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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박한 (朴韓) |
| 출생 | 1946년 |
| 국적 | |
| 직업 | 농구 선수 (센터 / 은퇴) 농구 감독 |
| 학력 | 인창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 / 학사) |
| 소속 구단 | 산업은행 농구단 (1969~1975) |
| 지도자 | 고려대학교 농구부 감독 (1975~1997) |
| 행정 | 고려대학교 체육위원회 부위원장 (1997~2002) 대한농구협회 전무 및 부회장 (2002~2004) 대한농구협회 회장 (2004) 한국대학농구연맹 회장 (2004~2009) 한국대학농구연맹 명예회장 (2009~ ) 대한농구협회 수석 부회장 (2013~ ) |
1. 개요
대한민국의 농구인. 현재 대한농구협회 수석부회장 겸 한국대학농구연맹 명예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1975년부터 1997년까지 22년 동안 고려대학교 농구부 사령탑을 역임하면서 현재까지도 고려대학교 농구부 역사상 최장수 감독으로 불리고 있다.2. 선수 시절
1946년에 태어나 서울 인창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는데 특히 인창고 때는 유재진 감독, 고려대 때는 주기선 감독 밑에서 각각 농구 수업을 받은 뒤 1969년 한국산업은행 농구단에 입단하여 이인표[1]와 신현수[2], 윤정근 등과 한솥밥을 먹었다.신장은 무려 192cm로 국내 남자농구 사상 센터로서는 처음으로 190㎝의 벽을 넘은 선수였으며 고려대학교 농구부에서 동기인 정광석과 함께 활약했고 국가대표 주전 센터로 1969년 FIBA 아시아컵에서 첫 우승을 거머쥔 뒤 이듬해에 열린 1970년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하며 한국 농구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3. 감독 시절
1975년 산은에서 은퇴한 후 김원기 총재의 권유를 받아들여 모교 감독으로 돌아온 이래 1997년까지 무려 22년간 고려대학교 농구부를 이끌었으며, 이 덕에 카메라도 많이 탄 감독이다. 1977~1979년까지 황유하와 임정명, 진효준, 이충희 등을 이끌고 당대 신기록인 49연승을 달성했고, 1980년대 들어 중앙대와 연세대 돌풍에 밀리다가 1994년부터 전희철, 김병철, 양희승, 신기성, 현주엽 등을 이끌고 1996년까지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전설의 슈터 출신이었던 이충희와 김진, 그리고 가드였던 최철권과 포워드에 진효준, 임정명 등에 이어 90년대 농구대잔치의 주역이었던 이민형과 전희철, 현주엽, 김병철, 양희승, 신기성, 박재헌, 주희정 등 1980년대부터 이어진 수많은 고려대 농구부 출신의 선수들이 다 그의 손을 거쳐갔고 이들 중 일부는 훗날 고교, 대학, 프로 등에서 지도자로 뿌리내리기도 했다. 박제영 교수(전 수원대학교 여자농구부 감독)도 그의 제자였다.
그러나 하단에 후술되어있지만 대학농구연맹전은 우승을 자주 차지했으나 농구대잔치는 라이벌 연세대는 우승기록이 있는데 고려대는 번번히 우승기회를 날려버렸다보니[3] 무작전 농구라 불리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하단에 후술할 전설의 에피소드 같은 것이 퍼져 지도력보단 오히려 전설같은 일화들이 자주 언급되는 감독이다.
하지만 개그같은 일화나 경기 중의 모습과는 별개로 무식할 정도로 체력 훈련을 시킨 감독이기도 하다. 무슨 근성 스포츠물의 훈련이 무색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 체력훈련으로 쌓은 체력을 기반으로 올코트 프레싱을 주로 즐겨 쓰던 감독이기도 하다. 그리고 구타가 만연했던 그 시절, 선수들에게 기합은 줄지언정 구타 관련해선 증언이 없는 감독이기도 하다.
그렇게 고려대 농구부를 이끌다가 1997년 고려대 감독 퇴임후엔 고려대학교 체육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영전했다. 그 이후에도 숱한 프로팀에서 감독제의가 들어왔지만, 끝까지 '고대인'을 고집하면서 적어도 코트 위에선 고려대를 제외한 팀은 지휘하지 않았다.
4. 전설의 일화
고려대학교 농구부를 20년간 이끈 명장이나 당시 라이벌 연세대학교 농구부를 이끈 최희암 감독의 분업농구와는 대비되는 스타일를 지녔는데 대학농구연맹전은 우승을 여러번 차지했으나 라이벌인 연세대가 프로출범 前 농구대잔치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에 비해 고려대는 우승을 못 한 영향인지[4] 통칭 무작전 농구라 불리며, 나우누리 시대부터 인터넷에서는 박한과 관련된 별의 별 일화가 떠돌아다녔다. 물론 썰로 도는 에피소드의 스타일과 당시 국내 인터넷상을 고려했을때 최불암 시리즈를 패러디했을 가능성이 어지간하면 높다보니 몇몇 일화를 제외하곤 믿거나 말거나에 가까워보이긴하다. 참고로 작전타임이 같이 비교되는 감독으로는 시대가 다르지만 안준호 전 서울 삼성 썬더스 감독이 유사하다고 평가받는다.어쨌든 아래의 일화로 인해 고려대에서 뛰고있던 전희철이 친구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이젠 나도 제발 작전있는 농구 좀 하고 싶다!!' [5] 라고 울부짖었다는 카더라가 존재한다.
