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5-04-10 02:39:21

성 바실리 대성당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fff> 문화유산
1990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사 지구와 관련 기념물군
Исторический центр Санкт-Петербурга
и связанные с ним группы памятников
1990년

키지 포고스트
Кижский погост
1990년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전붉은 광장
Московский Кремль и Красная Площадь
1992년

노브고로드 역사 기념물군과 주변 건축물
Исторические памятники
Великого Новгорода и окрестностей
1992년

솔로베츠키 제도 문화 역사 유적군
Историко-культурный комплекс
Соловецких островов
1992년

블라디미르수즈달의 백색 기념물군
Белокаменные памятники
Владимира и Суздаля
1993년

세르기예프 포사드의
트로이체 세르기예프 수도원 고고 유적

Архитектурный ансамбль Троице-Сергиевой
лавры в городе Сергиев Посад
1994년

콜로멘스코예의 예수 승천 교회
Церковь Вознесения в Коломенском
2000년

카잔 크렘린 역사 건축물
Историко-архитектурный комплекс
Казанского Кремля
2000년

페라폰토프 수도원 유적
Ансамбль Ферапонтова монастыря
2000년

쿠로니아 모래톱
Куршская коса́
2003년

데르벤트의 성채, 고대 도시, 요새 건물
Цитадель, Старый город
и крепостные сооружения Дербента
2004년

노보데비치 수도원
Ансамбль Новодевичьего монастыря
2005년

야로슬라블 역사지구
Исторический центр Ярославля
2005년

스트루베 측지 아크
Геодезическая дуга Струве
2014년

볼가르 역사 고고 유적군
Булгарский историко-археологический комплекс
2017년

도시 섬인 스비야시스크에 있는
성모 승천 대성당과 수도원
Успенский собор и монастырь
острова-града Свияжск
2019년

프스코프 학파의 성당 건축물
Храмы псковской архитектурной школы
2021년

오네가 호수와 백해의 암각화
Петроглифы Онежского озера и Белого моря
2023년

카잔연방대학교 천문대
Астрономические обсерватории Казанского федерального университета
2024년

케노제로 호수 문화경관
Культурный ландшафт Кенозерья
<rowcolor=#fff> 자연유산
1995년

코미 원시림
Девственные леса Коми
1996년

바이칼 호
Озеро Байкал
1996년

캄차카 화산군
Вулканы Камчатки
1998년

알타이 황금 산맥
Золотые горы Алтая
1999년

캅카스 서부 지역
Западный Кавказ
2001년

시호테알린 산맥 중부 지역
Центральный Сихотэ-Алинь
2003년

우브스 누르 분지
Убсунурская котловина
2004년

브란겔랴 섬의 자연 보호 지역
Природный комплекс заповедника
Остров Врангеля
2010년

푸토라나 고원
Плато Путорана
2012년

레나 필라스 자연공원
Природный парк "Ленские столбы"
2017년

다우리아 경관
Ландшафты Даурии
}}}}}}}}}
파일:external/travelask.ru/rabstol_net_russia_18.jpg
Храм Василия Блаженного
{{{#!wiki style="margin: -5px -10px -5px"<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0000>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 유네스코 세계유산
UNESCO World Heritage
파일:St._Basil_Cathedral.jpg
<colbgcolor=#000><colcolor=#FFF> 이름 한국어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전과 붉은 광장
영어 Kremlin and Red Square, Moscow
러시아어 Московский
Кремль и Красная Площадь
프랑스어 Le Kremlin et la place Rouge, Moscou
국가·위치
#!if 행정구 == null && 속령 == null
[[러시아|{{{#!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러시아 국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러시아}}}{{{#!if 출력 != null
}}}}}}]]
#!if 국명 == null && 속령 == null
[[틀:국기|{{{#!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 특별행정구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행정구}}}{{{#!if 출력 != null
}}}}}}]]
#!if 국명 == null && 행정구 == null
[[틀:국기|{{{#!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 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속령}}}{{{#!if 출력 != null
}}}}}}]]
모스크바
등재유형 문화유산
지정번호 545
등재연도 1990년
등재기준 (i)[1], (ii)[2], (iv)[3], (vi)[4]
링크 홈페이지 }}}
<colbgcolor=#ddd,#222> 언어별 명칭
러시아어 Храм Василия Блаженного[5]
영어 St.Basil's Cathedral
한국어 성 바실리 성당[6]

1. 개요2. 역사3. 건축
3.1. 내부 모습
4. 매체5. 기타

1. 개요

러시아 모스크바붉은 광장 남쪽에 있는 정교회.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정식 명칭은 해자 위의 성모 중보 대성당, 혹은 포크로프스키 대성당이다. 성 바실리 대성당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이유는 1588년 성당을 증축하면서 그 안에 '그리스도를 위한 바보' 성인 축복받는 바실리의 유해를 모셨기 때문에 그 이름을 따 부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옆에 있는 크렘린과 이 성당을 헷갈리는 경우가 많지만 둘은 위치가 가까울 뿐 서로 다른 건물이다. 영어권 뿐만 아니라 그 대한민국조차도, 심지어 러시아 본국에서도 이런 착각을 하는 사람이 은근히 많아서 구글이나 러시아 검색 엔진인 얀덱스, Mail.Ru 에서도 크렘린을 검색하면 성 바실리 성당 사진이 많이 쏟아져 나온다. 크렘린 관련 관광정보들이 성 바실리 성당까지 한 항목으로 엮어서 표기해 마치 크렘린의 부속건물처럼 오해하기 딱 좋게 만든 것들이 많고, 테트리스[7]의 인트로나 광고에서 상징적으로 사용되는 건물이기도 했으므로 전 세계적인 오해를 부추기는 데 큰 몫을 했을 터이다.

