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서태지와 아이들 3집 수록곡 | ||||||
발해를 꿈꾸며 | 아이들의 눈으로 | 교실 이데아 | 내 맘이야 | 제킬박사와 하이드 | 영원 | 널 지우려 해 |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 위 영상은 공식 버전이다. 1996년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당시 '굿바이 베스트앨범' VHS에 수록되었으며 1994년 첫 발표 버전에서 두 군데가 수정되었다. 아래 영상 링크 부분 참조.
<발해를 꿈꾸며>는 서태지와 아이들 3집 타이틀곡으로 앨범의 2번 트랙이다.[1] 남북의 분단 상황을 얼른 끝내고 북에 있는 친구들을 보고 싶다는 통일을 염원하는 서태지의 마음을 담은 곡으로, 서태지가 단순히 10대에게 인기 있는 아이돌 가수가 아닌 사회 문제를 다루는 의식 있는 뮤지션임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곡이다.
- 뮤직비디오 초기 버전 - 1994.8.27 MBC 송출.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무대를 통해 공개된 것으로 MBC 아카이브를 통해 살아남았다. 초기 버전에는 'SEOTAIJI AND BOYS III'라는 글자 자막이 없고, 1절 후렴부 넘어가는 부분이 양현석 얼굴이 VHS테입이 씹히는 듯한 효과로 되어 있다.
이외에도 KBS2의 주말 프라임타임대 팝송 전문 프로그램이었던 '지구촌 영상 음악'에 출연해서 뮤직비디오가 방영되기도 했다.[2] - 3집 컴백콘서트 무대 - 1994.8.13~15 공연으로 8.20 KBS2 송출. 발해를 꿈꾸며의 안무는 뒤로 갈수록 조금씩 수정되었는데 가장 초기버전의 안무를 볼 수 있다.
KBS 엔지니어의 음향 딴 솜씨가 개판이다 - MBC '스타쇼' - 1994. 10. 23. MBC 스타쇼 서태지와 아이들 편 오프닝 무대. '발해를 꿈꾸며' 안무의 완성판 버전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무대이다. 댄스 커버리지를 하려면 이 영상과 아래 가을개편 특집무대를 보는 것을 추천.
- 가을개편 특집 '94 새 MBC 무대 - 이 시기 서태지와 아이들은 TV 출연이 극도로 적었기 때문에 이런 쇼프로 무대 자료도 적다.
- '95 다른 하늘이 열리고 라이브 - 1995.1.11~16 공연으로 <발해를 꿈꾸며> 무대의 마스터피스. 1995년 1월 16일 이후 <발해를 꿈꾸며> 전곡이 라이브된 적은 한 번도 없다.[3] 발해를 꿈꾸며 공연의 마스터피스를 볼 수 있다.
<발해를 꿈꾸며>의 공연무대에 쓰인 춤 이름은 '버터플라이 댄스'로, 당시 절정에 오른 이주노의 안무역량을 가늠케 할 수 있다. 이 댄스의 동작 중 일부는 최연제의 '끊어진 반지'라든가 2000년대 이주노 자신의 '바이오닉 주노'에서 응용되기도 했다. 회오리춤이나 하여가의 안무와는 달리 액센트가 없이 느릿느릿한, 느낌이 중요한 안무로 난이도가 있어 공연에서 유독 셋끼리 호흡이 맞지 않는 춤이기도 하다.
이제는 팬덤들도 심지어 서태지 본인도(...) 신경을 잘 안 쓰는 부분이지만, 사실 이 노래는 엄연히 부제가 붙어있다. 바로 발해의 별명이었던 '해동성국'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3집에 들어있는 가사집(부클릿)에 보면 제목 옆에 인쇄되어 있다.
<발해를 꿈꾸며>를 발표할 당시 무대 뒤편에 대형 태극기를 도배하는 연출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뮤직비디오에서 저 대형 태극기를 걸어놓은 곳이 다름 아닌 철원 노동당사로 남한에 유일하게 남은 북한 유적이란 점에서 남북화해 무드영상을 찍기엔 이 만한 장소가 없다. 판문점에서 공연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2011년 MBC 평화콘서트에서는 엠블랙과 미쓰에이가 그 노동당사 현관 위에 또 올라가서 발해를 꿈꾸며 커버링을 찍기도 했다. 그런데 포인트인 대형 태극기는 안 걸었다.
