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더스크롤 시리즈의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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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The War of Betony엘더스크롤 시리즈에 나오는 책. 엘더스크롤 2: 대거폴에서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센티넬과 대거폴간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같은 제목의 책이 두 권 있는데, 제목만 같고 저자가 다르다. 하나는 센티넬의 레드가드의 입장에서 쓰여졌으며, 다른 하나는 대거폴의 브레튼의 입장에서 쓰여졌다.
2. 센티넬 판
원문
베토니 전쟁
대거폴과 센티넬 사이의 전쟁에서의 사건과 결과에 대한 센티넬 시민의 견해
파브테 저
베토니 전쟁으로 역사에 기억될 이 사건의 전말 속 그들의 행동보다 브레튼의 본성적 사악함을 더 잘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할까? 가장 부패한 동기, 가장 비열한 전술, 그리고 가장 비신사적인 승리로, 대거폴 왕국은 일리악 만의, 혹은 탐리엘 전역에서의 전쟁의 본질을 바꿔버렸다. 센티넬에서는, 최근의 학살을 베토니 포위전으로 부르나 승자들에 의해 쓰인 책에서는 그것을 베토니 전쟁이라 부른다.
레드가드는 본성적으로 온화하며 실용적인 사람들이다. 우리는 하이 엘프처럼 냉정하지도, 우드엘프나 카짓처럼 겁쟁이도 아니다. 그러나 저 잘난척하고 교만한 노르드와 브레튼들을 분노케 하는 것에 대해서 레드가드들은 어깨를 으쓱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작은 베토니 섬을 어떤 브레튼 왕국에서 소유했다고 해도, 그들은 탐욕스럽게 그것을 지켰을 것이다. 베토니의 무역권은 심각하게 제한되었을 것이고, 종교는 통제되고, 사람들은 영원한 충성의 맹세에 속박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베토니는 브레튼의 지배 하에 있지 않았고, 베토니는 센티넬 왕국의 땅이었다.
라이샌더스 왕은 — 이 늙은이가 그의 악으로 인해 영원히 고통받기를! — 번성한 섬 하나가 센티넬 보다 자신의 땅에 가까운 것을 보았고, 그의 검은 심장은 탐욕으로 물들었다. 위협, 거짓말, 해적질, 침입을 통해, 대거폴이 마침내 베토니 섬을 불법적으로 빼았는데 성공했다. 그의 궁정 마법사이자 어머니인 메도라 부인과 다른 오래된 신하들은 그의 잔혹한 작전에 경악하였고 그가 그의 폭악한 전쟁을 그만두기를 간청하였다. 점차적으로, 모든 반대자들은 궁정에서 제거되었다. 무지한 자들과 전쟁광들만이 남게 된 것이다.
우리의 선왕 캐머론은 대거폴과의 평화적 외교를 시도했지만, 결국에 그는 전쟁을 선포했다. 대거폴과 센티넬은 2천년 동안 여러 차례 싸워 왔고 캐머론은 브레튼들이 정당한 전쟁행위로 여기는 흑마법과 간첩행위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캐머론은 브레튼의 사악한 방법을 따라하지 않으며 라이샌더스를 상대할 최적의 방법을 알고 있었다. 라이샌더스 왕의 부정한 전략은 그의 선조들보다 더 악랄했고, 전쟁은 센티넬과 대거폴 외의 국가들이 개입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격렬해졌다.
라이히 그래드킵의 통치자 그래독 영주가 센티넬과 대거폴 사이의 중재자로서 나섰고, 마침내 두 군주가 만나서 평화를 약속하기로 하였다. 불운의 그래드킵 조약이 정중하게 시작되었고, 조약 조건에 대해 토론하였으며, 동의되었고, 문서화되었다. 조건들은 지나치게 관대했다. 캐머론은 라이샌더스의 광기를 억제하고 일리악 만에 평화를 되가져오기 위해서 베토니에 대한 권한 몇개를 포기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캐머론 왕이 조약을 읽고 서명하려는 찰나에 그는 브레튼들의 충격적인 배신을 깨닫게 된다: 조약서는 대거폴의 서기에 의해 의도적으로 오기되어 있었고, 캐머론은 자신이 동의한 것과 다른 조약서에 서명을 할 뻔 했던 것이다. 라이히 그래드킵의 성은 피범벅이 되었고, 전쟁은 계속되었다.