2. 역사

파일:1280px-Vasnetsov_Ivan_4.jpg 파일:G.Quarenghi_-_Views_of_Moscow_and_its_Environs_-_Pokrovsky_Cathedral_and_Spasskaya_Tower_-_1797.jpg
<rowcolor=#fff> 이반 4세 1797년의 대성당
원래도 이 곳에는 크렘린과 함께 1300년대에 지어진 백색 석조로 만든 삼위일체 성당이 있었다. 이반 4세카잔 칸국과 전쟁을 벌이면서 주요 승리를 거둘 때마다 삼위일체 성당 옆에 목조 기념예배당을 하나씩 추가했는데, 원정이 끝날 즈음 총 7개의 예배당이 성당 옆에 세워져서 총 8개의 교회가 한데 옹기종기 모여있는 상태였다. 1554년 10월 1일에는 카잔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목조 성당들이 '해자 위의 지극히 거룩한 성모 중보 교회'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봉헌됐다. 1년이 지난 1555년 목조 성당을 허물고 그 부지에 석조로 새로 성당을 짓기 시작했으며, 6년 간의 공사 끝에 1561년 6월 29일 대성당이 완공됐다. 새롭게 완공된 대성당은 중앙의 탑을 중심으로 8개의 예배당들이 모여있는 구조였다.

전설에 의하면 이반 4세는 완공된 성당이 너무나 아름다운 나머지 이 성당을 지은 장인인 바르마와 포스트니크 야코블레프가 다시는 이보다 더 아름다운 성당을 짓지 못하도록 두 장인의 앞을 못 보게 했다고 한다. 다른 좀 더 디테일한 전설에 의하면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가 이 성당을 보고 "영국에도 이런 아름다운 성당 좀 짓게 기술자 좀 보내주시죠?"하고 요청했는데 영국에도 이런 간지나는 건축물이 올라갈 것을 아니꼽게 본 이반 4세가 장인의 눈을 뽑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타지마할 등 다른 건축물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으며, 바실리 성당 건축에 참여한 건축가들은 이후에도 활동[8]했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농후하다.[9]

1561년에 완성된 성당은 성모 마리아를 수호성인으로 모셨고 정식 명칭은 포크로프스키 성당이다. 그런데 1588년에 성당을 증축하며 조그맣게 9번째 예배당을 추가, 그 예배당에 러시아 정교회에서 존경받는 "그리스도를 위한 바보" 축복받는 바실리를 모셨기 때문에 나중에는 '바실리 성당'이라는 명칭이 사람들에게 더 친숙해졌다.

15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성 바실리 대성당에는 양파 모양 돔이 아닌, 독일제 철판으로 덮은 삿갓지붕[10]만이 있었다. 그러다가 1500년대 말에 처음 양파형 돔으로 바뀌었고,[11] 1600년대 들어서 겉에 색색의 타일을 붙이며 현재의 모습에 가까워졌다. 특히 1680년대에는 1층의 개방 아케이드를 벽으로 채우고 하나의 플랫폼으로 만들어서 서로 따로따로 떨어져있던 8개의 예배당을 통합, 8개 예배당의 집합에 불과했던 대성당을 온전한 하나의 건물로 만들었다. 사원 내부의 목조 회랑과 골조들을 벽돌로 대체한 것도 바로 이 시기. 동시에 기존의 노후한 종탑을 철거하고 새로운 종탑을 지었는데, 이걸 남동쪽 모서리에 지어놓는 바람에 원래 대칭이던 대성당의 모습이 완전한 비대칭이 되어버렸다.
파일:Fireofmoscow.jpg 파일:Рабус_Карл_Иванович_-_Храм_Василия_Блаженного.jpg
<rowcolor=#fff> [[모스크바|{{{#fff 모스크바}}}]]에 입성한 [[나폴레옹|{{{#fff 나폴레옹}}}]] 1835년의 대성당
예카테리나 2세 재위기인 1737년에는 모스크바 한복판에서 대규모 화재가 일어나는 바람에 거의 전소되었다가 이반 미추린의 감독 아래 다시 복구됐다. 1812년 모스크바를 점령한 나폴레옹크렘린과 정부 청사 등은 폭파하고 불태워버렸지만 성 바실리 대성당은 건드리지 않았다. 물론 성당을 가만히 놔둔 것은 아니라 성당을 약탈한 뒤 마굿간으로 썼다. 그래도 큰 피해는 입지 않았기에 나폴레옹이 물러가자 내부는 1813년에, 외부는 1816년에 완전히 수리했다. 이후에도 옹벽과 테라스를 설치해 일반 도로와 대성당을 분리하고, 특히 1848년에는 돔의 색상을 지금의 것으로 교체하는 등 꾸준하게 공사가 이루어졌다. 1880년대와 1890년대에는 모금을 받아 복원 공사를 진행했고, 이때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명목으로 현재의 진한 붉은색과 초록색의 페인트를 사용해 건물 전체를 다시 칠했다.

