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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 FIFA 월드컵 스위스/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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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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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헝가리 2 vs 3 서독
2.1. 경기 전2.2. 선발 명단2.3. 경기 실황
3. 서독은 어떻게 대어를 낚았나
3.1. 토너먼트 대진에서의 행운3.2. 궂은 날씨와 최첨단 기술이 적용된 축구화3.3. 제프 헤르베르거3.4. 후에 밝혀진 안 좋은 실상
4. 여담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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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베른의 기적(Das Wunder von Bern)

스위스 베른방크도르프슈타디온에서 1954년 7월 4일에 열린 1954년 월드컵 결승전.

2. 헝가리 2 vs 3 서독

경기장 방크도르프슈타디온
바젤 - 스위스
경기일 1954년 7월 4일 15:30
(1954년 7월 4일 23:30)
심 판 윌리엄 링 (잉글랜드)
국 가 헝가리
파일:헝가리 인민 공화국 국기(1949-1956).svg
서독
파일:독일 국기.svg
득 점 2 3
득점자 푸슈카시 페렌츠 (6')
치보르 졸탄 (8')
막스 모를로크 (10')
헬무트 란 (18', 84')



2.1. 경기 전

헝가리1938년에 이은 2번째 FIFA 월드컵 결승 진출, 서독은 사상 첫 FIFA 월드컵 결승 진출이었다.

헝가리는 1950년 이후 4년여간 매직 머저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1952년 올림픽 금메달, 세기의 경기, A매치 32경기 연속 무패 등 화려한 결과를 내던, 자타공인 당시 세계 최강의 팀이었다.[1] 그에 걸맞게 헝가리에는 푸슈카시를 필두로 당대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들이 즐비했다. 그들을 앞세워 조별 리그에서 헝가리는 이미 서독을 8:3으로 박살냈던 적이 있었다.

당연히 서독은 헝가리에 비해 전력상 절대적 열세라고 평가되었다. 서독의 입장에서는 기껏 결승까지 올라왔는데 어차피 우리는 헝가리를 이길 수 없다면서 결승전을 포기하고 서독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헝가리는 주장 푸슈카시가 부상으로 한동안 스쿼드에 빠져 있었지만 결승전을 앞두고 출전이 가능했다. 그러나 푸슈카시가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님은 명백했고 다만 셰베시 헝가리 감독은 코치시에게 집중되는 견제를 덜기를 바랐다. 그리고 셰베시는 주전 아웃사이드 레프트 포워드 치보르를 오른쪽으로 보내고 지친 부더이 라슬로 대신 토트 미하이를 아웃사이드 레프트 포워드로 출전시켰다.
공은 둥글고, 경기는 90분이나 진행된다.
(Der Ball ist rund und ein Spiel dauert 90 Minuten.)
제프 헤르베르거

비가 내리던 방크도르프슈타디온에서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2.2. 선발 명단

파일:헝가리 인민 공화국 국기(1949-1956).svg 헝가리 선발 명단 3-2-2-3
감독: [[셰베시 구스타브|{{{#ffffff 셰베시 구스타브}}}]]
GK
1. 그로시치 줄러
FB
2. 부잔스키 예뇌
FB
3. 로란트 줄러
FB
4. 런토시 미하이
HB
5. 보지크 요제프
HB
6. 저커리아스 요제프
FW
8. 코치시 샨도르
FW
10. 푸슈카시 페렌츠 파일:주장 아이콘.svg 파일:득점 아이콘.svg 6'
FW
11. 치보르 졸탄 파일:득점 아이콘.svg 8'
FW
9. 히데그쿠티 난도르
FW
20. 토트 미하이
FW
20. 한스 셰퍼
FW
15. 오트마르 발터
FW
12. 헬무트 란 파일:득점 아이콘.svg 18', 84'
FW
16. 프리츠 발터 파일:주장 아이콘.svg
FW
13. 막스 모를로크 파일:득점 아이콘.svg 10'
HB
8. 카를 마이
HB
6. 호르스트 에켈
FB
3. 베르너 콜마이어
FB
10. 베르너 리프리히
FB
7. 유프 포지팔
GK
1. 토니 투레크
파일:독일 국기.svg 서독 선발 명단 3-2-2-3
감독: [[제프 헤어베어거|{{{#000000 제프 헤르베르거}}}]]

