비법에 대해서 밝혔는데 "언제나 똑같은 상태에서 던질 수 있도록, 똑같은 자세로 던지는 것을 매일 연습할 것". 해당 인터뷰에는 당시 인디아나 팀의 자유투 연습 루틴 등, 짧지만 볼만한 내용이 많다.
역시 오프볼러의 명성 때문에 핸들링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으나 사이즈 대비 볼 핸들링은 나쁘지 않았다. 특별히 뛰어난 수준은 아니었지만 실수가 적고 안정적인 드리블을 가지고 있었다. 영악하다는 평을 받을 만큼 영리하고 패스도 곧잘하는 선수였기에, 마크 잭슨이 잠시 팀을 떠나서 제대로 된 포가가 없던 시기에는 팀내 어시스트 1위를 하기도 했다. 점프력을 비롯한 운동능력이 좋은 선수는 아니었지만 주력과 체력만큼은 아주 좋은 편이었기에 그의 장기인 오프볼 무브도 신체적 장점을 잘 살렸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마른 몸과 특급은 못되는 사이드 스텝으로 인한 한계는 있었지만, 근성이 워낙 좋아서 수비에서도 마크맨을 정말 악착같이 따라다니며 허슬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종합하자면 리딩 가드 스타일의 플레이를 거의 하지 않았고 볼을 끄는 타입도 아니라 볼 소유 시간이 매우 짧았고, 의외로 슛을 많이 던지는 선수가 아니었다. 경기 당 슛 시도 회수로 보면 동 시대의 라이벌 조던은 22.9회인데 비해 밀러는 12.6회에 불과하고, 밀러와 곧잘 비교되는 레이 앨런은 15.6회이다. 팀의 넘버원 득점원인 슈팅가드치고 난사 or 볼 호그 기질이 없다는 게 특이하다면 특이한 점인데 그렇게 공을 적게 만지면서도 필요할 때는 반드시 해결사 역할을 해주었다는 점이 그의 매력이라고 하겠다.
4. 수상 내역
수상 내역 |
올-NBA 서드 팀 3회 (1995, 1996, 1998) NBA 올스타 5회 (1990, 1995, 1996, 1998, 2000) 1994 FIBA 세계 선수권 대회 캐나다 금메달 1996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12) |
5. 영상
커리어 Top 10 Moment10위 : 1992년 정규 시즌 vs. 샬럿 호네츠, 커리어 하이 득점 게임. 57pt 5rb 8ast를 기록.
9위 : 2005년 동부 컨퍼런스 준결승 3차전 vs.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게임 위닝 샷
8위 : 2000년 NBA 파이널 3차전 vs. L.A. 레이커스, 33득점
7위 : 2000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 5차전 vs. 밀워키 벅스, 1점차로 페이서스가 신승한 가운데 밀러는 플레이오프 커리어 하이 41점을 기록하며 4쿼터 페이서스 득점 25점 중 18점을 올림.
6위 : 1998년 동부 컨퍼런스 준결승 4차전 vs. 뉴욕 닉스, 경기 종료 5초를 남기고 동점 3점 슛을 꽂으며 경기를 연장전으로 가져가고 총 38점을 득점하며 페이서스를 승리로 이끔.
5위 : 2000년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 6차전 vs. 뉴욕 닉스, 3쿼터까지 62-62 동점이었으나 4쿼터를 31-18로 페이서스가 압도하며 NBA 파이널 진출. 밀러는 총 34점 중 4쿼터에만 17점을 득점.
4위 : 2002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 5차전 vs. 뉴저지 넷츠, 40피트짜리 버저 비터 동점슛으로 1차 연장을 만들고, 1차 연장 종료 3초전 동점 드라이브 인 덩크를(그것도 In Your Face로) 성공시켜 2차 연장을 만들어냄. 밀러는 총 31점을 득점하였으며, 옥에 티는 2차 연장에서 졌다는 것.
3위 : 1998년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 4차전 vs. 시카고 불스. 경기종료 0.7초 전 인바운드 패스를 받고 턴어라운드 역전 3점 슛.
