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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4 22:35:17

서단파

파일:서단파.jp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서상덕(徐相悳)
자 / 호 윤오(潤吾) / 단파(檀坡)
본관 대구 서씨[1]
출생 1891년 3월 18일
충청도 목천현 수신면 해정리
(현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해정리)
사망 1937년 12월 8일
중화민국 장쑤성 난징시
묘소 미상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서단파는 1891년 3월 18일 충청도 목천현 수신면(현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해정리에서 아버지 서철순(徐喆淳, 1845 ~ 1900. 8. 6)[2]과 어머니 신안 주씨 주만동(朱晩東)의 딸 사이의 3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서철순은 1870년(고종 7) 식년시 진사시에 3등 108위로 입격하여 1887년 영회원 수봉관(永懷園守奉官:종9품), 1889년 현륭원 참봉(顯隆園參奉:종9품), 1900년 의릉 참봉(懿陵參奉:종9품), 1902년 중추원 의관(中樞院議官) 등을 역임했다. 조부 서영보(徐穎輔, 1823. 9. 14 ~ 1882. 2. 25)는 1882년 부사용(副司勇:종9품)과 훈련원 능마아 낭청(訓鍊院能麽兒郞廳:종9품) 등 무관직을 지냈다.

그는 일찍이 북간도로 망명했고, 1914년 국내로 잠입해 연락 활동을 맡았다가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검거되었다. 이후 출소한 그는 1920년 상하이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했고, 중국 내 주요 지역을 왕래하면서 독립운동단체 조직과 동지 규합에 힘을 보탰다.

1926년 중국 광동 19로군에 고문 자격으로 입단했고, 1927년 국민혁명군이 상하이를 장악하는 데 가담했으며, 1930년 국민혁명군 중앙군 육군 제87사단 군의처장(대령)으로 근무했다. 그러나 중일전쟁 중이던 1937년 12월 3일 난징 전투에 참가했다가 12월 8일에 전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서단파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도위공(都尉公) 경주(景霌)파. 24세 상(相) 항렬. 서청원 전 국회의원과 같은 파이다.[2] 대구서씨세보 7권 289쪽에는 1847년 2월 22일생으로 등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