2.3. 경기 실황

서독의 킥오프로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첫 찬스는 서독이 잡았다. 프리츠 발터의 크로스를 모를로크가 헤더로 연결해봤지만 그로시치 골키퍼는 높이 점프해서 크로스바 위로 공을 걷어냈다. 셰퍼도 슈팅을 시도해봤지만 공은 헝가리 수비수들이 모인 곳으로 잘못 날아갔고 그로시치 골키퍼가 잡아 상황은 종료되었다.

헝가리는 서독의 공격을 잘 막아내고 곧 세계 최강팀다운 모습을 보였다. 히데그쿠티에게 간 패스는 토니 투레크 골키퍼가 적절한 타이밍에 나와 끊어냈다. 그러나 리프리히의 패스 미스가 보지크에게 갔고 보지크는 페널티 아크 근처에 있던 코치시에게 패스했다. 코치시는 서독의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들어와 서독 수비수들을 자신들쪽으로 끌어낸 뒤 슈팅을 했다. 그러나 코치시의 슈팅은 에켈의 다리에 맞고 푸슈카시쪽으로 굴러갔다. 푸슈카시의 주변엔 아무도 없었고 이런 기회를 놓칠 푸슈카시가 아니었다. 헝가리가 경기 시작 6분 만에 선제골을 득점했다.

2분 후, 서독 수비진에서 어처구니 없는 실수가 나왔다. 베르너 콜마이어가 투레크에게 백패스를 했고 투레크는 공을 잡았어야 했다.[2] 하지만 콜마이어와 투레크의 거리가 너무나 가까웠고 콜마이어의 백패스가 잘못되었는지 투레크는 미끄러지면서 몸으로 공을 잡은게 아니라 왼손만으로 공을 잡으려다 구르면서 투레크의 손 밖으로 공이 새고 말았다. 그 공을 치보르가 빼앗아 텅빈 서독의 골문으로 헝가리의 2번째 득점을 성공시켰다. 콜마이어가 뒤늦게라도 치보르를 커버해보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헝가리는 리드를 늘렸고 그렇게 경기는 헝가리 쪽으로 기울었다.

승리의 여신이 헝가리에 미소를 짓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조별 리그에서 당했던 3:8 패배의 악몽이 떠오를 수도 있었다. 그때와 결승전에 임하는 서독의 멤버가 다르다고 해도 실력차는 어쩔 수 없는 듯 보였다. 서독 선수들은 정신 무장을 새롭게 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헝가리는 완전히 서독 선수들의 전의를 꺾어버리려는 듯 찬스 메이킹에 주력했지만 곧 서독의 추격이 시작되었다.

전반 10분에 이 왼쪽에서 공을 잡고 왼발로 땅볼 크로스를 올렸다. 그런데 공은 거짓말처럼 부잔스키 예뇌의 다리 사이와 로란트 줄러를 뚫었고 저커리아스 요제프는 태클로 공을 막아보려 했지만 공의 진행 방향을 크게 바꾸지 못했다. 뒤에서 크로스를 받기 위해 달려든 모를로크는 저커리아스의 뒤에서 슬라이딩을 하며 앞에서 달려드는 그로시치의 방어를 무력화시켰다.

전반 12분에 푸슈카시가 득점을 노려봤지만 콜마이어와 리프리히가 각각 몸으로 푸슈카시의 왼발 슈팅을 막아냈다. 그리고 16분에 치보르는 히데그쿠티의 패스를 받고 오른발로 슈팅을 시도했지만 공은 골대를 비껴나갔다.