소련 시대에는 겨우겨우 파괴되는 일을 면했다. 혁명 직후에는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방치되어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은 바람에 물이 새고 심지어 겨울에는 깨진 지붕으로 눈이 들이치는 일까지 있었다. 1923년에는 박물관으로 용도가 전환되며 보수를 했고, 1929년에는 예배가 중단되었다. 볼셰비키들은 모스크바의 도시계획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성당을 철거해버리고 싶어했다. 그러나 스탈린의 개입으로 철거만은 면했다. 당시 도시계획을 주도하던 라자르 카가노비치가 책상 위 모스크바 도시 계획 모형에서 대성당의 미니어처를 떼내어버리려 하자 스탈린이 날카롭게 '라자르, 그거 다시 내려놓게!'라고 명령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12] 그러나 아예 파괴 위험이 없었던 건 아니다. 1933년에는 철거 직전까지 갔지만 담당자가 대성당을 직접 둘러보곤 철거를 거부해서 굴라그에 처박힌 적도 있다.[13] 시간이 조금 흐르자 볼셰비키 급진파조차도 대성당 철거는 지나치다고 인정하면서 겨우 파괴는 피해갈 수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부터는 오히려 복구 작업을 거치며 제대로 문화유산다운 관리를 받았다. 1층의 회랑과 기둥, 내부 장식들을 복원했고, 대성당에 페인트를 다시 칠하는 한편 10년마다 갈아줘야했던 철제 돔을 관리가 편한 구리로 바꾸었다. 소련 붕괴 후부터는 러시아의 국가적 상징으로 대접받았다. 1990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1991년 11월에 대통령령에 따라 러시아 정교회가 62년만에 다시 예배드리는 것이 허가됐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복원 작업은 2001년부터 10년간 진행된 복원 프로젝트. 완공 450주년을 맞춰 복원을 마쳤으며 10개 성당과 내부의 이콘들, 지하실까지 포함해 러시아 제국 시절 대성당의 모습을 완벽히 복원했다. 현재는 매년 40만 명이 방문하는 관광명소이자 명실상부한 러시아의 랜드마크다.

3. 건축

파일:saint_basil's_cathedral_tower_location.jpg
<rowcolor=#fff> 위치 이름 기념
중앙 성모 마리아 중보 교회 1552년 10월 1일 러시아군의 카잔 최후 공세
서쪽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 교회 모스크바군의 승리
북서쪽 아르메니아의 성 게오르기 교회 1552년 9월 30일 카잔의 아르스 탑 함락
북쪽 성 키프리아누스와 유스티나 교회[14] 1552년 10월 2일 카잔의 최종 함락
북동쪽 세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교회 1552년 8월 30일 러시아 기병대의 승리
동쪽 성 삼위일체 교회 옛 삼위일체 교회의 자리에 세워진 교회
남동쪽 성 알렉산드르 스비르스키 교회 1552년 8월 30일 러시아 기병대의 승리
남쪽 성 니콜라이 교회 성 니콜라이[15]
남서쪽 성 발람 교회 바실리 3세
북동쪽 신관 성 바실리 교회 성 바실리의 무덤
남동쪽 신관 블라헤르네 교회[16] 러시아 성인의 무덤
파일:1000_F_296158929_noeHYLkIslbDZUEh09W2Y3Chts3cVWq9.jpg 파일:1000_F_53943005_jnOhsquah64v2mN9n2p3WrOyQJ6uF5Ip.jpg
<rowcolor=#fff> 성 바실리 대성당의 탑들
탑들마다 다 이름이 있다. 첫 번째 사진 왼쪽부터 순서대로 성 바실리 교회[17], 성 삼위일체 교회[18], 세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교회[19], 성 키프리아누스와 유스티나 교회[20], 성모 마리아 중보 교회[21], 성 게오르기 교회[22],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 교회[23]다. 두 번째 사진은 뒤편의 탑들로, 왼쪽에서 두 번째부터 각각 성 발람 교회[24], 성 니콜라이 교회[25], 성 알렉산드르 스비르스키 교회[26]다.
거기에 앉아 계신 분은, 모습이 벽옥이나 홍옥과 같았습니다. 그 보좌의 둘레에는 비취옥과 같이 보이는 무지개가 있었습니다. 또 그 보좌 둘레에는 보좌 스물네 개가 있었는데, 그 보좌에는 장로 스물네 명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는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아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4:3-4
동화속에 나올 것 같은 화려한 색감과 독특한 생김새가 그 특징으로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천국의 묘사에서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가 앉아있는 보좌 주위를 장로들의 보좌가 둘러싸고 있었다고 썼는데 이를 따라 성 바실리 대성당의 돔들도 중앙의 거대한 탑을 중심으로 여러 탑들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다. 벽돌을 쌓아만들어 붉은색과 흰색이 기본 베이스 색깔이지만, 요한계시록에서 언급한대로 무지개색을 만들기 위해서 돔을 포함한 곳곳에 초록색과 푸른색, 노란색을 추가하면서 다채로운 형형색색의 빛깔을 띠게 되었다.

