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트 체임벌린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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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 | 1972 |
{{{#!wiki style="margin:0 -10px -5px" {{{#ddd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1955-56 | 1956-57 | 1957-58 | 1958-59 | 1959-60 |
밥 페팃 | 밥 쿠지 | 빌 러셀 | 밥 페팃 | 윌트 체임벌린 | |
1960-61 | 1961-62 | 1962-63 | 1963-64 | 1964-65 | |
빌 러셀 | 빌 러셀 | 빌 러셀 | 오스카 로버트슨 | 빌 러셀 | |
1965-66 | 1966-67 | 1967-68 | 1968-69 | 1969-70 | |
윌트 체임벌린 | 윌트 체임벌린 | 윌트 체임벌린 | 웨스 언셀드 | 윌리스 리드 | |
1970-71 | 1971-72 | 1972-73 | 1973-74 | 1974-75 | |
루 앨신더 | 카림 압둘자바 | 데이브 코웬스 | 카림 압둘자바 | 밥 맥아두 | |
1975-76 | 1976-77 | 1977-78 | 1978-79 | 1979-80 | |
카림 압둘자바 | 카림 압둘자바 | 빌 월튼 | 모제스 말론 | 카림 압둘자바 | |
1980-81 | 1981-82 | 1982-83 | 1983-84 | 1984-85 | |
줄리어스 어빙 | 모제스 말론 | 모제스 말론 | 래리 버드 | 래리 버드 | |
1985-86 | 1986-87 | 1987-88 | 1988-89 | 1989-90 | |
래리 버드 | 매직 존슨 | 마이클 조던 | 매직 존슨 | 매직 존슨 | |
1990-91 | 1991-92 | 1992-93 | 1993-94 | 1994-95 | |
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 찰스 바클리 | 하킴 올라주원 | 데이비드 로빈슨 | |
1995-96 | 1996-97 | 1997-98 | 1998-99 | 1999-00 | |
마이클 조던 | 칼 말론 | 마이클 조던 | 칼 말론 | 샤킬 오닐 | |
2000-01 | 2001-02 | 2002-03 | 2003-04 | 2004-05 | |
앨런 아이버슨 | 팀 던컨 | 팀 던컨 | 케빈 가넷 | 스티브 내시 | |
2005-06 | 2006-07 | 2007-08 | 2008-09 | 2009-10 | |
스티브 내시 | 디르크 노비츠키 | 코비 브라이언트 | 르브론 제임스 | 르브론 제임스 | |
2010-11 | 2011-12 | 2012-13 | 2013-14 | 2014-15 | |
데릭 로즈 | 르브론 제임스 | 르브론 제임스 | 케빈 듀란트 | 스테판 커리 | |
2015-16 | 2016-17 | 2017-18 | 2018-19 | 2019-20 | |
스테판 커리 | 러셀 웨스트브룩 | 제임스 하든 | 야니스 아데토쿤보 | 야니스 아데토쿤보 | |
2020-21 | 2021-22 | 2022-23 | 2023-24 | 2024-25 | |
니콜라 요키치 | 니콜라 요키치 | 조엘 엠비드 | 니콜라 요키치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ddd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1950-51 | 1951-52 | 1952-53 | 1953-54 | 1954-55 |
에드 맥컬레이 | 폴 아리진 | 조지 마이칸 | 밥 쿠지 | 빌 샤먼 | |
1955-56 | 1956-57 | 1957-58 | 1958-59 | 1959-60 | |
밥 페팃 | 밥 쿠지 | 밥 페팃 | 엘진 베일러 밥 페팃 | 윌트 체임벌린 | |
1960-61 | 1961-62 | 1962-63 | 1963-64 | 1964-65 | |
오스카 로버트슨 | 밥 페팃 | 빌 러셀 | 오스카 로버트슨 | 제리 루카스 | |
1965-66 | 1966-67 | 1967-68 | 1968-69 | 1969-70 | |
애드리언 스미스 | 릭 배리 | 할 그리어 | 오스카 로버트슨 | 윌리스 리드 | |
1970-71 | 1971-72 | 1972-73 | 1973-74 | 1974-75 | |
레니 윌킨스 | 제리 웨스트 | 데이브 코웬스 | 밥 레이니어 | 월트 프레이저 | |
1975-76 | 1976-77 | 1977-78 | 1978-79 | 1979-80 | |
데이브 빙 | 줄리어스 어빙 | 랜디 스미스 | 데이비드 톰슨 | 조지 거빈 | |
1980-81 | 1981-82 | 1982-83 | 1983-84 | 1984-85 | |
네이트 아치발드 | 래리 버드 | 줄리어스 어빙 | 아이제아 토마스 | 랄프 샘슨 | |
1985-86 | 1986-87 | 1987-88 | 1988-89 | 1989-90 | |
아이제아 토마스 | 톰 체임버스 | 마이클 조던 | 칼 말론 | 매직 존슨 | |
1990-91 | 1991-92 | 1992-93 | 1993-94 | 1994-95 | |
찰스 바클리 | 매직 존슨 | 존 스탁턴 칼 말론 | 스카티 피펜 | 미치 리치몬드 | |
1995-96 | 1996-97 | 1997-98 | 1998-99 | 1999-00 | |
마이클 조던 | 글렌 라이스 | 마이클 조던 | (NBA 파업) | 샤킬 오닐 팀 던컨 | |
2000-01 | 2001-02 | 2002-03 | 2003-04 | 2004-05 | |
앨런 아이버슨 | 코비 브라이언트 | 케빈 가넷 | 샤킬 오닐 | 앨런 아이버슨 | |
2005-06 | 2006-07 | 2007-08 | 2008-09 | 2009-10 | |
르브론 제임스 | 코비 브라이언트 | 르브론 제임스 | 코비 브라이언트 샤킬 오닐 | 드웨인 웨이드 | |
2010-11 | 2011-12 | 2012-13 | 2013-14 | 2014-15 | |
코비 브라이언트 | 케빈 듀란트 | 크리스 폴 | 카이리 어빙 | 러셀 웨스트브룩 | |
2015-16 | 2016-17 | 2017-18 | 2018-19 | 2019-20 | |
러셀 웨스트브룩 | 앤서니 데이비스 | 르브론 제임스 | 케빈 듀란트 | 카와이 레너드 | |
2020-21 | 2021-22 | 2022-23 | 2023-24 | 2024-25 | |
야니스 아데토쿤보 | 스테판 커리 | 제이슨 테이텀 | 데미안 릴라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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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메이네케 | 레이 펠릭스 | 밥 페팃 | 모리스 스톡스 | 톰 하인슨 | |
1957-58 | 1958-59 | 1959-60 | 1960-61 | 1961-62 | |
우디 솔즈베리 | 엘진 베일러 | 윌트 체임벌린 | 오스카 로버트슨 | 월트 벨라미 | |
1962-63 | 1963-64 | 1964-65 | 1965-66 | 1966-67 | |
테리 디싱거 | 제리 루카스 | 윌리스 리드 | 릭 배리 | 데이브 빙 | |
1967-68 | 1968-69 | 1969-70 | 1970-71 | 1971-72 | |
얼 먼로 | 웨스 언셀드 | 루 앨신더 | 데이브 코웬스 제프 페트리 | 시드니 윅스 | |
1972-73 | 1973-74 | 1974-75 | 1975-76 | 1976-77 | |
밥 맥아두 | 어니 디그레고리오 | 자말 윌키스 | 앨반 애덤스 | 애드리언 댄틀리 | |
1977-78 | 1978-79 | 1979-80 | 1980-81 | 1981-82 | |
월터 데이비스 | 필 포드 | 래리 버드 | 대럴 그리피스 | 벅 윌리엄스 | |
1982-83 | 1983-84 | 1984-85 | 1985-86 | 1986-87 | |
테리 커밍스 | 랄프 샘슨 | 마이클 조던 | 패트릭 유잉 | 척 퍼슨 | |
1987-88 | 1988-89 | 1989-90 | 1990-91 | 1991-92 | |
마크 잭슨 | 미치 리치몬드 | 데이비드 로빈슨 | 데릭 콜먼 | 래리 존슨 | |
1992-93 | 1993-94 | 1994-95 | 1995-96 | 1996-97 | |
