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13 22:33:57

발테르 마차리

발테르 마짜리에서 넘어옴
발테르 마차리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대표팀
클럽
파일:SSC 나폴리 로고.svg

76대, 83대
파일: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로고(2014~2021).svg

74대
파일:왓포드 FC 로고.svg

41대
파일:토리노 FC 로고.svg

99대

칼리아리 칼초 역대 감독
레오나르도 셈플리치
(2021)
발테르 마차리
(2021~2022)
파비오 리베라니
(2022)
}}} ||
이탈리아의 축구 감독
파일:2215.jpg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발테르 마차리
Walter Mazzarri[1]
출생 1961년 10월 1일 ([age(1961-10-01)]세)
이탈리아 산 빈센초
국적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80cm
직업 축구 선수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ACF 피오렌티나 (1980~1981)
델피노 페스카라 (1981~1983)
칼리아리 칼치오 (1982)
AC 레지아나 (1982~1983)
ACF 피오렌티나 (1983)
엠폴리 FC (1983~1988)
SSD 리카타 (1988~1989)
모데나 FC (1989~1990)
ASD SS 놀라 (1990~1991)
에스페리아 비아레조 (1991~1992)
AS 아치레알레 (1992~1994)
SEF 토레스 (1994~1995)
감독 볼로냐 FC 1909 (1996~1998 / 코치)
SSC 나폴리 (1998~1999 / 코치)
볼로냐 FC 1909 (1999~2001 / 유스)
AS 아치레알레 (2001~2002)
AC 피스토이에세 (2002~2003)
AS 리보르노 칼초 (2003~2004)
레지나 칼초 (2004~2007)
UC 삼프도리아 (2007~2009)
SSC 나폴리 (2009~2013)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13~2014)
왓포드 FC (2016~2017)
토리노 FC (2018~2020)
칼리아리 칼초 (2021~2022)
SSC 나폴리 (2023~2024)
국가대표 없음
1. 개요2. 선수 경력3. 감독 경력4. 기록
4.1. 감독
4.1.1. 대회 기록
5. 여담

[clearfix]

1. 개요

이탈리아축구선수 출신 감독. 2020년까지 토리노 FC 감독을 맡았다.

2006년 칼치오폴리 스캔들로 마이너스 승점으로 출발한 레지나를 잔류시키는데 성공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고, 이후 SSC 나폴리를 성공적으로 지휘하며 명성을 얻었다. 몰락한 명문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나폴리에 스리백 시스템을 도입했고 에딘손 카바니, 마렉 함식, 에세키엘 라베시의 조합으로 2010-11시즌 세리에 A에서 3위를 기록하며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는데 성공한다. 나폴리에서 보여준 전술적 역량으로 탁월한 '전술가'라는 명성을 쌓았다.

2. 선수 경력

데뷔 자체는 1980년 ACF 피오렌티나에서 했지만 1군으로 콜업되지 않고 3시즌 동안 페스카라 칼치오, 칼리아리 칼치오, AC 레지아나로 임대된다. 하지만 결국 원 소속팀인 피오렌티나에서는 1경기도 뛰지 못하고 1983년 세리에 B에 있던 엠폴리 FC로 완전 이적한다. 983년부터 1988년까지 5시즌 동안 주전으로 활동하며 엠폴리를 1986/87 시즌 세리에 A 승격을 이끌었다. 그러나 그 이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세리에 B에 있던 SSD리카타, 세리에 C1소속이었던 모데나 FC등으로 팀을 전전한다. 그러던 도중 1989/90시즌 모데나 소속으로 세리에 C1 우승을 차지해 선수시절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며 팀을 2부리그 승격으로 이끌었다. 그 이후로도 놀라 30, 비아레조, AS 아치레알라, 토레스 등 3,4부리그 팀에서 활동하였고 1995년 35살의 나이로 은퇴 한다.