- 에피소드 1.
종료는 얼마 남지 않고, 고려대가 한 골차로 뒤지고 있는 긴박한 순간…고대의 마지막 공격찬스. 이번의 슛 하나로 경기가 역전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박한 : (선수들을 불러놓고) 야…야…잘 들어…이번이 마지막 공격이야…이번에 슛을 성공시키면 우리가 이기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우린 지는 거야… 희철이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어?
전희철 :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으며)예…
박한 : 그래… 그럼 이만 가봐…
- 에피소드 2.
박한 :(타임아웃 때 약간 성질을 내며) 야…야… 지금 너희 안 되고 있는 게 딱 2가지가 있어… 뭔지 알어? 지금 너넨 디펜스랑 오펜스가 안 돼!! 자자…힘내구 그 2가지만 제대로 해봐 응?농구에서 디펜스 오펜스 빼면 뭐가 있수? 드리블, 탕탕이
- 에피소드 3.[6]
박한 : (선수들 불러 놓고) 이봐… 왜들 그래? 왜 우지원이 3점슛을 쏘게 놔두는 거야? 지금 누가 우지원이 막고 있어? 아까부터 계속 들어가잖아… 우지원이를 막아야지… 누구야? 누가 우지원이 마크야?
양희승 : 감독님 지금 우리 지역방어인데요…
- 에피소드 4.
고려대와 한양대의 경기, 추승균이 크레이지 모드로 펄펄 날아 전력이 상당히 우세하던 고대가 3점차로 끌려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마지막 공격 때 전희철이 부저와 함께 3점슛을 쏘았으나 상대팀 파울로 공은 안 들어갔지만 자유투 3개를 얻은 상태에서 박한 감독이 타임을 불렀다.
박한 : 희철아 잘 들어라…
전희철 : 넵…
박한 : 희철아, 3개 다 넣어라. 알았지?
다만 이 에피소드는 과장되게 알려진 에피소드로 실제 대화는 박한: "희철아 마음 편하게 해 ", 그리고 나서 박한 감독은 가슴을 졸이며 자유투 3개를 모두 지켜보았었다고 한다. 참고로 1995-1996년 농구대잔치 당시의 에피소드로 경기 종료 1초를 남기고 얻은 자유투를 전희철이감독님 지시대로정말로 3개 다 넣으며 동점으로 연장전까지 가서 고대가 간신히 이겼다.
- 에피소드 5.
이것은 전설로만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아마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던 일일 거다. 항상 말로만 작전지시를 하던 박한 감독, 다급했던지 작전시트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타임아웃을 부른 박한 감독 선수들을 불러 모아 놓구는 작전 시트에다가 크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리고 나서는 그 옆에 타원의 동그라미를 그렸다.
박한 : 자자… 잘 보라구… (큰 동그라미를 가리키며)자 이게 뽈이야…오케이? (타원의 동그라미를 가리키며)자…이건 링이라구… (큰 동그라미에서 화살표를 죽으러 링 안으로 그리며) 넣어…알았어?
당시 선수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말로는 그 뽈이라 불리는 큰 동그라미는 링보다 훨씬 컸다고 한다.
- 에피소드 6.
작전타임때 선수들의 위치를 설명해주는 감독.
박한 : (동그라미를 그려주며)희철아, 넌 여기…(역시 동그라미를 그려주며)주엽이는 여기… 병철이는 여기…
그 때 부저가 울린다. 양희승과 신기성의 위치는 설명도 못한 감독. 급하게 둘을 불러서
박한 : 야. 니들은 어딘지 알지?
- 에피소드 9.
이충희가 절정의 슛 감각을 뽐내던 시절.
(전반 작전타임) 박한 : 충희한테 패스해!
(하프타임) 박한 : 충희한테 패스하라니까!
(후반 작전타임) 박한 : …충희야, 어떻게 하면 좋겠냐?
- 에피소드 10.
공격이 안 풀리자,
박한 : 야! 주엽이한테 줘!
(현주엽이 공을 받자)
박한 : 그렇지! 주엽아! 쏴!
(그러나 노골)
박한 : 주엽아, 이제 어떡하냐…
- 에피소드 12.
에피소드 11과 관련되어서 최희암 감독이 고대를 이기는 방법. 항상 연대와 고대의 경기에는 시소게임이 많다가, 보통 종료 10여초를 남기고 고대가 1점에서 2점을 뒤지고 있는 상황이 연출된다. 하지만 승리는 언제나 연대. 그 이유는 최희암 감독이 몰래 박한 감독의 싸인을 훔쳐보았기 때문이라는데…[7]
2점차… 박한 감독이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인다. 이 때 최희암 감독이 외친다.
