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의 前 축구감독 | ||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빌모스 좀보리 Vilmos Zombori[1] | |
출생 | 1906년 1월 11일 | |
루마니아 티미쇼아라 | ||
사망 | 1993년 1월 17일 (향년 87세) | |
루마니아 | ||
국적 | [[루마니아| ]][[틀:국기| ]][[틀:국기| ]] | |
직업 | 축구선수(골키퍼 / 은퇴) 축구 감독 | |
소속 | 선수 | 스파르타 CFR 티미쇼아라 (1925-1926) 키네줄 티미쇼아라 (1926-1930) 리펜시아 티미쇼아라 (1930-1938) ILSA 티미쇼아라 (1938-1939) |
감독 | 빌모 루고지 (1949-1951) | |
국가대표 | 6경기 (루마니아 / 1926~19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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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루마니아의 전 축구선수.2. 생애[2]
2.1. 선수 생활
2.1.1. 클럽
좀보리는 고향 티미쇼아라를 연고로 하는 팀들 중 키네줄 티미쇼아라에서 유스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좀보리가 입단할 당시 키네줄은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지만 디비자 A 데뷔는 라이벌 팀이던 스파르타 CFR 티미쇼아라에서 했고 1년 후에 키네줄에 복귀했다. 복귀한 해에 키네줄은 디비자 A 우승을 차지했지만 이후로는 전성기 시절의 위력을 보여주지 못했다.좀보리는 1930년 같은 티미쇼아라를 연고로 하는 리펜시아 티미쇼아라의 이적을 선택했다. 키네줄은 한 풀 꺾이긴했어도 전성기를 달렸던 팀이었고 리펜시아는 당시 창단된 지 2년밖에 안 된 신생팀이었던지라 좀보리의 이 선택은 모험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리펜시아는 1930년대에 디비자 A 4회 우승, 쿠파 루마니에이 2회 우승 등을 거두며 30년대 루마니아 축구계 최강팀으로 떠올랐다. 리펜아는 1935-36 시즌에는 루마니아 리그 최초의 더블을 기록하기도 했다.
좀보리는 리펜시아에서 1938년까지 뛰었고 1년 후 ILSA 티미쇼아라에서 커리어를 마감했다.[3]
2.1.2. 국가대표
좀보리는 총 6경기의 국가대표팀 경기에 출전했다.[4] 데뷔전 상대는 유고슬라비아 왕국이었고 이 경기에선 루마니아가 3대2로 승리했다. 이후 좀보리는 욘 러푸슈나누와 대표팀 골키퍼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초대 월드컵에서는 러푸슈나누에 밀려 발탁되지 못했지만 다음 월드컵에는 주전 골키퍼로 참가했다. 하지만 1라운드 상대이자 대회 준우승팀 체코슬로바키아에 아깝게 역전패하며 좀보리의 월드컵 나들이는 단 한 경기로 끝났다.
3. 뒷이야기
- 좀보리는 리펜시아에서 뛸 때 전문 페널티 키커로도 활약했다. 좀보리는 총 5골을 넣어 역대 루마니아 리그 골키퍼 중 최다 득점 기록을 갖고 있다.
4. 수상
4.1. 클럽
- 디비자 A 우승 5회: 1926-27(키네줄 티미쇼아라), 1932-33, 1934-35, 1935-36, 1937-38(이상 리펜시아 티미쇼아라)
- 쿠파 로므니에이 우승 2회: 1933-34, 1935-36(리펜시아 티미쇼아라)
- 디비자 A 준우승 1회: 1933-34(리펜시아 티미쇼아라)
- 쿠파 로므니에이 준우승 2회: 1934-35, 1936-37(리펜시아 티미쇼아라)
[1] William Zombory로 적기도 한다.[2] 출처: 위키피디아, 11v11[3] 다른 기록으로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좀보리가 폴리테흐니카 티미쇼아라에서 2년간 뛰었다는 기록도 있다.[4] 11v11 기준. 독일어 위키피디아에는 8경기로 기록되어 있다. 11v11의 1926년 경기 기록엔 좀보리의 다른 이름인 William Zombory로 기록되어 있어서 사이트 내에 두 개의 기록이 존재하고 이 기록을 합치면 6경기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