샤킬 오닐 | 크리스 웨버 | 그랜트 힐 제이슨 키드 | 데이먼 스타더마이어 | 앨런 아이버슨 | |
1997-98 | 1998-99 | 1999-00 | 2000-01 | 2001-02 | |
팀 던컨 | 빈스 카터 | 엘튼 브랜드 스티브 프랜시스 | 마이크 밀러 | 파우 가솔 | |
2002-03 | 2003-04 | 2004-05 | 2005-06 | 2006-07 | |
아마레 스타더마이어 | 르브론 제임스 | 에메카 오카포 | 크리스 폴 | 브랜든 로이 | |
2007-08 | 2008-09 | 2009-10 | 2010-11 | 2011-12 | |
케빈 듀란트 | 데릭 로즈 | 타이릭 에반스 | 블레이크 그리핀 | 카이리 어빙 | |
2012-13 | 2013-14 | 2014-15 | 2015-16 | 2016-17 | |
데미안 릴라드 | 마이클 카터윌리엄스 | 앤드류 위긴스 | 칼앤서니 타운스 | 말콤 브록던 | |
2017-18 | 2018-19 | 2019-20 | 2020-21 | 2021-22 | |
벤 시몬스 | 루카 돈치치 | 자 모란트 | 라멜로 볼 | 스카티 반즈 | |
2022-23 | 2023-24 | 2024-25 | 2025-26 | 2026-27 | |
파올로 반케로 | 빅터 웸반야마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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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펄크스 | 맥스 자슬로프스키 | 조지 마이칸 | 조지 마이칸 | 조지 마이칸 | |
1951-52 | 1952-53 | 1953-54 | 1954-55 | 1955-56 | |
폴 아리진 | 네일 존스턴 | 네일 존스턴 | 네일 존스턴 | 밥 페팃 | |
1956-57 | 1957-58 | 1958-59 | 1959-60 | 1960-61 | |
폴 아리진 | 조지 야들리 | 밥 페팃 | 윌트 체임벌린 | 윌트 체임벌린 | |
1961-62 | 1962-63 | 1963-64 | 1964-65 | 1965-66 | |
윌트 체임벌린 | 윌트 체임벌린 | 윌트 체임벌린 | 윌트 체임벌린 | 윌트 체임벌린 | |
1966-67 | 1967-68 | 1968-69 | 1969-70 | 1970-71 | |
릭 배리 | 데이브 빙 | 엘빈 헤이즈 | 제리 웨스트 | 루 앨신더(카림 압둘자바) | |
1971-72 | 1972-73 | 1973-74 | 1974-75 | 1975-76 | |
카림 압둘자바 | 네이트 아치발드 | 밥 맥아두 | 밥 맥아두 | 밥 맥아두 | |
1976-77 | 1977-78 | 1978-79 | 1979-80 | 1980-81 | |
피트 마라비치 | 조지 거빈 | 조지 거빈 | 조지 거빈 | 애드리안 댄틀리 | |
1981-82 | 1982-83 | 1983-84 | 1984-85 | 1985-86 | |
조지 거빈 | 알렉스 잉글리시 | 애드리안 댄틀리 | 버나드 킹 | 도미니크 윌킨스 | |
1986-87 | 1987-88 | 1988-89 | 1989-90 | 1990-91 | |
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 |
1991-92 | 1992-93 | 1993-94 | 1994-95 | 1995-96 | |
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 데이비드 로빈슨 | 샤킬 오닐 | 마이클 조던 | |
1996-97 | 1997-98 | 1998-99 | 1999-00 | 2000-01 | |
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 앨런 아이버슨 | 샤킬 오닐 | 앨런 아이버슨 | |
2001-02 | 2002-03 | 2003-04 | 2004-05 | 2005-06 | |
앨런 아이버슨 |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 앨런 아이버슨 | 코비 브라이언트 | |
2006-07 | 2007-08 | 2008-09 | 2009-10 | 2010-11 | |
코비 브라이언트 | 르브론 제임스 | 드웨인 웨이드 | 케빈 듀란트 | 케빈 듀란트 | |
2011-12 | 2012-13 | 2013-14 | 2014-15 | 2015-16 | |
케빈 듀란트 | 카멜로 앤서니 | 케빈 듀란트 | 러셀 웨스트브룩 | 스테판 커리 | |
2016-17 | 2017-18 | 2018-19 | 2019-20 | 2020-21 | |
러셀 웨스트브룩 | 제임스 하든 | 제임스 하든 | 제임스 하든 | 스테판 커리 | |
2021-22 | 2022-23 | 2023-24 | 2024-25 | 2025-26 | |
조엘 엠비드 | 조엘 엠비드 | 루카 돈치치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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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프 셰이스 | 래리 파우스트 맬 허친스 | 조지 마이칸 | 해리 갤러틴 | 네일 존스턴 | |
1955-56 | 1956-57 | 1957-58 | 1958-59 | 1959-60 | |
밥 페팃 | 모리스 스톡스 | 빌 러셀 | 빌 러셀 | 윌트 체임벌린 | |
1960-61 | 1961-62 | 1962-63 | 1963-64 | 1964-65 | |
윌트 체임벌린 | 윌트 체임벌린 | 윌트 체임벌린 | 빌 러셀 | 빌 러셀 | |
1965-66 | 1966-67 | 1967-68 | 1968-69 | 1969-70 | |
윌트 체임벌린 | 윌트 체임벌린 | 윌트 체임벌린 | 윌트 체임벌린 | 엘빈 헤이즈 | |
1970-71 | 1971-72 | 1972-73 | 1973-74 | 1974-75 | |
윌트 체임벌린 | 윌트 체임벌린 | 윌트 체임벌린 | 엘빈 헤이즈 | 웨스 언셀드 | |
1975-76 | 1976-77 | 1977-78 | 1978-79 | 1979-80 | |
카림 압둘자바 | 빌 월튼 | 트럭 로빈슨 | 모제스 말론 | 스웬 네이터 | |
1980-81 | 1981-82 | 1982-83 | 1983-84 | 1984-85 | |
모제스 말론 | 모제스 말론 | 모제스 말론 | 모제스 말론 | 모제스 말론 | |
1985-86 | 1986-87 | 1987-88 | 1988-89 | 1989-90 | |
빌 레임비어 | 찰스 바클리 | 마이클 케이지 | 하킴 올라주원 | 하킴 올라주원 | |
1990-91 | 1991-92 | 1992-93 | 1993-94 | 1994-95 | |
데이비드 로빈슨 | 데니스 로드맨 | 데니스 로드맨 | 데니스 로드맨 | 데니스 로드맨 | |
1995-96 | 1996-97 | 1997-98 | 1998-99 | 1999-00 | |
데니스 로드맨 | 데니스 로드맨 | 데니스 로드맨 | 크리스 웨버 | 디켐베 무톰보 | |
2000-01 | 2001-02 | 2002-03 | 2003-04 | 2004-05 | |
디켐베 무톰보 | 벤 월러스 | 벤 월러스 | 케빈 가넷 | 케빈 가넷 | |
2005-06 | 2006-07 | 2007-08 | 2008-09 | 2009-10 | |
케빈 가넷 | 케빈 가넷 | 드와이트 하워드 | 드와이트 하워드 | 드와이트 하워드 | |
2010-11 | 2011-12 | 2012-13 | 2013-14 | 2014-15 | |
케빈 러브 | 드와이트 하워드 | 드와이트 하워드 | 디안드레 조던 | 디안드레 조던 | |
2015-16 | 2016-17 | 2017-18 | 2018-19 | 2019-20 | |
안드레 드러먼드 | 하산 화이트사이드 | 안드레 드러먼드 | 안드레 드러먼드 | 안드레 드러먼드 | |
2020-21 | 2021-22 | 2022-23 | 2023-24 | 2024-25 | |
클린트 카펠라 | 루디 고베어 | 도만타스 사보니스 | 도만타스 사보니스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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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 캘벌리 | 호위 달마 | 밥 데이비스 | 딕 맥과이어 | 앤디 필립 | |
