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 네팔 왕국 नेपाल अधिराज्य[1] Kingdom of Nepal | ||
국기[2] | 국장 | |
जननी जन्मभूमिष्च स्वर्गादपि गरियसि 어머니와 조국의 대지는 천국보다 좋다 | ||
상징 | ||
국가 | 용기 있는 주권자이신 당신께 영광의 왕관을 씌워 주소서 (श्त्त्र्तश्त्र्त)[3] | |
1768년 9월 25일 ~ 2008년 5월 28일 | ||
성립 이전 | 왕정 폐지 이후 | |
팔라 왕조 | 네팔 연방 민주 공화국 | |
지리 | ||
<colbgcolor=#003893> 위치 | 남아시아 | |
수도 | 카트만두 | |
인문환경 | ||
언어 | 네팔어 | |
종교 | 힌두교(국교) | |
민족 | 네팔인 | |
정치 | ||
정치체제 | 전제군주제(1768 ~ 1971, 2005 ~ 2007) 무정당 판차야트제(1971 ~ 1990) 입헌군주제(1990 ~ 2005) 임시정부(2007 ~ 2008) | |
국가원수 | 왕 | |
주요 국왕 | 프리트비 나라얀 (1대, 1768 ~ 1775) 비렌드라 (10대, 1972 ~ 2001) 갸넨드라 (말대, 2001 ~ 2008) | |
주요 총리 | 기리자 프라사드 코이랄라 | |
경제 | ||
통화 | 네팔 모흐루 (1768 ~ 1932) 네팔 루피 (1932 ~ 2008) |
[Clearfix]
1. 개요
프리트비 나라얀이 1768년 12월 28일 여러 부족 국가들로 나뉘어 있던 네팔을 통일하면서 생긴 왕국.잠시 영국의 보호국이 되었다가 영국-네팔 조약이 체결되면서 완전한 독립국이 되었다. 옆 나라 인도는 아예 잡아먹히고 중국은 덩치가 커서[4] 통째로 잡아먹히진 않았지만 홍콩을 비롯한 영토의 상당부분을 영국과 거대 열강들에게 먹혔다. 이때 네팔 국왕의 존재는 제국주의 시절의 태국처럼 네팔이 영국과 열강으로부터 직접적인 식민 통치는 겪지 못하게 막아주는 보호막 역할을 했고, 이후에 영국의 힘이 동아시아에서 약해질 때는 네팔 독립의 구심점이 되었다. 그렇기에 네팔 국왕과 왕실에 대한 지지도는 매우 높았었다.
1990년 제10대 국왕 비렌드라는 전제군주제를 폐지하고 입헌군주제를 도입하여 많은 존경을 받았고, 네팔 내부의 마오주의자와도 완만한 협상을 이끌어냈다. 이 덕에 앞으로도 네팔의 왕실과 국왕의 지위는 탄탄해질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2001년 왕세자인 디펜드라가 저지른 네팔 왕실 학살로 비렌드라와 왕비, 공주, 왕자 등등 10여명이 대거 몰살당했고, 디펜드라 역시 자살을 기도해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 3일 만에 사망하는 대참극이 벌어졌다. 왕과 왕세자까지 사라진 상황에서 네팔의 왕위는 이견 없이 비렌드라의 동생이자 디펜드라의 숙부인 갸넨드라가 이어받았고, 이 사건을 계기로 네팔 왕실의 이미지는 급격하게 떨어졌다. 이 때문에 설령 갸넨드라가 성군이었다 하더라도 네팔 왕실 총격사건이 일어난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이미지가 추락한 것은 막지 어려웠을 것이다.
갸넨드라는 즉위 초기부터 국민의 기대를 덜 받은 상태였으며 내부의 민심 악화와 마오이스트 반군의 영향력 확대를 막고자 내세운 타개책이 의회를 해산하고 전제군주제로 회귀하는 것이어서 민심은 더더욱 나빠졌다. 결국 민심을 잃은 군주제는 붕괴되고, 네팔 연방 민주 공화국이 성립되었다.
