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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21 13:04:15

내시부

상선(내시부)에서 넘어옴
1. 개요2. 조직구조
2.1. 승진 규정2.2. 출사2.3. 시험
2.3.1. 내시교관
2.4. 인원2.5. 업무2.6. 직책 일람
2.6.1. 종2품 상선尙膳2.6.2. 정3품 당상 상온尙醞, 정3품 당하 상다尙茶2.6.3. 종3품 상약尙藥2.6.4. 정4품 상전尙傳2.6.5. 종4품 상책尙冊2.6.6. 정5품 상호尙弧2.6.7. 종5품 상탕尙帑2.6.8. 정6품 상세尙洗2.6.9. 종6품 상촉尙燭2.6.10. 정7품 상훤尙煊2.6.11. 종7품 상설尙設2.6.12. 정8품 상제尙除2.6.13. 종8품 상문尙門2.6.14. 정9품 상경尙更2.6.15. 종9품 상원尙苑2.6.16. 소환小宦

1. 개요

내시부()는 고려조선의 내궁을 담당하는 관리들의 조직이다.

고려 시대에는 환관들의 수가 극히 적었으며, 내궁에서 심부름을 하거나 내궁의 감옥을 관리하는 직임을 맡았을 뿐, 정식으로 관직이 주어지지도 않았다. 내시부는 주로 보통 신하들이 맡고 있었다.

18대 의종은 환관 정함을 정7품 문관 합문지후 벼슬에 임명하는 등, 벼슬을 주기도 했으나 무신정권으로 인해 일시적인 것에 그쳤다.

고려원나라에 복속되어 있던 시기에 원나라 환관의 영향을 받아 고려 조정에서도 환관이 크게 늘어났으며, 이전까지는 환관이 아닌 사람이 맡던 내시부도 점차 환관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우왕 시기에 일시적으로 폐지되기도 했으나, 공양왕 시기에 부활했다.

조선시대에는 완전히 환관으로 구성된 조직이 되었다. 이때의 모습은 경국대전을 통해 자세히 알 수 있다.

2. 조직구조

음식물 감독, 명령 전달, 궁문 수직, 청소 등에 관한 직무를 맡으며, 1년에 4차례 정기적으로 임무를 조정하고 인사를 단행한다.

2.1. 승진 규정

내시부 환관은 4품 이하는 문무 관리의 출근 일수 규정에 따라 품계를 올려주고, 3품 이상은 임금의 특별한 지시가 있어야 한다. 본래 환관에게 주는 관직은 고려에서는 7품, 공양왕 때는 6품이 한계였으나 조선에서는 크게 늘어났다.

2.2. 출사

거세를 선택하여 내시가 된 어린 내시들은 고참 내시들이 우선 시험을 본다. 우선 대궐문의 이름과 개수, 궁중전각 이름, 궁중용어, 내시의 금기사항 등 기본적인 상식을 질문하였다. 금기사항 중에는 마늘이 들어간 김치를 먹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있는데, 왕 앞에서 입 냄새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과 내시들의 양기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왕을 가까이 모시는 근신들은 입 안에 향신료를 머금어 입냄새를 없애기도 했다.

다음에는 논어, 맹자, 사서 중 한 권, 소학이나 삼강행실 중 한 권을 택해서 이 가운데 세 곳을 읽고 해석하는 강경(講經) 시험을 보았다.

그 다음으로 자질 시험이다. 자질 시험은 주로 인내력을 시험하는 것으로, 주군을 위해 비밀을 얼마나 잘 지킬 수 있는지, 즉 고문을 얼마나 잘 버티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물을 먹이거나, 나무에 매달아보거나, 코에 모래를 짓문질러보는 등의 고문을 이겨내야 한다.

2.3. 시험

환관 사회에서도 공부를 잘 해야 출세할 수 있었다.

관리들의 인사고과를 도목(都目)이라 하는데, 문무관은 양도목(兩都目)이라 하여 매년 6월과 12월에 도목을 실시하여(전/후반기별 평정), 관리 적격자의 선발, 임명, 파면, 전근, 승진 등을 심사했다. 내시들은 사도목(四都目)이라 하여 승정원에 의해 1년에 4차례 인사고과(분기별 평정)를 받았다.