1951-52 | 1952-53 | 1953-54 | 1954-55 | 1955-56 | |
앤디 필립 | 밥 쿠지 | 밥 쿠지 | 밥 쿠지 | 밥 쿠지 | |
1956-57 | 1957-58 | 1958-59 | 1959-60 | 1960-61 | |
밥 쿠지 | 밥 쿠지 | 밥 쿠지 | 밥 쿠지 | 오스카 로버트슨 | |
1961-62 | 1962-63 | 1963-64 | 1964-65 | 1965-66 | |
오스카 로버트슨 | 가이 로저스 | 오스카 로버트슨 | 오스카 로버트슨 | 오스카 로버트슨 | |
1966-67 | 1967-68 | 1968-69 | 1969-70 | 1970-71 | |
가이 로저스 | 윌트 체임벌린 | 오스카 로버트슨 | 레니 윌킨스 | 놈 밴 리어 | |
1971-72 | 1972-73 | 1973-74 | 1974-75 | 1975-76 | |
제리 웨스트 | 네이트 아치발드 | 어니 디그레고리오 | 케빈 포터 | 슬릭 왓츠 | |
1976-77 | 1977-78 | 1978-79 | 1979-80 | 1980-81 | |
돈 부세 | 케빈 포터 | 케빈 포터 | 마이클 레이 리처드슨 | 케빈 포터 | |
1981-82 | 1982-83 | 1983-84 | 1984-85 | 1985-86 | |
조니 무어 | 매직 존슨 | 매직 존슨 | 아이제아 토마스 | 매직 존슨 | |
1986-87 | 1987-88 | 1988-89 | 1989-90 | 1990-91 | |
매직 존슨 | 존 스탁턴 | 존 스탁턴 | 존 스탁턴 | 존 스탁턴 | |
1991-92 | 1992-93 | 1993-94 | 1994-95 | 1995-96 | |
존 스탁턴 | 존 스탁턴 | 존 스탁턴 | 존 스탁턴 | 존 스탁턴 | |
1996-97 | 1997-98 | 1998-99 | 1999-00 | 2000-01 | |
마크 잭슨 | 로드 스트릭랜드 | 제이슨 키드 | 제이슨 키드 | 제이슨 키드 | |
2001-02 | 2002-03 | 2003-04 | 2004-05 | 2005-06 | |
안드레 밀러 | 제이슨 키드 | 제이슨 키드 | 스티브 내시 | 스티브 내시 | |
2006-07 | 2007-08 | 2008-09 | 2009-10 | 2010-11 | |
스티브 내시 | 크리스 폴 | 크리스 폴 | 스티브 내시 | 스티브 내시 | |
2011-12 | 2012-13 | 2013-14 | 2014-15 | 2015-16 | |
라존 론도 | 라존 론도 | 크리스 폴 | 크리스 폴 | 라존 론도 | |
2016-17 | 2017-18 | 2018-19 | 2019-20 | 2020-21 | |
제임스 하든 | 러셀 웨스트브룩 | 러셀 웨스트브룩 | 르브론 제임스 | 러셀 웨스트브룩 | |
2021-22 | 2022-23 | 2023-24 | 2024-25 | 2025-26 | |
크리스 폴 | 제임스 하든 | 타이리스 할리버튼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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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다 득점 | 르브론 제임스 (LeBron James) - 40264점 (2003~현재) | |
최다 어시스트 | 존 스탁턴 (John Stockton) - 15806개 (1984~2003) | |
최다 리바운드 | 윌트 체임벌린 (Wilt Chamberlain) - 23924개 (1959~1973) | |
최다 3점 | 스테판 커리 (Stephen Curry) - 3825개 (2009~현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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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윌트 체임벌린 | |
헌액 연도 | 1979년 |
<colbgcolor=#1D428A><colcolor=#fff>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No. 13 | |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No. 13 |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No. 13 | |
윌턴 노먼 "윌트" 체임벌린 Wilton Norman "Wilt" Chamberlain | |
출생 | 1936년 8월 21일 |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 |
사망 | 1999년 10월 12일 (향년 63세) |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출신학교 | 캔자스 대학교 |
신장 | 216cm (7' 1")[1] |
체중 | 125kg (275 Ibs)[2] |
윙스팬 | 234cm (7' 8") |
포지션 | 센터 |
드래프트 | 1959 Territorial 드래프트[3][4] 필라델피아 워리어스 지명 |
소속 팀 | 할렘 글로브트로터스 (1958~1959) 필라델피아-샌프란시스코 워리어스 (1959~1965)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1965~1968)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1968~1973) |
등번호 | 13번 - 워리어스 / 필라델피아 / 레이커스 |
[clearfix]
1. 개요
미국의 前 농구선수. 포지션은 센터. 단일 시즌 PER 역대 2위[5][6]를 비롯해 수많은 전설적인 기록을 써 내려간 레전드 선수다.한 경기 최다 리바운드, 득점 기록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역사상 유일한 3만 득점[7] - 2만 리바운드[8]의 기록 보유자다.
별명으로 'Wilt the Stilt', 'The Big Dipper', 'The Record Book'이라 불렸다. 국내에서는 '고대괴수' 가 대표적.
2. 수상 내역
수상 내역 |
NBA 챔피언 2회 (1967, 1972) NBA 파이널 MVP 1회 (1972) NBA 정규시즌 MVP 4회 (1960, 1966-1968) 올-NBA 퍼스트 팀 7회 (1960-1962, 1964, 1966-1968) NBA 올스타 13회 (1960-1969, 1971-1973) NBA 올스타전 MVP (1960) 올-NBA 세컨드 팀 3회 (1963, 1965, 1972) NBA 올-디펜시브 퍼스트 팀 2회 (1972-1973)[9] NBA 올해의 신인상 (1960) NBA 올해의 득점왕 7회 (1960-1966) NBA 올해의 리바운드왕 11회 (1960-1963, 1966-1969, 1971-1973) NBA 올해의 어시스트왕 (1968) NCAA 토너먼트 MOP (1957)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 (1979) |
3. 플레이 스타일
농구 역사상 최고의 피지컬[10]을 이용한 공격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만능 토탈 패키지. 그의 필살기로는 'Lay down'이 있었다. 보통 선수들은 레이업을 하면 공을 살짝 올려놓는다는 느낌이 되니까 상황이 맞으면 블록을 당할 수도 있는데, 윌트는 팔을 쭉 뻗으면 공이 이미 림보다 위에 올라가 있으니 핑거롤 형식으로 내려보내기만 하면 슛이 되는 것이다. 림을 향해 내려오는 공을 건드리면 당연히 골텐딩. 사기적인 팔길이에서 구사하는 레이 다운은 그 시대 모든 선수들의 골칫거리였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현역 시절 그 누구보다 크고 힘이 쎘기에 그걸 이용해 득점을 쉽게한다는 말을 싫어했고 자신이 기술이 뛰어난 선수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그는 결국 페이더웨이 슛과 훅 슛 등을 장착했고, 패스를 문제 삼자 패스에 눈을 떠서 그 해 어시스트 왕을 차지한다. 1960년대 기준으로 보면 탑클래스의 기술적인 센터라 평할 수 있다
또한 그의 점프력은 자유투 라인에서 한 발 도약으로 레이업이나 덩크를 성공시켰을 정도로 뛰어났다.[11] 자유투 시 라인을 넘으면 안된다는 룰[12]이 이 때문에 생겼다.
