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터키 주지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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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대 켄터키 주지사 사이먼 버크너 시니어 Simon Buckner Sr. | |
본명 | 사이먼 볼리버 버크너 시니어 Simon Bolivar Buckner Sr. |
출생 | 1823년 4월 1일 |
미국 켄터키 주 먼퍼드빌 | |
사망 | 1914년 1월 8일 (향년 90세) |
미국 켄터키 주 먼퍼드빌 | |
재임 기간 | 제30대 켄터키 주지사 |
1887년 8월 30일 ~ 1891년 9월 2일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미국육군사관학교 |
복무 경력 | 미합중국 육군 (1844~1855) 켄터키 주방위군 (1858~1861) 아메리카 연합 육군 (1861~1865) |
계급 | 중장 (아메리카 연합 육군) |
참전 | 미국-멕시코 전쟁 남북 전쟁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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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 제30대 켄터키 주지사.2. 생애
켄터키주 먼퍼드빌에서 태어났고 베네수엘라의 영웅 시몬 볼리바르의 이름을 땄다. 9세까지 학교에 가지 않고 홈스쿨링으로 공부했고 1840년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해 25명 중 11등을 기록하고 1844년 기병 소위로 임관했다.초임지는 제2기병연대이고 이후 육군사관학교 지리학, 역사, 도덕 부교관으로 복무했다. 1846년 미국-멕시코 전쟁이 발발하자 제6기병연대에 배치되어 여러 전투를 거치며 전시계급 대위로 진급해 차풀테펙 전투에서 공을 세워 멕시코시티에 입성했다.
전후 육군사관학교에서 보병전술교관으로 생도들을 가르쳤고 여러 보직에서 복무해 대령까지 진급했다. 1858년 가족들과 함께 있고 싶어 전역해 루이빌에 정착해 켄터키 주방위군 제2연대장으로 복무했다.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남군으로 참전했고 소장으로 진급했다. 포트 도넬슨 전투 당시 존스턴군을 구원했고 그 외 페리빌 전투, 치카무가 전투에 참가했고 먼퍼드빌 전투에서 패배 후 북군에 투항했다.
전후 콜레라로 인해 부인과 딸을 잃었지만 재혼해 68세의 늦은 나이로 사이먼 B. 버크너를 낳았다. 1887년 켄터키 주지사에 당선되어 4년간 재직했으며 1914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