장번(긴 시간 교대 없이 일함)과 출입번(당번이 되어 들어갔다가 나가는 것)의 경우 매일을 근무 일수 1일로 쳐준다. 비번인 경우에 출번을 해도 1일을 더해준다. 근무평정은 상중하로 이루어졌는데, 10번의 고과중 연달아 세 번 중을 받으면 곧바로 파직하고, 연달아 10번 상을 받거나 근무일수를 채우면 품계를 올려주었다. 하는? 군대에서 하가 어떤 의미인지 떠올리면된다

내시부 환관은 35살이 될 때까지 정기적으로 시험을 보았다. 시험 성적은 통(通), 약(略), 조(組), 불통(不通)으로 나누어진다. 읽은 책을 강론하여 우수한 성적을 얻으면 통 등급이며 특별 출근일수 둘을 더하고, 그 아래 약은 특별 출근일수 하루, 평범한 성적인 조는 출근일수 반일을 더하며, 성적이 나쁜 불통은 출근일수 셋을 감한다.

사서(四書) 가운데 하나를 골라 세 곳을 강론하여 통을 맞으면 품계를 올려주고 공부도 면제해준다. 사서 외에도 소학이나 삼강행실에서 세 곳을 강론하여 다섯 부분에서 통을 맞으면 역시 품계를 올려주고 공부를 면제해준다.

35살이 되면 시험을 면제했는데 더이상 공부를 가르치긴 무리라고 생각해서인 듯하다.

다만 시경, 서경, 역경 등 삼경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사서는 학문과 유학을 알기 위한 기본 서적으로 취급되었으나 삼경은 그보다 높은 단계로 보아서, 학문을 배운 선비들에게는 기본이지만 환관들에게까지 가르칠 필요는 없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2.3.1. 내시교관

내시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관직으로 내시교관(內侍敎官)이 있었다. 이들은 내시부에 소속되어 있지는 않았으며 체아직(遞兒職: 임시직)이었다. 품계는 종9품으로 주로 생원이나 진사 등 소과(小科)에 급제한 후 처음으로 관직에 나갈 때 지나가는 것이 통례였다.

내시들은 교관에게 수업을 청강한 날은 특별 근무 일수 1일로 쳐주었고, 매월 한 번씩 세 곳을 강하면 근무 일수로 쳐주기도 했다.

이들도 학문적인 자질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었으므로 매달 고강(考講)을 통해 통·불통의 판정을 받았다. 내시교관도 내시들을 가르친 교육성과에 따라서 상을 받기도 했다.

내시교관은 초기에는 3명이었으나, 성종 무렵에 한 명을 사축서(司畜署)의 별좌(別坐)로 옮겨서 2명이 되었고, 정조 3년(1779)에는 폐지되었다.

2.4. 인원

경국대전에는 인원을 140명으로 정했다. 실제로 벼슬이 주어지는 관직은 약 60명 정도지만, 그 외에 소환小宦이라 하는 견습 겸 예비내시가 있어서 적을 때는 80명, 많을 때는 200명이 넘을 수 있고 이들은 관직이 빌 때까지 대기하면서 관원의 업무를 보조하고 공부를 했다.

소속된 노비로는 차비노(差備奴)가 21명, 근수노(根隨奴)가 21명 있었다.

그리고 내수사, 액정국, 사포서(司圃署) 등이 내시부의 하급 기관으로 있었다.

2.5. 업무

내시부의 임무는 여러 가지가 있다. 왕궁에서 쓰이는 음식물의 감독, 왕명의 출납 및 궁궐의 문지기, 궁궐 안 청소. 시릉관(侍陵官)으로서 왕릉을 보살피는 일. 경차관(敬差官)으로 왕명을 받들어 관리들의 근무규찰과 농사의 풍흉을 살피는 일, 군사들의 훈련 상황 점검, 지방에 파견되어 처녀를 골라오는 일, 굶주린 백성을 살펴서 보고하는 일, 채금(採金)을 감독하는 일, 왕실 직영 잠실에 파견되어 누에를 치는 잠모를 관리하는 일, 왕명으로 관리의 상갓집에 파견되어 왕 대신 부조를 하고 제사를 지내주는 일, 그 밖에 왕의 사적인 심부름 등 셀 수 없이 많은 일을 했다.

