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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8-16 19:30:11

비에른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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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비에른 보리.jpg
비에른 보리
(Björn Borg)
생년월일 1956년 6월 6일 ([age(1956-06-06)]세)
국적
[[스웨덴|]][[틀:국기|]][[틀:국기|]]
출신지 스웨덴 스톡홀름
프로데뷔 1973년
신장 180cm (5 ft 11 in)
사용 손 오른손 (투핸드 백핸드)
ATP 싱글 랭킹 최고 1위
개인전 통산 성적 654승 140패 (82.4%)
복식 통산 성적 93승 89패 (51.1%)
개인전 타이틀 획득 66회
복식 타이틀 획득 4회
그랜드슬램 결과 호주 오픈 3라운드 (1974)
프랑스 오픈 우승 6회 (1974~1975, 1978~1981)
윔블던 우승 5회 (1976~1980)
US 오픈 준우승 4회 (1976, 1978, 1980, 1981)
통산 상금 획득 $3,655,751

1. 개요2. 인기3. 커리어4. 선수 소개5. 플레이 스타일6. 여담7. 참고 링크

1. 개요

스웨덴의 前 테니스 선수이자 現 의류 사업가.

현역 시절 세계 랭킹 1등을 비롯한 프랑스 오픈 6회 우승과 윔블던 5년 연속 우승 등 화려한 성적을 남겨 당시 기준으로 역대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고, 오늘날까지도 테니스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2. 인기

스웨덴이 자신만만하게 내세울수 있는 네 가지가 볼보, 스카니아, ABBA, 그리고 비에른 보리라는 소리도 있을 정도로 스웨덴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1970년대에서 80년대 초 한 세대의 아이콘으로 그 인기는 누구도 따라올 자 없는 당대 최고의 스포츠 스타였다.

그가 활동하던 1970년대-80년대 초는 그전에는 대중적이 아닌 귀족적 스포츠 이미지던 테니스가 TV에 중계되기 시작하며 대중 스포츠로서 큰 인기를 누리기 시작한 시기로, 폭발적으로 테니스 인구가 늘어나고 용품이 팔리기 시작한 대중 테니스의 급 성장기였다. 그 시기에 최고의 성적을 올리며 인기를 모두 흡수한 것이 바로 보리.

특히 보리는 동시대의 운명적 라이벌인 지미 코너스와 함께 테니스 선수로서는 최초로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 스포츠 스타들이다. 덕분에 이들의 라이벌 대결은 늘 대중의 화제거리였다. 또한 존 매켄로와 보리의 라이벌 관계도 서로 몇 경기 붙지도 않았음에도 유명했다. 2017년에는 해당 라이벌리를 본딴 보리 vs 매켄로라는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키도 크고 장발에 구레나룻 수염, 찔릴 듯 높은 코를 가진 귀공자스럽게 잘생긴 백인 남자가 헤어밴드를 하고 힘차게 코트를 뛰는 모습은 활동적이고 섹시한 이상적인 백인 남성의 아이콘으로 등극, TV광고, 패션잡지 등에 각인이 되어 당시 세계의 남녀 모두에게 전례 없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지금까지도 나이드신 분들이 기억하는 스웨덴인은 남자는 비에른 보리 여자는 잉그리드 버그만일 정도로 지명도가 높았고 가히 스웨덴을 전세계에 널리 알린 대표적 스웨덴인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오늘날 스웨덴이라 하면 이케아,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등등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20세기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스웨덴’ 이라 함은 비에른 보리의 나라였다.[1]

3. 커리어


그랜드슬램 대회 : 우승 11회, 준우승 5회 - 통산 141승 17패(승률 89.24%)[2]비에른 보리의 연도별 메이저대회 성적표
연도 호주 프랑스 윔블던 US
1972 불참 불참 불참 Q1
1973 불참 4라운드 8강 4라운드
1974 3라운드[6] 우승 3라운드 2라운드
1975 불참 우승 8강 4강
1976 불참 8강 우승 준우승
1977 불참 불참 우승 4라운드
1978 불참 우승 우승 준우승
1979 불참 우승 우승 8강
1980 불참 우승 우승 준우승
1981 불참 우승 준우승 준우승
1982 불참 불참 불참 불참

4. 선수 소개

지미 코너스, 존 매켄로와 함께 7,80년대 테니스 전성시대를 이끈 삼두마차로 불린다. 프로테니스를 인기 종목으로 부상시킨 주역이기도 하며 사상 처음 시즌 상금 100만 달러를 돌파하는 등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다.

