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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21:05:35

성전(기독교)

성전통에서 넘어옴

1. 개요2. 가톨릭에서 성전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2.1. 성경과 성전
3. 정교회에서의 거룩한 전통4. 기타

1. 개요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우리 교부들의 가르침과 가톨릭 교회의 전승에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확실하고도 명확하게 결정한다.
(교회의 전승은 바로 교회 안에 계시는 성령의 전승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제2차 니케아 공의회, 《성화상에 관한 정의》 중
거룩한 전통 · 성스러운 전승 · 전통[聖傳], (Holy) Tradition.
가톨릭 사전의 풀이

성전(聖傳)이란 기독교, 특히 가톨릭, 정교회를 중심으로 한 보편교회에서 인정하는 교회 조직을 통해 이어진 전통 · 전승을 말한다. 라틴어로는 Traditio, 그리스어로는 Paradosis이며, 여기에는 초기 기독교 교회의 글로 전해지지 않은 전승 즉 구전 전승(traditio oralis) 역시도 이 '거룩한 전통'에 포함된다.

기독교는 계시종교로서 사도계승 교회성경 및 성전을 그 계시의 원천으로 인정하고 있으나, 유독 개신교에서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에 따라 성경만을 계시의 원천으로 인정하고 있다.

보편교회 측에서 성전의 성경적 근거로 드는 구절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전근대 세계 각지의 전통 문화를 보면 희한하게 그 시대 문맹률 때문에 그랬는지 뭣 때문에 그랬는지는 몰라도 뭔가 중요한 내용을 문자로 기록해서 정리해 전하는 것보다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기억하고,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능력을 중시했던 것 같은데, 이는 기독교도 마찬가지였다. 초대 교회에서는 본질상 구전으로 선포되는 복음을 글로 기록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최선의 방식이 아니라는 생각이 영향력을 행사했고, 사도 바울로는 아예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 3:6)라고 코린토스의 기독교 공동체에 보내는 편지에 쓰기도 했는데, 초기 교회의 교부들은 문자로 '기록'된 성경의 권위를 인정은 해도 '교사'의 살아 있는 가르침과 사도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구두전승의 권위 역시도 강력히 주장했다.

신약성경을 구성하는 4대 공관복음서의 저자들이 사용한 자료는 글을 통해서가 아니라 입말을 통해 전해 내려온 자료, 구전되는 기억이었으며, 코덱스는 메모, 혹은 초고를 기록하기 위해 활용되었다. 초기 교회의 대다수 신자는 복음서를 '복음을 선포하기 위한 원재료를 모아 놓은 문헌'이자 어떤 중요한 역사 기록으로는 봐도 그 자체로 완결된 문헌으로 간주하지는 않았고 구약과 같은 경전으로 보지는 않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예수를 알았던 이들이, 나중에는 이 사람들을 알았던 이들이 매주 예배를 위해 모인 기독교인들에게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상세히 전했고, 이야기를 듣는 기독교 공동체의 입장이 이야기에 점차 스며들고, 공동체의 요구와 문제가 이야기에 담겨 살이 붙었으며, 그 살이 붙어서 불어난 이야기가 문자가 되고, 그 문자로 남은 '기록'으로서의 복음서가 초창기의 전승을 오롯이 전하는 것처럼 굳어져 단순한 메모 내지 초고에서 '경전'으로까지 위치가 격상되게 되었다는 것이다.[1] 이러한 사도 및 초창기 설교자들로부터의 구전 전승을 기독교에서 성전(聖傳) 또는 거룩한 전승이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기독교도 신약성경의 공관복음서의 형성이 1) 예수의 공생애 2) 사도들과 초창기 설교자들로부터 구전된 전승 3) 복음사가들에 의한 복음서 집필 단계를 거쳤다고 보고 있으며, 복음사가들의 복음서 집필 단계에서 기존의 기록물들과 구전 전승들이 '배열'되고 '가필'되었을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으며[2] 3세기 초부터 이러한 '거룩한 전승'은 문자화된 기록인 '성서'의 복음 내용과 같은 것으로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예언자들과 사도들의 입을 통해 물려 주신 진리의 계시에 성서 내용과 무관한 것은 없다"고 여겨졌다. 이러한 기독교 교회의 '거룩한 전승'이 공격받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오직 성경으로'를 외치던 프로테스탄트(개신교)가 등장하면서부터이다.

