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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천기개세(東明天氣蓋世)
- 동명천제의 기상이 세상을 덮으리라
- 동명천제의 기상이 세상을 덮으리라
나는 지금 내 몸에서 나오는 핏줄기로 간절히 외치고 있네. 대 고구려, 이 얼마나 오랫동안 가슴 속에 담아두었던 절규란 말인가! 허나, 난 이 고구려를 입으로 외칠 자격이 없네. 이렇게 피로 쓸 수밖에, 이렇게 아프게 불러내는 수밖에 없네. 이제 남은 생을 고구려를 위해 바치려고 하네. 몸과 마음이 다 부서져 먼지가 될 때까지 난 끝까지 싸우고 투쟁할 것이네.
고구려 백성들은 들으시오! 이 땅을 다스리는 자가 그 누구더라도 그들을 섬기며 어떻게든 살아남으시오! 목숨을 부지하는 일이라면 자존심 따위는 다 내다버리고 무슨 요구라도 다 들어주시오! 마지막까지 그대들의 목숨만은 끝내 지켜내야 하오! 목숨은 목숨을 낳을 것이오. 하나가 되든 둘이 되든 자식들을 낳아 이 땅에서 키우시오! 고구려는 없어져도 고구려 백성들은 남아 있어야 하오! 백성들이 있는 땅이야말로 고향이고 고국이 아니겠소! 고향을 잘 지켜주시오. 난 이렇게 떠나가지만 반드시 대의를 품은 자가 그대들 앞에 나타날 것이오. 그 때 그 사람을 도와서 다시 한 번 힘을 합쳐 주시오. 그때는 그대들이 낳은 자식들이 뜨거운 피를 펼쳐줄 것이오! 대 고구려는 그렇게 영원히 불멸할 것이오!
2006년~2007년 방영된 KBS1 대하드라마 <대조영>에서는 배우 길용우[1]가 연기했다. 작중 자식이 없는 것으로 묘사되며 그 때문인지 조카인 숙영을 친자식처럼 여겼고 숙영 역시 보장왕을 친아버지처럼 여겼다.
작중 초반 고구려 왕이었을때는 세간의 인식처럼 연개소문의 손에 의해 등극한 정통성 없는 임금으로 실권이 없는 허수아비로 묘사된다. 연개소문이 당나라 정벌을 하겠다는 말도 안되는 결정을 할때도 반대를 못하고 수그러드는 모습을 보이고 연개소문 사후에는 신료들의 기세에 눌려서 양만춘한테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구려 파트 자체가 연개소문과 양만춘이 다 해먹는 전개이고, 그 둘이 죽은 이후에도 왕권이 회복되지 않았기에, 보장왕이 뭘 할 수 있는 상황이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고구려 멸망 후에야 보장왕의 비중이 높아지고 진취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한다. 보장왕을 견제하던 기존의 고구려 권력층은 이미 죽거나 와해 되었고[2], 그나마 남아있던 고구려 군부 세력은 고안승의 배신으로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지만, 보장왕에게는 고구려의 마지막 임금이라는 타이틀은 그대로 남아있었기 때문. 평양성이 함락되고 고구려가 멸망할 때, 대조영이 탈출을 권했지만 보장왕은 고구려와 함께 죽고 싶다면서 거절했고, 포로로 잡힌 보장왕은 당나라로 압송된다. 귀양지에서 한동안 낚시나 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귀양살이할 때부터 야망없는 무기력한 인물인 척 하였으나 그 때 우연히 보장왕의 귀양지에 있던 미모사는 보장왕이 큰 뜻을 숨기고 있음을 파악하고 있었다. 이후 안동도독부의 조선 왕으로 임명되고 나서는 매일 취성루를 드나들며 주색잡기에 빠진 모습을 보인다. 취성루는 사실 보장왕이 책사 미모사에게 뒷돈을 대서 만든 동명천제단(東明天帝團)의 본거지였는데 보장왕은 주색잡기에 빠진 척하고 동명천제단 일원들과 몰래 만나며 고구려부흥운동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다. 보장왕은 고구려부흥운동의 주도자로 대조영을 선택하는데 당시 대조영은 한성에서 이해고의 습격을 받아 사지가 마비된 상태였고 대조영을 비롯하여 모두들 절망한 상태였다. 이 때 보장왕은 대고구려(大高句麗)라는 혈서를 써서 대조영에게 보냈고 과거의 환영[3]을 보고 각성한 대조영은 수많은 재활 훈련 끝에 부활에 성공한다.
대조영이 요동성에 돌아오자 보장왕은 동명천제단을 창설하였고 대조영을 중심으로 동명천제단은 안동도호부로 부임하는 당나라 관리들을 암살한다. 여기서 보장왕은 동명천제단의 세작 역할을 하는데 안동도호부를 속이기 위해 동명천제단에게 쫒기는 척 하여 마치 동명천제단의 다음 목표가 보장왕인 것처럼 위장한다. 제대로 낚인 안동도호부는 보장왕을 미끼로 함정을 팠지만 동명천제단은 그 사이 안동도호부를 빈집털이한다.