놀라운 점은 프랑스 오픈윔블던에서 모두 강했다는 것. 오픈 시대 이래로 두 번 이상 같은 해에 프랑스 오픈과 윔블던에서 모두 우승한 두 명의 선수 중 한 명[7][8]으로서 3년 연속 두 대회에서 모두 우승했다.[9]

보리의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에서 통산 11회나 우승한 선수라는 것 자체도 엄청난 기록인데, 그 이면을 살펴 보면, 1년에 4개뿐인 그랜드 슬램에서 하나의 대회는 사실상 불참하고, 나머지 하나의 대회에서는 홈 코트의 이점을 안고 있는 개최국 선수들과 싸워야 하는 불리한 조건에서도 불구하고 11회의 우승을 거뒀다는 게 무시무시하다. 테니스 선수도 사람인데 연말과 연초는 쉬어야 할 판국에, 교통편도 불편하고 멀기는 오지게 먼데다 시차도 큰 호주 오픈에는 데뷔 초인 1974년에 한 번 참가한 이후로는 출전하지 않았다.

US 오픈 남자 단식에서는 준우승만 4번 있었는데 결승전 상대가 모두 미국 선수들로 두 번은 지미 코너스, 두 번은 존 매켄로였다. 피트 샘프라스가 마지막 우승을 했을 때에도 말이 나왔듯이 US 오픈의 홈 코트 텃세는 유명했고, 그 와중에도 윔블던과 롤랑 가로스에서의 우승만으로도 11회를 채운 것이었다.

선수 생활 중에 호주 오픈에 거의 출전하지 않은 것이나 1981년에 여전히 연말 세계 랭킹 순위에서 4위를 기록할 정도로 뛰어난 성적을 올리고 있었음에도 노쇠화로 약간 기량 저하가 보인다는 스스로의 판단 하에 25살의 나이로 바로 대회 출전을 거의 포기하고 사실상 은퇴한 행동 등을 보면 요즘 기준으로 보면 프로 의식이 조금 부족한 선수였다고 볼 여지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어떤 면에선 철저한 자기 관리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현재와 달리 과거의 낭만을 상징하는 선수라고 볼 수도 있다.

보리의 경우 26세에 커리어를 사실상 접었다는 특이점 때문에 평가에서 이론의 여지가 상당히 큰데, 이론의 여지 없이 보리를 뛰어넘은 빅3와도 거의 비길 만 한 임팩트의 전성기를 보냈고 이에 따라 승률 등의 비율 성적과 그 전성기 동안의 퍼포먼스 면에서도 괄목할 만 하나 슬램 우승을 제외한 누적 업적 면에서는 부족함이 있다. 어찌되었든 어떤 평가 기준으로도 역대 남자 테니스 선수 중에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선수이며 대부분의 평가 기준에서 (오픈시대 이후) 역대 남자 테니스 선수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전설적인 선수였다.

5. 플레이 스타일

플레이 스타일은 강력하면서도 유연한 스트로크를 바탕으로한 베이스라이너이며 지치지 않는 체력을 가지고 있다. 요즘 선수중에서는 라파엘 나달노박 조코비치가 가장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그가 역대의 테니스 강자들과 구별되는 장점은 어느 상황에서도 동요되지 않는 냉정함이다. 선수생활 초기에는 강력한 투쟁심을 가진 불같은 성격이었고 그 성격 때문에 경기를 망치기도 했지만, 자국의 선배 선수였던 레나트 베르게린 코치의 엄격한 지도를 받으면서 어느 상황에서든지 평정심을 유지하는 경기운영능력을 가지게 되었고 그 결과 1974년 불과 18세의 나이로 당시 최연소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우승자가 되었다.

6. 여담

6.1. 평양 속옷투하

은퇴 이후 의류 사업에 뛰어들어 자신의 이름을 딴 속옷 브랜드 ‘비외른 보리’를 런칭해 속옷을 파는 중이다. 그런데 2013년, 투표로 선정된 도시에서 비행기로 속옷을 뿌리는 홍보 행사를 벌였고 도시 선정 인터넷 투표에서 윗동네도읍이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하자, 약속을 지키려고 진짜로 갔다. 평양 속옷투하 참고.

7. 참고 링크



[1] 이러한 점은 21세기의 로저 페더러와 많이 유사하다. 둘 다 당대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린 운동선수 중 한 명이고, 현역 당시 역대 최고의 테니스 성적을 경신했으며, 각각 나라를 대표하는 심볼이 되었다는 점이 비슷하다.[2] 오픈시대 이후 남자 테니스 선수 승률 1위[3] 2회전 상대가 기권 선언[4] 라파엘 나달의 97.22%에 이은 2위[5] 윔블던 승률 1위[6] 이 당시 호주 오픈은 64드로였다. 즉 16강이다.[7] 다른 선수로는 라파엘 나달2008년2010년 두 번 기록한 적 있다.[8] 한 번 기록한 선수로는 전무후무한 캘린더 이어 슬램을 한 로드 레이버, 로저 페더러 등이 기록했다.[9] 이것이 왜 특별한 기록인가 하면, 프랑스 오픈은 경기장 바닥이 클레이이고 윔블던은 잔디인데, 이 두 코트는 성격이 정 반대이기 때문이다. 보통 클레이에서 강한 선수는 잔디에서 약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하기 때문에, 이 두 메이저 대회를 한 해에 우승한다는 것은 한쪽 스타일에 편중되지 않은 진정한 강자임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