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박상동(朴尙東) |
일본식 이름 | 松村正活 |
생몰 | 1894년 6월 2일 ~ 1948년 5월 4일 |
출생지 | 경상북도 의성군 북안면 쌍계리 |
사망지 | 경상북도 의성군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목사.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박성동은 1894년 6월 2일 경상북도 의성군 북안면 쌍원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1 운동이 발발할 때 대구 계성학교 학생으로서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에서 독립만세시위에 적극 참가했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4월 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고향에서 쌍계교회 목사로서 목회활동에 전념하던 그는 1941년부터 1943년까지 일본 각지를 순회하며 목회 활동을 하는 한편 한인들의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일제의 식민통치 비판, 기독교도와 동방요배와 신사참배 반대 등의 운동을 전개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년 1개월간 미결수로 취조를 받고 1943년 1월 26일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 이후 1944년부터 1945년까지 다시 신사참배 반대 운동을 전개하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1945년 8월 21일 일본 산구현 재판소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지만 곧 자유의 몸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갔고, 1948년 5월 4일에 사망했다.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박상동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