성 바실리 대성당의 가장 큰 특징은 매우 독특한 외양이다. 16세기 유럽 건축은 물론 기존 러시아 건축과 비교해봐도 독특한 점이 많다. 건축적으로는 세계유산인 콜로멘스코예 예수 승천 교회(Church of the Ascension, Kolomenskoye)의 영향이 강하게 보이며, 전체적으로는 러시아 고유의 양식과 비잔틴 양식이 혼합되었다. 하지만 저 많은 탑과 각기 다른 모양의 돔 등이 가져다 주는 전체적인 형상은 닮은 건물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하다. 계단이 달린 토대를 높이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으며 높이 46m짜리 중앙탑과, 이를 둘러싼 작은 탑 8기를 배치했다. 각각의 제실이 내부회랑으로 연결된 특이한 형식을 취하였다. 높이나 크기가 다른 둥근 지붕의 조각 면에는 극채색을 칠해 놓았으며, 코코시니크라고 하는 장식 박공널을 사용했다.

3.1. 내부 모습

파일:0219_-_Moskau_2015_-_Basilius_Kathedrale_(26125728400).jpg 파일:0193_-_Moskau_2015_-_Basilius_Kathedrale_(26332232001).jpg 파일:0194_-_Moskau_2015_-_Basilius_Kathedrale_(26306098982).jpg
파일:0228_-_Moskau_2015_-_Basilius_Kathedrale_(26306274432).jpg 파일:0234_-_Moskau_2015_-_Basilius_Kathedrale_(25795901783).jpg
<rowcolor=#fff> 대성당 내부
성 바실리 대성당은 지면 아래에 지하실이 없다. 대신 대성당은 지상에 벽돌을 쌓아만든 기단 위에 세워져 있는데, 이 기단 내부에 방이 있어서 사실상의 지하실처럼 쓰인다. 이 방들의 견고한 벽돌 벽들은 그 두께가 최대 3m에 달하고 높이는 약 6.5m, 궁륭형 천장이다. 예전에는 저장용 창고로 쓰여 부유한 사람들이 이 곳에 제 재산을 숨겨놓는 등 일반인들의 출입이 불가했으나 현재는 출입이 가능하다. 방들에는 몇 개의 이콘들이 있다. 가장 오래된 것은 16세기 말 성 바실리에게 봉헌된 성 바실리의 이콘. 이외에도 17세기의 '성모 마리아의 보호', '표지의 성모' 이콘이 여기에 걸려있다.[27]

북쪽에 현관 입구가 나있다. 현관으로 들어가 2층 계단을 올라가면 2층의 회랑이 나온다. 이 회랑은 대성당 건물을 한 바퀴 빙 두르는데, 회랑의 벽들은 1600년대 후반에 처음 식물 모티프로 장식된 이래 여러 차례 성인들의 일화를 담은 유화로 덧붙임하며 화려하게 장식됐다. 현재는 내부의 벽들 전체를 꽃과 식물 무늬, 벽돌 무늬, 성인들의 모습을 다룬 그림 등 수많은 그림들로 온통 장식해놓았다. 회랑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대성당 내부는 좁은 통로와 복잡한 방 배치 때문에 마치 미로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다. 내부를 돌아다니다 보면 성인들의 황금빛 성화와 벽돌무늬, 꽃과 덩굴무늬가 온 사방에 가득하다.
파일:2019-07-28-3342-Moscow-Saint-Basil's-Cathedral.jpg 파일:0203_-_Moskau_2015_-_Basilius_Kathedrale_(26372593936).jpg
<rowcolor=#fff> 성모 마리아 중보 교회 내부[28]
중앙의 가장 거대한 성모 마리아 중보 교회는 1552년 10월 1일 러시아군이 카잔에 마지막 공세를 시작한 것을 기념하여 지어졌다. 거대한 팔각기둥 형태의 탑으로 높이는 약 47.5m다. 내부에서 가장 눈여겨볼만한 것은 벽면 하나를 가득 채운 화려한 성상벽. 목조로 제작한 성상벽은 도금한 주석 띠를 대어 화려하게 장식했다. 원래 있던 성상벽은 사라졌고,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성상벽은 1770년 해체된 크렘린의 성당에서 가져온 것이다. 1700년대 말에 교회가 해체되면서 트베리로 팔려나갔다가 1920년대에 박물관 직원들에게 발견되어 현재는 대성당의 중앙에 설치됐다. 그 옆에 있는 19세기 후반을 묘사한 화려한 석고 프레스코화들도 눈여겨볼 거리.
파일:Interior_of_Saint_Basil's_Cathedral_(Photomerged_pictures)_(19344643454).jpg 파일:Moscow_(8355836521).jpg
<rowcolor=#fff>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 교회 내부 성 키프리아누스와 유스티나 교회 내부
서쪽에 위치한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 교회는 초록색과 붉은색 줄무늬 돔을 가진 커다란 탑으로 규모가 크고 엄숙한 것이 특징이다. 예수예루살렘에 입성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이는 카잔 칸국을 정복한 이반 4세모스크바에 입성하는 것을 예수와 연관짓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 이름 때문에 종려주일[29]의 전례 장소가 되어 당나귀를 탄 총대주교의 행렬이 성모승천성당에서 출발해서 여기에서 행진을 끝냈다. 이 탑이 서쪽에 있는 것도 행진 행사 때문에 크렘린과 가깝게 지어놓기 위해서 그렇다. 이 곳의 성상벽은 1770년대 크렘린의 알렉산드르 넵스키 교회에서 가져온 것으로, 그 곁에 알렉산드르 넵스키의 성화와 네바 강 전투 등 그의 삶을 담은 33개의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북서쪽에 위치한 아르메니아의 성 게오르기 교회는 노란색에 초록색 격자 줄무늬가 있는 높이 15m의 작은 탑이다. 325년 대아르메니아에서 온 나라를 개종시키고 사망한 성인 게오르기에게 봉헌되었으며 1552년 9월 30일 카잔의 아르스 탑이 함락된 것을 기념한다. 하얗게 칠해진 내부에는 16~17세기의 성화들로 장식된 성상벽이 있고,[30] 특히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성 요한의 성상이 주요 유물이다.[31] 또한 금사로 장식한 17세기 정교회 사제들의 옷들, 몇 백년 된 가는 금속 촛대들, 색색의 에나멜로 장식한 19세기의 램프도 유명하다.