2위 : 1995년 동부 컨퍼런스 세미 파이널 1차전 vs. 뉴욕 닉스, 유명한 8.9초 동안 8점 퍼포먼스.
1위 : 1994년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 5차전 vs. 뉴욕 닉스, 위에서 언급한 'Spike who?' 경기로, '4쿼터에만 25점' 퍼포먼스.
마지막 경기 하이라이트. 이렇게 명예로운 은퇴 경기는 이전에도 앞으로도 보기 힘들 것이다.[6]
Thank You Reggie!
6. 여담
- 1998년 플레이오프 시카고 불스와의 컨퍼런스 파이널 4차전 게임 위닝샷으로, 인사이드에서 뛰어나오며 릭 스미츠의 스크린을 이용해 론 하퍼를 떨쳐내고 스위치된 마이클 조던을 노골적으로 밀쳐버린 후[7] 인바운드 패스를 받아 3점 슛을 성공시킨다.
영상을 끝까지 보면 알겠지만 슛을 성공시킨 레지 밀러 이하 모든 선수들과 관중들이 흥분하고 펄쩍펄쩍 뛰고 있었지만 당시 감독인 래리 버드는 얼굴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냉정한 모습으로 선수들을 불러들였다. 왜냐하면 이 골을 성공시켰을 때 아직 0.7초가 남아있었고 불스는 바로 작전타임을 불렀기 때문. 이 상황에서 불스가 할 작전은 누구나 다 아는 그거. 플레이가 재개되고 당연하게 공은 그분의 손으로 들어갔으나 림이 그분이 쏜 슛을 외면했다. 끝까지 방심하지 않는 래리 버드의 냉철함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 성격이 불같고 트래쉬 토킹에 일가견이 있어서 마이클 조던, 게리 페이튼 등과 함께 당대 최고의 트래쉬 토커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그가 절대 트래쉬 토킹을 하지 않는 한 사람이 있다고 밝혔는데, 그게 바로 마이클 조던이다. 루키 시절, 불스와의 연습경기에서 팀 동료이던 척 퍼슨[8]이 부추겨서 뭣도 모르고 마이클 조던에게 트래쉬 토킹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조던은 4득점, 밀러는 10득점을 기록 중이었는데, 연습경기인지라 설렁설렁 뛰고있던 조던의 입장에서는 왠 듣보잡 루키가 자신에게 트래쉬 토킹을 하니 황당할 따름. 결국 열받은 조던은 그 후로 40점을 더 넣어 결국 경기는 조던 44득점, 밀러 12득점으로 끝난다. 조던은 허망해하는 밀러에게 다가와서 "흑인 예수에게 그렇게 얘기하면 안되지.(Be careful, you never talk to Black Jesus like that.)"라는 말을 남겼고, 그 후 밀러는 절대 조던에게는 트래쉬 토킹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한참 지난 후에 TV에서 재미를 위해 과장되어서 그렇지 실제 밀러와 조던이 붙게 되는 경우 서로 간의 매치업에서 서로 트래쉬 토킹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매우 많다. 닉스가 라이벌로 계속 언급되기는 하지만 사실 조던의 시카고 불스는 밀러의 페이서스와 디비전, 같은 지구에 속해있기 때문에 지겹도록 붙은 팀 중 하나인데 밀러와 조던은 포지션이 같기에 당연히 자주 부딪치고 그만큼 싸우기도 상대할 일도 많았다.