"야! 희철이야. 희철이 막아!"
연세대 승리.
3점차… 박한 감독이 손가락 세 개를 펼쳐보인다
"야! 병철이 3점이야"
연세대 승리.
- 에피소드 13.
위의 에피소드들이 전부 까는 내용이었다면 이번 것은 박한의 심성을 알게 해 주는 훈훈한 내용.
22세 이하 농구 대표팀 감독 시절 범태평양 대회에서 우승 직후, 우승 상금으로 회식을 하자던 다른 코치들에게 근엄하게 한마디하기를,
"상금 얼마 되지도 않는데, 이건 고생한 선수들 나눠주지. 술은 내가 사고."
이러한 일화가 워낙 퍼져있다보니
사실 이후 박한 감독에 대해 재평가가 이루어진건 박한 감독의 후임으로 임명된 임정명과 정광석, 진효준, 이충희 감독 등은 강압적인 훈련, 선수진 융화 실패, 포워드 중복투자, 선수들의 이탈, 스카우트 비리 등으로 고려대 내부에서도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10] 고려대학교 농구가 개판 일보 직전, 아니 개판까지 가면서 박한 감독의 지도력은 다시 평가받았다.[11]
5. 여담
-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 즉 미혼이고 노총각이다. 훤칠한 키에 미남형의 외모임을 고려한다면 상당히 미스테리하지만, 그를 아는 이들은 박한은 농구와 결혼했다.라고 언급한다. 물론 대학 시절 첫사랑을 못 잊어서라는 카더라도 있다. 어쨌든 그 영향으로 시집 간 여동생이 오빠를 위해 각종 반찬을 만들어 챙겨줬다고 한다.
- 농구계의 술꾼 중에서도 초특급 수준의 주당으로 KBO의 대표적 주당 선동열과의 일화가 유명한 한국 농구의 대표적 주당 허재는 현역시절 은퇴인터뷰에서 아예 술 관련 인터뷰에서 박한 감독의 주량을 언급했을정도고#, 1984년 당시 합숙훈련 도중 농구부 선수들이 술을 마시고 싶다고 조르자 박한은 아예 부원 20명과 20대 1 4박5일로 술대결을 했는데 혼자서 이겼다라는 일화도 있다.사례1 사례2, 사례3 하지만 박한 본인은 선수는 운동할때와 아닐때를 명확히 구분해야한다면서 술 관련 인터뷰를 언급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6. 관련 문서
[1] 선수 은퇴 후 초대 삼성 남자농구단 감독 및 삼성전자 농구부장을 역임함.[2] 선수 은퇴 후 상업은행 여자농구단 감독을 역임함.[3] 가장 큰 기여를 했던 건 기아자동차 농구단이었다.[4] 고려대의 농구대잔치 우승은 KBL 창설 후이자 이 항목에서 주로 언급되는 시대의 뒷 이야기인 2012년뿐이다.[5] 여담이지만 전희철은 프로 입단후 오리온스에서 활약하나 KCC로 이적 한 후 수많은 작전으로 유명한 신선우감독 아래에서 스텟을 크게 까먹는다. 물론 선수 은퇴 후엔 KBL 현역 감독 중 전술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감독이 된다.[6] 이 에피소드는 1995-1996년 농구대잔치 당시 고려대 vs 연세대 경기에서 나온 일. 당시 고려대는 신기성, 김병철, 양희승, 현주엽, 전희철이라는 사기적인 라인업을 가지고 있었으나, 저 에피소드가 나온 경기에선 서장훈도 없고 문경은, 이상민도 없어서 만만하게만 생각한 연세대에게 발목 부상 달고도 원맨쇼를 펼친 우지원으로 인해 패배 직전까지 몰리는 꼴을 겪었다. 결국 이기긴 했지만...[7] 사실 말만 이렇고 두 대학간의 정기전 역대전적이나 농구대잔치항목, 대학농구연맹전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농구대잔치를 우승 못 해서 그렇지두 팀 간의 전적은 비슷 한 편이었고 점수차가 그렇게 매번 박빙이진않았다.[8] 비록 영구제명은 되었지만 그 허재의 기록조차도 제대로 정리되어있지 않았었다 그나마 KBL 출범이후 나아진게 이정도[9] 그 영향인지 당시 경희대학교를 이끌었던 감독인 최부영 감독이 사석에서 "고려대 벤치에 있는 선수 5명이면 대학농구 평정하고도 남는다"라는 말을 했다라는 카더라도 있다.[10] 위와 같은 상황이 터진 건 감독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며, 비리 등으로 가득 찬 혼탁한 대학스포츠 문화와 학교 측의 무능한 대응 및 책임 전가, 회전문 인사, 학부모들의 과도한 간섭 등 시스템적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11] 다만 90년대 그 당시에는 농구 경기장을 찾은 고려대생들에게 박한 감독에 대한 평가가 박했다가 현 시점에서야 재평가를 받은 사실이라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하다. 그 때까지만 해도 박한 감독 후임부터 헬게이트가 열릴 줄 누가 알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