2.6. 직책 일람

2.6.1. 종2품 상선尙膳

내시부의 수장으로 정원은 2명이다. 기본적으로 임금의 수라를 책임지며 임금을 바로 옆에서 보좌하는 일을 맡는다. 업무를 분담하고 서로 돌아가면서 번을 서기 위해서 2명이 임명된다. 2명의 상선 중 한 명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여 수라간을 지휘하여 임금, 중전, 대비 등의 수라를 챙긴다. 다른 한 명은 내시들의 규율을 감찰하는 내시부사의 임무를 수행한다. 왕의 주변에는 내시가 반드시 있어야 하므로, 일반적으로 상선 둘은 교대를 하며 왕의 곁을 지켰다.

고려시대에는 환관이 아닌 문관이 임명되었으며 정2품직이었는데, 조선시대에는 환관직이 되면서 종2품직으로 낮아졌다. 그렇다 해도 요즘으로 치면 차관급에 어지간한 벼슬아치는 쳐다보기도 힘든 높은 품계다. 여기에 내시부의 수장이라는 위치까지 더해지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위치이다. 대장금에서 수라간을 무대로 한 중반까지는 상선이 종종 등장하는데 바로 이 상선이다. 오늘날로 치면 대통령비서실의 총무비서관, 부속비서관을 합쳐놓은 것과 비슷하다.

종2품이라는 품계 자체도 매우 높은 직급이지만 무엇보다 상선은 조선을 지배하는 임금의 최측근 신하 중 한 명이었기에 왕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문고리 권력으로서 실질적으로 그 권력은 품계 이상으로 상당히 막강했다. 현대에도 마찬가지이지만 권력은 단순한 직급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집단내 최고 우두머리와 밀접하냐도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 그렇기에 관료들이 단순히 본인의 직급이 높다 하여 사사로이 상선을 건드리는 것은 왕의 최측근을 건드리는 것이며 이는 왕의 권위에 대한 오만불손한 도전으로도 비춰지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왕을 제외하면 누구도 함부로 상선을 하대할 수 없었다. 쉽게 말해 '상선에게 찍힌다=왕에게 찍힌다, 상선이 좋게 본다=왕이 좋게 본다' 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극에서 종종 상선이 왕의 어명을 대신 전달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만한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허나, 환관 문서의 권력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조선은 문고리 역할을 하는 정3품의 도승지가 따로 있었으므로, 제아무리 상선이라고 해도 웬만한 조정 대신들을 능가하는 권력은 결코 가질 수가 없었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는 환관이 국정을 농단한 사례가 단 한 줄도 안 나오며, 아예 환관의 이름이 기록된 대목도 손에 꼽을 수준이어서, 상선의 정치적 영향력은 극히 미미했다. 그렇다해도 종2품의 품계는 어디 가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만큼 높은 대우를 받으며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다.

2.6.2. 정3품 당상 상온尙醞, 정3품 당하 상다尙茶

정원은 상온 1명, 상다 1명.

상온은 정3품 당상관이다. 상온은 궁궐에서 쓰이는 술을 빚는 일을 하며, 상다는 차와 다과를 준비하는 일을 맡는다.

2.6.3. 종3품 상약尙藥

정원은 2명. 약을 담당하고 있으며 내의원의 일과 연결되어 있다.

2.6.4. 정4품 상전尙傳

정원은 2명. 임금의 명을 승정원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직책. 대전 승전색(承傳色)이라고 한다. 사극에서 '대전 내관' 이라 할 때는 이들을 일컫는다.

액정서의 최고위직인 사알(司謁) 또한 비슷한 일을 맡기도 했으며, 처음에는 업무에 혼란이 있었지만, 후에 승전색은 주요한 업무를 전달하는 일을 맡고 분부 받을 것도 없고 말로 할 것도 없는 하찮은 일은 사알이 맡게 되었다. 위세가 높은 자리였지만 많은 명령을 한 사람이 출납해야 하니 대단히 힘들었다고 한다. 오늘날로 치면 연설비서관과 국정상황실장과 비슷하다

2.6.5. 종4품 상책尙冊

정원은 3명.

응방내시(鷹坊內侍: 중국에 조공으로 바치거나 왕이 사냥할 때 쓰는 매)를 기르는 응방을 관리한다. 1명.
대전설리(薛里)[1]: 임금의 시중을 맡는다. 대전 환관이라고도 불렸다. 임금의 눈과 귀가되는 사실상 임금의 오른팔 이였기에 꽤 큰힘을 가졌다고 한다.