3. 감독 경력

은퇴 후 1년만인 1996년, 모데나 시절 인연을 맺었던 렌조 울리비에리 감독의 부름을 받아 볼로냐 FC 1909의 코치로 임명된다. 스승과 함께 당시 갓 세리에 A로 승격돼있던 볼로냐를 1996/97 승격 첫 시즌에 리그 7위로 이끌었으며 그 다음 시즌인 1997/98 시즌에도 로베르토 바조를 앞세워 리그 8위를 기록한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스승 렌조 울린비에리와 함께 1998년 세리에 B에 있던 SSC 나폴리로 자리를 옮기지만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며 리그 9위를 기록하여 승격으로 이끌지는 못했다. 그 직후 1999년 칼리아리 칼치오로 자리를 옮긴 렌조 패트리치와 달리 마차리는 볼로냐 유소년 팀 감독으로 임명되어 스승에게 독립하였고 2000년까지 유소년 팀 감독을 맡았다.

2001/02 시즌 세리에 C1 소속 아치레알레 감독을 맡아 리그 5위를 기록했고, 2002/03 시즌에는 세리에 C1 소속 피스토이에세 감독으로 리그 7위를, 2003/04 시즌에는 세리에 B 소속이 리보르노 칼치오 감독을 맡아 리그 4위를 기록하여 팀을 1부리그로 승격시켰다.

점차 감독으로서 자리를 잡아가던 발테르 마차리는 세리에 A 팀인 레지나 칼치오의 감독으로 임명되어 3시즌 동안 13-13-14위를 기록하여 팀을 꾸준히 잔류시켜 세리에 A에서도 능력을 인정받는다. 첫 시즌인 2004/05 시즌에는 승점 3점차로 극적으로 1부리그에 잔류시켰고 2005/06 시즌에는 승점 60점으로 상위권에 안착시켰는데 특히 레지나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2006/07 시즌에는 칼치오폴리의 여파로 시즌 자체를 승점 -11 점을 안고 시작하여 시즌 시작 전부터 리그 강등이 유력하였으나 12승 15무 11패 를 기록하여 리그 14위를 기록하여 팀을 잔류시키는 기적을 선보였다. 승점 감점이 아니었다면 승점 51점으로 리그 7위에 해당되는 성적이었다.

이런 능력을 바탕으로 발테르 마차리는 2007/08 시즌 UC 삼프도리아의 감독으로 임명된다. 전 시즌 리그 9위를 기록한 삼프도리아를 첫 시즌에 리그 6위로 이끌며 UEFA 컵 진출권을 거머쥐었고 이런 팀의 상승세에 안토니오 카사노는 공개적으로 발테르 마차리의 코칭 능력을 칭찬하기도 했다. 두 번째 시즌인 2008/09 시즌에는 대외 리그까지 소화해내는데 힘이 부쳤는지 UEFA 컵에서는 32강전에서 우크라이나의 FC 메탈리스트 하르키우에게 종합 0:3 패배를 당하였고 리그에서는 13위에 머물게 된다. 그러나 코파 이탈리아에서 4강에서 주제 무리뉴가 이끄는 인테르나치오날레를 3:1로 격파하며 결승전에 진출시키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3.1. SSC 나폴리 1기

두 시즌동안 삼프도리아를 이끈 발테르 마차리는 2009년 6월 30일, 예정대로 계약을 종료하며 잠시 휴식에 들어간다. 휴식을 취하던 도중 2009/2010 시즌 초반 2승 1무 4패라는 썩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두며 로베르토 도나도니 감독을 해임한 SSC 나폴리의 러브콜에 석달 만인 2009년 10월 6일 나폴리 감독으로 다시 복귀한다. 복귀 직후 마차리는 하위권에 있던 나폴리를 13승 13무 5패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리그 6위를 기록하며 유로파리그 진출 티켓을 거머쥔다. 시즌이 끝난 뒤 3년 연장계약을 제시한 나폴리의 제안을 수락하며 계속 팀을 이끈다.