북쪽의 성 키프리아누스와 유스티나 교회는 푸른색과 하얀색 줄무늬 돔이 있는 커다란 탑이다. 3~4세기 경 안티오크에 살았던 순교자 키프리아누스와 유스티나에게 봉헌되었으며 1552년 10월 2일 카잔 함락을 기념해서 만들어졌다. 벽에는 유화들이 그려졌는데 하부에는 성 아드리아누스와 나탈리아[32], 상부에는 성 키프리아누스와 유스티나가 그려졌다. 내부에는 18세기의 깃발, 십자군 전쟁 당시의 이콘과 깃발, 1780년대에 만들어진 금박 목재 성상벽[33]이 있다.
파일:2019-07-28-3343-Moscow-Saint-Basil's-Cathedral.jpg 파일:L1230681.jpg
<rowcolor=#fff> 세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교회 내부 성 삼위일체 교회 내부
북동쪽의 세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교회는 초록색과 붉은색 줄무늬 돔을 가진 높이 14.9m의 작은 탑이다.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였던 알렉산드르, 요한, 바오로의 이름으로 봉헌되었으며 1552년 8월 30일 러시아군이 카잔 칸국을 돕기 위해 크림 반도에서 온 타타르 왕자 야판치의 기병대를 격파한 것을 기념한다. 한때 아르메니아의 성 그레고리 대성당에서 왕좌를 옮겨온 것을 기념해 성 그레고리 탑이라는 이름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이때문에 내부의 벽화에 성 그레고리의 일생과 에데사의 아브가르 5세가 기독교로 개종하는 모습이 흔적으로 남아있다. 내부의 5단 성상벽은 바로크 양식과 고전 양식이 합쳐져 화려한 모습으로 1800년대 중반에 처음 만들어졌다.[34]

동쪽의 성 삼위일체 교회는 초록색과 노란색 줄무늬 돔을 가진 높이 21m의 큰 탑이다. 성 바실리 대성당이 지어지기 전부터 이 곳에 자리했던 옛 삼위일체 교회의 부지에 지어진 후신 교회이자 현재는 성 바실리 대성당의 일부다. 가장 독특한 것은 내부에서 천장을 올려다보면 작은 벽돌로 나선형 구조를 만들어 천장에 장식해놓은 것을 볼 수 있다는 것. 이는 러시아 미술에서 굉장히 희귀한 신의 상징으로, 신과 영원성을 나타낸다. 1735년의 화재 이후 내부가 새하얗게 칠해져 밝고 우아한 분위기다. 벽에 점토로 만든 항아리가 내장되어있어 소리를 증폭해주며, 16세기 말에 만들어진 성당에서 가장 오래된 샹들리에들 중 하나가 걸려있다. 이 곳의 성상벽에 있는 16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구약 삼위일체 성화는 성 바실리 대성당에서도 가장 신성한 성화들 중 하나다.
파일:L1230691.jpg 파일:Moscou_-_Basile_(06).jpg 파일:Saint_Basil's_Cathedral_interior_by_shakko_04.jpg
<rowcolor=#fff> 성 알렉산드르 스비르스키 교회 내부 성 니콜라이 교회 내부
남동쪽에 있는 성 알렉산드르 스비르스키 교회는 초록색과 노란색 줄무늬 돔이 있는 높이 15m의 작은 탑이다. 노브고로드의 성인 성 알렉산드르 스비르스키의 이름으로 봉헌되었으며 1552년 8월 30일 아르스크 전투에서 차레베치 야판치의 기병대를 격파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다. 내부 면적은 4.8m x 2.8m. 현재의 모습은 1920년대와 1980년대에 진행된 2차례의 복원 작업을 통해 16세기의 원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성 삼위일체 교회와 마찬가지로 신을 상징하는 나선무늬가 천장에 장식되었다. 또한 내부를 보면 벽돌이 그대로 노출된 것이 아니라 벽에 벽돌무늬 모양을 그린 것이다. 성상벽 역시 1900년대에 재건된 것으로 16세기와 18세기 초까지의 성화들로 장식되어있다.