"오직 성경으로"를 외쳤던 프로테스탄트에 대해 트리덴티노 공의회는 "성서와 성전은 같은 신심과 존경심을 가지고 대해야 한다(pari pietatis affectu ac reverentia)"라고 규정했다.[3] 근년에 와서는 이 트리덴티노 공의회의 결정이 성서와 거룩한 전승이 계시의 두 원천(fontes)이라고 규정한 건 아니라고 논쟁을 벌이는 사람들도 꽤 생겨났고, 가톨릭 신학들도 모든 계시는 내용적으로는 성서에 실려 있다고 해석하기는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 논쟁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계시에 대한 교리 헌장'을 발표해서 "성서와 성전은 같은 신적인 원천에서 흘러나와 하나가 되고, 같은 목적을 이루고 있다"고 선언한다.[4]

2. 가톨릭에서 성전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접기・펼치기]
>I. 사도전승

75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모든 계시를 자신 안에서 이루신 주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예언자들을 통하여 약속되고 당신께서 성취하시고 친히 전파하신 복음을 모든 진리와 윤리 규범의 원천으로 모든 이에게 선포하도록 사도들에게 명하셨다.”

사도들의 복음 선포

76 복음은 주님의 명에 따라 두 가지 방식으로 전해졌다.

- 구두로는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 그리고 그분과 함께한 공동생활에서 받은 것과 성령의 조언에 힘입어 배운 것을 설교와 모범과 제도로써 전달해 주었다.”
- 문서로는 “사도들과 그 직제자들이 성령의 감도로 구원의 소식을 기록하였다.”

사도적 계승으로 지속되는 복음 선포

77 “사도들은 교회 안에 복음이 영구히 온전하게 또 생생하게 보존되도록 주교들을 후계자로 세워 ‘자기 교도직의 자리를 넘겨주었다.’” 그러므로 “영감 받은 책들 안에 특별한 방식으로 표현되어 있는 사도적 설교는 세상 종말까지 지속적인 계승으로 보전되어야 했다.”

78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생생한 전달은 성경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성경과는 구별되는 것으로서, ‘성전’(聖傳)이라고 부른다. 이 성전을 통해서, “교회는 그 교리와 생활과 예배를 통하여 자신의 모든 것과 자신이 믿는 모든 것을 영속시키며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거룩한 교부들은 이 성전이 살아 있음을 증언하고, 믿고 기도하는 교회의 관습과 생활 안으로 이 성전의 풍요로움이 흘러 들어온다고 가르친다.”

79 이처럼 성부께서 성령 안에서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전해 주시는 통교는 교회 안에 현존하며 작용하고 있다. “예전에 말씀하신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신부(교회)와 끊임없이 대화하시며, 성령께서는 복음의 생생한 목소리가 교회 안에서 또 교회를 통하여 세상 안에 울려 퍼지도록 하시고, 신자들을 온전한 진리 안으로 이끄시며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들 안에 풍부히 머물도록 하신다.”

II. 성전과 성경의 관계

하나의 공통적 원천

80 “성전과 성경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고 또 상통한다. 이 둘은 동일한 신적 원천에서 솟아 나와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를 이루며 같은 목적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둘은 모두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마태 28,20) 당신 백성과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그리스도의 신비를 교회 안에 현존하게 하고, 그 열매를 풍부히 맺게 한다.

두 가지의 다른 전달 양식

81 “성경은 성령의 감도로 기록되었으므로 하느님의 말씀이다. 곧 주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사도들에게 맡기신 하느님의 말씀은 성전으로 후계자들에게 온전히 전달되는데, 후계자들은 진리의 성령에게서 빛을 받아 자신의 설교로 그 말씀을 충실히 보존하고 해설하며 널리 전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82 그러므로 계시의 전달과 해석을 위임받은 교회는 “오로지 성경으로만 모든 계시 진리에 대한 확실성에 이르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이유로 이 둘을 똑같이 경건한 애정과 존경으로써 받아들이고 공경해야 한다.”