가장 큰 단점은 역시 자유투. 통산 성공률이 51.1% 밖에 안 될 정도로 낮다.[13] 오늘날 종종 비교대상이 되는 샤킬 오닐의 통산 자유투 성공률이 52.7%이다.
특히 1968년에는 38.7%라는 놀라운 기록으로 2015~16년 안드레 드러먼드가 35.5%로 경신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단일시즌 자유투 최저 성공률 1위를 지키고 있었다. 체임벌린은 이 기록을 포함해 역대 10위 안에 3시즌이나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샤크는 대선배 덕분에 13위에 머물 수 있었다.
4. NBA Career Statistics
- [ 정규시즌/펼치기 · 접기 ]
-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 시즌 || 경기수 || 시간 || 필드골 || 3점 슛 || 자유투 || 득점 || 리바운드 || 어시스트 || 스틸 || 블록 || 턴오버 || 트루슈팅 || PER ||
59-60 72 46.4 .461 - .582 37.6 27.0 2.3 - - - .493 28.0 60-61 79 47.8 .509 - .504 38.4 27.2 1.9 - - - .519 27.8 61-62 80 48.5 .506 - .613 50.4 25.7 2.4 - - - .536 31.7 62-63 80 47.6 .528 - .593 44.8 24.3 3.4 - - - .550 31.8 63-64 80 46.1 .524 - .531 36.9 22.3 5.0 - - - .537 31.6 64-65 73 45.2 .510 - .464 34.7 22.9 3.4 - - - .513 28.6 65-66 79 47.3 .540 - .513 33.5 24.6 5.2 - - - .547 28.3 66-67 81 45.5 .683 - .441 24.1 24.2 7.8 - - - .637 26.5 67-68 82 46.8 .595 - .380 24.3 23.8 8.6 - - - .557 24.7 68-69 81 45.3 .583 - .446 20.5 21.1 4.5 - - - .567 21.9 69-70 12 42.1 .568 - .446 27.3 18.4 4.1 - - - .554 24.8 70-71 81 44.3 .545 - .538 20.7 18.2 4.3 - - - .558 20.3 71-72 82 42.3 .649 - .422 14.8 19.2 4.0 - - - .610 18.5 72-73 82 43.2 .727 - .510 13.2 18.6 4.5 - - - .689 19.1
- [ 플레이오프/펼치기 · 접기 ]
-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 시즌 || 경기수 || 시간 || 필드골 || 3점 슛 || 자유투 || 득점 || 리바운드 || 어시스트 || 스틸 || 블록 || 턴오버 || 트루슈팅 || PER ||
59-60 9 46.1 .496 - .445 33.2 25.8 2.1 - - - .498 27.0 60-61 3 48.0 .469 - .553 37.0 23.0 2.0 - - - .492 26.7 61-62 12 48.0 .467 - .636 35.0 26.6 3.1 - - - .508 29.7 63-64 12 46.5 .543 - .475 34.7 25.2 3.3 - - - .543 31.3 64-65 11 48.7 .530 - .559 29.3 27.2 4.4 - - - .550 27.1 65-66 5 48.0 .509 - .412 28.0 30.2 3.0 - - - .500 26.0 66-67 15 47.9 .579 - .388 21.7 29.1 9.0 - - - .546 25.3 67-68 13 48.5 .534 - .380 23.7 24.7 6.5 - - - .511 22.7 68-69 18 46.2 .545 - .392 13.9 24.7 2.6 - - - .518 18.3 69-70 18 47.3 .549 - .406 22.1 22.2 4.5 - - - .528 20.3 70-71 12 46.2 .455 - .515 18.3 20.2 4.4 - - - .479 19.1 71-72 18 46.9 .563 - .492 14.7 21.0 3.3 - - - .562 17.8 72-73 17 47.1 .552 - .500 10.4 22.5 3.5 - - - .556 16.7
5. 기록
[14]NBA를 넘어 스포츠 역사상 가장 깨지기 힘든 기록을 여럿 만들어냈다. 오죽하면 대기록을 만든 선수가 나올때마다 같이 등장한다.
단일 시즌 PPG 역대 1위 (50.4), 통산 PPG 역대 2위 (30.1)단일 시즌 RPG 역대 1위 (27.2), 통산 RPG 역대 1위 (22.9)
단일 시즌 PER 역대 2위 (31.82), 통산 PER 역대 6위 (26.13)[15]
단일 시즌 WS 역대 2위 (24.98), 통산 WS 역대 2위 (247.26)
단일 시즌 MPG 역대 1위 (48.5분)[16], 통산 MPG 역대 1위 (45.8분)
이 외에도 한 경기 100득점 기록[17], 한 경기 55리바운드 기록[18], 65경기 연속 30득점 이상[19], 50득점 이상 경기 118회[20], 한 시즌 최다 평균시간출전 48.5분[21] 등등 농구를 넘어 스포츠 역사상 가장 깨지기 힘든 기록들을 많이 갖고 있다.
루키 시절 기록도 독보적이여서 데뷔경기에서 43득점 28리바운드를 기록했는데 이 43득점은 NBA 역대 데뷔전 최다 득점 기록이고, 28리바운드는 최다 리바운드 경기다. 시즌 총 2707득점(경기당 37.6득점)과 1941리바운드(경기당 25리바운드)를 기록했는데 이 역시 NBA 역대 루키시즌 최다 득점과 최다 리바운드 기록이다.
참고로 루키 시즌 윌트의 평균득점기록인 37.6점보다 뛰어난 기록을 낸 NBA선수는 아무도 없다. 엘진 베일러가 61-62시즌에 38.3점을 기록했지만 48경기 출전에 그쳐 인정되지 않고, NBA 역사에서 평균 37점을 넘은 선수는 윌트 외엔 오로지 마이클 조던 뿐이다.(86-87시즌 37.1점) 평균득점으로 NBA역대 순위를 내면 1~4위가 윌트, 5위가 조던이다.
NBA는 이러한 그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페인트 존을 넓히고, 수비자 3초를 등 부단히 룰을 바꿔야 했다. 그런데도 그는 50-30을 밥먹듯이 하였고, 한 번은 시즌 평균으로 50.4 득점을 한 적도 있다.[22]
당시에는 블록 슛이 집계되지 않아서 트리플 더블을 기록하기 힘들었다보니 역대 4위밖에(?) 되지 않는다.만약 그 당시 블록 슛이 집계 되었다면 쿼드러플-더블, 트리플-더블 기록이 다시 쓰였을 거라는 의견이 다수이다. 블록이 공식기록이 아닌 걸 알면서도 체임벌린이 너무 대단해서 따로 집계했다는 기록원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들의 기록을 보면 경기당 10개는 기본적으로 넘어가는 수준이었기 때문. [23] 다만 당시 블록 슛 규칙이 거의 없어 지금으로치면 골텐딩인 것이 상당히 많았다.
또한 지금까지 뛰었던 모든 선수들 가운데 단 둘 뿐인[24] 더블 트리플-더블[25]을 달성했던 선수이다. 1968년 2월 2일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와의 경기에서 25득점, 22리바운드, 21어시스트를 기록했었다.
또다른 기록은 1966년과 1967년에 기록한 +30득점 동반 야투율 100%의 트리플 더블 기록이었는데, 이것도 50여 년 동안 체임벌린만이 기록하고 있었다가 2018년 10월 21일 니콜라 요키치가 35득점 12리바운드 11어시스트 야투율 100%의 기록으로 기록했다.
