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신아시리아 제국의 제 3대 왕 에사르하돈의 아들, 제 4대 왕 아슈르바니팔의 형이다.2. 초기 생애
부왕인 에사르하돈은 아버지 센나케립이 자신을 후계자로 삼는 과정에서 자신의 형에 의해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상황을 목격한 뒤 후계자 선정 문제에 대해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 와중에 기원전 672년에 에사르하돈의 정비와 적자가 잇다라 사망하게 되며, 제국의 후계자 문제는 현안으로 떠오르게 된다. 당시 에사르하돈은 바빌론 출신의 왕비로부터 사마쉬슈므킨을, 아시리아 출신의 왕비로부터 아슈르바니팔을 얻었는데, 핵심 권력집단인 아시리아인들의 용인을 받기 위해 아슈르바니팔을 제국의 후계자로 삼았으며, 사마쉬슈므킨은 바빌론의 왕으로 삼게 된다. 그리고 이때 형제들간의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이 결정에 대한 반역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게 된다.3. 진정한 바빌론의 왕
당시 바빌론은 아시리아 제국 내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며, 이에 따른 여러가지 혜택을 배풀기도 하였다. 그러나 바벨론의 주민 대부분을 구성하는 칼데아 인들은 자신들을 지배하는 아시리아인들에 대한 문화적 우열감 등을 바탕에 두고 끊임없이 반란을 도모하기도 하였다. 특히 할아버지인 센나케립은 엘람의 지원을 받은 칼데아인의 반란으로 장남인 아슈르나딘슈미가 피살되는 상황까지 발생하였으며, 이때의 반란 진압으로 바빌론은 주민들의 신앙의 상징인 마르두크의 신상을 약탈당하는 등 이후 에사르하돈 시기까지 반란의 조짐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진압되게 된다.이 처럼 서로간의 증오감이 더해진 상황에서 즉위한 사마쉬슈므킨은 이전까지의 바빌론의 왕보다 더 바빌론의 왕처럼, 아시리아인이 아닌 진정한 바빌론의 왕으로 통치를 행하게 된다. 그는 바빌론의 전통적인 축제, 즉 신년 축제의 참가를 시작으로 당대 칼데아인들의 민심을 얻게 된다. 특히 그는 센나케립에 의해 약탈되어 니네베에 있던 마르두크의 신상을 다시 바빌론으로 돌려놓으며 당대 바빌론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