크린게인 초원의 전투는 무분별한 소모전의 끝에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 크린게인 초원은 예오스 버로우랜드와 레이븐 숲 사이에 위치해 있고,리치 그래드킵의 학살 이후 센티넬과 대거폴 군대가 각각 진을 친 곳이다. 전투가 시작되자, 대거폴은 안개의 벽으로 레드가드 병사들의 눈을 막음으로써 그들이 사악한 데이드릭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라이샌더스가 속임수의 성공을 흡족해할 시간도 없이, 센티넬 궁수가 쏜 화살이 두꺼운 안개를 뚫고 그의 목을 관통해버렸다. 전쟁동안 지루하게 쉬고 있던 라이샌더스의 아들 고쓰리드는 대관식 없이 왕이 되었고, 캐머론 왕에게 결투를 요청하였다. 캐머론은 고쓰리드보다 뛰어난 전사였지만, 연장자였고, 그 소년왕을 살려둔 끝없는 전투에 지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예를 위해, 캐머론 왕은 결투에 응했다. 대거폴의 새 왕은 더러운 속임수와 흑마법으로 결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우리 왕의 등을 찔러버렸다. 그런고로, 크린게인 초원과 베토니 전쟁의 승자는 대거폴이 되었다.
대거폴의 사악함은 그 불명예스러운 승리 뒤에도 계속되었다. 센티넬의 과부 여왕, 아코리시 전하가 슬픔에 겨운 채로 흩어진 땅을 회복하려 할때, 고쓰리드는 센티넬의 공주를 전쟁의 인질로 삼기 위해 요구했다. 그녀의 고향을 살리기 위해서, 공주 아웁크이는 센티넬을 떠나고 그녀의 아버지를 살해한 자와 결혼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우리 진정한 센티넬의 레드가드들은 그녀의 사랑과 명예가 어디로 향해있는지 안다. 대거폴의 여왕은 그 이전에 센티넬의 공주이다.
베토니 전쟁
대거폴과 센티넬 사이의 전쟁에서의 사건과 결과에 대한 센티넬 시민의 견해
파브테 저
베토니 전쟁으로 역사에 기억될 이 사건의 전말 속 그들의 행동보다 브레튼의 본성적 사악함을 더 잘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할까? 가장 부패한 동기, 가장 비열한 전술, 그리고 가장 비신사적인 승리로, 대거폴 왕국은 일리악 만의, 혹은 탐리엘 전역에서의 전쟁의 본질을 바꿔버렸다. 센티넬에서는, 최근의 학살을 베토니 포위전으로 부르나 승자들에 의해 쓰인 책에서는 그것을 베토니 전쟁이라 부른다.
레드가드는 본성적으로 온화하며 실용적인 사람들이다. 우리는 하이 엘프처럼 냉정하지도, 우드엘프나 카짓처럼 겁쟁이도 아니다. 그러나 저 잘난척하고 교만한 노르드와 브레튼들을 분노케 하는 것에 대해서 레드가드들은 어깨를 으쓱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작은 베토니 섬을 어떤 브레튼 왕국에서 소유했다고 해도, 그들은 탐욕스럽게 그것을 지켰을 것이다. 베토니의 무역권은 심각하게 제한되었을 것이고, 종교는 통제되고, 사람들은 영원한 충성의 맹세에 속박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베토니는 브레튼의 지배 하에 있지 않았고, 베토니는 센티넬 왕국의 땅이었다.