사도전승과 교회 전승들

83 우리가 여기에서 말하는 ‘성전’(聖傳)은 사도들에게서 유래하는 것으로서, 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모범에서 그리고 성령을 통하여 배운 것을 전달하는 것이다. 실제로 기독교의 제1세대에게는 아직 기록된 신약 성경이 없었으며, 신약 성경 자체가 살아 있는 ‘성전’의 과정을 증언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지역 교회에서 생겨난 신학적, 생활 규범적, 전례적 또는 신심에 관한 ‘전승들’은 사도전승과 구별해야 한다. 이러한 전승들은 독특한 양식들을 이루게 되는데, ‘성전’은 다양한 장소와 시대에 따라 적용된 여러 표현들을 이러한 양식 안에 수용한다. 이 전승들은 교회 교도권의 지도 아래 ‘성전’에 비추어 보존되거나 수정되거나 또는 폐기될 수 있다.

III. 신앙의 유산에 대한 해석

전체 교회에 맡겨진 신앙의 유산

84 성전과 성경에 담긴 “신앙의 유산”(depositum fidei)은 사도들을 통하여 전체 교회에 맡겨졌다. “거룩한 하느님 백성 전체는 이 유산에 충실하면서, 목자들과 일치하여 꾸준히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친교를 맺으며, 빵을 떼는 일과 기도에 항구히 전념한다. 그리하여 전해진 신앙을 고수하고, 실행하며 고백하면서 주교들과 신자들이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의 교도권

85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이나 전해지는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는 직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교회의 살아 있는 교도권에만 맡겨져 있다.” 곧 로마 주교인 베드로의 후계자와 일치를 이루는 주교들에게 맡겨져 있는 것이다.

86 “그렇지만 교도권은 하느님의 말씀 위에 있지 아니하고 하느님의 말씀에 종속되어 봉사한다. 이 권한은 전해진 것만을 가르치며, 하느님의 명령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것을 경건히 듣고 거룩히 보존하고 충실히 해석한다. 그리고 교도권은 하느님에게서 계시되어 믿어야 할 것으로 제시하는 모든 것을 이 유일한 신앙의 유산에서 얻어 낸다.”

87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다.”(루카 10,16) 하고 말씀하셨다. 신자들은 이 말씀을 명심하여 그들의 목자들이 여러 형태로 주는 가르침과 지도를 온순하게 받아들인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75-87항

성전의 의미에 대해서, 위 교리서 항목에도 인용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인 계시헌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계시는 성령의 작용을 통하여 교회 안에서 전달된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 그리고 그분과 함께한 공동생활에서 받은 것과 성령의 조언에 힘입어 배운 것을 설교와 모범과 제도로써 전달”(7항)해 주었는데 이것이 성전이고, 이러한 성전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사도들에게 맡기신 하느님의 말씀이 전달된다.

계시헌장은 성경과 성전이 “동일한 신적 원천에서 솟아 나온다”(9항)고 설명하고 있다. 사실 계시의 원천이 성경과 성전이라는 말보다는 계시가 성경과 성전 안에 담겨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뿐만 아니라, 성경과 성전은 그 기원을 볼 때 서로 갈라져 있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말씀」에서는 이 점에 더욱 주목하여, 오히려 성경이 교회의 살아있는 전통(성전) 안에서 형성되었고 그 전통 안에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사도들과 함께 생활하시던 때부터 성전은 생겨나고 있었고 그 전승 안에서 성경이 기록되었으니, 성전은 부수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없고 오히려 성경이 형성된 모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2.1. 성경과 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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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회는 '교회'가 '하느님의 백성'(populus Dei)이자 '그리스도의 신비체'(corpus Christi mysticum, 그리스도의 뮈스테리온적 몸)로서 계시에 대한 정당한 해석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적극적으로 본다. 개신교와의 이러한 교회론적 차이는 성경, 성사, 각종 전통 해석에서 방법론적 차이로 이어진다.

