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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C63B7><colcolor=#fff> {{{#fff 대한민국 제31대 육군3사관학교장}}} {{{+1 서정열[1]렬로 등재돼 있다.]}}} 徐正烈 | Seo Jung-yeol | |
본관 | 이천 서씨[2] |
출생 | 1962년 9월 24일[3] ([age(1962-09-24)]세) |
전라남도 함평군 손불면[4] | |
학력 | 학다리고등학교 (졸업) |
현직 | 절절포협회 회장 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 이사 CTS인터내셔널 병영선교위원회 위원장 |
종교 | 개신교 (장로회)[5] |
경력 | 육군3사관학교 특임교수 지상작전사령부 예비역 장성관찰관 |
SNS | [6] |
군사 경력 | |
임관 | 육군3사관학교 (20기) |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1983년 10월 23일 ~ 2019년 11월 30일 | |
최종 계급 | 소장 (대한민국 육군) |
최종 보직 | 육군본부 감찰실장 |
주요 보직 | 제5보병사단 포병연대 제988포병대대장 제1보병사단 포병연대장 제3포병여단장 제7보병사단장 육군3사관학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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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말자!
Never Never Give Up!
서정열 장군의 인생 신조이자 서정열 장군을 대표하는 슬로건으로
2024년 현재도 전국 여러 기관에 초청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감과 인내심을 바탕으로 한 긍정의 정신을 전파하고 있다.
대한민국 육군의 전 군인. 최종계급은 소장이며 제31대 육군3사관학교장을 지냈다.Never Never Give Up!
서정열 장군의 인생 신조이자 서정열 장군을 대표하는 슬로건으로
2024년 현재도 전국 여러 기관에 초청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감과 인내심을 바탕으로 한 긍정의 정신을 전파하고 있다.
2. 생애
1962년 9월 24일 전라남도 함평군 손불면에서 태어나 함평학다리고등학교(30회)를 졸업했다. 1983년 육군3사관학교 20기 포병 소위로 임관했다. 주요 보직으로 제5보병사단 포병대대장, 육군포병학교 포술학 교관을 거쳐 제1보병사단 포병연대장(대령)[7], 3군단 사령부 화력참모 준장 진급 후 제2작전사령부 화력처장[8], 해군 합동작전조정관[9], 육군제3포병여단장[10]과 제1야전군사령부 화력부장을 역임했다.소장으로 진급하여 육군 제7보병사단장을 역임했다. 이후엔 모교인 육군3사관학교장을 지내고 2018년 12월 말부터 육군본부 감찰실장으로 영전했다. 당시 유일하게 남아있던 현역 출신 동기가 황인권 제2작전사령관(대장)[11]인데다가 3사 2기수 후배인 이진성 장군이 중장으로 진급했기 때문에 육군본부 감찰실장이 그의 마지막 보직으로 보여진다.[12] 결국 3차에도 끝내 중장으로 진급하지 못하고[13] 2019년 11월 19일 부로 3사 3기수 후배인 김태일 소장에게 이임 후 전역대기 상태였다가 11월 30일 전역하였다. 위 동영상에서 전역일을 밝힘. 동월 28일에 국방일보에 전역 소감에 관련된 기고문을 올렸다. #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강의를 출강하다가 2023년 현재는 절절포의 긍정적인 정신과 리더십을 기반으로 한 동기부여 전문 강사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3. 기타
▲ 육군 제7보병사단장 시절, MBC 진짜사나이에 출연하기도 했다.
- 대한민국 육군 공식 웹드라마 백발백중 시즌3 1회 사관생도 편에서 육군3사관학교를 졸업한 나백중 소위의 임관을 축하하는 역할로 직접 등장하였다. # 해당 웹드라마는 주인공인 나백중과 백송이, 나백중의 삼촌을 제외한 모든 주변인물이 촬영 부대의 장병들로 섭외되는데 3사 출신 장군이 출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항상 부하들에게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말자!라는 의미의 절절포정신을 강조한다. 제3포병여단장 시절 여단 상병 집체교육 후 자필사인이 담긴 머플러를 직접 목에 둘러주었으며, 제7보병사단장 시절 그의 모토인 절절포를 제7보병사단의 모토로 확대하고 절절포송을 만드는 등 절절포 사랑을 이어갔다.[14] 2015년 11월 말엔 모교인 학다리고등학교에 방문하여 절절포 문구와 장군 본인의 자필사인이 담긴 붉은색 머플러를 전교생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 머플러에 전교생들의 이름을 자필로 일일이 적어주는 정성을 발휘했다.[15] 후배사랑 나라사랑.