라이샌더스 왕은 — 이 늙은이가 그의 악으로 인해 영원히 고통받기를! — 번성한 섬 하나가 센티넬 보다 자신의 땅에 가까운 것을 보았고, 그의 검은 심장은 탐욕으로 물들었다. 위협, 거짓말, 해적질, 침입을 통해, 대거폴이 마침내 베토니 섬을 불법적으로 빼았는데 성공했다. 그의 궁정 마법사이자 어머니인 메도라 부인과 다른 오래된 신하들은 그의 잔혹한 작전에 경악하였고 그가 그의 폭악한 전쟁을 그만두기를 간청하였다. 점차적으로, 모든 반대자들은 궁정에서 제거되었다. 무지한 자들과 전쟁광들만이 남게 된 것이다.
우리의 선왕 캐머론은 대거폴과의 평화적 외교를 시도했지만, 결국에 그는 전쟁을 선포했다. 대거폴과 센티넬은 2천년 동안 여러 차례 싸워 왔고 캐머론은 브레튼들이 정당한 전쟁행위로 여기는 흑마법과 간첩행위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캐머론은 브레튼의 사악한 방법을 따라하지 않으며 라이샌더스를 상대할 최적의 방법을 알고 있었다. 라이샌더스 왕의 부정한 전략은 그의 선조들보다 더 악랄했고, 전쟁은 센티넬과 대거폴 외의 국가들이 개입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격렬해졌다.
라이히 그래드킵의 통치자 그래독 영주가 센티넬과 대거폴 사이의 중재자로서 나섰고, 마침내 두 군주가 만나서 평화를 약속하기로 하였다. 불운의 그래드킵 조약이 정중하게 시작되었고, 조약 조건에 대해 토론하였으며, 동의되었고, 문서화되었다. 조건들은 지나치게 관대했다. 캐머론은 라이샌더스의 광기를 억제하고 일리악 만에 평화를 되가져오기 위해서 베토니에 대한 권한 몇개를 포기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캐머론 왕이 조약을 읽고 서명하려는 찰나에 그는 브레튼들의 충격적인 배신을 깨닫게 된다: 조약서는 대거폴의 서기에 의해 의도적으로 오기되어 있었고, 캐머론은 자신이 동의한 것과 다른 조약서에 서명을 할 뻔 했던 것이다. 라이히 그래드킵의 성은 피범벅이 되었고, 전쟁은 계속되었다.
크린게인 초원의 전투는 무분별한 소모전의 끝에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 크린게인 초원은 예오스 버로우랜드와 레이븐 숲 사이에 위치해 있고,리치 그래드킵의 학살 이후 센티넬과 대거폴 군대가 각각 진을 친 곳이다. 전투가 시작되자, 대거폴은 안개의 벽으로 레드가드 병사들의 눈을 막음으로써 그들이 사악한 데이드릭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라이샌더스가 속임수의 성공을 흡족해할 시간도 없이, 센티넬 궁수가 쏜 화살이 두꺼운 안개를 뚫고 그의 목을 관통해버렸다. 전쟁동안 지루하게 쉬고 있던 라이샌더스의 아들 고쓰리드는 대관식 없이 왕이 되었고, 캐머론 왕에게 결투를 요청하였다. 캐머론은 고쓰리드보다 뛰어난 전사였지만, 연장자였고, 그 소년왕을 살려둔 끝없는 전투에 지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예를 위해, 캐머론 왕은 결투에 응했다. 대거폴의 새 왕은 더러운 속임수와 흑마법으로 결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우리 왕의 등을 찔러버렸다. 그런고로, 크린게인 초원과 베토니 전쟁의 승자는 대거폴이 되었다.
대거폴의 사악함은 그 불명예스러운 승리 뒤에도 계속되었다. 센티넬의 과부 여왕, 아코리시 전하가 슬픔에 겨운 채로 흩어진 땅을 회복하려 할때, 고쓰리드는 센티넬의 공주를 전쟁의 인질로 삼기 위해 요구했다. 그녀의 고향을 살리기 위해서, 공주 아웁크이는 센티넬을 떠나고 그녀의 아버지를 살해한 자와 결혼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우리 진정한 센티넬의 레드가드들은 그녀의 사랑과 명예가 어디로 향해있는지 안다. 대거폴의 여왕은 그 이전에 센티넬의 공주이다.