남쪽에 있는 성 니콜라이 교회는 붉은색과 하얀색 가로 줄무늬 돔이 있는 높이 28m의 커다란 탑이다. 기적을 불러일으킨다고 알려진 성 니콜라이의 이콘에게 봉헌됐다. 이 이콘은 키로프 시에서 처음 발견됐는데 1555년 이반 4세가 이 성화를 새로 정복한 땅들을 거쳐서 행진해 가져오도록 명령, 모스크바에 도착하자 이 곳에 안치했다. 1736년 화재로 심한 손상을 입었다가 1786년 처음 내부에 성화들이 그려지기 시작했고 현재 볼 수 있는 내부 성화들은 19세기 중반에 그려진 것들이다. 왕좌에 앉은 채 예언자들에게 둘러싸인 성모 마리아, 12사도, 그리고 맨꼭대기 천장에는 예수의 모습이 묘사됐다. 나무로 만든 성상벽은 금박입힌 꽃들로 장식했고 기적을 일으킨다는 성 니콜라이의 성화가 여기에 있다. 18세기 말에 바닥을 흰색 돌로 덮었으나 복원 작업 도중 16세기의 목재 바닥이 드러나면서 현재는 대성당에서 유일하게 그당시의 목재 바닥이 그대로 남아있는 장소다.

남서쪽의 성 발람 교회는 초록색과 노란색 삼각형 격자 돔이 있는 높이 15.2m의 작은 탑이다. 노브고로드의 성인이자 수도원장 성 발람에게 봉헌됐다. 성 발람은 왕실의 수호성인으로서 이반 4세의 아버지 바실리 3세가 임종 당시 그의 이름으로 삭발식을 거행했고, 특히 이반 4세가 원정을 끝마치고 모스크바에 입성한 날이 성 발람 축일인 1552년 11월 6일이기도 했다. 교회의 후진[35]이 약간 남쪽으로 틀어졌는데 이는 성모 마리아 중보 교회 사이에 통로를 만들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틀어서 설치한 것. 1920년대에 복원된 성상벽에는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성화가 장식됐다. 특히 16세기 말 그려진 '섹스톤 타라시우스의 환상'[36] 성화에는 낚시, 쟁기질, 파종 같은 옛 노브고로드의 일상생활이 그려져 있어 학술학적 가치가 높다. 15세기에 만들어진 대성당에서 가장 오래된 샹들리에가 내부를 비추고 있다.
파일:external/moiarussia.ru/travel-sobor-vasiliya-blazhennogo_4.jpg 파일:0192_-_Moskau_2015_-_Basilius_Kathedrale_(26306086412).jpg
<rowcolor=#fff> 성 바실리 교회 내부
북동쪽 신관에 위치한 성 바실리 교회는 초록색에 노란 줄무늬 돔을 가진 매우 작은 탑이다. 1588년에 새로 증축될 때 지어져 성 바실리 대성당이라는 이름의 유래기도 하다. 정육면체 모양의 예배당에는 궁륭아치천장이 있고, 내부의 유화들은 대성당 건설 350주년 기념으로 1905년에 완성됐다. 천장 한복판에는 예수의 모습, 드럼에는 아담을 포함한 예수의 선조들, 궁륭의 십자선에는 예수, 성모, 세례 요한, 궁륭의 세일에는 복음사가들을 그려놨다.

북쪽과 남쪽 벽에는 바다에서 구조된 기적이나 모피의 기적 같은 성 바실리의 일생 일화들을 그렸고 아랫부분에는 전통적인 고대 러시아 장식으로 꾸몄다. 서쪽 벽에는 '성모 마리아의 보호' 성화가 걸려있으며, 벽 윗쪽에는 왕실의 수호성인 테오도로스 스트라텔라테스, 세례 요한, 성녀 아나스타샤, 순교자 이레네 등이 그려졌다. 1895년 완성된 성상벽은 '왕좌에 앉은 구세주' 성화, 16세기의 '스몰렌스크의 성모' 성화, 18세기의 '크렘린과 붉은 광장 배경의 축복받은 성 바실리' 성화 등등으로 장식했다.

