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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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중앙대교당 | 삼군부 총무당 | 금암기적비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7호 | |
삼군부 총무당 三軍府 總武堂 | |
소재지 | <colbgcolor=#fff,#191919> 서울특별시 성북구 삼선교로4길 147 (삼선동 303) |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궁궐·관아 / 관아 |
수량 / 면적 | 건물 1棟, 토지 443.2㎡ |
지정연도 | 1978년 12월 18일 |
관리자 (관리단체) | 성북구 |
<colbgcolor=#ae1932> 삼군부 총무당[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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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군부의 청사였던 건물이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삼선동 삼선공원 내에 있다.2. 역사
삼군부는 조선 초기에 군정과 군령을 총괄하던 관서로, 정식 명칭은 '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였다. 삼군부는 태종 이후 군정 기능은 병조로, 군령 기능은 오위로 분할 및 귀속되며 사라졌다가, 1865년(고종 2년)에 흥선대원군이 재설치했다. 자세한 내용은 삼군부 문서 참조.총무당은 재설치 3년 뒤인 1868년(고종 5년) 양 옆의 부속 건물인 청헌당(淸憲堂), 덕의당(德義堂)과 함께 건립되었다. 위치는 예조가 있던 곳으로 원래 예조가 들어오기 전에는 조선 건국 초 삼군부 관청 부지였으며, 지금의 정부서울청사 자리이다. 1880년(고종 17년)에 조정에서 삼군부를 폐지하고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면서 총무당은 통리기무아문의 청사가 되었고, 1894년(고종 31년) 이후에는 시위대에서 청사로 이용했다.
1910년(융희 4년)부터 1926년 순종이 승하할 때까지는 조선보병대에서 사령부로 사용했다. 이후 1930년대에 일제는 총무당을 성북구 돈암동[2]으로 옮겼다. 1942년 2월에는 경기도에서 공무원연수장으로 사용했다가 광복 후에는 서울시직업훈련원에서 사무실로 쓰기도 했다. 1979년에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옛 모습대로 복원했다.
1978년 12월 18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7호로 지정받았다.
바로 옆에 한성대학교가 있는데, 한성대 입장에선 눈엣가시로 꼽힌다. 학교 캠퍼스의 확장을 막는 중요한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한성대의 숙원 중 하나가 삼군부 총무당의 이전일 정도.
3. 구조
<colbgcolor=#ae1932> 삼군부 총무당 현판[3] |
- 정면 5칸, 측면 3칸, 총 15칸 건물이다. 기단석 3벌 위에 4각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2고주 7량가 건물을 올렸다.
- 전면 가운데 대청칸 외면에는 출입문을 설치하고 그 위에 교창을 달았다. 건물 뒷면, 측면, 온돌방 외면에는 하단에 머름을 둔 창을 달았다. 문과 창 모두 사분합이다.
- 건물 전면의 기둥에는 주련이 걸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