전반 17분, 모를로크는 헝가리 진영으로 드리블해 들어오다가 왼발로 슈팅을 했지만 로란트는 모를로크의 슈팅에 발을 갖다대서 공을 골라인 밖으로 내보냈다. 서독의 코너킥 상황. 프리츠 발터는 헝가리 골대의 니어 포스쪽을 겨냥했지만 부잔스키가 공을 걷어냈다. 프리츠는 다시 코너킥을 찼고 그로시치와 셰퍼가 공중볼을 다퉜지만 공은 그로시치의 손에 맞지 않았다. 그러나 뒤로 달려들어온 란이 공에 오른발을 갖다댔고 공은 런토시 미하이와 부잔스키의 사이를 뚫었다. 전반 18분에 서독은 경기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전반 20분에 치보르는 오른발로 서독의 골문을 겨냥했지만 공은 슈팅 각도를 없앤 투레크의 다리에 맞았다. 헝가리 공격수들은 뒤이어 얻은 코너킥을 노려봤지만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다. 전반 23분에 코치시의 백헤더를 받은 히데그쿠티는 오른발로 서독의 골문을 노렸다. 그러나 투레크는 엄청난 반사 신경을 발휘해서 왼손으로 공을 골문 위로 쳐냈다.[3] 헝가리의 코너킥을 히데그쿠티가 머리로 받아봤지만 위력은 없었고 투레크가 손을 뻗어 잡아냈다.

전반 27분, 치보르는 코치시의 헤더 패스를 왼발로 히데그쿠티에게 보냈다. 히데그쿠티는 가슴 트래핑 후 바닥에 공을 놓고 오른발로 서독의 골문을 다시 노렸다. 그러나 공은 서독의 골포스트를 때렸고 그렇게 헝가리의 추가골 기회는 또 날아갔다. 토트 미하이는 크로스로 다시 기회를 노려봤지만 투레크가 공을 낚아챘다.

서독도 득점 기회를 노렸지만 헝가리 공격수들만큼 위력적이진 못했다. 전반 43분에 서독은 좋은 기회를 잡았다. 셰퍼가 왼발로 좋은 슈팅을 날렸지만 그로시치는 날렵하게 왼손으로 셰퍼의 슈팅을 막아냈다. 모를로크가 2차 슈팅을 위해 공을 잡으려 했지만 공은 뒤로 흘렀고 란이 강력한 슈팅을 날렸다. 하지만 공은 골대를 벗어났다. 셰퍼는 그로시치의 앞에서 헤더로 공을 커트해봤지만 위협적이지 못했고 헝가리 수비수가 잘라냈다. 그러나 헝가리 수비진의 뒷처리가 다소 안일해서 서독에게 찬스를 줄 뻔도 했다. 2:2 동점 상황에서 전반전은 더 이상의 추가 득점 없이 끝났다.

후반전, 헝가리는 다시 리드를 잡기 위해 파상공세를 퍼부었다.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헝가리는 강력한 슈팅 2번으로 서독의 골문을 두들겨봤지만 2번 다 투레크가 막아냈다. 서독의 수비진은 전반 초반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코치시가 푸슈카시에게 패스를 했지만 푸슈카시는 받지 않고 다리 사이로 공을 토트에게 보냈다. 토트가 슈팅한 공이 콜마이어에게 맞고 다시 토트에게 가자 투레크는 토트를 막기 위해 앞으로 나왔다. 이에 토트는 투레크를 페이크로 제치고 다시 슈팅을 날렸지만 토트의 슈팅은 골라인 앞에서 버티던 콜마이어에게 막혔다. 푸슈카시는 저 장면을 보고 머리를 감싸쥐었다.

후반 12분, 토트의 크로스를 코치시가 골라인 근처에서 헤더로 연결해봤지만 공은 서독의 크로스바를 맞았다. 15분에 푸슈카시가 쏜 슈팅은 서독의 골문을 벗어났다. 이어서 서독도 란이 중거리 슈팅을 쏴봤지만 그로시치가 쉽게 잡을 수 있는 땅볼 슈팅이었다.

후반 22분, 푸슈카시가 다시 패스를 받아 기회를 만들었다. 푸슈카시는 왼발로 슈팅을 때렸지만 투레크가 왼쪽 다리를 뻗어 발로 푸슈카시의 슈팅을 막아냈다. 셰퍼와 런토시의 충돌도 일어났다. 셰퍼의 발과 런토시의 머리가 공을 향해 동시에 붙었고 충격을 입은 런토시는 잠시 쓰러졌다. 셰퍼의 파울이었다. 란은 줄기차게 역전골을 위해 노력했다. 오른발과 왼발로 번갈아 중거리 슈팅을 쐈지만 하나는 헝가리 수비수의 몸에 맞았고 왼발 중거리 슛은 그로시치의 선방에 막혔다.