- 한 경기에서는 조던과 주먹다짐까지 하며 몸싸움을 벌인 적이 있는데 밑의 영상을 보면 알지만 이 경우는 조던의 슈퍼스타성 때문에 억울하게 퇴장당하기도 했다. 영상을 자세히 보면 알지만 서로 계속 신경전을 벌이다가 밀러가 조던을 밀고 조던이 따라붙으면서 싸움이 시작되었는데 실제 싸움이 일어나자 조던이 밀러의 얼굴에 주먹으로 가격했으며 밀러는 오히려 주위에서 뜯어 말리는 바람에 헛스윙에 그쳤다. 그런데 문제는 퇴장은 밀러만 당한것. 밀러가 조던을 밀었던것도 사실이지만 조던이 굳이 쫓아와 밀러를 붙잡고 본격적인 싸움을 건것도 사실이다. 둘다 퇴장당하거나 둘다 경고정도에 그쳤어야 되는데 밀러만 퇴장당한 것. NBA가 에이스 스타들을 봐준다는 논란의 부채질을 한 영상이기도 하다.[9]
물론 가장 적절한 건 쌍방퇴장이었겠지만 이유없이 조던만 봐준 건 아니다. NBA는 주먹을 실제로 휘두르지 않는 이상 싸움으로 인한 퇴장을 잘 주지 않는데 이는 스타들이 퇴장당하면 흥행에 지장을 주기 때문. 저 상황에선 레지가 밀고 나서 조던이 다시 와서 미는 것으로 멈췄으면 레지가 더 잘못한 게 맞고 해설자들도 여기까진 "밀러가 시작했군요"라고 강조를 하며 밀러의 잘못을 지적하고 조던이 되받아 치며 밀때는 "여기까진 괜찮아요!"라고 한다. [10] 하지만 슬로모션으로 보자 선수들이 뜯어말리는 과정에서 조던이 먼저 주먹을 휘둘러 밀러의 얼굴에 맞았고, 밀러도 주먹을 휘둘렀으나 빗나갔다. 밀러의 경우 즉시 퇴장은 아니고 싸움과 조던을 밀 때 엘보우 사용에 의해 테크니컬을 두개 받아 퇴장당한 것. 엘보우 사용시 그 자체만으로 파울이다. 두 선수가 주먹을 휘두른 건 얼핏 보면 안 보이기 때문에 주먹이 오갔다는 걸 모르고 판정했기에 밀러가 팔꿈치 사용+싸움을 시작했기 때문에 가중처벌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위에 언급했다시피 주먹이 실제로 나간 이상 싸움으로 즉시퇴장 조치가 맞으며 잘못된 판정이 맞다. 심지어 조던은 먼저 주먹을 휘둘렀고, 주먹이 밀러의 얼굴에 닿았기 때문에 백프로 퇴장감이다. 이것 때문에 처음엔 밀러에 대해 주목하던 해설진이 주먹질을 보고 이걸 강조하다가 결과에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 당시는 심판들이 리플레이를 보고 판정하는 게 아니라 셋이서 육안으로 본 내용을 갖고 상의해 결과를 해 오심이 나온 것. (2021년 현재는 이런 경우 고화질 리플레이를 보고 판정한다). 굳이 따지자면 슈퍼스타 콜이라기보단 오심으로 보인다. 과거에 조던이 싸우거나 심판을 우발적으로 들이받았을때는 퇴장과 징계를 받았기 때문.
실제로 조던은 저 싸움 때문에 1경기 징계를 받아 다음 경기에 결장했고, 밀러는 징계 없이 다음 경기인 미네소타전에 출장했다. 즉, 심판들이 조던의 펀치를 못 봐서 오심이 나왔을 뿐 제대로 상황을 파악했을 때는 둘 중 조던 한명에게만 징계를 줬기 때문에 조던을 봐준 것은 확실히 아니다.
