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10 02:28:16

박무택


<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파일:박무택.jpg
박무택
출생 1969년 6월 22일
대한민국 경상북도 안동시
사망 2004년 5월 20일 (향년 34세)
네팔 왕국 에베레스트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경일고등학교(경북)
계명대학교 (졸업)
직업 산악인

1. 개요2. 생애3. 경력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산악인. 경상북도 안동시 출신이며, 계명대학교를 졸업했다.

2. 생애

히말라야 8000m급 14개 봉 중 1~4위 봉[1] 등정에 성공했고, 네팔 촐라체봉(6400m)의 세계 최초 겨울 등정이라는 기록을 갱신하는 등 산악인으로서 활발이 활동했다.

2.1. 사망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계명대학교/사건사고 문서
3.2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2004년 계명대 에베레스트 등정대에 참가, 정상 등정에 성공하고 하산하던 중 설맹(雪盲)으로 인해[2] 고립되었다. 도저히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이라 이대로 내려가다간 큰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높았고, 안전을 위해 함께 등반 중이던 동료 장민 대원에게 먼저 내려가라고 한 뒤 정상 부근에서 홀로 버티다 사망하고 만다.[3]

[navertv(696155)]
[navertv(696177)]
[navertv(696092)]
[navertv(696094)]
[navertv(696153)]

이후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여러 등산가들이 박무택의 시신을 봤다는 증언을 했고, 2005년 초 엄홍길[4]이 '휴먼원정대'구조대를 조직해 박무택을 포함한 대원 3인방의 시신 수습을 시도하게 된다. 그리고 동년 5월 29일에 에베레스트 정상 바로 밑의 길목인 해발 8,750m 즈음에서 밧줄에 묶여 동사한 그의 시신을 발견하는데 성공한다. 원정대는 박무택의 시신을 베이스캠프까지 운구하려고 했지만, 극한의 추위 때문에 시신이 꽁꽁 얼어 무게가 수백 kg으로 불어나 장정 여럿이 붙어도 옮기기 매우 힘든 상황 + 잘못하면 원정대도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높음 + 기상악화로 헬리콥터도 띄우는 게 불가능해 결국 사망 장소에서 약간 내려온 지점에[5] 시신을 안치하고 돌로 덮어서 무덤을 만들었다. 영상만 봐도 얼어붙은 시신을 사내 셋이서 겨우 움직이며 끌고가야 할 정도이다. 수천미터 산에서 이런게 너무나도 위험하다. 이러다보니, 이런저런 이유로 운구가 힘든 산악인의 시신은 이렇게 처리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리고 주요 길목에 있는 시신은 네팔 당국에서 고유식별 번호를 부여해 일종의 이정표로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등산가 전설인 라인홀트 메스너도 똑같이 등산가이던 아우인 군테르 메스네르를 눈사태로 잃고 포기했었다. 엄홍길과 만나 박무택 시신을 옮기고 싶다는 말을 하자 그조차도 너무나도 위험하다, 그러다가 멀쩡한 사람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라고 우려할 정도였다. 놀랍게도 같은 2005년에 군테르의 시신이 눈이 녹으면서 35년만에 밑으로 떠내려와 현지인들이 발견했고 라인홀트가 가서 유품을 보고 친아우 시신을 확인했지만 그도 수천미터 산에서 화장하여 유골을 산에 뿌리며 장례를 해줬다. 유품만 추스려서 조국으로 가져와 박물관에 기증하거나 가묘이던 곳에 묻었다.

참고로 박무택의 시신이 수습된 2005년 5월 29일은 한국 첫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고상돈의 동상이 제막된 날이기도 하다.

2015년 12월에 위에 언급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히말라야가 개봉되었다. 엄홍길 대장 역은 황정민, 박무택 대원 역은 정우가 맡았다.

3. 경력


[1] 에베레스트, K2, 칸첸중가, 로체[2] 눈(날씨)에 반사된 강력한 자외선에 각막이 화상을 입어 앞이 안보이게 되는 질환.[3] 안타깝게도 장민 대원도 하산 중 실종되어 후에 인정 사망 처리가 되었으며, 박무택의 조난소식을 들은 팀 동료 백준호 대원이 구조하러 갔다가 고산병에 걸린 영향으로 실종되어 마찬가지로 인정 사망 처리 되었다.[4] 엄홍길이 매우 아끼며 신뢰하는 후배 산악인 중 한 명이 박무택이였다고 한다.[5] 동쪽에서 네팔이 보이는 양지바른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