3. 대거폴 판
원문
베토니 전쟁
베토니 전쟁에 대한 설명
불퍼 뉴게이트 저
일리악 만의 역사를 전부 서술한다면, 아마 소름 끼치기로는 최고의 자리에 오른 언더킹의 전설보다도 훨씬 큰 공포를 독자 여러분에게 선사할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무력에 의지했던 '베토니 전쟁'도 1시대와 2시대 전쟁과 비교하면 무색해질 지경이니 말이다. '오시니움 포위전'은 1시대 950년에서 980년까지 쉼 없이 진행되었다. 천 년 후, ‘정의의 전쟁’과 쓰라시안 전염병은 일리악 만 인구의 절반 이상을 휩쓸어갔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베토니 전쟁' 에 매료되는데, 이는 이 전쟁이 우리와 관련이 있어서만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베토니의 모그레프 경은 평화를 추구하여 대거폴에게 베토니 섬을 보호해달라 요청했다. 오랫동안 베토니 섬은 독립령으로 남아있었지만, 일리악 만 내에서 해적 행위가 증가하자 모그레프 경은 베토니가 안고 있던 취약성을 진정으로 깨달았다. 라이산더스 왕은 키나레스 대사제 베네크 경을 포함한 많은 이의 조언에 따라 베토니 경의 요청을 수용하여 베토니의 영주가 되었다. 베토니가 어업이 번창한 섬이고 전략적인 요충지이긴 했으나, 대거폴과 베토니의 예속 관계는 순전히 자비심에서 비롯되었다. 라이산더스는 누가 베토니를 돕지 않는다면, 더욱더 나쁜 상대가 나타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해적의 손에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을 이해했다.
불행히도, 센티넬의 카마론 왕은 이 예속 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200년 된 옛 규약을 인용하면서, 이것이 베토니가 예부터 센티넬 왕국의 영지였다는 점을 시사하도록 무단 작성된 규약이 아닌 이상 전쟁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카마론 왕의 조언자 대부분은 전통적으로 호전성 높은 나라의 군 지도자들이었으므로 왕의 결정을 지지했다. 왕의 최고 고문은 신탁이라 불리던 여성으로 왕의 죽음과 패전을 예측했지만, 이 타당한 발언은 묵살당하고 여성은 궁전에서 추방당했다. 카마론 왕은 최고 고문의 조언을 들었어야 했다.
베토니 전쟁에서 난투가 몇 번 벌어졌을 때는 센티넬이 이겼으나, 주요 전투는 대거폴이 승리했다. 라이산더스 왕의 후계자 고트리드 왕자와 브리드웰 경 장군은 훌륭한 지도자이자 전사였으며, 블러프 전투와 크래그홀드 공성전 양쪽 모두 대거폴의 승리로 끝났다.
한 번만 더 승리하면 대거폴이 전쟁의 승전고를 울렸겠지만, 그때 라이산더스 왕의 왕실에서 흔치 않은 가족 분쟁이 발생했다. 왕의 모친인 미망인 왕비 눌파가는 베토니 전쟁이 시작될 무렵부터 이 전쟁을 불안히 여겼으며, 이제는 대재앙의 환영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쟁이 계속된다면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이 죽는 모습을 본 것이다. 성공에 도취한 라이산더스 왕은 눌파가의 우려를 들으려하지 않았고 결국 눌파가는 궁전을 떠났다. 그때서야 라이산더스는 자신의 어머니가 아들의 죽음이 임박했다고 확신했음을 깨닫는다. 그는 중립을 지키던 라이히 그래드 킵의 영주를 중재자로 내세워 평화 협정을 적극적으로 협의하기 시작했다.