* 특이하게도 NBA 선수가 아닌, 영화감독이자 닉스의 광팬인 스파이크 리와의 설전은 유명하다. 레지 밀러 전성기의 인디애나 페이서스는 항상 1위를 고수하던 조던의 불스에 밀린 콩라인이자 동부 파이널에서 시카고와 상대하기 위한 한 자리를 놓고 패트릭 유잉이 이끌던 같은 컨퍼런스의 뉴욕 닉스와는 그야말로 불스보다도 더 처절하게 치고 받고 물고 물리는 관계였는데, 닉스의 광팬인 스파이크 리는 닉스의 홈경기가 있을때마다 항상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관중석 앞자리에서 페이서스의 에이스 레지 밀러를 도발했고, 그러면 밀러는 이에 지지 않고 슛을 던져 성공시킨 후 스파이크를 데꿀멍시키는 게 주 패턴. 인터뷰에서 가끔 스파이크 리를 언급하는 걸 보면 애증의 관계인 듯. 심지어 1994년 동부 컨퍼런스 결승전에서 스파이크리와 경기 중 내기를 했다고 한다. 인디애나가 이기면 스파이크 리가 밀러의 아내[11]를 본인의 영화에 출연시키기로, 닉스가 이기면 밀러가 당시 교도소에 수감중이던 마이크 타이슨을 면회하기로 했다고.[12] 결국 닉스가 인디애나를 꺾고 결승전에 진출하자, 밀러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실제로 교도소를 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대기실에서 3시간이나 기다렸지만, 타이슨이 면회를 거부해 만나지는 못했다고....[13]
그리고, 이때 당한 굴욕을 잊지 않고 다음해 복수한다. 코트에서는 그렇게 치고 박고 싸웠던 스파이크 리였지만 이 둘의 개인적인 사이는 꽤나 좋다. 밀러의 마지막 시즌에 뉴욕에 방문하자 축하해주기도 하고 해설자 시절에도 종종 등장하여 장난치기도 하며, 2019년에 리가 블랙클랜스맨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하자 자신의 공식 계정으로 그를 축하해주기도 하는 등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여주고는 한다.
- 이 트래쉬 토킹으로 닉스와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그의 상대 존 스탁스를 완전히 물먹인 적이 있다. 당시 "터프가이" 팀을 강조하던 닉스의 스탁스는 인사를 건네는 레지의 인사를 받지 않았고, "그래?" 하는 마음으로 밀러는 스탁스를 완전 물먹이기로 결정한다. 그리하여 시작된 트래쉬 토킹. 스탁스는 이걸 알고 있었지만 워낙 밀러가 긁어대는 바람에 경기도 망치고 나중에는 말려들어 빡돈채로 자신의 머리로 밀러의 머리를 박았다.[14] 이에 밀러는 특유의 플라핑을 시전하며 스탁스의 퇴장을 이끌어냈고, 결국 스탁스는 퇴장당한다. 더 자세한 사항은 존 스탁스 항목 참조.[15]
- 제일런 로즈가 팀에 합류하고 나서, 그가 뛰어난 활약을 펼치자 "이제는 그가 우리팀의 제 1공격 옵션"이라고 하면서, 팀내 에이스 자리를 내주었고, 저메인 오닐이 합류했을 때도 별다른 불만을 표출하지 않고 오히려 그가 성장할 수 있도록 묵묵히 지켜봐주었다.[16]
- 마이클 조던처럼 돌파, 포스트업 플레이, 슈팅에 모두 능한 만능형 스윙맨이 NBA의 대세가 되면서 레지 밀러와 같은 퓨어 슈터 타입의 슈팅 가드는 이후 찾아보기 어려워졌으며, 마이클 레드나 리처드 해밀턴이 그나마 비슷한 스타일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는다. 레지 밀러의 통산 3점 슛 성공 개수 기록을 깬 레이 앨런의 경우도 '슛을 특히 잘하는 만능형 플레이어'에 가깝다.
- '93년 플레이오프 경기 중에 마이클 조던과 심하게 싸운 적이 있던 만큼 경기에서 둘은 앙숙이었지만, '03년 조던의 마지막 시즌에서는 경기가 끝나고 과거의 앙금을 씻는 듯한 포옹을 나누기도 했다. TNT 등 방송에서 밀러는 언제나 조던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칭하며 존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그는 최악의 컨디션의 마이클 조던이 최상의 컨디션의 코비 브라이언트보다 10배는 더 뛰어나다.라고까지 평한 바 있다. 실제 밀러의 명예의 전당 헌액 연설에 조던이 참석했는데 조던을 바라보며 "그래. 인정하지. 그때 내가 너를 밀었어. 그런데 니가 수십명에게 그러는걸 보고 (그러고 파울을 안 받는 걸) "나도 괜찮겠구나" 하고 생각했거든." 이라며 농담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 은퇴 후에는 TNT 농구해설가로 맹활약하고 있다. 한때 보스턴 셀틱스가 빅3를 결성하고 나서 다른 선수를 영입하려 했을 때 그의 복귀설이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밀러는 복귀하지 않고 현재까지도 TNT 해설가로서 활동 중. 입담도 좋고 함께 시대를 풍미했던 선수들과도 궁합이 잘 맞으며 경기를 보는 시선도 좋아서 적성에 잘 맞는듯 하다.
