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명
아나톨리아 고대 지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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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어 Βιθυνία
라틴어 Bithynia
튀르키예어 Bitinya
아나톨리아 반도 서북부의 고대 지명. 현 튀르키예 이스탄불 도, 코자엘리 도, 사카리아 도, 얄로바 도, 부르사 도, 뒤즈제 도, 볼루 도, 종굴다크 도에 해당한다. 주요 도시로 이즈니크 (니케아), 이즈미트 (니코메디아), 부르사 (프루사), 뒤즈제 (프루시아스), 볼루 (비티니움), 에레을리 (헤라클레아), 칼케돈, 아다파자르 (아그릴리온), 얄로바 (필라이) 등이 있다. 옛 비티니아 왕국이 있었고, 로마 제국에 병합된 후에는 비티니아 속주로 편성되었다. 부르사의 울루 다으를 경계로 미시아, 프리기아와 접하고 예니제 (필요스) 강을 경계로 파플라고니아와 접한다.
개신교 신약성경식 표기로는 비두니아다. 그래서 로마의 "비티니아 에트 폰투스" 속주를 "비두니아와 본도"라고 부른다.
2. 비티니아 왕국
비티니아 왕국 항목 참조.3. 로마령 비티니아
로마 시대 비티니아 속주. 폰투스와 함께 아나톨리아 북부를 양분하였고, 유럽 쪽의 비잔티움 역시 포함하였다.
비티니아 왕국은 250여년간 존속하며 불과 9대에 걸친 군주가 통치하였고, 그중 지포에테스 2세를 제외하면 모두 20년 이상 재위하였다. 30년 이상 즉위한 왕만 4명일 정도로 오랜 혼란 없이 안정적으로 왕국이 유지된 덕에 비티니아는 사회,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었다. 로마 제국기 비티니아는 종종 폰투스와 함께 묶여 관리되었고, 수세기간 번영을 누렸다. 특히 4두정치와 함께 비티니아의 니코메디아는 동방 정제의 수도가 되었고, 4세기 콘스탄티노플이 제국의 새로운 수도로 건설되자 비티니아는 트라키아와 함께 새 수도권으로 떠올라 중시되었다. 고대 후기에는 상가리오스 (사카리아) 강의 서안만 비티니아로 남겨져 해안 일대로 축소되었고, 수도에서 동방으로 진출하기 위한 교통로로써 많은 다리가 건설되었다. 다만 7세기 테마 제도의 도입으로 비티니아란 지명은 사장되었고, 일대는 11-14세기 동로마 제국의 주요 방어선을 구축했으나 점차 잔다르 왕조와 오스만 제국에 의해 정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