중궁 승전색: 왕비전의 명령을 전달하는 일을 맡는다.

그 밖에 이들은 겸하여 궁중 내의 서책을 관리하고 왕이 필요로 하는 문서나 등을 찾아오는 일을 맡고, 소주방의 상궁들을 지시하는 일을 맡는다. 외국 사신이 왔을 때 접대하는 일을 맡기도 한다. 오늘날로 치면 행사기획비서관과 의전비서관과 비슷하다.

영화 역린에서 등장하는 상책은 이 직책 명이다.

2.6.6. 정5품 상호尙弧

정원은 4명.

1명은 대전의 응방이나 궁방(활궁)에 배치.
1명은 왕비전의 주방 담당.
1명은 문소전 섭리라 하여, 태조와 신의왕후의 신전인 문소전(文昭殿)을 담당한다.
1명은 세자궁의 장번 내시라 하여, 세자궁의 붙박이 노릇을 한다.

2.6.7. 종5품 상탕尙帑

정원은 4명.

1명은 상고라 하여 대전의 창고를 관리한다. 태종 6년(1406) 당시 궁궐 안에서 사용하던 미곡을 맡아보던 풍저창(豊儲倉)과 관리들의 녹봉을 쌓아두던 광흥창(廣興倉)이 너무 좁아 미곡을 그냥 밖에다 쌓아두게 되자 임시로 경복궁 궁문 양 편과 좌우로 행랑을 지어 궁중의 수요물품을 보관하였는데 이를 관리하는 것이 상탕의 주임무다.
1명은 등촉방 다인이다.
1명은 감농(監農).
1명은 세자궁 섭리이다.
오늘날로 치면 재정기획관과 비슷하다.

2.6.8. 정6품 상세尙洗

정원은 4명.

1명은 대전 장기라 하여 대전에 소용되는 그릇을 담당한다.
1명은 진지라 하여 궁중의 화약을 담당하는 화약방(火藥房)이나, 대전과 궐내 여러 문의 자물쇠를 관리하는 환관들의 처소인 사약방(司藥房)과, 정원 청소를 담당한다.
1명은 왕비전 등촉방을 담당한다.
1명은 문소전의 식사를 담당하고, 세자궁 주방을 담당하고, 빈궁의 번과 주방을 담당한다.

오늘날로 치면 청와대 운영관과 비슷하다.

2.6.9. 종6품 상촉尙燭

정원은 4명.

대전 문차비: 대전의 문을 열고 닫는다.
왕비전 문차비: 왕비전의 문을 열고 닫는다.
등촉방 내시: 세자궁의 등촉방을 담당한다.
장무: 왕비전의 주연 등 잡다한 사무를 담당한다.

2.6.10. 정7품 상훤尙煊

정원은 4명.

세자궁의 문차비나 각 궁의 섭리, 문차비를 맡는다.

2.6.11. 종7품 상설尙設

정원은 6명.

궁궐 내 각종 건축물의 보수나 증축을 담당한다. 궁궐에 사용하는 장막을 설치하고 철거하는 일을 한다. 휘장(揮帳)•자리 깔리(茵席)•청소(灑掃)•장설(張設) 등에 관한 일을 맡았다.

2.6.12. 정8품 상제尙除

정원은 6명.

궁궐 안 청소를 도맡아 한다.

2.6.13. 종8품 상문尙門

정원은 5명.

궁궐 문을 지키는 일을 맡아보았다.

2.6.14. 정9품 상경尙更

정원은 6명.

물시계를 관리하고 시간을 알려주었다.

2.6.15. 종9품 상원尙苑

정원은 5명.

왕실 정원을 관리했다.

2.6.16. 소환小宦

소수(小竪)라고도 한다. 선발시험을 거치고 내시부에 막 들어온 어린 내시들이다. 이 견습내시들은 관아에서 업무 수업을 받은 후 실제 업무에 투입되었는데, 숫자는 90명이었다.

궁궐 청소나 잔신부름을 맡았고, 대전에서 왕을 모시는 업무도 수행했다. 또한 일을 하면서 공부도 계속해야 했다.


[1] 본래 몽고말로 남을 돕는자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