- 인디애나 페이서스 구단의 대부분 역대 1위 기록을 다 가지고 있다. 통산 출전 경기 수 1위, 역대 출전시간 1위, 필드골 시도개수 1위, 필드골 성공개수 1위, 3점 슛 시도/성공 개수 1위, 자유투시도/성공개수 역대 1위, 통산 총 어시스트 개수 역대 1위, 총 스틸개수 역대 1위, 역대 총 실책개수 1위, 역대 총 득점 1위, 인디애나 페이서스 역사상 최초의 2만 득점 이상 득점자, 인디애나 페이서스 역대 한경기 최다득점 기록 보유자(57득점) 등등. 가히 페이서스의 레전드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다.
-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국가대표로 뽑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드림팀 3). 그전에는 1994년 세계선수권대회에도 참가, 미국이 우승하는데 일조했다.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스카티 피펜, 앤퍼니 하더웨이, 데이비드 로빈슨과 함께 가장 좋은 활약을 했다. 좀 답답하다 할 때 밀러가 3점을 넣어주었다. TNT 해설시절에는 이 때의 전우애인지 모르지만 드림팀 이야기만 나오면 샤킬 오닐과 죽이 잘 맞는다. 주로 샤킬오닐이 96년 드림팀이 92년 드림팀보다 더 뛰어나다는 주장을 할때 밀러는 그렇다고 거드는 편.[17]
- 그의 뛰어난 3점 슛 능력에 대한 일화 하나. 하루는 밀러가 슛 연습을 하는데 평소와는 달리 슛이 연달아 실패했다. 그러자 밀러는 즉시 체육관 관리인을 불러 골대높이를 확인해달라고 요구했고, 관리인은 측정결과 골대높이가 규정보다 높다는 걸 알고 골대높이를 다시 조절해주었다. 이쯤되면 그야말로 도사수준.
- 개성강한 선수였지만 별명이 없었다. 그나마 '95년과 '98년 동부 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서 뉴욕 닉스를 상대로 보여준 엄청난 플레이로 'The Knick Killer'라는 별명을 얻기는 했지만, 페이서스-닉스 라이벌 구도에서만 의미 있는 별명이라 크게 화제가 되지는 않았다. 국내팬들도 그를 딱히 별명으로 부르는 이는 없었다. 밀러의 커리어 막판에 그를 "밀러옹"이라고 부르는 게 고작.
- 밀워키 브루어스의 라이언 브론과 친분이 있는 옆집 아저씨다. 라이언 브론이 미친듯이 달리다 넘어졌을 때도 경기장에서 기립박수를 보내줬으며 약물 양성 파동으로 곤욕을 치를 때도 브론을 믿는다며 응원을 보내줬다. 하지만 결국 브론은 레지를 포함한 만인의 뒤통수를 치게 되는데... 브론 항목 참조.
- 2012년 9월 7일. 돈 넬슨, 랄프 샘슨과 함께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입성 연설에서 팬들과 동료들 그리고 함께 경기했던 상대팀 선수들을 일일이 거론하면서 지난 선수 시절의 추억을 회상했다. 특히 그는 "이 자리에 역대 최고의 선수가 세 명이 있다. 매직 존슨, 마이클 조던, 그리고 우리 누나." 라고 말하면서 당시 그곳에 구경 온 모든 청중들의 박수를 받았다. NBA 공식홈페이지에서는 그의 얼굴을 나흘 동안 메인화면에 올리면서 전설에 대한 예우를 해주었다.
- 최근에 선수들이 우승을 위해서 자신의 친정팀을 버리고 떠나는 점과 관련하여 계속 비교되며 자주 회자되고 있다. 2010년에 르브론이 우승을 위해 드웨인 웨이드와 크리스 보시와 함께 "슈퍼 팀"을 만들었을 때나 최근 케빈 듀란트가 스테판 커리가 있는 골든스테이트로 이적한 것과는 대조적이기 때문. 밀러는 가장 최근에 그런 듀란트를 보면서 "싸구려 보석을 위해서 전설을 날려먹으려고 한다" 하면서 아쉬워하는 면을 보여주었다.[18][19] 아무래도 본인이 인디애나의 전설로 남은 이상 이런 데는 발언권이 있는 듯.