서태지는 이 곡의 녹음에 대단한 공을 들였는데 1993년 전미 세션맨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팀 피어스[4]를 비롯하여 미국의 당시 톱클래스 세션으로 중무장하고 믹싱도 매우 세심하게 작업했다. 그 결과물은 서태지와 아이들 3집 8번트랙에 이 곡의 Instrumental 버전으로 남아있는데 지금 들어도 세련된 기타 리프와 쉴 틈을 주지 않는 베이스라인을 확인해볼 수 있다.
여담으로 서태지 본인의 말에 의하면 후렴구의 합창 부분에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도 아니고 당시 코러스에 참여한 세션들도 아닌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끼어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녹음실 괴담.
발매 후 24년이 지난 2018년 4월 27일 열린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의 환송식에서 식전 곡으로 선택되었다. 환송식을 위해 자리로 이동하는 중에, 그리고 환송식 공연곡 중간에 멜로디로 삽입되었다. 영상 링크
이는 당시 선곡을 담당한 탁현민의 결정이었는데, 사전에 서태지에게 허락을 받으려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아 남북정상회담이 끝난 후 모처에서 만나 사후 승인을 받았다고 한다. 이는 지극히 예외적인 케이스인데, 탁현민이 과거 서태지 공연 관련 일을 맡아 안면이 있었고, 실제로 탁현민이 서태지의 팬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링크
서태지가 6~9집까지 서태지밴드와 솔로활동을 한 이래 얼마 안 남은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이후 단 한 번도 라이브하지 않은 곡이다. 6집 당시 있었던 비정규 공연(2000 평화콘서트)에서 탱크 직전에 인트로만 나왔던 것과 9집 공연에서 인트로만 인터루드의 형태로 잠깐 나온 걸 제외하면 완곡은 10집 공연에서 연주 시 최소 24+a년만의 라이브가 될 예정. [5]
2. 매체의 반응
1994년 문화 계간지 <리뷰> 창간호 특집으로 문화 평론가 강헌과 서태지가 대담을 했는데, 이 인터뷰에 곡에 대한 설명이 있다. 링크강헌: 우리는 랩과 레게의 흥청거리는 측면만 수입했으며 94년대에 들어서는 거의 홍보전략의 차원으로만 얼터너티브 록을 내세워 그 본연의 정신을 모독하는 신인밴드들도 출몰하곤 한다.
음악적인 측면만으로 한정할 때 , 시애틀을 본거지로 발흥한 얼터너티브 사운드 속엔 사이키델릭과 헤비메탈, 그리고 펑크의 핵들이 녹아 흐르고 있다.
이중 사이키델릭은 70년대 초반 신중현에 의해서 시도되다가 외풍으로 인해 중도에서 표류되었고, 펑크는 아예 수입되지도 않았다. 당신이 얼터너티브 록이라고 규정한 `발해를 꿈꾸며`를 예로 들어가 보자.
서태지: 이 곡의 최대 과제는 너댓개의 모티브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것이었다.
새소리의 효과음에 이어지는 어쿠스틱 기타의 서주는 청명한 하늘의 이미지를 의도한 것인데 여기에 지저분한 느낌이 들 정도로 밸런스가 무너진 첼로를 동반시킴으로써 혼돈을 노렸다.
그리고 양현석의 랩적인 멜로디가 등장하면서 급격히 메틀로 돌아서며 불안과 긴장을 고조시키다가 트윈 기타가 받치는 후렴구로 상승한다.
이는 긴장-긴장-해방의 구성을 꾀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타 애드립은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의 여백을 남긴 것인데 이상의 전과정의 반복 이후 가장 맘에 들지 않는 엔딩으로 마무리 된다.