6. vs 빌 러셀
자세한 내용은 윌트 체임벌린 vs 빌 러셀 문서 참고하십시오.7. 일화, 떡밥
빌 러셀의 보스턴 셀틱스 때문에 우승은 단 2회에 그쳤지만 신체에 관해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무수한 일화들을 가지고 있다. 그의 기록들을 보다보면 한 경기 30-20 정도는 겨우?라 생각하게 될 정도.결론적으로 엄청난 운동능력의 소유자이다. 캔자스 대학 시절에는 육상 종목에서 우승을 휩쓸기도 하고, 힘이 엄청나게 세서 내기 팔씨름으로 용돈벌이를 했다고 할 정도이다.
NBA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팀동료였던 게리 와드는 이렇게 말했다.
"체임벌린이 나나 빌리를 데리고 밖에 나가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사람들이 항상 그를 둘러싸고 사인을 요청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어느날 밤 홈경기가 끝난 후 우리 셋은 필라델피아 중심가를 걷고 있었죠. 밤 11시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나처럼 해봐요' 놀이를 하면서 가고 있었죠. 다른 모든 세 젊은 독신남이 모이면 그렇듯 바보스런 일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다가 기둥 하나와 마주쳤는데, 마침 체임벌린의 차례가 되었었죠. 그는 두 팔을 벌려서 기둥을 끌어안더니 자기 몸을 공중으로 들어올려서 기둥과 45도의 각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공중에 자기 몸을 고정시킨 자세로 대략 1분 정도를 버티다[26]가 내려왔죠. 빌리와 나도 시도해봤습니다. 우리는 공중으로 발을 박차고 올라갔지만 그 즉시 땅으로 떨어졌죠. 두 명 다 단 1초도 그 자세를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2000년대 핸드폰 가로본능 cf에 나왔던 무브로 카포에라나 올드스쿨 비보잉에 있는 기술이다. 체중대비 엄청난 코어힘이 있다면 가능하고 일반인중에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하반신의 길이, 즉 키가 클수록 어렵다. 180이상만 되도 상당히 난이도가 있는 동작이다.큰 키에 팔길이와 손 크기까지도 무지막지하게 크다.
윌트 체임벌린 시대의 농구 룰에 대한 자세한 설명
나중에 무릎을 다쳐 운동 능력을 상실하지만 그 몸으로 카림 압둘자바의 스카이 훅도 블록했다. 부상으로 운동 능력을 많이 잃은 상태에서도 저 정도... 그러나 이 장면은 잘보면 첫번째 슛은 스카이 훅슛보단 일반적인 훅 슛에 가깝고, 두번째는 골텐딩이다.
당시 UCLA의 감독이였던 래리 브라운이 말한 체임벌린의 일화가 있다. 매직 존슨은 종종 학교 체육관에 와서 학교 신입생들이랑 농구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날 그는 버나드 킹, 바이런 스캇, 제임스 워디, A.C. 그린를 데려왔다고 한다. 그 경기에 43살의 체임벌린이 왔고 경기 마지막 슛으로 존슨이 스카이 훅을 시도했는데 윌트가 블락했다고 한다. 매직은 우리가 이겼다고 했고 체임벌린은 그건 골텐딩이 아니라고 하며 코치인 자신한테 골텐딩이였냐고 물었다. 하지만 어린 선수였던 그들이 입을 모아 골텐딩이라고 말했고 그때 체임벌린이 지금부터 12시까지 너넨 경기에서 그 어떤 슛도 못 던질거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그리고 43살의 체임벌린이 진짜로 모든 슛을 블락했다고.
후에 매직 존슨은 윌트 체임벌린을 존경하는 인터뷰를 여러차례했는데 그는 여러사람들이 다시는 안 나올거 같은 선수로 마이클 조던이나 다른 선수들을 말하는데 그는 절대로 윌트 체임벌린같은 선수는 두번다시 안 나올 것이라고 장담했다.
가장 비슷한 경우가 크리스 웨버의 드림팀과의 일화로, 그랜트 힐, 바비 헐리, 웨버 등이 속한 대학선발팀은 전날 드림팀과의 연습경기에서 놀랍게도 승리했다. (물론 이와 관련해 여러 논란이 있다. 조던이 거의 뛰지 않았다던지...자세한 것은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고) 그리고 다음날 웨버는 칼을 갈고 나온 드림팀에게 쳐발렸다고 하면서, "우릴 완전 박살냈지. (They killed us). 단 한 점도 못 넣었어. 레이업이던, 자유투건..."이라고 했는데, 농구 특성상 풀경기를 뛰면서 체격과 운동능력이 대등한 팀을 무득점으로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시 기량은 드림팀이 압도적이었지만 웨버나 힐같은 선수들은 드림팀 선수들도 부담스러운 체격과 운동능력을 지닌 선수들이었고, 드림팀의 가장 큰 약점인 "작고 재빠른 단신선수에 대한 수비"를 잘 공략하는 헐리도 있었다. 단적인 예로 드림팀을 상대로 가장 적게 득점한 팀이 앙골라로 고작 48점 득점했는데(68점차로 패배) 앙골라는 키도 작지만 7, 80kg대의 갈비씨들이 빅맨을 볼 정도로 체격이 형편없었다. 그런데도 48점이나(?) 넣은 것.
또한 윌트의 육상 실력에 대한 기록도 과장이 심한데 실제로 윌트 체임벌린에 대해 가장 널리 인용되는 코멘트는 1955년(윌트가 대학에 입학한 연도다) 당시 스포팅 뉴스에서 캔자스 대학을 인용한 멘트로 "필라델피아의 오버브룩 고등학교 재학 시절 높이뛰기 6피트6인치(198cm)를 기록했으며 440야드를 49초만에 뛰었고 880야드를 1분58.3초만에 뛰었으며, 투표환을 58피트4인치 길이로 던졌고, 넓이뛰기 기록은 22피트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양덕이 윌트가 재학시절 실제 기록을 찾아본 결과 https://www.reddit.com/r/nba/comments/9akkos/debunking_most_every_wilt_chamberlain_track_field/ 해당 연도의 높이뛰기 기록은 6피트5.75인치에 불과하고 윌트가 아니었으며, 윌트의 기록 중 확인되는 최고기록은 6피트1인치인 등 저 기록들보다 명확히 낮은 기록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종합하면 윌트의 고등학교 시절 육상 기록은 필라델피아 공립학교 리그 챔피언십(Philadelphia Public League Championship)에서 두차례 높이뛰기 우승(5피트10인치, 6피트1인치), 투포환에서 한 차례 우승 (46피트10.5인치)를 차지한 게 전부이며 전국 랭킹 안에 오르거나 주 챔피언을 딴 적은 한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대학에서도 캔자스 대학이 속한 Big Seven 컨퍼런스에서 야외 높이뛰기 우승 1회, 실내 높이뛰기 대회 1회를 차지했으며, 육상분야에서 올아메리칸에 오르진 못했다.
즉 윌트는 전업선수가 아닌 기준에서 뛰어난 육상선수이긴 했으나 고등학교 때 주 챔피언이나 올아메리칸급과는 거리가 먼 선수였으며, 대학 때도 우승을 쓸어담거나 기록을 세우고, 올림픽에 선발될 만한 엄청난 수준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의 라이벌인 빌 러셀이 1956년에 6피트 9.25인치(206cm)를 뛴 기록이 2022년 기준 아직도 그가 재학했던 샌프란시스코 대학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 기록은 당시 세계 7위 수준이었으며, 당시 러셀과 같은 기록을 세웠던 찰리 듀마스는 그 해 올림픽에서 세계 최초로 7피트를 넘으며 금메달을 따낸다. 즉 점프 분야에선 러셀이 명확하게 윌트보다 한 수 위였다.[27] 물론 이는 순수하게 육상선수 기준으로 보면 그렇다는 것이고, 육상이 주종목이 아닌 농구선수가 육상에서 저 정도 기록을 냈다는 것을 보면 러셀이든 윌트든 규격 외의 괴물들인 것은 명확하다.