후반 33분, 투레크는 1대1 상황에서 치보르의 돌파를 끊어냈다. 공은 측면으로 흘러 뒤에서 오던 히데그쿠티가 잡았고 히데그쿠티가 슈팅을 해봤지만 콜마이어를 피해 슈팅한 공은 옆그물을 때렸다. 전반전에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했던 투레크는 속죄라도 하듯이 환상적인 선방을 연달아 보여주며 헝가리의 추가 득점을 막아냈다.

경기 종료 6분을 남겨놓은 시점에 드디어 양팀의 운명을 가른 시간이 왔다. 런토시가 크로스를 헤더로 클리어했지만 공은 란에게 갔고 란은 페이크로 런토시를 꼼짝 못하게 한 후 왼발 중거리 슈팅으로 팀의 3번째 득점이자 역전골을 뽑아내었다. 그로시치가 오른쪽으로 급히 몸을 날려봤지만 그로시치의 오른손은 공에 닿지 못했다.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헝가리는 동점을 만들기 위해 사력을 다했고 경기 종료 4분을 남겨놓고 찬스가 찾아왔다. 푸슈카시가 경기를 다시 동점으로 만들 수 있는 슈팅을 쐈지만 오프사이드가 선언됐다. 그러나 그리피스 부심이 판정한 이 오프사이드 판정은 이후에도 상당한 오심 논란을 불렀다. 그리고 헝가리는 종료 직전에 한번 더 동점골의 기회를 잡았지만 이 기회도 투레크에게 막히고 말았다.

그렇게 경기는 서독의 승리로 끝나며 헝가리의 무패 기록을 종식시켰고, 축구 역사상 최대의 이변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어떤 스포츠든 우연성과 변수가 나올 수 있다. 그 우연성과 변수는 연출 없는 감동의 밑바탕이 되며 그 감동은 바로 사람들이 스포츠를 찾고 그것에 열광하는 이유 그 자체이다. 축구도 예외는 아니다. 약팀도 승리할 가능성이 있으며 공은 둥글다는 헤르베르거 서독 감독의 말이 정말로 잘 어울릴 수 있는 한 판이었다.
파일:Walter with Jules Rimet Trophy.jpg
쥘 리메 트로피를 들고 있는 서독의 캡틴 프리츠 발터

3. 서독은 어떻게 대어를 낚았나

3.1. 토너먼트 대진에서의 행운

상술했듯 서독헝가리는 조별 리그에서 이미 한 번 만난 적이 있었고 서독은 헝가리에게 3:8로 졌다. 이 때문에 헤르베르거 감독은 분노한 자국 팬들로부터 돌까지 맞는 굴욕을 겪었다. 물론 비난 편지도 한가득 받았는데, 대표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헤르베르거 씨. 당장 밧줄로 목을 매어 죽되 밧줄은 재활용해야하니 돌려주시길." 영화 베른의 기적에도 이 편지가 소개되었다.

