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4-19 16:04:20

브루클린 대교

브루클린 다리에서 넘어옴
브루클린 대교
Brooklyn Bridge
시빅 센터
휴 L. 캐리 터널 이스트 강의 교량 및 터널 맨해튼 교
브루클린 다운타운
파일:Brooklyn_Bridge_seen_from_One_World_Trade_Center_Skypod.jpg
분류
자동차 전용도로, 자전거도로, 보행자도로
관리
뉴욕시 교통국
(New York City Department of Transportation)
길이 · 폭 차로 수
1,833.7m · 25.9m 왕복 6차로
개통일
1883년 5월 24일
구조형식
현수교
(Suspension Bridge)
1. 개요2. 한 가족의 세대를 바친 근성의 건축3. 여담4. 미디어에서의 등장

[clearfix]

1. 개요

미국 뉴욕시의 이스트 강에 놓인 교량. 브루클린 다운타운과 맨해튼 로어 이스트 사이드를 잇는다. 왕복 6차로로 구성되어 있다.[1]

1869년 착공하여 1883년 완공하였으며 당시 총 길이 5,989피트(약 1.8km)의 다리로 완공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임과 동시에 뉴욕시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고. 또한 최초로 철 케이블을 사용하여 토목공학의 정수로 불린다. 현재 뉴욕의 매우 중요한 교통로이자 관광지, 건축물 중 하나. 원래 뉴욕에선 안 중요한 걸 찾는 게 더 힘들겠지만 세계최초의 현수교이며,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기도 하다.
파일:external/stacyfischer.files.wordpress.com/brooklyn-bridge-walkway-3.jpg

윌리엄스버그 다리처럼 양 차로 사이의 가운데에 널찍한 보행자용 길이 존재하며 뉴욕 맨해튼과 뉴욕 브루클린을 잇는다. 뉴욕 특유의 무지막지한 차량통행량과 별개로 중앙의 보행자용 보도가 있어 이 보도를 지나다니는 시민들과 관광객들도 많다. 뉴욕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들도 보통 여기서 시작하거나, 이곳을 꼭 지나가도록 코스가 지정된다. 또한 다리 특유의 랜드마크성과 유니크함 덕에 맨해튼이나 브루클린 쪽에서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경우도 매우 많다. 도시적인 느낌의 극치를 보여주며, 고풍스러운 거대한 다리의 뒤로 초고층빌딩이 깔려있는 대도시의 장관은 누구라도 카메라를 들게 만든다고... 특히 야경은 미칠 듯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검색만 해봐도 주간보다는 야간에 찍은 사진이 더 예쁘게(?) 신경 쓰여서 찍은 게 많다. 고속도로를 덮도 있는 철골 구조물 위에는 올라가지 말라고 쓰여 있기는 하나 올라가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은 등 별로 지켜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안전망이 없기 때문에 떨어지면 추락 및 차량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높아 안전상 올라가지 않는 게 좋다.

샌프란시스코금문교마냥 이 다리도 헷갈리는 또 다른 다리가 존재하는데, 그건 바로 옆에 놓인 맨해튼교. 장소가 영 다르고 생김새도 딴판인 금문교와 베이 브릿지와 다르게 브루클린 다리와 맨해튼 다리는 서로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까이 있으며, 세부적인 형태를 뺀다면 생김새도 비슷해서 잘 모른다면 헷갈릴 수 있다.

원래 다리의 이름은 뉴욕 브루클린 교(New York and Brooklyn Bridge)였으나 1867년 1월 25일 지역 신문사 브루클린 데일리 이글에 "브루클린 대교(Brooklyn Big Bridge)"로 이름을 줄이자는 의견이 전달되어 현재까지 이어진다.