보유하고 있는 대기록들과 신체능력 등으로 인해 아직도 농구팬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떡밥으로 등장한다. 그가 현재 리그에 등장한다면 명실공히 리그 최강의 센터가 되었을 거라는 편과, 당시 농구가 현대농구보다 상당히 낙후된 점을 들어 그 정도 대기록은 남기지 못했을 것이라는 편이 대립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그의 축복받은 신체운동능력 만큼은 NBA 역사상 가장 뛰어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데뷔 시즌의 몇 없는 기록 영상들 중에는 리바운드를 잡자마자 무슨 퓨마처럼 달려서 레이업을 올리는 장면이 있는데, 림 위로 공이 올라올 무렵에 뒤에서 죽을 힘으로 따라오던 상대편 선수는 겨우 자유투 라인에 도달했다. 물론 같은 편에서는 아무도 가담하지 않았다.
당시 NBA 선수들이나 그를 직접 만나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를 살면서 본 가장 힘이 쎈 사람이였다 얘기한다. 이거에 관한 정말 많은 일화들이 존재한다. 그중 일부를 보면
데럴 도킨스가 말하길 체임벌린이 덩크를 했는데 켈빈 머피도 같이 뛰었다고 한다. 머피가 넘어졌고 윌트는 한 손으로 엎어져있던 머피를 인형처럼 들어올려 괜찮냐고 물어봤다고.
데이비드 쇼라는 사람이 말하길 배가 닻에 끝까지 못왔었다. 4피트 정도의 공간이 남았었는데 체임벌린이 다리 하나를 배에 그리고 닻에 두고 성인 한명 한명씩 들어서 옮겨줬다고 한다.
조니 커라는 NBA 선수는 윌트가 자신한테 화가나 엄청 쎄게 덩크 했는데 그걸 맞은 발가락이 부러졌다고 한다.
빌리 커닝햄이라는 NBA 선수는 자신이 본 최고의 플레이는 거스 존슨이 덩크를 하려 올라갔는데 체임벌린이 공중에서 공을 잡고 거스를 땅에 던져버렸고 어깨가 탈구되었다고 한다.
제리 카라우스라는 인물은 윌트는 지구 역사상 가장 힘이 쎈 사람이였을 것이다라고 했고 그의 썰로는 볼티모어에서 거스 존슨을 겨드랑이로 들어올리며 장난치는 걸 봤었다고 한다.
빌 월튼은 해변에서 놀고 있었는데 미식축구 얘기가 나왔다 윌트는 자신도 미식축구 공을 던질 수 있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비웃었다고 그래서 윌트가 던져보겠다고 잡는 사람한테 계속 뒤로 가라고 했고 사람들은 너무 멀다며 계속 웃었는데 서로가 거의 안보일때 쯤 언더핸드로 던졌는데 잡는 사람 머리 위로 90야드는 넘게 던졌다고 한다.
밥 레이니어는 프로 생활을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냐는 질문에 체임벌린이 자신을 커피 잔처럼 들어 옮겨 더 나은 포지션을 차지하려는 순간이였다고 얘기했다.
2019년 아놀드 슈워제네거도 한 일화로 체임벌린이랑 운동을 했었는데 삼두 익스텐션을 했었다. 아놀드는 큰 사람이나 힘이 제일 쎈 사람들은 (120lbs)정도를 하는데 그는 (150~170lbs)를 했었다며 당연히 체임벌린이 NBA 역사상 가장 힘이 쎈 사람이라고 했다.
8. 기타
- 아놀드 슈워제네거, 안드레 더 자이언트와 함께. 가운데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꼬마로 보이지만 188cm의 장신이다.[28]
- 현재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체임벌린의 경기 영상은 다 전성기가 지난 이후의 모습이라 그의 최전성기 피지컬이 어느정도 수준이었는지 우리는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다고 한다.
윌트 체임벌린 저택의 Love-making room, 즉 "사랑을 나누는 방" |
- 평생 독신이었지만 20,000명이 넘는 여인과 동침을 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29] 사실 정확한 수치를 밝힌 적은 없지만, 본인의 자서전 꼭대기에서 바라본 경관에서 "이 때까지 나는 리바운드를 잡은 숫자만큼 여자와 잤다"라고 했는데, 통산 기록이 2만 개가 넘기 때문... 자서전 출간일 기준으로 하루에 1.4명의 여성과 자야 가능한 수치이다. 데니스 로드맨은 훗날 이를 두고 "내가 계산해봤는데 2만명은 도저히 불가능함"이라 말하기도. 사실 이게 절대적 수치의 표현이라기보다는, 그냥 본인이 경기에서 리바운드를 밑도 끝도 없이 잡아대는 것처럼 동침을 밑도 끝도 없이 해댔다는 얘기에 더 가까워 보인다...고는 하지만 언론 인터뷰에서 절대적 수치이며 거짓은 없다고 본인이 언급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일에 14명의 여성과 동침했었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니까 매일 1~2명과 관계를 가진 것은 아니고, 특별한 날에는 수십명과 한번에 관계를 하거나 하루에 여러번 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불가능은 아니다. 실제 킨제이 보고서에는 19세기 유럽의 평생동안 5만 명이 넘는 여성과 섹스를 한 남자의 기록이 매우 상세하게 실려있으며[30] 11살에 즉위한 아라비아의 이반 사드 왕은 일생동안 궁녀나 시녀 등 2만여명과 섹스를 했다는 역사 기록이 있다. 정작 체임벌린 본인은 이에 대해 후일 "천명의 여자와 한 번씩 사랑을 나누는 것보다 한 명의 여자와 천 번 사랑을 나누는 것이 낫다."라고 하기도.[31]
- 과장이 섞일 수 있는 걸 감안하더라도 피지컬과 관련된 여러 괴물같은 일화나 증언들이 많다. 본인 주장으론 600파운드(272kg)을 벤치프레스 할 수 있었다든지 마이클 조던보다 자신의 버티컬 점프가 더 높다던지 등이 있다.
- 칼 램지라는 사람은 윌트와 친구였는데 팔에 크게 상처가 난걸 보고 뭐냐고 물었다고 한다. 체임벌린은 미국을 횡단하다가 잠깐 쉬고 있었는데 퓨마가 나타나서 자신을 할퀴었고 맨손으로 죽여버렸다고 했다. 칼은 믿지 않았는데 그가 말도 안되는 모습들을 많이 보여줘서 나중에 믿었다고 한다. 불가능처럼 들리는 얘기지만 후에 콜로라도 산에서 조깅을 하던 트래비스 카우프만이라는 사람이 퓨마에게 공격당했다 손목과 얼굴에 큰 상처를 입었는데도 맨손으로 죽인 일을 자세히 설명해주면서 체임벌린의 일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게 입증되었다.
- 한 동료는 "체임벌린이 착한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왼손 하나로 우리를 죽일 수 있다"라고 말한 바가 있다.[32] 당대 NBA 선수 중에서도 체임벌린의 무력은 단연 독보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과 달리 느바 내 폭력사태나 벤치클리어링이 숱했던 만큼, 체임벌린이 포악한 성격이었다면 정말로 사람 하나 죽었을지도 모를 일... 물론 체임벌린은 자신이 이성을 잃고 날뛰면 진짜 큰일이 난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아는 사람이었고, 덕분에 폭력적인 수비를 받으면서도 어지간하면 큰 반응없이 인내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다행이기도 하다.
