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4월 12일 함경남도함흥시에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1946년 작곡가로 처음 데뷔한 이후 1950년에는 연희전문 상과와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대학 재학 중에도 작곡가 정종길 에게 작곡을, 바리톤 최봉진 에게 성악을 배우고 가곡 <진달래꽃> ,<금잔디> 등을 발표하였으나, 6.25 전쟁 당시 대구로 피난을 갔을 때 시인 양영문에게 시를 받아 <명태>를 작곡하여 발표했을 때 대중들로부터 혹평을 받았고, 이후 작곡가의 길을 접고 외무부로 입사했다.
이후 1952년부터 1981년까지 미국, 일본, 대만, 브라질, 영국, 포르투갈을 거쳐 파키스탄 총영사를 지냈다. 외교관 시절인 1979년에 <초혼>을 작곡하여 외교관 파티에서 불러 한국의 문화예술을 알렸다. 외교관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음악계에서 소외당했음에도 명시에 곡을 붙이고 분단의 아픔, 통일 염원, 강산 예찬을 주제로 70여 곡의 가곡을 남겼다.
이로써 1960년대 중반부터 재평가된 그의 가곡은 선율 혹은 리듬, 가사에서 민족의 애환을 담고 민요 가락이나 장단으로 노래의 맛을 살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