- 2018년 엉클 드류 영화에 주전 5인 중 한 명으로 출연하였다. 눈이 먼 슈터 역할이었는데 안경을 쓰니 다시 앞이 보인다는 싱거운 설정. 넉살 좋은 장님 슈터 연기는 훌륭했다.
-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자신의 신장에 맞게 커스터마이징한 MTB와 로드 자전거를 끌고 다니며,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악화되면서 라이딩을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한다.[20]
- 척추 라인에 문신이 길게 있다. 선수 시절부터 있었던 듯 하다.
- 또한 레지는 자신의 후배들을 칭찬하는것을 아끼지 않는 면으로도 유명하다. 특히나 스테판 커리가 자신의 3점 슛 누적기록을 깨고 2위로 올라섰을때 깜짝 자신의 아들과 전화 영상 통화로 연결로 커리를 진심으로 축하해주며 "[내 아들을 포함하여] 너는 농구를 좋아하는 모든 아이들에게 큰 영감을 준다" 고 말하면서 이제는 레이 앨런을 잡아야 한다고 격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21][22]
[1] 실제로, 레지 밀러는 수많은 이적 제의를 거절하고 인디애나 페이서스에 은퇴할 때까지 활약했고, 결국 영구결번까지 등록된다.[2] 삐쩍 마른데다 은퇴 후 시간이 흐르면서 그러한 이미지가 더 강해진 감이 있다.[3] 물론 숫자는 스캇이 생각나는 대로 말한 숫자. 20년이 넘게 지난 현대 농구에서는 지금보다 공격작업이 훨씬 치밀해져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스테판 커리같은 선수는 밀러처럼 오프더볼 무브로 3점 슛을 던지기 위해 한 플레이에만 3번 스크린을 타기도 하고, 경기 전체로 치면 스캇이 말한 숫자의 2배 정도는 타게 된다.[4] 동시대 정상급 슈팅 가드들인 마이클 조던, 클라이드 드렉슬러, 미치 리치몬드 등과 비교하면 더더욱 두드러진다.[5] 90년대는 '전문 슈터' 역할만으로 스타가 될 순 없는 시대였다. 3점슛이 팀전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0년대나 그 이후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작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득점은 3점 라인 안쪽에서 이뤄졌다. 마크 프라이스나 레지 밀러처럼 정교한 슈터들도 기본적으로 다양한 득점루트를 구비할 수 밖에 없었다. 진짜로 옵션이 슛 밖에 없는 스티브 커나 크렉 하지스 같은 경우는 아무리 슛이 뛰어나도 백업 수준을 벗어날 수 없었다.[6] 4쿼터 교체장면은 9분 30초부터 볼 수 있다.[7] 밀러는 명예의 전당 연설에서 "그래 마이클, 내가 민 게 맞네. 근데 자네도 그런 적 많잖아? 쌤쌤이지." (Yeah michael I did push you,too. but i've seen you doing it so many other times to so many other players. I figured it was OK.) 라고 이 플레이가 파울이었음을 시인한 바 있다. 다만 조던과의 차이점이라면 조던은 가드치고 힘이 굉장히 세고 체격이 탄탄해 심판 몰래 한손으로 슬쩍 밀쳐도 수비수들이 나가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92-93 파이널에서 속공상황서 스핀무브후 선즈의 마크맨 대니 에인지를 한 손으로 가볍게 치워버리고 골밑 돌파를 성공시키는 장면이 대표적.) 밀러같은 경우 본인보다 무겁고 힘이 월등한 조던을 떨쳐내기 위해 누가봐도 대놓고 밀었다. 밀러는 후에 은퇴선수들이 모여 수다떠는 nba open court란 방송에서 "그런 결정적인 순간에 웬만해서는 공격자 파울이 불리지 않는다는 걸 염두에 뒀다"고 설명한 바 있다.