- 사단장 시절 너그러운 성격으로 부하들의 충성도가 높았다. 특히 일반 병사들을 상당히 아끼고 위해주는 것으로 유명했다. 위문도 자주 오고 병사들의 복지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그 다음 3사관학교장 때 또한 이어졌으며 생도들과 병사들을 위한 모습을 보였었다. 제7보병사단장 재임 시절엔 정열이 형 이라는 친근한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심지어 개신교 신자[16]라 사단 교회를 방문하는 일이 잦았는데 병사들이 환호하며 사인을 요청하면 그걸 일일이 다 해줬다고 한다.(...)참고
- 전반적으로 자율성을 보장하며, 벌보다는 상으로 통제하는 스타일로 보인다. 과거 제7보병사단장 재임 시절 칠성의 별 이라는 제도를 시행한적이 있었는데 체력, 사격, 금연, 독서 등의 목표가 있어서 이를 달성할 경우엔 일정량의 휴가 일수를 주는 제도였다. 일선 병사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아도 알아서 특급전사를 달성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고. 이 덕분에 윤의철과 비교되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 특이하게도 위에서 설명한 머플러와 더불어 빳빳한 미화 행운의 1달러 지폐를 주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3사관학교에서는 2달러로 바뀌었다.
- 군생활을 무사히 끝마치는 병장들에게 항상 수고했음과 감사함을 표현하였으며 준장, 소장, 중장, 대장과 더불어 5대 장성이라 자주 칭하였다.
- 사관학교 후배인 캡틴 김상호에게도 자필 서명한 절절포 머플러를 선물로 줬다.
[1] 이천서씨병부상서공파보 권3 333쪽에는 서[2] 병부상서공파(兵部尙書公派)-익롱공파(益聾公派)-강호공계(江湖公系) 33세 열(烈) 항렬.[3] 음력 8월 26일.[4] #[5] 새에덴교회에서 협동장로로 시무하고 있다[6] 인스타그램에서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시다. 또한 댓글이나 DM을 남기면 절절포 기념품 세트를 무료로 받을 수도 있다. 존경스럽다[7] 당시 같은 사단내 12연대장이 김운용과 그 후임인 김승겸이었다.[8] 현재는 모르겠으나 2010년 초까지는 2작전사령부에 제1야전군사령부나 제3야전군사령부보다 반계급에서 한계급 아래가 보통 동일 직급에 보임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당시 계급은 대령. 하지만 보임 후 얼마 안되어 준장 진급이 확정되었다.[9] 합동작전조정관은 육·해·공군의 작전사령부에서 시행하는 작전·임무의 이해를 돕고 주요 지휘관·참모에게 합동작전에 대한 조언을 제공해 3군의 합동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육군 합동작전조정관 3명은 해군작전사령부와 공군작전사령부, 서북도서사령부(해병)에서 각각 근무하고, 해군 조정관과 공군 조정관은 각각 1명씩 육군의 지상작전사령부에서 작전 업무를 수행한다. 과거 1군사령부, 3군사령부로 나뉘었을 때는 해군 조정관이 1군사령부에 보임되면 공군은 3군사령부로, 또는 그 반대로 보임되었다. https://blog.naver.com/armymagazine/110139129124[10] 진짜사나이-산악포병여단 화룡대대 방영 당시 생활관에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말자가 걸려 있었다. 해당 편에서 출연자 손진영이 절절포 정신를 언급하기도 했다.[11] 2020년 9월에 육사 42기의 김정수 대장에게 이임 후 전역하였다.[12] 하지만 장군 인사라는것이 육사 출신을 제외하고 꼭 정해진 대로 가지는 않기 때문에 지켜볼 일이다. 이진성 장군은 2019년 6월에 삼척항 목선 귀순 사건 당시 경계 실패의 책임을 지고 보직해임되었다. 3사 3기수 후배인 허강수 장군이 2019년 11월 중장 진급 및 제7기동군단장으로 보임하였다.[13] 2019년 상반기 장군진급 심사발표간 후임 3사관학교장인 황대일 소장이 진급했는데, 일부 간부들은 서정열 소장이 진급했다고 착각한 카더라가 있었다고 한다. 희망고문[14] 이 캐치프레이즈는 윈스턴 처칠의 명연설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15] 사실 이는 시골 고등학교라 가능했다. 당시 학다리고등학교의 학생은 전교생이 450명도 안 되었다. 그래도 약 450명의 이름과 약 450개의 본인 사인을 사단장급의 장군이나 되는 사람이 일일이 자필로 적어주었다는 것은 대단한 정성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전역식마다 직접 나타나서 축하해주고 일부 병사들에게 감사장과 전역증 머플러를 직접 둘러주기도 한다. 후술하는 전방부대 위문 방문시에도 자필로 이름을 적은 머플러를 모든 부대원(장교, 부사관, 병사 전원)에게 나눠주기도 한다.[16] 예장합동교단인 새에덴교회 장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