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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26 10:34:36

발레리 레가소프

<colbgcolor=black><colcolor=#fff> 발레리 알렉세예비치 레가소프
Вале́рий Алексе́евич Лега́сов
Valery Alekseyevich Legasov
파일:발레리 레가소프.jpg
출생 1936년 9월 1일
소련 러시아 SFSR 툴라주 툴라
사망 1988년 4월 27일 (향년 51세)
소련 러시아 SFSR 모스크바 페호트나야 거리 26번지 자택
묘소 노보데비치 묘지
직업 무기화학자, 쿠르차토프 연구소 부소장
학력 모스크바 멘델레예프 화학기술연구소 (물리화학공학과 / 준박사)
배우자 마르가리타 레가소바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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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련의 무기화학자.

쿠르차토프 연구원 수석부연구원장와 소련 학술원 회원을 역임했으며,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조사를 지휘한 과학자로 알려져 있다.

2. 생애

1936년 소련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툴라주의 주도인 툴라에서 태어났다. 학창 시절에는 성적이 우수하여 우등생에게 수여하는 금메달을 수여받았으며, 졸업 후에는 모스크바에 위치한 모스크바 멘델레예프 화학기술연구원[1]에 진학하여 물리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1962년에는 쿠르차토프 연구원에서 첫 학자 생활을 시작했다.

1967년에는 비활성기체에 관한 주제로 준박사[2] 논문을 발표, 1972년에는 박사[3]학위를 수여받았다. 1978년에서 1983년까지는 모스크바물리기술연구소 교수를 재임했으며, 1981년에는 소련 학술원 정회원이 되었다. 1984년부터 1985년까지는 다른 전문가들과 함께 소련 내 화학 연구 실태 조사하였다. 레가소프는 당시 소련의 화학 연구가 심각한 결격이 있다고 보고 연구원 내 조직 개혁과 연구기관 예산책정을 개혁했다. 이 과정에서 레가소프는 소련 과학계 지도인사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4]

1986년 우크라이나에 위치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4호기에서 원자력 사고가 발생했다. 소련 정부는 당시 사고 수습을 위해 원자력 전문가로써 레가소프를 급파했다. 레가소프는 소련 장관회의 부부장 보리스 셰르비나와 함께 사고 수습 및 원인 조사를 총괄했다.
사고 발생 약 1달 뒤인 1986년 5월 29일, 레가소프가 사고 원인과 향후 수습 방안에 대해 설명하는 영상

1986년 8월 25일부터 8월 29일까지 국제원자력기구가 위치한 에서 체르노빌 사고에 관한 조사 결과를 보고했다. 당시 레가소프는 사고 조사 결과를 두고 당국과 마찰을 빚었고 이후 사고 공로에 대한 사회주의노력영웅 훈장 수여에서 배제되는 등[5] 주변으로부터 고립되었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레가소프의 건강은 급속히 악화되었다. 체르노빌 사고 현장을 방문하면서 레가소프는 150 렘(1.5 시버트) 이상 방사선에 피폭된 상태였고, 이는 인체에 안전한 방사선 수치를 훨씬 상회하는 양이었다.[6] 1987년에는 병원에서 급성충수염 진단을 받자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사고 이후 레가소프는 소련 과학계의 문제점이 원자력 사고로 이어졌다고 보고 학계를 개혁하려고 노력했지만 당시 소련 학계는 레가소프의 이런 노력을 완강히 거부했다. 이는 건강 악화와 더불어 레가소프의 좌절감을 극대화시켰다. 특히 레가소프는 소련 당국이 사고 원인과 발생과정에 관한 결과를 은폐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실제 자신이 겪었던 조사과정과 실제 원인을 육성 녹음기록으로 남겼다.

1988년 4월 27일 체르노빌 사고 2주기을 앞두고 사고 결과가 발표되자 모스크바에 있는 자택에서 목을 맨 채 시신으로 발견되었다.[7] 사망 이후 레가소프는 노보데비치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레가소프가 남긴 녹음 기록은 동료들을 거쳐 1988년 5월 프라우다 지에 공개되었고[8] 결국 국제원자력기구는 사고 결과를 재조사하여 1992년 기존 체르노빌 사고를 조사한 INSAG-1을 개정한 원자로 설계의 결함 등 추가 내용을 담은 INSAG-7을 발행하였다.

사후 8년이 지난 1996년 9월 20일,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아 러시아 연방 영웅 칭호를 추서받았다.

3. 대중매체

4. 관련 문서



[1] 오늘날 모스크바 멘델레예프 화학기술대학의 전신이다.[2] кандидат наук. 석사 학위로 오인될 수 있고 이전 판에도 석사학위로 되어있었지만 러시아 학제에서는 이것이 서방의 박사학위에 대응된다.[3] доктор наук. 준박사 학위 상위의 학위로, 국가가 수여를 승인하며, 보통 준박사 학위를 받은 후 연구기관이나 대학에서 어느 정도 경력을 쌓은 후 논문을 제출하여 얻게 된다. 이걸 받은 상태면 보통 중년의 정교수지위에 오른 상태.[4] Legasova, Margarita (2010). Academician Valery Alekseevich Legasov. Spektra.[5] Higginbotham, Adam (2019). Midnight in Chernobyl: The Untold Story of the World's Greatest Nuclear Disaster. New York: Simon and Schuster. ISBN 9781501134616.[6] 당시 레가소프의 배우자였던 마르가리타 레가소바의 증언에 따르면 사고 직후 레가소프가 5월 5일 모스크바에 있는 자택에 돌아왔을 때 이전보다 훨씬 수척해지고 탈모가 일어났으며 얼굴과 손이 이전보다 훨씬 더 그을어 있었다고 회상했다.[7] 체르노빌 사고는 하루 전인 4월 26일에 발생했다.[8] Ebel, Robert E. (1994). Chernobyl and Its Aftermath, A Chronology of Events. Center for Strategic & International Studies. p. 33. ISBN 9780892063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