라이히 그래드킵 평화 협정은 성사되지 않았다. 카마론 왕은 기본적으로 다소 정중한 사람이었지만 전쟁의 패색이 짙어지자 그 정중함은 옅어졌고, 이 평화 협정에 센티넬과 대거폴 왕국 간의 베토니 주권 공유에 대한 공식 선언이 포함될 예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카마론 왕은 갑자기 격분했다. 온건파 중립 영지 공격에 관한 조약은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카마론 왕은 그의 군대에게 라이히 그래드킵에서 폭동을 일으키라고 명령했다. 처음에는 궁전의 방마다, 다음에는 수도의 거리에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대거폴 군대의 지원을 받고서야 폭동으로 야기된 혼란이 비교적 진압되었다. 센티넬 군대는 이오르스 버로우랜드로 도망갔으며 대거폴 군대는 이들을 레이브니안 포레스트까지 추적한 뒤 진을 쳤다.
일주일간의 기간을 틈타 양측은 지원군을 요청하고 전략을 세운 다음, 두 군대는 ‘크라인게인 들판’이라 불리는 꽃이 만발한 목초지를 사이에 두고 만났다. 교전의 열기 속에 부자연스러운 안개가 전장 위로 번지며 모든 전투원의 시야를 가렸다. 마침내 안개가 물러가자, 라이산더스 왕이 표식 없는 화살에 목이 뚫린 채 시체로 발견됐다.
대거폴은 왕의 죽음을 애도할 겨를이 없었다. 전투에서 불굴의 용기를 보여 병사들 사이에서 평판이 높은 젊은 왕자 고트리드가 이제 막 전장을 떠난 왕의 뒤를 이었고, 군대에 진군하라 명했다. 어쩌면 용감한 젊은 전사가 왕으로 변하여 왕위의 상징을 완전히 갖추고 전장에 등장한 모습이 대거폴 병사들의 사기를 돋구었을 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와 상관없이 전쟁의 판도가 뒤집혔을 가능성도 있지만, 센티넬 측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센티넬 군이 퇴각하기 전 고트리드 왕은 카마론 왕을 만나 맞붙어 싸웠다. 두 군주 모두 훌륭한 전사였으나 고트리드 왕이 더욱 숙련된 검사였던 탓에 그날 카마론 왕은 서거했다. 센티넬의 오레스메 경은 대거폴에 정식으로 항복 선언을 하며 베토니와 관련된 모든 권리를 공식적으로 포기했다. 나중에 그는 센티넬로 돌아가는 배 위에서 자살한다.
일리악 만 양쪽 지역의 도시와 마을에게 평화 협정은 힘든 과정이었다. 공식 평화 협정의 일환으로 고트리드 왕은 고 카마론 왕과 아코리티 섭정 왕비의 유일한 딸 아웁카-이 공주에게 청혼했다. 이 청혼은 왕국 간의 우정을 회복하려는 의도였는데, 센티넬 궁중 다수가 공주를 대거폴과의 끈이 아닌 전쟁의 볼모로 보긴 했지만, 이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하였다.
라이히 그래드킵을 통치하던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는 병약한 아기였으므로, 왕실 위원회는 그라드독 경의 사촌 아우베론 플라이트 경에게 섭정으로서 영지를 다스려달라 간청하였다. 플라이트 경은 섭정직을 받아들였는데, 그의 강력하고 독재에 가까운 통치형태는 라이히 그래드킵의 피투성이 협정 이후 라이히 그래드킵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조처였다. 후계자 아기가 사망하자 플라이트 경의 가신들은 기뻐하며 플라이트 경과 그의 아내 도리아나를 섭정에서 영주의 지위로 승격시켰을뿐만 아니라, 새 영주에게 경의를 표하여 영지의 이름을 바꾸는 데 동의했다. 라이히 그래드킵은 플라이트 경의 선조들이 살던 고향의 이름을 딴 안티클레어가 되었다.
베토니 전쟁의 공포는 여전히, 심지어 안티클레어에서도 살아 숨 쉬고 있다. 대거폴과 센티넬이 고트리드 왕과 아웁카-이 공주의 결혼을 불화보다는 평화의 상징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는 오직 시간만이 말해줄 것이다.