2010/11 시즌에는 에세키엘 라베찌, 마렉 함식 그리고 새롭게 영입한 에딘손 카바니를 앞세워 21승 7무 10패 승점 70점을 기록하며 챔피언스리그 진출 티켓을 거머쥔다. 비록 코파 이탈리아에서는 8강전에서 인테르에게 승부차기 패로 탈락하였고 유로파리그에서는 32강 비야레알 CF에게 종합 1:2 패배를 당해 탈락하기는 했지만 리그에서의 성과로 마차리는 능력을 인정받고 세간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2011/12 시즌, 처음 참가한 UEFA 챔피언스리그 32강 본선에서 FC 바이에른 뮌헨맨체스터 시티와 같은 조에 배정되어 16강 토너먼트 진출이 힘들어 보였다. 나폴리는 역시 같은 조에 배정된 비야레알 CF과의 홈과 원정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었고 비록 바이에른 뮌헨과는 1무 1패(홈에서 무승부, 원정에서는 패)를 기록했으나 맨체스터 시티를 원정에서 무승부, 홈경기에서 승리를 거둬 맨체스터 시티를 조 3위 유로파 리그로 보내는데 성공하여 나폴리는 조 2위로 16강 토너먼트에 진출한다. 16강에서 첼시를 상대로 홈에서 3:1 승리를 기록했으나 원정에서 연장 접전끝에 1:4 패배를 당하여 1,2차전 합계 4:5로 패하며 결국 8강 진출에 실패한다. 리그에서는 16승 13무 9패 승점 61점으로 리그 5위를 기록하여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하지만 코파 이탈리아에서는 결승전에서 유벤투스를 2: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 한다.

2012/13 시즌, 다시 유로파리그에 진출하게 되고 조별 본선에서 2위를 기록하여 32강 토너먼트에 진출하지만 체코의 FC 빅토리아 플젠에게 종합 0:5로 패하여 2009/10, 2010/11시즌에 이어 3번째 유로파리그 16강 진출에 실패한다.[2] 코파 이탈리아에서도 볼로냐에게 일격을 맞아 16강에서 탈락하지만 리그에서는 23승 9무 6패 승점 78점으로 리그 준우승을 기록하며 팬들에게 극찬을 받는다.

3.2.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12/13시즌 종료 후, 더 이상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처음 계약했던 3년 계약을 끝으로 나폴리를 떠난 마차리는 2012/13시즌 종료 후 리그 9위를 기록하며 성적 부진으로 해임당한 안드레아 스트라마치오니 감독의 후임으로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의 지휘봉을 잡았다. 부임초기에는 나폴리에서의 모습을 기대하며 명가를 재건할 적임자로 평가받았다. 실제로 부임 직후 자신의 전술 철학인 3-5-2 포메이션을 인테르에서도 도입하며 9월까지는 리그에서 7경기 5승 2무를 기록하며 인테르 팬들에게 찬양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10월이 되자마자 AS 로마와의 리그 경기에서 0:3 완패를 시작으로 그 다음 토리노와의 경기에서는 경기 직전에 실점을 허용하여 3:3 무승부를 기록하며 불안의 전조를 나타냈다. 그 뒤 베로나(4-2), 아탈란타(1-1), 우디네세(3-0), 리브리노(2-0)와의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이끌어내며 팀을 정비하는데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는 듯 했다.

하지만 볼로냐(1-1), 삼프도리아(1-1), 파르마(3-3)와의 3연무를 기록하였고 친정팀 나폴리에게는 원정에서 2:4 대패를 당했다. 그 직후 밀란 더비에서는 라이벌 AC밀란을 1:0으로 간신히 이겼으나 라치오와 키에보와 연속 무승부를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부터 인테르 팬덤 사이에서도 비판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그 뒤에도 꼭 이겨야 할 중하위권 팀들에게 항상 발목을 잡히는 모습을 보여줬고 결국 15승 15무 8패 승점 60점으로 리그 5위에 그쳤다. 전 시즌 인테르가 리그 9위를 기록한것에 비하면 성적은 상승한 것처럼 보이나 다름아닌 인테르에서의 리그 5위였고 게다가 선수 연봉만 해도 1억 유로에 달하는 팀의 성적으로 리그 5위는 썩 좋은 성적이 아니었으나 팬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인테르의 새로운 구단주인 토히르는 마차리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며 2014/15시즌 역시 마차리에게 감독을 맡길 것이라고 하여 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그러나 2014/15시즌에도 별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11경기 4승 4무 3패로 리그 9위에 그친 마차리는 결국 2014년 11월 15일 해임되었다.