내가 이 곡을 얼터너티브라고 한 것은 이상과 같은 구성과 선율, 특히 첼로의 멜로디 라인, 연주기법 등이 정통적인 록의 노선에서 이탈해 있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며, 가사 또한 본격적인 얼터너티브 정신으로 충만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한국 대중음악의 상황에서는 개중 그래도 몸부림친 축에 든다고 본다.
음악적인 측면만으로 한정할 때 , 시애틀을 본거지로 발흥한 얼터너티브 사운드 속엔 사이키델릭과 헤비메탈, 그리고 펑크의 핵들이 녹아 흐르고 있다.
이중 사이키델릭은 70년대 초반 신중현에 의해서 시도되다가 외풍으로 인해 중도에서 표류되었고, 펑크는 아예 수입되지도 않았다. 당신이 얼터너티브 록이라고 규정한 `발해를 꿈꾸며`를 예로 들어가 보자.
서태지: 이 곡의 최대 과제는 너댓개의 모티브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것이었다.
새소리의 효과음에 이어지는 어쿠스틱 기타의 서주는 청명한 하늘의 이미지를 의도한 것인데 여기에 지저분한 느낌이 들 정도로 밸런스가 무너진 첼로를 동반시킴으로써 혼돈을 노렸다.
그리고 양현석의 랩적인 멜로디가 등장하면서 급격히 메틀로 돌아서며 불안과 긴장을 고조시키다가 트윈 기타가 받치는 후렴구로 상승한다.
이는 긴장-긴장-해방의 구성을 꾀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타 애드립은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의 여백을 남긴 것인데 이상의 전과정의 반복 이후 가장 맘에 들지 않는 엔딩으로 마무리 된다.
내가 이 곡을 얼터너티브라고 한 것은 이상과 같은 구성과 선율, 특히 첼로의 멜로디 라인, 연주기법 등이 정통적인 록의 노선에서 이탈해 있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며, 가사 또한 본격적인 얼터너티브 정신으로 충만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한국 대중음악의 상황에서는 개중 그래도 몸부림친 축에 든다고 본다.
인터뷰 발췌 여담으로 인터뷰 전문은 대형 도서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이하게도 진보 매체와 보수 매체에서 모두 인터뷰에 나섰다. 당시 대표적인 진보 매체 말(잡지)에 인터뷰가 실리는가 하면, 이와는 정반대인 극우 매체인 한국논단 인터뷰까지 있었다.링크 인터뷰 제목은 <내가 통일을 노래한 이유 : 내가 치마를 입은 이유>이다.
다만, 인터뷰 내용 자체는 무난하고 교과서적이다. 그래서 억까 좌빨 논란 제조기로 악명 높던 한국논단마저도 서태지는 건드리지 않았다. 당시 인터뷰는 팬들이 열심히 타자를 쳐서 PC통신 등에서 널리 공유되었으나, 현재는 대형 도서관에서나 볼 수 있다(...)