2. 역사
3. 역대 국왕 (1768 ~ 2008)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A52A2A 0%, #DC143C 30%, #DC143C 70%, #A52A2A);"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초대 | 제2대 | 제3대 | 제4대 |
프리트비 나라얀 | 프라타프 싱 | 라나 바하두르 | 기르반 유다 | |
제5대 | 제6대 | 제7대 | 제8대 | |
라젠드라 | 수렌드라 | 프리트비 | 트리부반 | |
제9대 | 제10대 | 제11대 | 제12대 | |
마헨드라 | 비렌드라 | 디펜드라 | 갸넨드라 | |
네팔 총리 | }}}}}}}}}}}}}}} |
대수 | 이름 | 재위기간 | 비고 |
1 | 프리트비 나라얀 (1723 ~ 1775) | 1768년 9월 25일 ~ 1775년 1월 11일 (6년) | 창업군주 |
2 | 프라타프 싱 (1751 ~ 1777) | 1775년 1월 11일 ~ 1777년 11월 17일 (2년) | |
3 | 라나 바하두르 (1775 ~ 1806) | 1777년 11월 17일 ~ 1799년 3월 8일 (21년) | 퇴위 |
4 | 기르반 유다 (1797 ~ 1816) | 1799년 3월 8일 ~ 1816년 11월 20일 (17년) | 최연소로 즉위 가장 요절한 군주 |
5 | 라젠드라 (1813 ~ 1881) | 1816년 11월 20일 ~ 1847년 5월 12일 (30년) | 정신병으로 퇴위 |
6 | 수렌드라 (1829 ~ 1881) | 1847년 5월 12일 ~ 1881년 5월 17일 (34년) | |
7 | 프리트비 (1875 ~ 1911) | 1881년 5월 17일 ~ 1911년 12월 11일 (30년) | |
8 | 트리부반 (1906 ~ 1955) | 1911년 12월 11일 ~ 1955년 3월 13일 (43년[5]) | 네팔의 자주독립 주도 일시 퇴위 후 복위 최장기 재위 |
9 | 마헨드라 (1920 ~ 1972) | 1955년 3월 14일 ~ 1972년 1월 31일 (17년) | |
10 | 비렌드라 (1945 ~ 2001) | 1972년 1월 31일 ~ 2001년 6월 1일 (29년) | 입헌군주제로 전환 재위 중 암살 |
11 | 디펜드라 (1971 ~ 2001) | 2001년 6월 1일 ~ 2001년 6월 4일 (56시간) | 혼수상태로 즉위 최단기 재위 |
12 | 갸넨드라 (1947 ~ ) | 2001년 6월 4일 ~ 2008년 5월 28일 (7년) | 마지막 군주 최고령으로 즉위 가장 장수한 군주 |
전근대 군주들이 으레 그렇지만, 네팔의 초기 왕들은 대부분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3.1. 가계도
3.1.1. 초대 프리트비 나라얀 ~ 8대 트리부반
- (1) 프리트비 나라얀 (1723 ~ 1775)
3.1.2. 8대 트리부반 ~ 현재
- (8) 트리부반 (1906 ~ 1955) / 칸티 라자 샤 (1906 ~ 1973) 왕비 / 이슈와리 (1907 ~ 1983) 왕비[6]
- (9) 마헨드라 (1920 ~ 1972) / 인드라 (1926 ~ 1950) 왕비[7] / 라트나 (1928 ~ ) 왕비[8]
- 샨티 싱 (1940 ~ 2001) 공주
- 샤라다 샤 (1942 ~ 2001) 공주
- (10) 비렌드라 (1945 ~ 2001) / 아이슈와라 (1949 ~ 2001) 왕비
- (11) 디펜드라 (1971 ~ 2001)
- 슈르티 (1976 ~ 2001) 공주 / 쿠마르 고라크
- 기르바니 (1998 ~ )
- 수랑가나 (2000 ~ )
- 니라잔 (1977 ~ 2001) 왕자
- (12) 갸넨드라 (1947 ~ ) 前 국왕 / 코말 (1951 ~ ) 前 왕비
- (1순위)[9] 파라스 샤 (1971 ~ ) 前 왕세자 / 히마니 샤 (1976 ~ )
- 푸르키나 샤 (2000 ~ ) 공주
- (2순위) 흐리다옌드라 샤 (2002 ~ ) 前 왕세손
- 크리티카 샤 (2004 ~ ) 공주
- 프레라나 샤 (1978 ~ ) 공주
- 파르타브 바하두르 싱 (2004 ~ )
- 쇼바 샤히 (1949 ~ ) 공주
- 디렌드라 샤 (1950 ~ 2001) 왕자
- 히말라야 (1921 ~ 1980) 왕자
창업군주인 프리트비 나라얀부터 제10대 비렌드라 국왕까지는 완벽하게 부자승계가 이뤄졌지만 비렌드라가 디펜드라에게 살해된 이후로는 비렌드라의 동생이자 디펜드라의 숙부인 갸넨드라에게 왕위가 넘어가면서 부자승계가 깨졌다.