3.2.1. 평가

레지나-삼프도리아-나폴리에서의 성공으로 명장대열에 올랐으나 인테르에서는 1년 4개월 만에 평가가 급추락하였는데 데이비드 모예스나 한때 제노아의 돌풍을 일으켰던 가스페리니 같이 중하위권에서의 성적으로 상위권 팀 감독으로 임명되었으나 적응하지 못한 케이스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마차리는

1. 고집불통 전술운용과 한결 같은 선수기용 문제
2. 유망주들에게 믿음을 보이지 않는 성향
3. 장기 플랜이 아닌 자신의 독단적인 선수단 구성
4. 도저히 좋아지지 않는 경기력
5. 경기 패배 후 심판 탓, 선수 탓

으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3-5-2 포메이션 플랜 하나로 시즌을 운용하며 로테이션도 돌리지 않고 자신이 구상한 베스트 11만 기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항상 출전하는 선수가 같기 때문에 경기내의 전술 또한 매 경기때마다 유사하게 진행이 되는데 3-5-2를 쓰지 않는 인테르를 부임 직후 3-5-2로 뜯어 고쳤기 때문에 인테르의 3-5-2를 상대하지 않았던 상대팀들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와 시즌 초반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으나 그것이 분석이 된 직후부터는 도저히 먹혀들지 않게 되었다. 부상이라도 당하지 않는 이상 출전하는 선수들은 항상 같고, 그 선수들의 플레이 스타일은 컴퓨터 게임이 아닌 이상 항상 같을 수 밖에 없으니 아무리 중하위권팀이라도 충분히 대비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중하위권팀의 경우 인테르 같은 팀을 상대로는 항상 라인을 내려 무승부로 승점 1점이 목표인 팀들인데 이런 중하위권팀들을 상대로 발테르 마차리는 나폴리 시절부터 항상 힘겹게 이긴다는 지적을 받고 있었는데 인테르 시절 그게 터져버린 것이다.

전술적인 경직도 문제였는데 물론 애초에 플랜을 3-5-2 하나만 준비하고 플랜 B를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풀리지 않는 경기 에서도 포메이션 변화 따윈 없었다. 경기가 풀리지 않으면 경기 후반이 돼서야 교체카드를 꺼내는데 그 교체카드도 항상 동일했다.

게다가 유망주들을 활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지적을 받았는데 물론 1군 감독이 항상 유망주들을 활용하여 경험을 쌓게 해줘야 한다는 법은 없다. 유망주들의 경우 특급 유망주로 평가받지 않는 이상 2,3부리그나 1부리그의 하위권 팀으로 임대되어 주전경험을 쌓게 하는데 인테르의 경우 유소년들도 좋은 성과를 보이고 있고 게다가 1군 선수들이 썩 좋지않은 컨디션으로 경기에 출전할 때가 많았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 마차리가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성적을 냈으면 모를까 유망주들을 활용하지 않고 벤치에서 썩게하고 1군선수들은 경기장 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이 부분의 비판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 쯤되니 나폴리 시절의 성적은 마차리가 아닌 단순히 선수빨이 아니었냐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승승장구하던 2013/14시즌 초반에는 반대 의견도 있었으나 갈수록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나폴리 시절의 좋은 성적은 마차리의 전술이 아닌 선수빨이었다는 의견이 거의 대세가 되어있는 상황이다.

3.3. 왓포드 FC

키케 플로레스RCD 에스파뇰로 떠난 뒤 후임으로 왓포드 FC 감독에 임명되었다. 시즌 초 지옥같은 대진에 희생되나 했으나, 웨스트 햄과 맨유를 상대로 2연승을 거두며 반등해 11월 기준으로 중상위권으로 순항하는 중. 하지만 후반기 극심한 부진을 겪은 탓에 17위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했고, 결국 시즌 종료 이후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3.4. 토리노 FC

2018년 1월 4일 경질된 시니샤 미하일로비치 감독 후임으로 토리노에 부임해서 리그 9위로 시즌을 마쳤다.

