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박사배(朴仕培) |
본관 | 밀양 박씨 |
생몰 | 1913년 3월 24일 ~ 1962년 10월 31일 |
출생지 |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창유리[1] |
사망지 | 서울특별시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박사배는 1913년 3월 24일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창유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9년경 목포상업학교 2학년으로 재학했다. 그러던 중 광주학생항일운동이 발발하자, 그는 11월 16일 학우인 이광우(李光雨)·이재실(李在實) 등과 함께 목포상업학교의 동맹휴교와 항의시위를 펼 것을 결의했다. 그들은 '2천만 피압박민중에 고함'이라는 격문 다수와 '피감금학생 즉시 탈환', '총독부 폭압정치 절대반대', '피압박민족 해방 만세' 등의 깃발을 준비한 후 1929년 11월 19일 목포 전 시내를 돌며 격문을 배포하고 전선(電線)을 절단하며 만세시위를 주동했다.이 일로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30년 3월 20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제령 제7호 위반 및 출판법, 전신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서울로 상경하여 평범하게 살다가 1963년 10월 3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박사배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