[1] Nepal Adhirajya[2] 정확히는 1962년부터 사용한 국기이다.
1743년부터 1962년까지는 위의 국기를 사용했다.[3] Shriman Gambhir[4] 거기다 이 시절의 중국은 청나라 시절이라 현재 중국이 실효지배하지 못하는 대만과 외몽골(몽골)도 포함되어 있었다. 명실상부한 중국의 마지막 전성기.[5] 역대 국왕 중 최장기 재위. 1950년 11월 7일 갑작스런 쿠데타로 망명했다가 1951년 1월 7일 복위했다. 그 사이 짧은 두 달 동안 국왕이었던 사람은 당시 네 살이었던(...) 갸넨드라였다.[6] 사별 후 재혼한 것은 아니고 중혼한 것이다. 트리부반 때까지는 국왕의 중혼이 가능했다.[7] 1950년 1월 4일 디렌드라 왕자를 낳고 산후 후유증으로 1년도 넘기지 못하고 1950년 9월 4일 사망했다.[8] 인드라 전 왕비의 여동생으로 형부에게 시집갔다. 자녀는 없었다. 2001년 의붓손자이자 조카손자인 디펜드라가 왕실 총격을 일으켜 의붓아들이자 외조카인 비렌드라 국왕 및 친인척들이 몰살당하는 것까지 보고도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살아 있다.[9] 네팔이 2008년 공화정으로 전환됨에 따라 네팔 왕위 계승서열이 아닌 네팔 왕위 "요구자" 계승서열.
1743년부터 1962년까지는 위의 국기를 사용했다.[3] Shriman Gambhir[4] 거기다 이 시절의 중국은 청나라 시절이라 현재 중국이 실효지배하지 못하는 대만과 외몽골(몽골)도 포함되어 있었다. 명실상부한 중국의 마지막 전성기.[5] 역대 국왕 중 최장기 재위. 1950년 11월 7일 갑작스런 쿠데타로 망명했다가 1951년 1월 7일 복위했다. 그 사이 짧은 두 달 동안 국왕이었던 사람은 당시 네 살이었던(...) 갸넨드라였다.[6] 사별 후 재혼한 것은 아니고 중혼한 것이다. 트리부반 때까지는 국왕의 중혼이 가능했다.[7] 1950년 1월 4일 디렌드라 왕자를 낳고 산후 후유증으로 1년도 넘기지 못하고 1950년 9월 4일 사망했다.[8] 인드라 전 왕비의 여동생으로 형부에게 시집갔다. 자녀는 없었다. 2001년 의붓손자이자 조카손자인 디펜드라가 왕실 총격을 일으켜 의붓아들이자 외조카인 비렌드라 국왕 및 친인척들이 몰살당하는 것까지 보고도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살아 있다.[9] 네팔이 2008년 공화정으로 전환됨에 따라 네팔 왕위 계승서열이 아닌 네팔 왕위 "요구자" 계승서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