2018-19 시즌에는 본인 스타일의 3백 전술을 본격적으로 정착시키면서 전반기부터 돌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며 리그 7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극적으로 AC밀란이 UEFA FFP 룰 위반으로 유럽대항전 진출권이 박탈되며 유로파리그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상대로 울버햄튼을 만나 완패하면서 예선진출에 실패해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전시즌의 선전과 달리 2019-20 시즌에서는 무승행진을 기록하며 점점 더 블록버스터급 스코어를 보여주다가 2월 4일 경질되었다. 그나마 후임인 모레노 롱고가 토리노를 강등 위기에서 건져냈다.

3.5. 칼리아리 칼초

한국 시각으로 2022년 5월 3일, 성적 부진으로 인해 전격 경질되었다.

3.6. SSC 나폴리 2기

한국 시각 2023년 11월 15일, 10년 만에 나폴리의 지휘봉을 다시 한 번 잡게 되었다.#

공백기동안 세리에 A를 보면서 스팔레티 감독의 축구를 분석해봤다고 인터뷰하여 팬들의 기대를 샀다.

문제는 부임 이후에도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순위는 더 떨어져서 챔스권는 물론 유럽대항전 진출 조차도 위험하게 되었다.[3]

17라운드 AS 로마전에서는 패배후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기자회견이 너무 길었는지 나폴리 선수단과 관계자들이 마차리 감독을 로마에 버려두고 그냥 떠난걸로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결국 크리스마스 이브에 나폴리 선수단에게 버림받고 혼자 쓸쓸하게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4] 이쯤 되면 불쌍할 지경 #

이후 몇경기째 레드카드가 나오면서 퇴장 징계를 받는 선수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경질이 임박했다는 소식도 있다.

한국 시각 2024년 2월 20일 경질 당했다.

3.7. 감독 스타일

쓰리백 장인이다. 다양한 스리백 중에서도 마차리 감독이 선호하는 건 수비라인을 내리고 상대를 끌어들인 뒤 빠른 역습으로 재미를 보는 실리 축구다. 공격 세부 전술이 빈약한 대신 탄탄한 수비로 패배를 최소화한다. 이 축구를 통해 UC 삼프도리아 시절 안토니오 카사노잠파올로 파치니 투톱을 히트상품으로 만들었고, SSC 나폴리세리에 A 정상급 팀으로 성장시켰다. 다만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에서는 이 축구가 잘 통하지 않아 평가가 하락했고, 왓포드 FC에서도 겨우 강등을 면한 것이 고작이었다.

3-4-2-1이나 3-5-2 등 쓰리백 계열 포메이션을 섞어 쓰는데, 어떤 전술을 쓰든 쓰리백 앞에 중원 장악을 위한 미드필더를 3~4명 배치하는 것이 기본이다. 즉 수비형 미드필더가 2명뿐인 전술이라면,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수비력을 갖춘 선수를 배치해 공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4. 기록

4.1. 감독

4.1.1. 대회 기록

5. 여담


[1] 이탈리아 어에는 w가 없으므로 어원에 따라 발음하는데, Walter가 게르만계 이름이라 이탈리아에서는 '발테르'에 가깝게 발음한다.[2] 사실 이 부분은 리그 일정에 여유가 있는 분데스리가 클럽이나 유로파리그라도 출전하여 중계권료를 목적으로 집중하는 중소규모리그 클럽과는 달리 세리에 A클럽은 나폴리 뿐만 아니라 우디네세 같이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목적으로 하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리그 경기와 유로파 리그 경기가 겹치는 주간이면 유로파 리그에 후보선수들을 내세우는 경향이 크다.[3] 현재까지 2승 3패로 사실상 루디 가르시아 시절과 나아진 모습이 없다. 더군다나 김민재 대체자인 나탕과 주전 선수인 스타니슬라프 로보트카는 부상으로 이탈하였고 17라운드 AS 로마전에서 주전 선수인 오시멘과 폴리타노는 퇴장을 당하면서 당장의 부진에서 탈출하기에는 굉장히 어려워 보인다.[4] 로마와 나폴리의 거리는 230km로 꽤 멀다. 한국으로 따지면 서울부터 전주까지의 거리를 택시 타고 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