단연 유명한 것은 당연히 여기 묻힌 성 바실리의 유물함이다. 성 바실리의 매장지 바로 위에 조각된 캐노피 아치를 세워 자리를 표시해놨는데 안타깝게도 유물함 자체는 혼란 시대 때 파괴되고 말았다. 다만 이리나 고두노바 시대때 만들어진 새틴에 금사를 박아 만든 성 바실리의 수의는 아직도 남아있어서 여전히 여기서 모시고 있다. 소련이 들어서자 1929년에 예배가 중단됐고 20세기 말에야 장식이 복원됐다. 1991년이 되서야 62년만에 처음으로 이 곳에서 예배가 거행되었으며 1997년부터는 정기 일요예배가 시작되어 지금은 성 바실리 대성당에서 유일하게 정기 예배를 드리는 곳이다.
파일:Памятник_Минину_и_Пожарскому_в_Москве_IMG6834_2008_e1t.jpg 파일:Колокольня_Покровского_собора_-_panoramio.jpg 파일:hram_vasilia28.jpg
<rowcolor=#fff> 동상 종탑 성 요한 교회
워낙 대성당 본체가 화려해 잘 눈에 띄지 않지만 대성당 바로 앞에 있는 동상도 무려 200년이 넘은 오래된 문화재다. 1612년 폴란드가 러시아를 침공했을 당시, 모스크바에서 폴란드군을 몰아내고 혼란 시대를 종결한 민중 운동을 이끈 두 민족영웅 드미트리 포자르스키와 쿠즈마 미닌의 동상이다. 1816년에 만들어져 높이는 8.75m, 청동 조각의 무게는 무려 18톤에 달한다. 앉아있는 사람이 포자르스키이고 서있는 사람이 쿠즈마 미닌인데, 원래는 둘다 똑같은 자세로 만들려고 했다가 귀족들이 '포자르스키는 귀족이고 쿠즈마 미닌은 한낱 푸줏간업자 출신인데 어떻게 감히 똑같은 자세를 하느냐!'라고 반발해서 현재의 자세로 바뀌었다.[37] 원래는 붉은 광장 정중앙에서 미닌이 크렘린을 향해 손을 뻗은 구도로 세워졌지만 소련 출범 이후 군사퍼레이드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1936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대성당의 부속건물인 종탑은 168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옛 고대 종탑을 허물고 그 자리에 그대로 새로 지은 것이다. 종탑의 기단은 사각기둥, 그 위에 8개의 아치형 기둥들로 이루어진 팔각정자, 그 위에 높다란 녹색 팔각텐트 지붕이 올라간 모습이다. 지붕은 흰색, 노란색, 파란색, 갈색 유약을 바른 여러 색상의 타일들로 장식했다. 텐트지붕 안에는 종소리를 증폭시키기 위한 작은 창들이 나있다. 러시아 제국 멸망 이후 오랫동안 타종하지 않다가 1990년부터 다시 타종하기 시작했다. 내부에는 17~19세기의 종들이 걸려있으며 종들을 거는 들보는 러시아 혁명 이전부터 전해져내려온 오래된 문화재다.

'성 요한 교회', 엄밀히 말하면 축복받은 성 요한 교회가 정식 이름이다. 1589년 대성당과 가까운 곳에서 성 요한의 성유물이 발견되면서 1672년 대성당에 추가됐다. 원래 성모 마리아의 옷을 내려놓는 의식을 위해 지어진 곳으로 성모 마리아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봉헌되었으나 1916년 성 요한에게 재봉헌됐다. 1929년부터 2018년까지 무려 90년 동안 대중들에게 공개하지 않다가 2년 간의 복원 작업을 거쳐 2018년부터는 대중들에게 공개됐다. 19세기에 사라진 성상벽은 1935년의 사진을 토대로 복원한 뒤 1700년대에 만들어진 성상문을 중앙에 박아넣었고, 벽, 아치형 천장, 바닥의 벽돌을 복구했다. 지금은 성 요한의 소유였던 쇠사슬을 안치 중이다.

4. 매체

파일:external/sandboxworld.com/tetris.jpg
아타리 테트리스의 시작 화면

* 테트리스: 일반인들에게는 이 게임의 배경으로 유명하다. 위 사진과 같이 몇몇 게임에서는 Tetris에서 R 부분을 키릴 문자인 Я로 바꾸기도 했다.

