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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1 15:36:00

스캇 브로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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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캇 브로셔스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뉴욕 양키스 엠블럼.svg
MLB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
1998 1999 2000

파일:1998 MLB 올스타전 로고.svg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1998

리반 에르난데스
(플로리다 말린스)
스캇 브로셔스
(뉴욕 양키스)
마리아노 리베라
(뉴욕 양키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99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3루수 부문 골드 글러브
로빈 벤추라
(시카고 화이트삭스)
스캇 브로셔스
(뉴욕 양키스)
트래비스 프라이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ffffff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등번호 45번}}}
조니 구즈만
(1991)
<colbgcolor=#efb21e> 스캇 브로셔스
(1991~1992)
대니 타타불
(1995)
{{{#ffffff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등번호 2번}}}
반스 로우
(1991)
스캇 브로셔스
(1992)
랜디 레디
(1992)
{{{#ffffff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등번호 7번}}}
마이크 킹거리
(1992)
스캇 브로셔스
(1993~1997)
케빈 미첼
(1998)
뉴욕 양키스 등번호 18번
앤디 폭스
(1997)
스캇 브로셔스
(1998~2001)
마커스 테임즈
(2002)
시애틀 매리너스 등번호 29번
로에니스 엘리아스
(2014~2015)
스캇 브로셔스
(2017)
스캇 서비스
(2018~2019)
시애틀 매리너스 등번호 28번
마이크 마자마
(2017)
스캇 브로셔스
(2018)
폴 데이비스
(2019)
}}} ||
파일:external/www.thebaseballpage.com/scott_brosius.jpg
스캇 브로셔스
Scott Brosius
본명 스캇 데이비드 브로셔스
Scott David Brosius
출생 1966년 8월 15일 ([age(1966-08-15)]세)
오리건 주 힐스보로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5cm / 90kg
포지션 3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7년 드래프트 20라운드 전체 511번 (OAK)
소속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91~1997)
뉴욕 양키스 (1998~2001)
지도자 시애틀 매리너스 보조 타격코치 (2017)
시애틀 매리너스 3루 주루코치 (2018)
1. 개요2. 선수 경력
2.1. 초창기2.2. 오클랜드 어슬레틱스2.3. 뉴욕 양키스
3. 은퇴 이후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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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뉴욕 양키스에서 활동한 전 야구선수. 통산 11시즌 동안 .257의 평균 타율과 141개의 홈런, 531타점, OPS 0.744이라는 기록이 말해주듯이 평범한 성적을 거둔 선수이지만 월드 시리즈를 비롯한 큰 경기에 강했기 때문에 팬들의 뇌리에 강렬히 남은 선수이기도 하다.

2. 선수 경력

2.1. 초창기

오리건밀워키에서 나고 자란 브로셔스는 고등학교 시절이던 청소년 국가 대표로 선출되기도 했으며 이후 린필드 대학교를 거쳐 1991년 드래프트 20 라운드에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에게 지명된다. 드래프트 라운드가 보여주듯이 이 시기에는 그저 그런 흔한 마이너리그 선수였다.

2.2.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4년간의 마이너리그를 거쳐 1991년 8월 오클랜드에서 데뷔한 브로셔스는 자신의 데뷔전을 홈런으로 장식한다. 이후 90년대 내내 오클랜드의 주전 3루수 자리를 지키지만 수비가 썩 훌륭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 시기 외야수를 비롯한 다른 포지션도 겸업한다.[1] 1996시즌 .304의 타율에 22개의 홈런을 터뜨리며 드디어 포텐셜이 폭발하나 했는데 다음해인 97시즌, 정규타석을 채운 선수들 중에 타율, 출루율, 장타율이 모두 꼴찌를 차지하며 대차게 말아먹었다. 결국 이 해를 끝으로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된다.[2]

2.3. 뉴욕 양키스

근데 이 분이 브롱스에 들어오자마자 사람이 바뀐다![3]

양키스에서의 첫 해인 1998년 3할 타율을 되찾고 19홈런에 98타점을 기록하며 생애 첫 올스타로 선출된 데 이어 월드시리즈에서는 .471의 타율에 2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생애 첫 우승반지 득템을 물론이거니와 MVP로까지 뽑히기도 했다!

다만 성적은 98 시즌 이후 공수 양면에서 다시 커리어 평균으로 수렴. 심지어 필딩율도 좋지 않아서 수비 못하는 선수라는 오명을 뒤집어 썼지만, 세이버매트리션의 의견으로는 수비를 못하는 선수가 아닌, 적어도 3루수 수비 만큼은 잘했다는 평이 많다. 99년에는 골드글러브까지 수상한다. 브로셔스는 2001년까지 양키스 소속으로 뛰면서 99년00년에 우승 반지를 득템하고 양키스 팬들의 환호 속에서 영예롭게 은퇴한다. 거둔 성적은 양키스들의 들과 비교하면 보잘것 없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보여준 놀라운 집중력과 사교적인 성격, 부상을 당하지 않는 강철같은 체력 등이 그를 레전드로 양키스 팬들의 머리에 남게 했다. 특히나 김병현을 상대로 기록한 2001년 월드 시리즈 5차전의 동점 투런은 아직까지도 언급될 정도.

구단 측도 레전드로 인정해 주는지 호르헤 포사다앤디 페티트의 영구결번식에 그를 초청했다. ‘명가’ 양키스, 황금시대를 함께한 전설들

3. 은퇴 이후

은퇴 후 모교인 린필드 대학교 야구부 코치를 맡았다.[4] 2009년 월드 시리즈 6차전에서 시구를 했는데 그의 기운이 전해진 덕인지 양키스는 이 경기에서 필라델피아를 꺾고 통합 27번째 우승을 차지한다.

2019년에 미국 야구 국가대표팀 벤치코치로 선임됐다. 이후 감독이었던 조 지라디가 일신상의 이유로 사임하면서 감독직을 이어받게 됐다. 이후 올림픽이 코로나19로 인해 연기되면서 감독직을 내려놨다. 후임은 마이크 소시아.

4. 관련 문서



[1] 특히 외야수로는 300경기 이상 뛰었다.[2] 트레이드 상대는 케니 로저스.[3] 다만 케니 로저스도 오클랜드 가서 잘했기 때문에 윈윈 트레이드라고 보는게 옳다.[4] 2015년에 사퇴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