그러나 조별 리그 헝가리전에서 나온 서독의 스쿼드는 주전 7명이 빠진 사실상 2군이었다. 이렇게 헤르베르거가 2군을 내보낸 것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서독의 진짜 전력을 숨기는 효과도 있었지만 더욱 중요한 이유는 이 대회에서만 쓰인 이상한 토너먼트 대진 방식 때문이었다.
경기 대진표 경기 대진표 경기 대진표
A 8강 1경기
1조 1,2위 중 추첨 VS 2조 1,2위 중 추첨
E 4강 1경기
A,C 승자 중 추첨 VS B,D 승자 중 추첨
G 결승
E 승자 VS F 승자
B 8강 2경기
3조 1,2위 중 추첨 VS 4조 1,2위 중 추첨
-
C 8강 3경기
1조 1,2위 중 추첨 VS 2조 1,2위 중 추첨
F 4강 2경기
A,C 승자 중 추첨 VS B,D 승자 중 추첨
D 8강 4경기
3조 1,2위 중 추첨 VS 4조 1,2위 중 추첨
H 3위 결정전
E 패자 VS F 패자
위의 대진표가 바로 이 대회에서 쓰인 대진표인데, 이 대진표는 현재 일반적으로 쓰이는 대진표와 달리 1조와 2조의 조 상위 2팀끼리 추첨을 거쳐 맞붙고, 3조와 4조의 상위 2팀끼리도 마찬가지로 추첨을 거쳐 맞붙는 8강전을 치렀다.# 즉, 추첨 결과에 따라서 조 1위가 2위에 비해 이점은커녕 오히려 불리해질 수도 있었다.[4] 실제로 2조를 1위로 통과한 헝가리는 8강에서 하필 1조 1위 브라질을 만나 베른의 전투라 불릴 정도의 난투극을 벌이고 올라왔고, 4강에서도 3조 1위팀이자 지난 대회 우승팀 우루과이를 만나 연장전까지 치렀다. 경기 내용은 극찬을 받았지만 이 과정에서 헝가리는 연장 혈투로 인한 체력 소모는 물론이고 선수들이 부상을 입는 출혈도 있었다.

반면 서독의 헤르베르거 감독은 애초부터 조 1위를 해봤자 딱히 이득도 없다는 것을 미리 파악했다. 당시 압도적 강팀 헝가리와의 경기에서 서독이 주전들을 투입한다고 해도 이길 가능성도 적었고 만약에 90분 정규 시간동안 비기기라도 한다면 저 껄끄러운 상대와 30분간 연장전을 더 치러야 했다. 그래서 헤르베르거는 헝가리전에 일부러 비주전 선수들을 상당수 내보내 경기를 반쯤 버리는 선택을 했고 그 결과 서독은 조 2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그러나 서독은 8강 추첨에서 1조 2위 유고슬라비아를 만나 2:0으로 이기고 4강에서 3조 2위 오스트리아를 만나 6:1로 이겼다. 헝가리에 비하면 서독의 대진은 상당한 꿀대진이었고 이렇게 서독은 무난하게 결승전에 진출해 헝가리보다 체력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3.2. 궂은 날씨와 최첨단 기술이 적용된 축구화

당시 경기가 열린 방크도르프슈타디온에는 비가 엄청나게 왔다. 이를 안 헤르베르거 감독은 만세를 불렀다는 후문이 있다. 서독 대표팀은 용품 후원사 아디다스가 제작한 당시로써는 최첨단 축구화를 신고 있었는데 바로 스터드나사로 고정하는 축구화였다. 비가 많이 와 질척해진 피치를 보고 서독 선수들은 우천 경기에 특화된 긴 스터드로 축구화 밑을 모두 교체했고 미끄러질까봐 조심하던 헝가리 선수들과 다르게 서독 선수들은 제 기량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었다.

3.3. 제프 헤르베르거

헤르베르거헝가리의 전력에 감탄하면서도 그들을 2년여간 분석하며 언젠가 그들과 맞붙었을 때 서독이 노릴 수 있는 약점을 계속 찾았고 결국 결론이 나왔다. 헝가리의 수비, 그리고 히데그쿠티 난도르.

먼저 헤르베르거는 조별 예선에서 비록 헝가리에 8골을 허용하긴 했지만 서독도 3골을 넣었으니 그들의 수비진이 결코 무적이 아님을 선수들에게 계속 상기시켰다.

당시나 지금이나 축구 수비 전술의 기본은 지역 방어이다. 당시엔 지금처럼 팀의 상황이나 전술에 따라 포메이션이 유동적이지 않고 거의 모든 팀이 W-M 포메이션을 사용했었다. 헝가리 역시 포지션상 가장 위에서 골을 넣는데 주력해야 할 센터 포워드 히데그쿠티 난도르가 있었고 그 밑에 인사이드 포워드 듀오 푸슈카시 페렌츠코치시 샨도르가 밑에서 히데그쿠티가 골을 넣도록 지원하는 것이 당시 축구계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히데그쿠티는 폴스 나인처럼 미드필더진까지 내려가서 공격을 진두지휘했고 이러면 히데그쿠티를 담당하는 수비수들은 히데그쿠티를 따라 올라가거나 기존 수비 호흡에 균열이 나게 된다. 헝가리는 그 틈을 푸슈카시와 코치시가 도륙내는 변칙적인 전술을 사용해 재미를 보고 있었다. 헤르베르거는 이를 간파하고 호르스트 에켈에게 히데그쿠티의 맨마킹을 맡겼다. 히데그쿠티를 막으면 푸슈카시, 코치시에게도 공이 덜 가므로 공이 없는 공격수의 위력 역시 줄어들게 된다.

