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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7-07 14:40:26

법정(삼국지 유비로 천하쟁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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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작중 행적3. 기타

1. 개요

삼국지 유비로 천하쟁패의 등장인물. 원 역사의 삼국지 인물인 법정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2. 작중 행적

유비와 협력하는 익주의 참모. 유비가 한중을 차지하고 서량에 간 동안 혹시 모를 유장의 배반에 대비해 백수관을 지키고 있었으며 유비가 한중으로 돌아온 후에 익주 정벌 논의를 위해 불러들인다. 이때 악진이 장로를 데려오기 위해 상용으로 오자 상용에 파견할 장수로 관우를 추천했으며 방통의 양보로 상용으로 가 유비를 수행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후 상용 전투에서 관우에게 밀리는 척하면서 함정을 파는 악진의 움직임을 즉시 파악하고 보병대를 이끌고 대응해 무승부를 이끌어낸다.

상용에서 귀환한 뒤 입촉에 동행해 방통과 함께 군사참모로 활약하는데 이때 낙성을 앞에 둔 유비에게 정예 기병대를 샛길로 침투시켜 성도 인근 동주병 소유의 전답들을 초토화시켜 싸우지 않고 낙성을 무너뜨리는 계책을 알려주나 관우가 반대 의사를 명확히 하자 한 발 물러선다.

관우, 장비가 별동대를 이끌고 떠난 뒤에 황충과 함께 낙성 공략에 참여했고 입촉 성공 이후에 군사 정책 논의에서 조조의 청주병을 본딴 병호제를 지지하며 기존의 동주병을 병호로 발전시킬 것을 조언하나 유비는 그것이 효율적인 대책임을 알면서도 거부한다.

서량 원정에도 참여했으며 진군로를 두고 갑론을박할 때 진창도를 제안했다. 물론 본인도 이것이 상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고 방통과 마찬가지로 5만 이상의 군대를 동원해 여러 곳에서 들이치는 것을 상책으로 여기고 있으나 조조의 발빠른 대처 덕에 대군 동원이 불가능해지면서 차선책으로 진창도를 제안한 것이다.

유비의 의중에 따라 야곡도로 나아간 다음에는 방통과 협력해 군략을 총괄하며 진창성 전투에서는 원역사의 한중 공방전에서 함께 활동했던 황충과 움직인다. 원 역사의 한중 공방전과 같은 차륜전으로 하후연, 서황과 격전을 벌이던 중, 조조의 발목이 묶이고 위수를 따라 원군이 들어오자 승리를 확신한다. 이후 일부러 물러나는 척해서 하후연을 끌어낸 다음 완벽한 역공으로 하후연을 참살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조조군의 본대가 서량으로 향하자 황충과 함께 오장원에 파견되어 가후, 조창과 대치하며 가후가 조장한 삼보의 난 때문에 굶어 죽을 뻔한 경험이 있던 덕에 가후에게 악감정이 있어 그와 치열한 설전을 벌인다. 물론 가후는 알 게 뭐냐는 태도로 법정의 항의를 씹었다.

종전 후 유비와 익주계 신하들의 한중왕 등극 상언 후에는 유봉을 상용에 보내자는 제안을 한다. 수년 동안이나 곁을 지킨 방통이나, 제갈량도 못할 말을 비교적 신참인 법정이 한 거라 상당히 광오한 발언인데, 관우와 장비, 방통은 형주에서 유비가 객장 티를 못 벗던 시절부터 유봉을 잘 알고 지낸 터라(관우, 장비는 사적으로 따지면 숙부다) 도의상 유봉을 폐하자고 입 밖에 꺼낼 수 없었다. 그래서 막료들 중 짬은 떨어지면서 공은 상당히 많이 세운 법정이 하는 수 없이 총대를 멘 것이다. 상용은 기름지나 좁고 고립된 땅이라 움직임이 제한될 수밖에 없기에 사실상 유봉을 유비군의 중심에서 치우자는 말이었고, 원 역사의 비극이 반복될 가능성을 걱정한 유비는 안 된다고 못 박고 대신 장완과 방덕을 파견한다.

북벌에 참가해 방통과 함께 유비군의 작전, 전술을 도맡는다. 방통과 머리를 맞대고 징집된 파촉 보병들로 기병 전력에서 우세한 위군을 대응하기 위해 고민한 결과 제갈량의 팔진도와 거의 유사한 진형을 고안해냈다. 신야 전투에서는 황충과 함께 좌익에 배치되었고 조위 기병이 관우의 중군에 붙들려 늘어지는 타이밍을 정확하게 계산하고 틈을 만든 뒤 강노수들로 엄호해 장비의 기병대가 난입할 수 있게 해주었다.

신야현 전투 이후엔 조위군이 14만의 대군으로 포위 후 장기전에 나서면서 압박해오자 결국 완성에서 밀려나면서도 조위에 반드시 변고가 생길 터이니 버텨야 한다고 주장하며 유비를 지탱한다. 홍수로 인한 제갈량의 북진 이후 활로가 열리자 완성을 구원하는 건 힘 승부로 나가자고 조언한다. 이후 완성 전투 승리 후 양번에 합류, 조홍군과 장안군이 합세해 견제해오자 유비의 정보대로 신병이라면 잡아야 한다고 판단, 황충과 함께 요격해 대승을 거둔다.

이후 219년 11월에는 조금씩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다는 묘사가 나와 유비를 씁쓸하게 만든다. 그러나 지략은 물이 올라서 조조군의 여론전을 역이용한 거짓 퇴각 작전으로 조홍을 끌어들여 그의 정예 기병 수백기와 곽회까지 전사시켜 버린다.

이후 허도까지 동행하는데 유비에게 전향한 전예를 보고 좋은 모사를 얻었다 극찬하며 이후 전예가 진심인지 처세인지 자신은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 하자 전예를 설득하다 그대로 쓰러지며 얼마 안 가 사망한다.

3. 기타

전선을 확인하겠답시고 무모할 정도로 직접 앞에 나서가며 확인하는 경우가 많은 방통과 달리 위험하겠다 싶으면 즉시 뒤로 빠지는 성격이다. 다만 정사에서도 유비를 설득할 때 일부러 화살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는 기록이 있는 걸 보면 깡이 없는 건 아니다.

보복 정신의 소유자로 유명한 것과 별개로 자신이 유비군에 갓 임관한 외부인사임을 잘 알고 있어 기존 유비군 중진들, 특히 최고참 관우와 마찰 빚을 일은 최대한 피한다. 작중에서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보복 정신을 잘 보여주지 않지만 가후에게 보인 태도를 보면 그 거친 성깔은 본작에서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유비군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눈치 본다고 말이 거의 없었지만 익숙해지고 나서는 방통보다 훨씬 음험한 모략을 서슴없이 뽐내서 유비가 내숭 떨다가 본색 드러냈다고 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