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연방 공화국의 도시 Belo Horizonte 벨루오리존치[1] | ||
지역 | 미나스제라이스주 | |
면적 | 331km² | |
인구 | 2,500,000 명 | |
도시권 인구 | 5,160,000 명 | |
인구밀도 | 7,561명/km² | |
시간대 | UTC-3 (B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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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 동남 지방의 미나스제라이스주의 주도. 인구는 2,438,526명으로, 브라질에서 6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다. 광역권 기준으로는 브라질 3위의 대도시권으로서 5,873,841 명이 거주한다. 리우데자네이루 북쪽으로 약 340km 떨어져 있으며, 해발고도 800~900m 가량의 고원 지대다.
브라질리아 이전에 만들어진 계획 도시다. 미나스제라이스주의 옛 주도였던 오루프레투를 대신하는 계획 도시로 1896년에 만들어졌으며, 19세기부터 주변의 지하 자원을 바탕으로 발전했다.
2. 축구
이 곳을 연고지로 하는 프로 축구팀은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아메리카 미네이루와 크루제이루 EC가 있다. 각각 아레나 MRV, 아레나 인데펜덴시아, 미네이랑 구장을 홈 경기장으로 이용하고 있다.하지만 이 도시가 축구계에서 유명한 이유는 바로 이 미네이랑 구장에서 브라질 축구 역사와 관련된 가슴아픈 사건이 두 번이나 발생했기 때문이다.
첫번째는 1975 코파 아메리카 대회. 이 당시 준결승에서 브라질은 페루에 3-1로 패했다. 하지만 이 당시 코파 아메리카는 브라질에서 열린 것이 아니라 남미 내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순회적으로 열렸던 대회였었으므로, 그 여파는 그렇게 상당하지 않았다. [2]
진짜 큰 파장을 일으킨 건 자국에서 두 번째로 개최된 월드컵에서였고, 이 비극적인 사건은 브라질 국가대표팀이 이전에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겪었던 마라카낭의 비극을 뛰어넘는 미네이랑의 비극이었다. 결국 미네이랑에서 믿기 어려운 대참사를 겪고 3-4위전으로 밀린 브라질은 독일에 이어 네덜란드에도 0:3으로 패하며 최다 실점 4위에 그치는 대굴욕을 당했다.
한편 브라질과 무관하게 큰 파장을 일으킨 일도 있다. 1950년 브라질 월드컵 당시 이곳에서 조별 리그 2조에서 미국과 잉글랜드가 맞붙었는데, 당시만 해도 아마추어 수준으로 평가받은 미국이 잉글랜드를 1:0으로 꺾은 대이변이 발생한 것.
리우 올림픽 축구 경기도 벨루오리존치에서 열렸다. C조 3차전, D조 3차전, 8강전(C조 1위 - D조 2위), 3-4위전 장소가 미네이랑이다. 이 곳에 올 브라질 올림픽 대표팀의 부담은 확실히 커질 것으로 보였으나, 브라질이 4강전에서 벨루오리존치행 거부포를 날린 네이마르를 앞세워 온두라스를 6:0으로 KO시키면서 결승전이 열리는 마라카낭 입성에 성공했다. 동시에 올림픽 결승전 상대는 2년 전 브라질에 역대급 아픔을 선사한 독일이었다. 그리고 브라질은 마라카낭에서 승부차기 끝에 독일을 이기며, 비록 U-23 팀이 나가는 올림픽이지만 역사적인 첫 올림픽 축구 금메달로 2년 전의 아픔을 달랬다.
대한민국도 리우 올림픽 축구를 통해 미네이랑에서 뛰어 보았지만, 온두라스에 패해 8강전에서 탈락했다. 그래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브라질에서 또다시 고배를 마셔야 했다.[3]
3. 기타
지우마 호세프 전 브라질 대통령이 이 곳 출신이다.최근 몇 년 간 살인율이 높은 도시 50곳 중 하나로 올라와 있다. 치안/자료해석 참고.
[1] 포르투갈어로 "아름다운 지평선"이라는 뜻이다.[2] 하지만 41년 후 브라질은 매사추세츠 주 폭스버러에서 페루를 통해 진정한 신의 손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체험하게 된다.[3] 그리고 2년 후 인도네시아에서 드디어 축배를 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