- 본 문서에 그의 성품이 플레이 스타일과 피지컬과는 별개로 섬세하고 온화했다는 내용이 적혀져있는데 실제로 그러하였다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유망주 모리스 스톡스와 그를 전재산까지 털어가며 도왔던 잭 트와이먼을 위해 열린 자선경기에 한번도 빠짐없이 참석해 코트위를 빛냈으며 이후로도 여러 자선경기를 개최하는등 살아생전 죽는날까지 선행을 몸소 실천했던 성현이었다.
- 1992년부터 심장질환을 앓았는데, 1999년 로스앤젤레스의 저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 뉴욕 닉스전에서 100득점한 그 날, 집이 뉴욕인 체임벌린이 뉴욕 닉스팀 보고 같이 버스 좀 타자고 말했다. 버스에서 자다가 잠결에 앞의 선수가 이야기하는 것 들었는데, 자기 욕하는 중이었다고 한다... 어쩔까 하다가 그냥 자는 척하고 도착하고 나서 태워다줘서 고맙고, 100득점 넣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집에 갔다...[33]
- 몸담았던 3개의 프로구단에서 모두 영구결번이 되었다. 아예 타계 후 전구단 결번으로 지정된 빌 러셀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구단에서 영구결번이 된 선수. 당연히 3개 구단 영구결번은 역대 최초이다.
- 22-23시즌부터 신인상의 이름이 윌트 체임벌린 상으로 변경되었다.
9. 압도적인 개인 기록에 비해 우승을 많이 하지 못한 이유
후대 사람들은 이 점에 대해 의아해하면서 "빌 러셀이 더 뛰어난 동료들과 뛰어서 그렇구나."하고 단정짓곤 하는데, 물론 전반적으로 러셀의 동료들이 체임벌린의 동료들에 비해 수준이 높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히 팀 동료들의 수준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다. 마이클 조던이 등장하기 전까지 빌 러셀은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불렸고, 매직 존슨 같은 선수들은 "조던은 최고의 선수지만, 빌 러셀은 최고의 승리자다."라고 하는 등 러셀은 단순히 동료복이 좋기만 한 선수는 아니었다. 또한 반대로 체임벌린의 동료들이 러셀보다 더 강한 적도 있었는데, 이때 체임벌린이 승리를 챙기지 못한 적도 있었다.
[이런 말들이 많지만 사실 이는 잘못된 사실이다,윌트 체임벌린이 빅3를 구축하고도 늙고 병든 보스턴에게 졌다 이게 대표적인 이야기
하지만 그 당시 윌트 체임벌린의 팀이 체임벌린+웨스트+베일러를 구축했을때,체임벌린도 이미 늙었고 베일러도 정상은 아니였다
전성기는 제리 웨스트 뿐,반면 보스턴은 그 당시 샘존스+빌러셀+하블리첵+하웰 빅4 라인업[+기타 벤치 멤버들은 약간 더 좋았음]
사람들은 이를 두고 늙고 병든 보스턴을 빅3로 못 잡았다고 비판하는 것/즉,실질적으로 윌트 체임벌린의 팀이 빌러셀의 팀 보다 강했던 적은 단 한 시즌도 존재하지 않다,모든 시즌은 체임벌린이 존재할때 그나마 비볐다라는 전제이지,체임벌린과 러셀 없는 상태로 붙는다면 보스턴이 압도할 라인업이였다/단순 스텟 비교로 봤을때 체임벌린이 볼륨만 높았던게 아니라,야투효율에서도
차이가 컸다 빌러셀은 야투율이 체임벌린 상대로 3~40퍼대 정도였고,체임벌린은 빌러셀 상대로 50~60퍼였을 뿐만 아니라
어시스트 리바운드조차 높고,블락,스틸조차 집계가 되었다면 높았을 것이다/애초에 팀 내 공헌도를 비교할 수가 없었음
[체임벌린을 비판하던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릭베리인데,그는 윌트 체임벌린 상대로 맞대결에서 7승 19패로 승률 26.9%를 기록한
워리어스의 레전드 선수다]
또한 윌트 체임벌린의 팀은 데뷔 당시 팀 승률이 40퍼대 정도로 승률이 4할정도였던 팀이였으며
윌트 체임벌린이 데뷔하고나서 승률 60퍼 이상으로 오르며 강팀으로 부상한 팀이였다.
하지만 필라델피아 워리어스가 연고지를 바꾸며 샌프란시스코 워리어스로 변경되었는데 이후 체임벌린은
필라델피아에 대한 고향 애착심이 강해 필라델피아로 이적(체임벌린이 떠난 워리어스는 그해 승률 20퍼대로 떨어졌다)
이적한 필라델피아의 경우 승률 4할정도의 팀이였으나
윌트 체임벌린 입단직후 시즌 5할 승률(윌트가 풀 시즌을 뛴게 아니라 시즌 도중에 입단함)
바로 다음 시즌 풀시즌을 뛰게 된 해부터는 승률 68퍼 84퍼[당시 기준 최다승+우승] 75퍼의 강팀으로 급부상한다
그 후 레이커스로 이적했고 레이커스 시절 우승을 추가로 한 것[60년대 당시 보스턴의 우승을 한번이라도 저지한 것은
체임벌린이 이끌던 필라델피아가 유일하다]
추가로 그 당시엔 샐러리캡 제도가 없었고 그로 인해 보스턴이 좋은 선수들을 독점하는 체제였다
(우승을 압도적으로 많이하던 팀이 보스턴이였고+당연히 자본이 많은 팀이 유리한 시절)
+보스턴 감독 아우어바흐는 당시 윌트 체임벌린을 뽑고 싶었으나 그 당시엔 특정 지역의 대학 선수를 타팀이 데려가지 못 하도록 보호하는 제도가 있었기에,필라델피아 워리어스 측에서 타팀이 윌트 체임벌린을 데려가지 못 하도록 막았다/그래서 윌트 체임벌린이 1픽이 아닌 것,보스턴의 경우 보호권이 없어도 어차피 지명권이 낮았고,타팀들은 제도때문에 체임벌린을 데려갈 수 없었음)
[1] 맨발 기준 216cm (7' 1") / 착화 신장 218cm (7' 2").[2] 시기미다 차이가 있으며, 데뷔 초기 약 125kg(275 lbs)에서 레이커스 시절 136kg(300 lbs)를 넘어갔다.[3] 지역연고제를 하는 NBA 특성을 위해 지역연고팀이 해당 지역의 유망한 신인을 우선지명하는 우선지명제 비슷한 방식이다. 1949년에 NBA가 출범하면서부터 시작되었고, 1965년에 이 제도는 없어졌다. 각 팀들은 1라운드 지명권을 포기하는 대신 해당 지역 출신 대학을 나온 선수 1명을 지명할 수 있는데, 이 제도를 통해 NBA에 데뷔해서 유명해진 선수로는 체임벌린 외에도 폴 아리진, 에드 매카우리, 톰 헤인슨, 가이 로저스, 오스카 로버트슨 등등이 있다.[4] 윌트 체임벌린은 캔자스 대학 출신이고, 캔자스에는 NBA팀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원래는 지역연고 드래프트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NBA.com의 체임벌린 프로필 페이지에 따르면, 당시 필라델피아 워리어즈의 구단주 에디 고틀립은 윌트가 필라델피아 출신이고 고등학교도 여기서 나왔으며 지역에서 인기가 많으니 자신의 팀이 뽑아야한다고 주장했고, 이게 받아들여지면서 지역연고를 뽑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드래프트는 로터리는 물론 동전던지기도 없이 단순히 전 시즌 성적의 역순으로 지명권을 줬기 때문에, 원래대로라면 윌트는 3위 지명권을 지닌 워리어즈에 갈 수 없었고 1순위 지명권을 가진 신시내티 로얄스에 뽑혔을 것이다. 여담으로 '윌트가 너무 대단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할때 미리 뽑혔다'는 설이 있는데, 윌트가 고등학교 졸업하던 1955년에 필라델피아는 지역연고 지명권으로 톰 골라를 뽑았고, 윌트가 입단하던 해인 59년 드래프트에서 지역연고 지명권으로 윌트를 뽑은 게 확인되므로 낭설일 뿐이다.