—3E 404년, 2월 14일
베토니 전쟁
베토니 전쟁에 대한 설명
불퍼 뉴게이트 저
일리악 만의 역사를 전부 서술한다면, 아마 소름 끼치기로는 최고의 자리에 오른 언더킹의 전설보다도 훨씬 큰 공포를 독자 여러분에게 선사할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무력에 의지했던 '베토니 전쟁'도 1시대와 2시대 전쟁과 비교하면 무색해질 지경이니 말이다. '오시니움 포위전'은 1시대 950년에서 980년까지 쉼 없이 진행되었다. 천 년 후, ‘정의의 전쟁’과 쓰라시안 전염병은 일리악 만 인구의 절반 이상을 휩쓸어갔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베토니 전쟁' 에 매료되는데, 이는 이 전쟁이 우리와 관련이 있어서만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베토니의 모그레프 경은 평화를 추구하여 대거폴에게 베토니 섬을 보호해달라 요청했다. 오랫동안 베토니 섬은 독립령으로 남아있었지만, 일리악 만 내에서 해적 행위가 증가하자 모그레프 경은 베토니가 안고 있던 취약성을 진정으로 깨달았다. 라이산더스 왕은 키나레스 대사제 베네크 경을 포함한 많은 이의 조언에 따라 베토니 경의 요청을 수용하여 베토니의 영주가 되었다. 베토니가 어업이 번창한 섬이고 전략적인 요충지이긴 했으나, 대거폴과 베토니의 예속 관계는 순전히 자비심에서 비롯되었다. 라이산더스는 누가 베토니를 돕지 않는다면, 더욱더 나쁜 상대가 나타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해적의 손에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을 이해했다.
불행히도, 센티넬의 카마론 왕은 이 예속 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200년 된 옛 규약을 인용하면서, 이것이 베토니가 예부터 센티넬 왕국의 영지였다는 점을 시사하도록 무단 작성된 규약이 아닌 이상 전쟁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카마론 왕의 조언자 대부분은 전통적으로 호전성 높은 나라의 군 지도자들이었으므로 왕의 결정을 지지했다. 왕의 최고 고문은 신탁이라 불리던 여성으로 왕의 죽음과 패전을 예측했지만, 이 타당한 발언은 묵살당하고 여성은 궁전에서 추방당했다. 카마론 왕은 최고 고문의 조언을 들었어야 했다.
베토니 전쟁에서 난투가 몇 번 벌어졌을 때는 센티넬이 이겼으나, 주요 전투는 대거폴이 승리했다. 라이산더스 왕의 후계자 고트리드 왕자와 브리드웰 경 장군은 훌륭한 지도자이자 전사였으며, 블러프 전투와 크래그홀드 공성전 양쪽 모두 대거폴의 승리로 끝났다.
한 번만 더 승리하면 대거폴이 전쟁의 승전고를 울렸겠지만, 그때 라이산더스 왕의 왕실에서 흔치 않은 가족 분쟁이 발생했다. 왕의 모친인 미망인 왕비 눌파가는 베토니 전쟁이 시작될 무렵부터 이 전쟁을 불안히 여겼으며, 이제는 대재앙의 환영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쟁이 계속된다면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이 죽는 모습을 본 것이다. 성공에 도취한 라이산더스 왕은 눌파가의 우려를 들으려하지 않았고 결국 눌파가는 궁전을 떠났다. 그때서야 라이산더스는 자신의 어머니가 아들의 죽음이 임박했다고 확신했음을 깨닫는다. 그는 중립을 지키던 라이히 그래드 킵의 영주를 중재자로 내세워 평화 협정을 적극적으로 협의하기 시작했다.