3. 가사
발해를 꿈꾸며 진정 나에겐 단 한 가지, 내가 소망하는 게 있어 갈려진 땅의 친구들을 언제쯤 볼 수가 있을까 망설일 시간에 우리를 잃어요 한 민족의 형제인 우리가 서로를 겨누고 있고 우리가 만든 큰 욕심에 내가 먼저 죽는 걸 진정 너는 알고는 있나, 전 인류가 살고 죽고 처절한 그날을 잊었던 건 아니었겠지 우리 몸을 반을 가른 채 현실 없이 살아갈 건가 치유할 수 없는 아픔에 절규하는 우릴 지켜 줘 시원스레 맘의 문을 열고 우리와 나갈 길을 찾아요 더 행복할 미래가 있어 우리에겐 언젠가 나의 작은 땅에 경계선이 사라지는 날 많은 사람이 마음 속에 희망들을 가득 담겠지 난 지금 평화와 사랑을 바래요 젊은 우리 힘들이 모이면 세상을 흔들 수 있고 우리가 서로 손을 잡은 것으로 큰 힘인데 우리 몸을 반을 가른 채 현실 없이 살아갈 건가 치유할 수 없는 아픔에 절규하는 우릴 지켜 줘 갈 수 없는 길에 뿌려진 천만 인의 눈물이 있어 워! 나에겐 왜 갈 수도 올 수도 없는가[6] 저 하늘로 자유롭게 저 새들과 함께 날고 싶어[7] 우리들이 항상 바라는 것 서로가 웃고 돕고 사는 것 이젠 함께 하나를 보며 나가요 |
4. 여담
제목에 고구려도 아니고 발해가 들어간 것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다. 서태지는 이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한 적은 없으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출신 출판인인 강응천은 발해사는 남북통일을 전제할 때에만 한국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노래의 메시지에 주목했다. 한강 유역을 차지한 적이 있었던 고구려와는 달리 발해의 영토에는 현재의 대한민국 영토가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남북한이 하나의 국가임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발해는 현재의 대한민국과 무관한 나라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고구려가 있었던 삼국시대와는 달리 발해가 있었던 남북국시대는 현재의 남북한과 마찬가지로 남과 북에 신라와 발해라는 두 개의 나라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또는 역사적인 이유 외에 대중들에게 익히 알려진 고구려보다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더욱 인지도가 낮았던 발해를 제목에 넣어서 신선한 느낌을 주려고 했을 수도 있다. 일단 서태지 본인은 3집 컴백 콘서트[8]에서 이 노래 무대를 선보이기 전 셋이 모여 타이틀곡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그 때 우리나라가 제일 컸어요"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발해 역사 연구는 남북한 공조가 절실한 분야이기도 하다. 사실 이 노래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발해는 연구가 어려운 분야라는 이유로 존재감이 없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다만 공교롭게도 90년대 초반 국사교과서는 통일신라시대를 남북국 시대로 새롭게 정의하며 발해를 나름 중요하게 다뤘기 때문에 서태지 팬들은 국사 시간에 발해 역사가 나오면 반가워했다.
2022년 2월 8일, 당시 윤석열 대선 후보가 중국의 편파판정을 비판할 때 동북공정까지 같이 비판하면서 해당 노래를 공유하여 화제가 되었다. 링크 그러나 팬 커뮤니티에서 의견이 갈렸다. 디시인사이드의 인물 갤러리는 어그로가 많으므로 실제 서태지 팬덤을 대표하지도 않으며 절대 다수의 연예인 팬들이 그러하듯 연예인이 정치와 엮이는 상황을 반기지 않는 사람도 상당수이다. 그리고 애초에 정치 싸움으로 비화시키지 않으려는 댓글이 절대 다수다. 여담으로 서태지는 모 라디오 방송에서 발해를 주제로 2행시를 지으라는 미션을 받았을 때 발칙한 놈들 해동성국은 우리 것이여라고 한 적이 있었다. 이는 발해가 한국사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다만 윤석열이 이 방송을 기억했는지는 알 수 없다.
[1] 서태지와 아이들의 모든 정규앨범이 그렇지만 1번 트랙은 인트로격의 "Yo! Taiji"라는 짧은 곡이 들어있다.[2] 지금으로 치면 싸이나 BTS가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한 것과 비슷한 사건이다.[3] 2000년 평화콘서트 때 아주 짧게 앞의 두 소절을 부르긴 했지만 이건 그냥 인트로 수준이라...[4] 이 사람이 세션 맡은 곡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마이클 잭슨의 Black or White다. 여담으로 여기서 베이스 치고 있는 사람은 그의 동생인 존 피어스다.[5] 원래 2018년 2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정은이 서울로 답방을 올 시 축하공연의 일환으로 서태지밴드가 공연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9집 활동 후반기부터 유화되고 있던 남북관계를 감안하여 아껴놓았던 것으로 추측되나, 하노이 북미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급속히 악화되면서 앞으로도 당분간은 베이퍼웨어가 될 가능성이 높다.[6] 앨범의 공식 가사집에는 이 부분이 빠져 있다.[7] 앨범의 공식 가사집에는 이 '날고 싶어' 부분이 빠져 있다.[8] 1994. 8. 13. ~ 8. 15.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