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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7 22:22:21

삼미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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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삼미그룹.jpg
삼미그룹
SAMMI GROUP

1. 개요2. 역사
2.1. 창립2.2. 외환 위기와 해체
3. 로고4. 역대 그룹 임원5. 계열사 목록
5.1. 국내 계열사5.2. 해외 계열사
6.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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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인화, 열성, 긍지 - 그룹의 사훈.

1954년부터 1997년까지 존속한 대한민국의 제조업 전문 기업 집단이다. 본사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 1004번지[1]였으며 존속 당시 홈페이지 도메인은 'www.sammi.co.kr'이었다. 도메인은 아직도 (주)삼미가 사용 중이다.

2. 역사

2.1. 창립

삼미그룹의 뿌리는 김두식(1925~1980) 창업주가 21세 되던 1946년에 세운 비누/식용유 제조공장이었다. 1950년 6.25 전쟁으로 부산으로 피난가 우지와 화공약품을 만들다가 휴전 후 1954년, 서울 청량리에 목재 가공업체 '대일기업'을 세워 그룹의 시작을 알렸다. 1959년 인천 만석동에 '대일목재공업'을 세우고[2] 1960년 '삼미사'를 세워 무역업에까지 확장해 박하, 건어물, 수산물 등을 해외에 수출했으며, 합판 수출 증가로 일약 대형 무역업체로 급상승했다. 뒤이어 원목 수출을 위해 삼창해운을 인수해 해운업에도 뛰어들었고, 1967년 삼양특수강 및 삼미광업개발을 인수한 후 1970년에 막 완공된 삼일빌딩으로 본사를 이전했고, 1974년 한국종합특수강도 인수하고 1976년엔 삼미문화재단을 세웠다.

1980년 김두식 회장이 골수암 투병 3년만에 55세로 세상을 등지자, 장남 김현철이 30세의 나이로 가업을 이었다.[3] 1982년 인천 연고의 프로야구단 '삼미 슈퍼스타즈'를 창단하고 한국단조, 삼미전산 등을 세우는가 하면, 같은 해에 유나 및 대명조선도 인수해 사업 다각화를 이룩했다. 그러나 제2차 오일 쇼크로 이미 해운 및 목재업에 타격을 입었고, 이에 따라 경영이 악화되어 삼미 슈퍼스타즈청보식품[4], 삼일빌딩을 한국산업은행에, 삼미해운을 범양상선에 각각 팔아버렸다. 이후 김현철 회장은 본사를 서초구 방배동으로 옮기고 그룹을 특수강 중심 전문화로 방향을 틀어 1987년 삼미정공, 1988년 삼미이튼, 삼미켄하, 삼미화인세라믹스, 1989년 삼미전자 및 삼미아구스타항공 등을 각각 세우는 한편, 1989년엔 캐나다 아틀라스 및 미국 알텍 사도 인수했다.

2.2. 외환 위기와 해체

1990년대 들어 특수강 경기가 부진해지자 계열사를 5개로 줄이려고 했으며 1996년엔 삼미종합특수강 일부 공장설비를 포항종합제철에 파는 등 구조 조정을 꾀했다. 그러나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이란 악재를 맞고, 1997년 외환 위기로 부도 처리되어 해체 수순을 밟았다.

한편 김현철은 경기 부진으로 1995년 회장에서 물러나고 동생 김현배에게 자리를 물려줬으나 결국 해체를 막지 못했다. 이후 그는 도미니카에서 선교사로 살고 있다.

3. 로고

파일:삼미그룹 초기로고.png 파일:삼미그룹.jpg
창립~1991 1991~1997

4. 역대 그룹 임원

5. 계열사 목록

5.1. 국내 계열사

5.2. 해외 계열사

6. 참고 자료



[1] 도로명주소 테헤란로114길 38. 강남운전면허시험장 인근에 있다.[2] 삼미 슈퍼스타즈가 인천을 연고로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3] 이때 쌍용그룹김석원, 한화그룹김승연과 더불어 재계 3김이라고 잠깐 불렸던 적이 있었다. 셋다 김씨에 부친들의 이른 사망으로 셋다 만 29세에 회장이 되었다. 그러나 IMF로 인해 현재 한화그룹만 살아남았다. 그나마 쌍용그룹은 해체되었지만 쌍용자동차, 쌍용건설, 쌍용C&E 등 그나마 인지도 있는 기업이 몇개가 남아있지만, 삼미는 중소기업 수준으로 쪼그라 들었으니 더 비참하다.[4] 당시 삼미 슈퍼스타즈 구단주이기도 했던 김현철 회장이 매각 서류에 사인한 그 시각에 슈퍼스타즈는 최계훈의 완봉 역투에 힘입어 MBC 청룡을 4대0으로 이겨 18연패에서 탈출했다. 이후 김현철 회장은 애지중지하던 야구단이 매각됐다는 아쉬움에 밤새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