[8] 전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코치이자 얼마전까지 전주 KCC 이지스 코치를 역임했다.[9] 가장 인기 댓글의 표현이 재미있는데 "레지가 퇴장당한 이유는 조던의 주먹을 얼굴로 때려서다" 라고"[10] 진짜 괜찮은 게 아니라 퇴장감이 아닌것.[11] 현재의 기준에서는 전처. 밀러 부부는 2001년에 이혼했다.[12] 당시 타이슨은 강간죄로 92년 4월부터 인디애나주 플레인필드의 교도소에 수감중이었다.[13] Jimmy Kimmel Live에서 본인이 비화를 직접 밝혔다.[14] 물론 심하게 받은 게 아니라 꿀밤을 맥인거처럼 톡 쳤다.[15] 사실 실제 장면을 보면 스탁스가 폭발해 싸우려고 한 것이 아니라 신경전을 벌이다가 한대 툭 친 것에 가까웠다. NBA에서 싸움은 즉시 퇴장이지만 신경전과 가벼운 접촉은 테크니컬 파울 정도에 그친다. 위에서 언급된 조던과 밀러의 싸움도 밀러가 테크니컬 누적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주먹이 안 나갔다면 테크 하나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스탁스의 컨택은 즉시퇴장 판정을 주긴 좀 애매했다. 그런데 문제는 밀러가 작정하고 이를 노렸다는 것. 스탁스가 치자마자 무슨 황소에 들이받힘마냥 뒷걸음을 치더니 두 손을 들고 특유의 억울한 표정으로 기가막히다는 듯 심판들을 바라봤다. 참고로 닉스의 리더 패트릭 유잉은 밀러의 속셈을 알고 있었기에 바보짓하지 말라고 계속 스탁스에게 경고했는데 그가 결국 사고를 치자 정말 불같이 화를 냈다.[16] 저메인 오닐은 1996년 드래프트 당시 코비와 함께 초고교급 선수로 주목받던 선수였다. 그러나 스타군단 포틀랜드에서 별다른 기록을 남기지 못하고 인디애나로 트레이드 되었는데, 인디애나에서 꽃을 피웠다. 레지 밀러가 팀내 발언권이 큰 베테랑이었기 때문에 오닐의 영입을 반대하고 다른 베테랑을 영입하라고 할수 있었는데 밀러는 오히려 오닐이 성장할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훗날 오닐은 레지 밀러의 한경기 최고득점이자 팀의 한경기 최고득점 기록인 57득점을 깨지 않고 딱 55점만 넣고 벤치로 들어가 그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다.[17] 반면 두 팀에서 다 뛰어본 바클리는 92년이 더 낫다고 주장해서 오닐을 도발하고는 한다.[18] 밀러가 인디애나를 떠나려고 했던 적은 딱 한번 있었는데 그것도 개인적인 문제였지 (방화범이 멀쩡히 구설수 없이 선수 생활을 하고 있던 그의 집에 불을 질렀고, 그의 부인은 더 큰 도시인 로스앤젤레스로 가고 싶어했다. 그런데 이 방화 배후에는 밀러의 부인이 있었다는 설이 있다. 작은 도시인 인디애나가 질려서 로스앤젤레스로 가고 싶은데 남편이 가지 않자 이런 극적인 방법을 썼다는 이야기가...) 그마저도 우승을 하려고 한 것도 아니다. 그는 계속 인디애나에서 이기고 싶어했다.[19] 놀랍게도 은퇴 후 몇 년 뒤인 07-08시즌의 보스턴에서도 러브콜이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당시 보스턴은 막강한 우승권이었고 또 실제로 우승을 하게 되는 팀이었는데 그는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인디애나와의 의리를 지켰다.[20] SNS에 자전거 라이딩 하는 장면을 많이 올리고 있다.[21] 또한 많은 댓글에는 레지의 아들이 커리와 많이 닮았다는 댓글도 보인다.[22] 2022년 3월 현재 제임스 하든이 레지 밀러의 기록을 넘으면서 4위로 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