2. 한 가족의 세대를 바친 근성의 건축

파일:external/www.engineersjournal.ie/1.jpg

다리의 건설은 시기상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19세기 당시 이동량은 많았지만 넓고 물살이 센 이스트 강을 건너는 방법은 선박밖에 없었는데, 토목기술자 존 어거스터스 로블링은 이곳에 다리를 놓을 것을 뉴욕시장에게 주장하였고, 지형적 특성상 강 중간에 교각이 없는 다리를 짓는다는 설계를 내놓는다. 너무나도 획기적이고 위험한 방법이라 전문가들 대부분이 반대하는 가운데 존 로블링과 그의 아들 워싱턴 로블링이 뉴욕시장과 금융업자들을 설득, 현재가치로 3억 2000만 달러 가치의 공사자금을 모았고 건설에 착수했다.

하지만 존 로블링이 공사를 시작하던 해 페리와 선착장 사이에 다리가 끼어 다리를 절단했으나 파상풍 합병증으로 죽고, 아들 워싱턴마저 교각 기초 공사단계 중 혈관에 공기 방울이 생겨서 혈관을 막아버리는 공기색전증(잠수병의 일종)에 걸려 말도 못하고 움직일 수도 없는 불구가 되어버리는 참사가 일어났다. 당시 교각은 공기잠함(케이슨)을 사용해서 강바닥 아래 지하공간에 호흡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거길 폭약으로 발파하는 식으로 기초공사를 해나갔는데, 이 과정에서 압력의 차이 때문에 잠수병에 걸린 것이다. 워싱턴 외에도 노동자 사이에서 100여건 이상의 잠수병이 발병했고 이 중 3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그 상황에서도 워싱턴은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손가락 하나로 자신의 아내 에밀리(존 로블링의 며느리)와 나름대로의 규칙을 만들어 다리가 설계대로 만들어 지는 것을 도왔으며, 워싱턴 본인은 브루클린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망원경으로 공사현장을 지켜보며 감독했다. 그 와중에 공사현장의 공기 잠함들에서 화재가 난다거나 압축공기가 폭발하는 등 온갖 난리가 났고 맨해튼 쪽 교각에 있는 고정 장치가 끊어져서 케이블이 강에 빠져버리질 않나, 심지어 강선계약업자들이 사기를 쳐서 수 톤(ton)의 케이블을 다시 교체하는 등 말 그대로 무슨 저주에라도 걸렸나 싶은 정도로 개막장 생고생을 해가면서 다리를 지어나갔다.

결국 다리 완공까지는 16년이 걸렸으며 아내 에밀리가 모든 권한을 넘겨받고 근성으로 완공해냈다.[2]

3. 여담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rooklyn_Bridge_2014_Independence_Day_Firework.jpg

파일:external/8ee38912c136fe80af6a9fb9e61cca1d83bb6e9c9c541fbe815b5ff0a123bc8e.jpg

4. 미디어에서의 등장

파일:bt5004.jpg
* 1998년에 나온 재난 영화 딥 임팩트에서는 뉴욕을 덮친 거대 쓰나미에 처참하게 휩쓸려 파괴된다.


[1] 그러나 뉴욕의 인구가 날이 갈수록 급증하다보니 교통 체증 문제도 매우 심각해져 기존 왕복 6차로를 최소 왕복 10차로 이상으로 늘려야 하지만, 1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매우 오래된 다리라서 확장공사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러자니 중앙의 보행자용 길을 아예 없애버리고 차로 확장공사를 해서 자동차용 길로만 두자니 시민들의 반발이 무지 심할 것 같기도 하고. 중앙의 보행자용 길을 없애고 자동차용 길로 확장공사를 해 두면 왕복 10차로의 길로 확장된다. 시 당국도 이 심각성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그냥 방치만 하고 있는 셈이다.[2] 여기까지의 이야기가 능률(김) 고1 영어 교과서의 6과 내용으로 실려있다. #[3] 폴아웃의 배경은 핵전쟁으로 세상이 망한 후이기 때문에 병뚜껑이 통화로 쓰이는 판인데 전쟁 전 신용카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리가 없다. 실제로도 이 신용카드를 구매하면 상점에서 신용카드로 결제라는 특수 선택지가 나오는데 상인들 반응이 전부 놀리거나 어이없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