가령 성경에 대한 관점 차이를 보자. 일부에서는 '개신교는 성경을 중시하고 가톨릭은 전통을 중시한다'고 이분법적으로 단순화하기도 하지만, 가톨릭에서도 계시에 대한 최고 권위는 당연히 성경이다. 단지 최고 권위인 바로 그 성경에 대한 '해석'이 교단마다 다른 것이다. 여기서 가톨릭은 '가톨릭 교회의 해석'이 단지 인간적이거나 학술적인 수준을 넘어, '그리스도의 신비체'(그리스도의 뮈스테리온적 몸)[5]로서 성경에 대한 정당한 관점을 정말로 줄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물론 성경에 대한 인간의 해석이 '발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따라서 지상의 교회가 하는 성경 해석이 그 시대의 맥락과 불가분이라는 건 가톨릭 교회 스스로도 인정을 한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 발전하는 성경 해석을, 각각의 시대에서, 그 시대의 가톨릭 교회가 정당하게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가톨릭에서는 성경을 해석하거나 이를 대하는 관점에 있어서 사도로부터 내려온 전승인 '성전'을 중시하고 있다. 성경과 성전은 교회를 떠받치는 동등한 뿌리인 셈. 가톨릭이나 정교회에서는 기록된 성경과 달리, 명확히 기록되지 않은 형태로 교회의 초창기부터 전해 내려오는 가르침과 실천적 관행을 성전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통해 개인에게 말씀하신다고 가르쳐 성경 구절의 임의 해석을 허용하고 성전의 권위를 부인하는 개신교와 달리, 가톨릭은 성경이 교회의 성전이라는 맥락에서 발생했고, 바로 그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이것이 소위 카더라를 중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가톨릭 교회에서 말하는 '성전'은, 성경을 발생시켰고 성경을 해석해온 고대 교회의 맥락 중, 교회가 오랫동안 신앙으로 받아들여온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당연히 문헌 증거 등이 요구된다. 가령 고대 교회의 어느 문헌에 언급이 되었다 하더라도, 교회가 신앙으로 받아들여온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그냥 '문헌'이지 '성전'까지는 아니다. 가톨릭 교회에서 초대 교회로부터 이어져오는 성전 뿐만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생겨난 각종 생활규범이나 예법 등에도 '전승'이라는 말을 써서 종종 오해를 부르지만, 이러한 자잘한 '전승'들이 사도적 성전과 같은 권위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6] 제도권 가톨릭 신학은 "개별 전통들(traditiones)을 과대평가하여 ‘단 하나의 거룩한 전통(Traditio)'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7]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다.