그 외에도 에이스 푸슈카시를 제어하는 역할은 베르너 리프리히에게 맡겼다. 그리고 공격적인 하프백 보지크 요제프가 본래 있어야 할 자리를 비우면 그 틈을 노리도록 지시했다. 그 임무는 아웃사이드 레프트 포워드 한스 셰퍼에게 1순위로 부여되었다.

헤르베르거가 준비한 이 전술은 대성공을 거뒀다.

3.4. 후에 밝혀진 안 좋은 실상

하프타임[5]서독 대표팀 선수들에게 메스암페타민을 먹였다는 사실이 나중에 공개되었다. 당시 서독 선수들은 비타민C 인 줄 알고 먹었다고 했는데, 대부분은 알고 먹었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 당시 결승에 뛰었던 헝가리 선수들의 인터뷰에 따르면 경기 당시 서독 선수들의 눈이 풀려있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서독 선수들은 월드컵이 끝나고 장기간 휴가를 떠났다고 한다. 참조

당시에는 금지약물 규정이 없었고, 1963년 금지 약물 규정이 생겼다. 암페타민 계열은 1968년부터 금지되었다. 따라서 당시에는 이러한 약물을 복용하더라도 규정상 별 문제가 없기는 했다. 다만 규정상 불법이 아니었을지라도 해명 당시 당당하게 메스암페타민을 복용했다고 시인하지 않고 비타민인줄 알고 먹었다고 얼버무린 것을 보면 당시 시대상으로 비춰봐도 서독 선수들의 행위는 절대 공정성이 담보된 행위가 될 수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 대회 이전의 1952 오슬로 동계 올림픽 당시 덴마크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들의 라커룸에서 암페타민이 든 다량의 봉지와 주사 앰플이 발견되어 선수들이 약물을 복용하고 있음이 언론을 통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심지어 1960 로마 올림픽에서는 사이클 선수 크누드 에네마르크 옌센이 경기 도중 쓰러져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 전세계적으로 충격을 줬는데, 부검 결과 암페타민의 과다 복용으로 인한 체열 상승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에도 1960년대에 암페타민 과도 복용으로 선수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1968년부터 암페타민 계열은 금지 약물로 지정되었다.

4. 여담

5. 관련 문서



[1] 이때의 헝가리 대표팀은 축구 국가 대표팀들끼리의 Elo 레이팅에서 역대 1위팀이기도 하며, 1970년 월드컵에서 지역 예선부터 전승 우승을 기록했던 브라질에 버금가는 팀으로 흔히 평가된다.[2] 당시에는 수비수의 백패스를 골키퍼가 잡을 수 있었다.[3] 당시 경기를 중계하던 헤르베르트 치머만은 이 선방을 보면서 "토니, 당신은 축구의 신입니다!(Toni, du bist ein Fußballgott!)"라는 유명한 코멘트를 남겼다.[4] 이렇게 이해하기 힘든 방식으로 대진표가 만들어진 데에는 당시 월드컵 본선 진출국들 중에선 상대적으로 약체에 속했던 개최국 스위스가 자신들은 조 1위보다는 조 2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의도적으로 개최국인 자신들에게 유리한 대진 방식을 만들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5] 위의 점수표에도 나와있지만 그 시점에선 2:2 동점이었다.[6] 물론 이 경기만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2차 대전 이후 소련군 포로 출신의 아버지와 공산주의자가 되어 동독으로 넘어간 큰아들, 그리고 이 둘 사이에서 방황하는 막내아들 등 한 가정의 갈등과 상처가 월드컵 우승을 통해 어떻게 해소되는지를 다루는 가족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