[5] 1위는 2021-2022 시즌 PER 32.85을 기록한 니콜라 요키치[6] 참고로 이 시기에는 스틸, 블록, 턴오버, 3점 슛 등이 집계되지 않았기 때문에 PER가 손해볼수 있다. 실제 수치는 이보다 더 높았을 것이다.[7] 통산 득점 역대 7위 (31419점)[8] 통산 리바운드 역대 1위 (23924)[9] NBA All-Defensive Team 선정은 1969년부터 시작되었고 체임벌린은 그 네 번째, 다섯 번째 선정자 중 한 명이다. 그리고 연도를 보면 알겠지만 이 두 번의 수상은 체임벌린의 현역 마지막 두 시즌이었다.[10] 일각에서는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피지컬과 운동능력이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그의 관한 썰들로는 버티컬 점프 40인치, 벤치프레스 600파운드, 100m 10.9초 등 그의 사이즈에서는 상상 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다.[11] 물론 마이클 조던이나 줄리어스 어빙, 잭 라빈도 자유투라인 덩크를 성공시켰으나, 그건 '덩크 콘테스트' 때 전력으로 달려서이고 체임벌린은 실제 '자유투'할 때 그랬다. (대학리그 당시)[12] 정확하게는 자유투를 던지고 나서, 던진 공이 림에 맞기 전에 던진 선수가 자유투 라인 너머에 발을 대는 것을 금지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노골이 되더라도 재빨리 들어가 풋백을 집어넣는 등의 플레이가 가능하기 때문. 2011년 기준 현행 규정상 자유투를 레이업처럼 던지는 것은 원칙적으로 가능하다.[13] 자유투 슛폼은 찾아보면 알겠지만 부정적인 의미로 굉장하다. 일단 라인 한참 뒤에 서있고 슛을 쏘는 타점 자체도 낮고 약간 정면에서 빗껴서 잡는 폼도 폼이지만, 쏘는 게 아니라 그냥 휙 냅다 던지는 느낌이다. 이 때문에 스핀도 거의 안 먹고 포물선도 낮아 얼핏 봐도 안 들어갈 것 같은 슛. 하도 자유투가 안되니까 한때는 릭 베리나 슬램덩크의 강백호와 같은 언더 핸드 자유투 폼으로 던졌던 때도 있었다. 이렇게 해서 성공률이 올라가기는 했으나 폼이 계집애 같이 생겼다는 비아냥을 듣고는 이 폼을 버렸다.[14] 100득점 후 기념하기 위해 종이에 점수를 써 사진을 찍었다. 그 후 NBA는 대기록이 나올때마다 종이에 써 사진을 찍는 전통이 생겼고 현재도 진행형이다.[15] 아직 현역인 르브론 제임스와 앤서니 데이비스가 각각 역대 2,3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향후 행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16] NBA의 정규경기는 4쿼터까지 48분이다. 체임벌린은 이 시즌 결장없이 80경기를 모두 출장하였고, 연장전 포함해서 시즌 내내 단 7분만 쉬었다고 한다. 이것도 반칙 퇴장으로 쉰 것. 51경기 연속 풀타임 출전도 이때 세운 기록. 당연하게도 체임벌린을 제외한 거의 모든 선수들에게 농구에서 한 게임을 풀타임으로 뛰기는 굉장히 어려운 것을 넘어 혹사에 가까운 일이며, 당시 NBA 수준이 낮았다며 폄하하는 사람들도 평균 출장시간 48.5분만큼은 절대 까지 못한다.[17] 1962년 3월 2일 뉴욕 닉스,스와의 경기. 이경에서 체임벌린은 25리바운드를 했고 야투를 36개를 성공시켜 역사상 가장 많은 야투 성공 경기이기도 하다.[18] 당연히 역대 최다고 더 놀라운건 빌 러셀과의 경기에서 기록한것이다.[19] 2위는 제임스 하든의 32경기[20] 2위는 마이클 조던의 31회[21] 1961-1962시즌[22] 30대 중후반쯤에는 수비형 센터로 변신했더니 어떤 아나운서가 "이제 득점력이 한 물 갔나봐요?" 라고 철없는 발언을 했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치러진 경기에서 45득점을 넘겼다.[23] 이러다보니 당시 상대편에서 뛰었던 선수들은 마치 벽과 함께 플레이하는 기분이었다고...[24] 50여 년 동안 체임벌린만이 보유한 기록이었으나 2019년 4월 3일 러셀 웨스트브룩이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를 상대로 20득점, 20리바운드, 21어시스트를 기록하여 달성했다.[25] 3개 이상의 분야에서 20점 이상을 기록[26] 이게 왜 대단하냐고 묻고 싶냐면, 직접 해봐라... 역도 선수나 체조 선수라면,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체임벌린은 달리기와 점프에 특화된 농구 선수다![27] 윌트의 높이뛰기 최고기록은 6피트 6.75인치인데, 물론 대단한 기록이긴 하지만 러셀보단 2.5인치 밑이다. 게다가 윌트의 기록은 58년에, 러셀의 기록은 56년에 세워졌는데 육상기록은 위에서 보다시피 계속 수준이 올라갔기 때문에 러셀이 56년에 세운 기록은 미국 2위에 해당했지만 윌트가 58년에 찍은 저 기록은 본인이 컨퍼런스에서 공동 1위에 그쳤다.[28] 참고로 영화 코난을 찍을때 사진. 슈워제네거가 ESPN의 빌 시몬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안드레와 체임벌린이 종종 아놀드를 아이처럼 번쩍 들어올리곤 했다고. 또한 셋이서 자주 어울렸는데 안드레가 워낙 대인배라 항상 저녁값을 지불했다고 한다. 반면 체임벌린은 천하의 짠돌이라 절대 안 냈다고. 그러던 어느 날, 아놀드가 "오늘은 내가 쏴야지"하고 맘을 먹고 안드레가 화장실에 간 사이 몰래 계산을 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안 안드레가 화가 나 "너 나 열받게 했어!"라면서 아놀드를 들어 올리자 옆에서 체임벌린이 "그래! 나도 낼려고 했다고!"하면서 거들었다고 한다. 여기에 대한 아놀드의 반응은 "웃기고 있네!(That's a good one!)" 이후 다른 인터뷰에서 아놀드가 덧붙인 바에 따르면 당시 아놀드의 체중은 235파운드(106.6gk)이었는데, 당시 아놀드가 밥값을 내겠다고 하면 안드레는 거절하며 마치 그를 아이처럼 들어 캐비넷 위에 올려다놓은 다음 자기가 계산을 했고, 윌트는 자신을 한 팔로 들어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29] 같은 파트너와 여러 번 한 적도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총 횟수는...[30] 이런 인간이 실제 존재했다면 체임벌린이 경험한 여체는 그의 절반도 한참 되지 않는 것이다.[31] 이후에 이 내용에 대해 누군가가 질문을 했고 실제로 그 정도는 아니지만 4천명은 넘는 건 확실하다고 답했다는데, 이제는 사실 확인이 불가능하다.[32] 본인이 착한 이유로는 어머니라고 밝혔는데 어렸을때부터 남달리 컸던 윌트에게 항상 남을 배려하고 겸손하라고 가르치셨다고 한다.[33] 다큐멘터리에서 인터뷰에서 나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