또한 가톨릭의 계시론은, 성경에 대한 명제들을 고대 수준에서 박제하여, 앵무새처럼 되풀이하자는 의미도 아니다. 계시에 대한 교회의 이해가 시대적 맥락에 불가분으로 결합된 건 당연히 가톨릭 교회도 인정하며, 따라서 당연히 가톨릭 교회의 성경 이해는 '발전'이 가능하다. 오랫동안 가톨릭이 신앙으로 받아들여온 성전들이, '명제를 고정시켜 박제한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각각의 시대에 정당한 해석들을 제공하는 일종의 '엔진'이 된다는 것이 가톨릭 교회의 성전 이해이다. 따라서 가톨릭 교회는 당연하고 정당하게 현대의 비평적 성서주석학을 받아들인다.[8] 더 나아가, 성경에 대한 학술적인 분석에서는 사실 '가톨릭 성서학'이 '비그리스도교 성서학'이나 '개신교 성서학'과 거의 견해 차이가 없다. 단지 현대 성서학의 견해 중 특정한 견해를, 개별 가톨릭 성서학자 차원이 아니라 '가톨릭 교회'의 차원에서 책임질 수 있다는 게 가톨릭 성서학의 독특함이다. 가령 2022년에 원서가 발간된 권위있는 가톨릭 주해서인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The Jerome Biblical Commentary for the Twenty-First Century 머리말에서는, 오늘날 성서학에서 교단간의 차이가 얼마나 미미한지, 그러면서도 왜 지금도 '가톨릭 성서학'이 필요한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현대 성서학에서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교회일치적 성격이 짙다는 점이다. 개신교. 정교회, 가톨릭의 간행물은 가톨릭과 개신교의 신학교, 그리고 신학대학에서 성경 교과의 참고 문헌으로 높이 평가된다. 가톨릭과 개신교는 '성서학회(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와 '신약성경학회(Society for New Testament Studies)'처럼 교파적으로 중립적이고 전문적인 학회뿐만 아니라, 명시적으로 '미국가톨릭성서협회(Catholic Biblical Association of America)'라고 고백하는 기관에서도 회원 자격을 공유하고 있다. 개신교와 정교회 학자들은 로마 가톨릭 학자들과 함께 협회에서 공식적인 직위를 맡고, 편집 위원회에서 활동하며, 공식 기관지인 〈계간 가톨릭 성경The Catholic Biblical Quarterly〉에 기사를 기고한다. 이와 같은 현상은 구약성경과 초기 그리스도교의 유다교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기여하는 글을 쓰는 유다인 학자들뿐 아니라, 신약성경 해석 자체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유다인 학자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가톨릭 성서학의 한 산물로서 이러한 주해 자료를 제공하는 데 여전히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이전 두 판에서 우려했던 바는,[9] 이 선택이 혹여 개신교나 유다교의 성서학에 대한 거부나 의심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우리는 가톨릭 안팎의 동료들에게 성경 해석에 대한 가톨릭의 접근법을 특징짓는 고유한 관점들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러한 특성 중 상당 부분이 특히 주류 개신교나 정교회와 공유된다 해도, 가톨릭의 성경 해석은 궁극적으로 가톨릭 신앙 공동체에 책임이 있으며, 가톨릭 전례, 영성, 그리고 교회론의 특징적이고 본질적인 역할에 대한 관심을 반영해야 한다.[10]
즉 성서학에서는 사실 오늘날에 가톨릭과 메인라인(근본주의X) 개신교의 차이는 거의 없는 것에 가깝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해석의 궁극적 책임은 가톨릭 '교회'에 있다고 가톨릭 신앙은 믿는다. 또한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성전에 대한 견해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아주 유명한 예시로 성모 마리아에게 예수 외의 자녀가 있었는지의 해석 차이를 보자. 성서학적 분석("인간 저자가 동시대 독자에게 1차적으로 말하고자 한 문필적 의미는 무엇인가?")으로 말하자면, 성경 그 자체에서는 이를 알 수 없다. 어느 해석이 그나마 더 개연성 있는지 견해 차이는 학자 개개인마다 있지만, 남아있는 단서가 너무 적으니 성경 텍스트만으론 어느쪽으로도 확실하게 확답할 수 없다는 데는 가톨릭 학자이든 개신교 학자이든 동의한다. 하지만 평생동정이라는 성전에 근거하여, 가톨릭 교회는 성모 마리아에게 예수만이 유일한 자녀였다고 확언한다. 물론 이는 성전이 성경을 찍어누른 것이 아니라, 성전으로부터 성경과 모순 없는 해석을 도출한 것이다.

즉 가톨릭은 성경이 그 자체로 하느님의 말씀이며 (신앙과 도덕에 대해) 무오류한 진리를 담고 있다고 여기지만, 해석의 차원에서는 어디까지나 교회전승의 맥락 안에서 그 내용을 이해하라는 것.