5. 기타

파일:external/www.rgo.ru/kremlin_airpano_0.jpg
[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2]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3]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4]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5] 발음은 '흐람 바씰리야 블라줴노버'이다. 흐람 대신 собор(싸보르)라는 표현도 많이 쓴다.[6] 성 바실리 대성당이나 바실리 성당이라고도 한다.[7] 1980년대 말 아타리나 닌텐도의 테트리스에서도 자주 사용되었다.[8] 포스트니크 야코블레프는 성 바실리 성당 건축 후에 성모 수태고지 성당을 건축했다.[9] 더불어 기술자나 장인을 죽이면 수리 같은 문제는 어찌 해결할까? 때문에 이런 전설에서도 이렇게 기술자를 죽였다가 나중에 고칠 수가 없어서 왕이 후회하였다는 전설도 흔하다. 유럽 어느 나라에서 아름답고 정밀한 대형 시계를 만들었더니 왕이 장인을 죽였는데(또는 눈을 멀게 했다든가 팔을 잘랐다든가 했는데) 나중에 시계가 고장났지만 누구도 고치지 못했고 (기술자가 살아있는 이야기에서는 왕이 어찌 고칠 수 없냐고 애원하자 장인이 자업자득이라고 왕을 비웃으며 영원히 작동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하든가 버전에 따라 왕을 저주하면서 자살했다든가) 왕은 죽을 때까지 후회했다는 전설.[10] tented roof. 현재 성 바실리 종탑의 중앙 탑의 지붕 모습을 삿갓지붕이라고 부른다.[11] 기존 지붕이 화재로 타버리면서 양파형 돔으로 바뀌었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12] 비슷하게 스탈린이 대성당 없는 붉은 광장의 모습을 보기 위해 대성당의 미니어처를 떼내려하자 건축가였던 블라디미르 세묘노프가 스탈린의 팔을 붙잡고 만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13] 이 사람이 건축가 표트르 바라놉스키인데, 대성당을 파괴하면 자살하겠다고 대놓고 선언하는 바람에 굴라그로 끌려갔다.[14] 1786년부터는 니코메디아의 성 아드리아누스와 나탈리아에게 봉헌된 교회로 바뀌었으나 이름은 여전히 성 키프리아누스와 유스티나 교회다.[15] 1555년 모스크바에 그의 성화가 들어온 것을 계기로 세워졌다.[16] 1680년부터는 성모 마리아 탄생 교회, 1916년부터는 성 요한 교회로 이름이 바뀌었다.[17] 맨 왼편 아래쪽에 가장 작게 세워진 초록색에 노란 줄무늬의 탑.[18] 초록색과 노란색 줄무늬 돔이 있는 큰 탑.[19] 초록색과 붉은색 줄무늬를 가진 작은 탑인데, 사진에서는 크기가 더 큰 성 삼위일체 교회와 성 키프리아누스와 유스티나 교회 사이에 가려져 있어서 일부만이 보인다.[20] 푸른색과 하얀색 줄무늬 돔이 있는 큰 탑.[21] 중앙의 제일 높은 거대한 탑.[22] 노란색에 초록색 격자 줄무늬 돔이 있는 작은 탑.[23] 맨 오른쪽 초록색과 붉은색 줄무늬가 있는 큰 탑.[24] 초록색과 노란색 삼각형 격자 돔이 있는 작은 탑[25] 붉은색과 하얀색 가로 줄무늬 돔이 있는 큰 탑.[26] 초록색과 노란색 줄무늬 돔이 있는 작은 탑.[27] 표지의 성모 이콘은 대성당 동쪽 벽에 걸려있던 성화를 1780년대에 모사해 그려진 것으로 원래 성 바실리 교회 입구에 걸려있었으나 현재는 이 기단 내부 방안에 걸려있다.[28] 저 황금빛의 목재 벽이 바로 성상벽(iconostasis)이다. 성상벽이란 성상과 종교화로 장식된 가벽으로 교회에서 본당과 성소를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이콘(성화)을 거는 칸막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다.[29] 종려주일, 성지주일 또는 주님 수난 성지주일이라고 하는데 예수가 십자가형을 앞두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 군중들의 환영을 받은 일에 대한 기독교의 기념일이다. 매년 부활절 일주일을 앞둔 일요일로, 이 날부터 7일간은 성(聖) 주간으로 정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념하는 고난주간으로 지킨다.[30] 현재의 성상벽은 1920년대에 다시 이 자리에 복원한 것이다.[31] 1787년 부유한 사업가 이반 키슬린스키의 요청으로 성 요한에게 봉헌되어서 성 요한 교회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20년대에 다시 성 게오르기 교회로 바뀐 것이다.[32] 1786년 부호 나탈리아 미하일로브나 흐루쇼바가 교회 수리 비용을 대는 대신 자신과 이름이 같은 성 아드리아누스와 나탈리아에게 교회를 봉헌해달라고 요청해서 1920년대까지는 성 아드리아누스와 나탈리아 교회로 불렸다. 1920년대에 소련이 다시 원래대로 바꾸었다.[33] 천지창조를 그려놓은 것이 특징.[34] 다른 교회에 설치되어 있다가 성 바실리 대성당으로 옮겨온 다른 성상벽들과는 달리 이 성상벽은 처음부터 여기에 전시해놓을려고 만든 것이다. 또한 19세기에 만들어진 유일한 성상벽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것들은 이보다 더 오래전에 만들어졌다.[35] 후진(後陣, Apse)은 교회(성당) 건축에서 가장 깊숙히 위치해 있는 부분으로서, 내진 뒤에 주보랑에 둘러싸인 반원형 공간이다.[36] 노브고로드를 위협하는 홍수, 화재, 전염병 같은 재해들을 예견한 쿠틴스키 수도원 사제의 환상을 그린 성화다.[37] 그래서 자세히 보면 포자르스키는 고대 귀족들이 입는 토가 차림인 반면 쿠즈마 미닌은 셔츠에 바지를 입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38] 한국에는 이 둘이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러시아에서는 알렉산드르 넵스키, 드미트리 돈스코이, 알렉산드르 수보로프, 미하일 쿠투조프와 함께 구국의 명장으로 기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