그러나 이문이 잠입시킨 부하들로 인해 동명천제단의 정체가 발각되었고 결국 대조영, 흑수돌, 걸사비우를 제외한 나머지 일원들이 모조리 붙잡히고 만다. 물론 이 때 아무도 자백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장왕이 동명천제단의 주도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지는 않았다(당나라 측에서는 심증만 있지 물증은 없어서 아직 보장왕을 건드리지 않았다). 설인귀 측에서는 대조영을 낚을 겸 이문의 전공을 없애버리기 위해 포로들을 모조리 처형하는데 대중상이 처형당할 때 보장왕은 자기가 포로들을 처형하겠다고 나서서는 자기가 동명천제단의 일원이었음을 당당히 밝힌다. 설인귀 측이 당황하는 사이 보장왕은 백성들과 고구려 출신 병사들에게 고구려부흥운동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는 연설을 하며 포로들의 포박을 풀어준다. 이에 백성들과 병사들은 처형장에 달려들어 포로들을 구출했고 이를 틈타 미모사 일행이 탈출에 성공한다. 이문이 보장왕을 인질로 삼으면서 결국 대조영이 포로로 잡히게 되었지만 이 때 보장왕이 처형장에서 자신을 희생하지 않았더라면 대중상을 비롯한 동명천제단 인원들이 모조리 처형당했을게 뻔한 상황이었다.
이 직전까지 보장왕은 주색잡기에 빠져있는 역적 노릇을 하고 있었기에 보장왕은 백성들에게 돌을 맞을 정도로 이미지가 나빴다. 그러나 보장왕이 동명천제단의 주도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백성들의 보장왕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달라졌고 요동성 백성들은 보장왕을 석방하라며 안동도호부 청사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인다. 이미 처형장 사건 때 백성들이 다수 희생된 관계로 보장왕 및 대조영 측은 요동성 백성들이 더이상 피해를 입지 않도록 그들이 해산하기를 원했으나 백성들은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안동도호부 측은 백성들을 유혈 진압하고자 한다. 이에 보장왕은 설인귀에게 자신이 백성들을 해산시키겠다며 제안했으나 이미 보장왕의 영향력을 경험한 설인귀는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위험 때문에 보장왕의 제안을 거절한다. 제안을 거절하기는 했지만 이 때 설인귀는 보장왕을 당태종 이세민과 필적할만한 영웅으로 높이 평가하며 보장왕에게 경의를 표한다.[4][5] 연남생이 목숨을 건 호소를 하여 백성들을 자진 해산시킨 후 보장왕이 당나라로 끌려갈 때 또다시 백성들이 몰려오는데 이 때 보장왕이 그들 스스로의 목숨을 아끼라는 연설을 하여 백성들을 해산시킨다. 여기에 힘을 다 써버렸는지 귀양길에 중병에 걸리고 만다.
결국 시골[6]로 귀양을 가고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병이 점점 더 악화되었다. 당시 당나라 장수였던 대조영 일행이 탈출 직전에 보장왕을 찾아갔는데 보장왕은 고구려 땅에 새로운 국가를 세우려는 자는 자신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하며 대조영에게 새로운 국가를 세우라는 최후의 명령을 내리고 친딸이나 다름없는 숙영을 부탁한다. 이에 대조영은 보장왕이 보는 앞에서 숙영과 결혼하는데 걸사비우와 흑수돌의 부축을 받은 채 결혼식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모습을 끝으로 보장왕은 작에서 퇴장한다.
대조영에게는 여러 모로 은인이다. 제왕지운으로 인해 역신의 운명으로 몰려서 천민으로 살고 있던 대조영의 족쇄를 풀어주었고, 대조영이 평양성 전투 시에 당나라에 항복하려는 부기원을 죽이려다 투옥되었을 때에도 몰래 풀어주며 대조영의 의견을 받아들였으며, 대조영이 화살을 맞고 사지마비가 되었을 때 자신의 피로 친필서찰을 보내 대조영을 각성시켰고, 마지막엔 자기 친조카인 숙영을 대조영과 혼인시킨다.
[1] 1992년 KBS 드라마 <삼국기>에서는 의자왕 역, 1999년 KBS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복지겸 역. <태조 왕건>에서는 고려 건국 이전부터 복지겸이 왕건보다 관직상 우위에 있는 기간이 대부분이었음에도 서로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2] 평양성이 함락되면서 5부가 귀족들은 몰살을 당했고, 부기원, 사부구라고 해봤자 신성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연남생에 의해 오지로 유배 당했을 정도로 권력 기반이 처참했다.[3] 어머니, 초린, 연개소문의 죽음, 양만춘의 죽음, 불타는 평양성, 신라군의 배신, 이해고의 습격[4] 작중 설인귀는 죽을 때까지 당태종을 유일무이한 진정한 영웅이자 주군으로 여기는데 인생의 주군과 동급으로 평가할 정도로 설인귀는 보장왕의 인품과 열정을 높이 평가한 것이었다. 심지어 설인귀가 당태종 사후 충성을 바친 측천무후조차 설인귀로부터 총명하다는 평까지는 받았어도 당태종에 필적한다는 평은 끝내 받지 못한 것을 보면 설인귀가 얼마나 보장왕을 높게 평가했는지 알 수 있다.[5] 실제 역사 행적을 보면 설인귀가 측천무후를 당태종보다는 낮게 평가하는 것이 정확하기는 했다. 측천무후의 내치는 당태종의 정관의 치에 빗대어 무후의 치라 불리기는 했으나 외정에서는 실책이 컸다.[6] 당나라 기록에 의하면 파촉 지방으로 유배되었다고 되어 있다. 작중에서 어딘지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말타고 사나흘 걸린다는 대조영의 언급이 있었다. 작가들이 삼국지를 통째로 베껴 스토리를 썼으니 제작진이 생각한 유배지도 파촉이 맞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