한편 개신교는 가톨릭보다는 상대적으로 전통에 대해서 회의적인 관점을 취한다. 다만 가톨릭을 거부한다는 틀만 공통될 뿐, 개신교 역시도 사실은 각 교단의 내부 전통을 중시하며, 스스로의 교단이 성경에 대한 정당한 해석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실 루터교회이든 장로회이든, 대부분의 개신교 교단들은 자신들보다 급진적인 교단들에 대항하여, 성경의 해석 전통과 교부들의 권위를 호소한다. 그러나 동시에, 교부들로부터 이어 온 가톨릭 교회의 해석 전통을 흔히 바리사이에 비유하기도 하며 그에 대항해서는 성경의 자증성을 주장한다. 이러한 이중적 입장으로 인해 개신교 신학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딜레마를, 성공회 신학자인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자조적으로 이렇게 평가했다.
성찬에 대한 개혁자들 사이의 심각한 불일치는 관주도적 종교개혁[11]을 항구적으로 두 개의 운동으로 분리시키는 일 이상의 역할을 했다. 그것은 루터가 아주 단순하다고 여겼던 그런 성경구절들의 해석에서도 일치를 이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널리 증명해보였다. 1510년대 말과 1520년대 초에는 낙관적인 성경주석관이 일반 그리스도인이 성경을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에서도 분명히 나타났다. 그러나 1530년대 말에는 일반 그리스도인이 오직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에 능숙하며, 복잡한 언어학적 이론들에 익숙한 경우에만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프로테스탄트 성경독자들은 성경해석의 수단으로서 어떤 '필터'를 제공받았다. 이러한 '필터'의 한 예로, 루터의 『소요리문답』(Lesser Catechism, 1529)은 독자들에게 성경을 이해하는 한 틀을 제공했다. 그런데 가장 유명한 성경 안내서는 칼빈의 『기독교강요』 ㅡ 특히 1529년의 최종판 ㅡ 였다. 이 책은 처음에 칼빈이 루터의 요리문답을 모델로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41년도 불어판 서문에서 칼빈은 『기독교강요』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참으로 성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나아가게 하는 열쇠나 입구와 같게 될 것"이라고 진술했다. 달리 말해서 독자들이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성경해석의 수단으로 사용해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쯔빙글리에게 쮜리히 시와 쮜리히 교회는 사실상 하나였고 동체였다. 다음 장에서 살펴볼 것처럼, 이것은 그의 교회론 및 성례론과 관련하여 특별히 중요한 문제였다. 결국 시의회는 신학적이고 종교적인 문제들에 개입할 권리를 갖게 되었다. 쮜리히의 종교개혁은 더 이상 올바른 성경해석에 관한 문제로 구애받지 않게 되었다. 시의회는 사실상으로 그들이 ㅡ 교황이나 공의회가 아닌 시의회가 ㅡ 쮜리히 시민들을 위해 성경을 해석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선언했으며, 이러한 권리를 행사할 의도가 있음을 알렸다. 성경에는 실로 해석하기 애매한 경우들이 있는데, 시의회가 성경 해석자로 활동할 것을 일방적으로 결정함에 따라 쮜리히 종교개혁의 정치적 성공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었다. 바젤과 베른에서도 쮜리히의 모델에 근거한 비슷한 결정이 내려져 스위스 종교개혁을 강화시켰으며, 1530년대 중엽에 제네바를 정치적으로 안정시킴으로써 간접적으로 칼빈의 종교개혁의 성공을 이끌었다.

초기 개신교 내부의 세력 갈등은 성경해석의 권위가 누구에게 있느냐의 문제와 관련된다는 사실이 명백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권위를 갖고 있다고 인정받은 사람은 누구나 종교개혁의 다양한 갈래들의 이데올로기 ㅡ 곧 사회적, 정치적인 견해 ㅡ 에 사실상으로(de facto) 통제를 받고 있었다. 비슷한 방식으로 교황의 세속적 권위는 로마가톨릭교회에 대한 권위 있는 성경해석자로서의 역할과 결부되어 있었다.

.... 관주도적 종교개혁이 초기에는 각 사람이 성경해석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후에는 사회적, 정치적 결과를 염려하게 되었다. 1525년의 농민반란은 루터를 비롯한 일부 사람들에게 솔직히 개별 신자들(특별히 독일 농민들)은 성경을 해석할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성경의 중요성을 그처럼 강조했다가 나중에 덜 교육받은 멤버들이 동일한 성경을 해석하게 될 것을(달리 말해서 관주도적 종교개혁자들과 다른 해석에 도달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성경으로 직행하는 일를 거부했던 것은 루터파 종교개혁의 아이러니의 하나이다. 예를 들면, 뷔르템베르트 공국의 학교규칙은 가장 유능한 학생들에게만 최종 학년에 신약성경을 배우는 일 ㅡ 라틴어나 헬라어로 배워야 했다 ㅡ 을 허락하도록 규정했다. 어쩌면 훨씬 다수였을 나머지 보통 학생들은 그 대신에 루터의 『소요리문답』을 읽도록 규정되었다. 직접적인 성경해석은 사실상 이렇게 소수의 특권을 지닌 집단의 몫이 되었다. 거칠게 표현해서 그것은 성경 해석자로 교황을 지목하는가, 루터나 혹은 칼빈을 지목하는가의 문제가 되었다. '성경의 명료성'의 원칙은 종교개혁 내부의 보다 급진적인 사람들이 성경을 해석했던 용례에 비추어 조용히 무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슷하게 모든 사람이 신실하게 성경을 해석하는 권리와 능력을 갖고 있다는 이념은 결국 오직 급진파들만의 소유가 되었다.
앨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 씀, 최재건 번역, 『종교개혁사상』(Reformation Thoughts: An Introduction) 제3증보판 255-259쪽

