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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왕(고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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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820000> 단군조선
초대 군주 계보 미상 제?대 군주
조선후 ?세
<rowcolor=#ffd400> 계보 미상 초대 왕 제2대 왕 제3대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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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왕 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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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만왕 □왕 우거왕
'기자'의 재위 및 '기자조선'의 존재는 학계에서 인정되지 아니함.
'한후'는 고조선 군주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음.
}}}}}}}}}}}}

고조선 제?대 국왕
부왕 | 否王
<colbgcolor=#820000><colcolor=#ffd400> 출생 연대 미상
고조선?
사망 기원전 210년경 추정
고조선?
재위 제?대 국왕
기원전 230년 ~ 기원전 210년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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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20000><colcolor=#ffd400> 한(韓) / 기(箕)[1]
부(否) / 비(丕)
부친 불명
모후 불명
왕자 준왕
시호 불명
왕호 부왕(否王)
비왕(丕王) }}}}}}}}}

1. 개요2. 행적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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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조선의 군주. 혹은 비왕(丕王)이라고도 하며 (기자를 제외한다면) 문헌상으로 이름이 전해지는 한국사 최초의 군주[2]이다.

2. 행적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뒤, 蒙恬을 시켜서 長城을 쌓게 하여 遼東에까지 이르렀다. 이때에 조선왕 부가 왕이 되었는데, 秦나라의 습격을 두려워한 나머지 政略상 진나라에 服屬은 하였으나 朝會에는 나가지 않았다. 부가 죽고 그 아들 準이 즉위하였다.(중략)
及秦幷天下, 使蒙恬築長城, 到遼東. 時朝鮮王否立, 畏秦襲之, 略服屬秦, 不肯朝會. 否死, 其子準立.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권30 동이전(東夷傳) 한(韓)

부왕 이전의 고조선의 군주의 이름은 시조인 단군 왕검이나 즉위 여부 자체가 의심스러운 기자부루 같이 신빙성이 의심되는 것을 제외하면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부왕은 기록은 소략하기 그지없지만, 한국사에서 이름이 전해지는 최초의 군주라 행적에 비해 의외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군주.

그 이전에 조선왕 1세가 칭왕 했다느니, 연나라를 치려 한다느니 하는 대목이 정사 삼국지를 통해 전해지기는 하지만, 이름이 기록되지 않다 보니 문헌이 추가로 발굴되지 않는 이상은 이 때의 재위했던 군주나 단군의 이름을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이다. 기자조선 계보도가 전해져 내려온다고는 하지만 이는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는게 정설이라 신뢰성이 매우 낮으며, 환단고기규원사화 같은 저서에서도 역대 단군의 계보도가 기록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저서 자체의 사료적 신빙성이 전혀 없는 것으로 입증되어 이 또한 신뢰성이 떨어진다.

진시황이 활동했을 무렵에 즉위한 것으로 보인다. 삼국지의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214년, 시황제가 몽염을 시켜 만리장성을 쌓게 했고 이에 조선왕 부(否)진나라가 쳐들어 올 것을 두려워해 진나라에 복종했다고 하나 입조하지 않았고, 그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준(準)이 즉위했다. 하지만 오히려 진나라의 멸망 직후에 팽창하는 모습을 보였으므로 명목상으로만 진나라에게 숙인것으로 추측된다.

대체적으로 기원전 210년경에 사망한 걸로 보이지만 기록은 없다. 다만 부왕에서 준왕으로의 부자 세습이 이루어진 것은 한국 사학계에서 국가의 일정한 발전으로 다루고 있다.

3. 기타

청주 한씨 족보에 따르면 부왕(否王)의 부왕(父王)은 장평왕(章平王), 조부는 조선왕 3세에 대응하는 현문왕(顯文王)이라고 하며, 부왕(否王)의 시호는 종통왕(宗統王)이라 하나 21세기 기준 이 기록들은 조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라 사료로 인정되지 않는다.

문서의 역사를 보면 기원전 232년 ~ 기원전 210년에 재위한 것으로 기록되었던 적이 있다. 이것은 대개 환단고기와 같은 재야 사학의 위조된 기록이나 족보 등에서만 제한적으로 확인될 뿐이므로 신용할 수 없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부왕이 부루를 비하한 말이므로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신채호의 착오일 가능성이 있다.


[1] 다만 당시에 성씨가 존재했을 가능성 자체가 없다. 기씨나 한씨로 표현하는 것은 대개 후대에 족보를 만들거나 유교적 관점에서 제사를 지내기 위해 가져다 붙였을 것이다. 특히 기자조선의 존재 자체가 부정되기도 하는 마당에 기씨를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기로 한다.[2] 단군이나 기자 같은 신화적 존재를 제외하면, 처음으로 칭왕했다고 문헌에 등장하는 사람은 부왕의 윗세대로 이름은 전해지지 않은 조선왕 1세가 있다. 다만 이름이 전해지는 한국사 최초의 인물은 아닌데, 조선왕 1세의 신하였던 대부례라는 인물이 문헌에 전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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