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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6 13:40:04

성낙수

성낙수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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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1.svg
KBO 리그
우승반지
198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4번
팀 창단 성낙수
(1982~1983)
신준옥
(1984)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6번
유백만
(1983)
성낙수
(1984~1985)
이주헌
(1988~1991)
빙그레 이글스 등번호 28번
팀 창단 성낙수
(1986)
김대중
(1887~1992)
}}} ||
파일:external/www.ihalla.com/03430187.jpg
성낙수
成洛洙 | Sung Nak-soo
출생 1957년 8월 12일 ([age(1957-08-12)]세)
경상북도 대구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경북고 - 경희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82년 삼성 라이온즈 창단멤버
소속팀 포항제철 야구단
삼성 라이온즈 (1982~1985)
빙그레 이글스 (1986)
지도자 영남대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1986~1991)
대구성광중학교 야구부 감독 (1993~2004)
제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2005~2017)
한려대학교 야구부 감독 (2021)
구미대학교 야구부 감독 (2022~2023)

1. 개요2. 선수 경력
2.1. 연도별 성적
3. 지도자 경력4. 흑역사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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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 야구 선수.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 멤버.

2. 선수 경력

사이드암 투수로, 경북고 시절에는 팀의 에이스로 1975년 팀의 청룡기, 봉황대기 우승을 이끌었고 대회 최우수투수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대통령배 결승에서 김윤환에게 3연타석 홈런을 맞은 걸로 더 유명하다. 고교 졸업 후 경희대학교에 진학했고 대학 졸업 후에 한국실업야구포항제철에 입단했다. 1981년 14승으로 다승 1위를 차지했다. 이듬해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며 연고팀인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파일:external/image2.gamechosun.co.kr/844447_1365936188.jpg
당시 삼성에는 황규봉, 이선희, 권영호 같은 당대의 에이스가 3명이나 있었지만 반면에 대학 진학 후 포항제철에 있던 1년을 제외하면 별다른 활약이 없었던 성낙수는 이 3명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맡았다.[1] 1986년 신생 팀 빙그레 이글스의 전력보강 선수로 지명받아 이적했고, 그 해 은퇴했다.

2.1.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2 삼성 28 125 8 3 2 0.727
(3위)
2.81 119 15 29 56 44 39 1.13
1983 19 55 3 2 0 0.600 4.91 63 10 18 21 33 30 1.38
1984 6 15⅓ 0 2 0 0.000 4.11 21 0 6 4 10 7 1.70
1985 3 4⅓ 0 0 0 - 4.15 6 1 1 2 2 2 1.62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6 빙그레 15 42⅓ 0 4 0 0.000 4.04 39 3 10 20 22 19 1.13
KBO 통산
(5시즌)
71 242 11 11 2 0.500 3.61 248 29 64 103 111 97 1.24
완투, 완봉기록
연도 완투 완봉
1982년 5완투 0완봉
KBO 통산 5완투 0완봉

3. 지도자 경력

은퇴 후 영남대학교에서 코치를, 1993년부터 대구 성광중학교에서 감독을 맡았고[2] , 성광중 야구부가 해체하자 2005년 3월 제주관광산업고등학교(현 제주고) 야구부의 감독을 맡았다. 대구고 투수 김성현과 김해고 투수 김수완, 용마고 투수 임지섭 등을 데려와 키우는 등 야구 불모지라 할 수 있는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야구 전파에 힘썼다. 2017년을 끝으로 제주고 감독직에서 물러났고 2021년 한려대 야구부 감독으로 현장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한려대의 폐교 결정에 따라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됐고 곧바로 구미대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과정에서 한려대에서 뛰었던 선수 5명을 데리고 갔다.

4. 흑역사

파일:external/img.imnews.imbc.com/VN19912204-00_01381816.jpg

5. 관련 문서




[1] 그래도 당시 삼성 감독이 고교 시절 은사였던 서영무였던지라 서영무 감독이 꽤나 아끼며 배려했다고.[2] 프로 출신에게 아마추어 야구 지도자 자리가 완전히 개방된 1997년부터 정식 감독.[3] 당시 대한야구협회에서 프로에 몸 담았던 사람들은 아마추어 야구와 관련한 일에 종사하지 못하도록 막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