라이히 그래드킵 평화 협정은 성사되지 않았다. 카마론 왕은 기본적으로 다소 정중한 사람이었지만 전쟁의 패색이 짙어지자 그 정중함은 옅어졌고, 이 평화 협정에 센티넬과 대거폴 왕국 간의 베토니 주권 공유에 대한 공식 선언이 포함될 예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카마론 왕은 갑자기 격분했다. 온건파 중립 영지 공격에 관한 조약은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카마론 왕은 그의 군대에게 라이히 그래드킵에서 폭동을 일으키라고 명령했다. 처음에는 궁전의 방마다, 다음에는 수도의 거리에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대거폴 군대의 지원을 받고서야 폭동으로 야기된 혼란이 비교적 진압되었다. 센티넬 군대는 이오르스 버로우랜드로 도망갔으며 대거폴 군대는 이들을 레이브니안 포레스트까지 추적한 뒤 진을 쳤다.
일주일간의 기간을 틈타 양측은 지원군을 요청하고 전략을 세운 다음, 두 군대는 ‘크라인게인 들판’이라 불리는 꽃이 만발한 목초지를 사이에 두고 만났다. 교전의 열기 속에 부자연스러운 안개가 전장 위로 번지며 모든 전투원의 시야를 가렸다. 마침내 안개가 물러가자, 라이산더스 왕이 표식 없는 화살에 목이 뚫린 채 시체로 발견됐다.
대거폴은 왕의 죽음을 애도할 겨를이 없었다. 전투에서 불굴의 용기를 보여 병사들 사이에서 평판이 높은 젊은 왕자 고트리드가 이제 막 전장을 떠난 왕의 뒤를 이었고, 군대에 진군하라 명했다. 어쩌면 용감한 젊은 전사가 왕으로 변하여 왕위의 상징을 완전히 갖추고 전장에 등장한 모습이 대거폴 병사들의 사기를 돋구었을 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와 상관없이 전쟁의 판도가 뒤집혔을 가능성도 있지만, 센티넬 측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센티넬 군이 퇴각하기 전 고트리드 왕은 카마론 왕을 만나 맞붙어 싸웠다. 두 군주 모두 훌륭한 전사였으나 고트리드 왕이 더욱 숙련된 검사였던 탓에 그날 카마론 왕은 서거했다. 센티넬의 오레스메 경은 대거폴에 정식으로 항복 선언을 하며 베토니와 관련된 모든 권리를 공식적으로 포기했다. 나중에 그는 센티넬로 돌아가는 배 위에서 자살한다.
일리악 만 양쪽 지역의 도시와 마을에게 평화 협정은 힘든 과정이었다. 공식 평화 협정의 일환으로 고트리드 왕은 고 카마론 왕과 아코리티 섭정 왕비의 유일한 딸 아웁카-이 공주에게 청혼했다. 이 청혼은 왕국 간의 우정을 회복하려는 의도였는데, 센티넬 궁중 다수가 공주를 대거폴과의 끈이 아닌 전쟁의 볼모로 보긴 했지만, 이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하였다.
라이히 그래드킵을 통치하던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는 병약한 아기였으므로, 왕실 위원회는 그라드독 경의 사촌 아우베론 플라이트 경에게 섭정으로서 영지를 다스려달라 간청하였다. 플라이트 경은 섭정직을 받아들였는데, 그의 강력하고 독재에 가까운 통치형태는 라이히 그래드킵의 피투성이 협정 이후 라이히 그래드킵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조처였다. 후계자 아기가 사망하자 플라이트 경의 가신들은 기뻐하며 플라이트 경과 그의 아내 도리아나를 섭정에서 영주의 지위로 승격시켰을뿐만 아니라, 새 영주에게 경의를 표하여 영지의 이름을 바꾸는 데 동의했다. 라이히 그래드킵은 플라이트 경의 선조들이 살던 고향의 이름을 딴 안티클레어가 되었다.
베토니 전쟁의 공포는 여전히, 심지어 안티클레어에서도 살아 숨 쉬고 있다. 대거폴과 센티넬이 고트리드 왕과 아웁카-이 공주의 결혼을 불화보다는 평화의 상징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는 오직 시간만이 말해줄 것이다.
—3E 404년, 2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