개신교의 '성경 이외의 성전은 불필요하고 성경만큼의 권위를 지닐 수도 없지만, 그러나 성경은 그 자체로 성경임을 완전하게 증거하기에 오직 성경만이 유일하게 권위를 지닐 수 있다'는 자증성 주장에 대한 가톨릭(과 정교회) 입장에서의 반박은, 그래서 도대체 성경 어디에 성경만이 교리의 유일한 바탕이 된다고 자증하는 내용이 있느냐?는 것. 역사적으로, (현재엔 외경이나 위경 취급받거나 교부들이 쓴 문헌들도 경전으로서 읽히던) 초세기 이후 AD 4세기 말에 성경 목록을 73권의 정경으로 확정한 건, 틀림없이 AD 1세기의 초대교회 시기부터 사도들로부터 전승돼 오는 성전으로 인한 교회의 권위이지, 성경의 어떠한 책 안에도 '무오류한 진리를 담은 정경 목록은 73권(혹은 66권)이라'고 기록된 게 아니며 '성경의 각 내용은 성경에 직접적으로 명시된 성경 구절만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쓰여있지도 않다.[12][13]

애초에, 시기적으로 뒤늦게 교회의 결정을 통하여 정경이 된 경전 목록신앙의 유일한 기준이자 척도로 삼는 것은 어떠한 역사적, 객관적인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선후관계를 거꾸로 뒤집기조차 하는, 굉장히 인위적이고 자의적인 믿음으로 본다. 1~2세기부터 작성된 여타 교부 문헌들에도 현재까지 교회에 남아 있는 여러 성사와 관습들의 핵심적인 형태가 교차적으로 남아있는 것은 덤. 결국 자기 자신이 가톨릭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개신교 역시도 가톨릭에 대해, "오직 성경대로 따르지 않고 가르치지도 않는 비성경적인 가톨릭"이라 비방하며 스스로를 대비시키듯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한다기보단, 실상을 따져보면 기존의 가시적인 보편교회를 대체하는 개신교 신학자들의 권위를 새로이 내세우고 거룩한 전통(성전)을 대신해, (성경 어디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스스로가 만들어 낸 '개혁의 전통'을 통하여 성경 외부의 관점을 사용해 성경을 해석하게 되었을 뿐이라는 것.

또한 여기서 오해하면 안되는 중요한 사실은, 가톨릭의 성경과 성전에 대한 관계에서, "교리의 '일부는' 성경에 있고 '일부는' 성전에 있다"고 가톨릭이 교의적으로 확정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해석해도 가톨릭 교리와 충돌하는 건 아니고 또한 매우 인기 있는 해석이지만, 트리엔트 공의회는 "이 진리와 규범이, 기록된 책들'뿐만 아니라' ... 전승들 안'에도' 보존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트리엔트 공의회 첫째 시기 제1교령)고 했을 뿐이다. 따라서 "가톨릭 교리의 모든 요소가 어떠한 방식으로든 간에 성경 안에 들어 있다"고 하더라도 가톨릭 교리와 모순되지는 않는다.
Sola scriptura[14]라는 원리는 궁극적으로 자기를 지양하는 공리이다. 적어도 그것이 무분별하게 이해될 때에는 그런 것이다. 이것은 Sola scriptura라는 종교개혁의 가르침이 성서의 소위 축자영감론(Verbalinspiration)의 구상과 내적이고 필연적으로 결합되었기 때문에 역사실증적으로 부당하며, 오늘날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에서도 이제는 가르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서도 미루어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성서가 역사적이고 매우 분화된 모습으로서의 생성에서, 즉 독립해서 그것만으로, 말하자면 하느님께서 직접 초래한 산물처럼 이해되는 한에서 사람은 성서에 교회의 생활한 증언에 전혀 의존하지 않는 그런 권위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그러한 성서의 절대적인 축차영감설의 원리를 실제로 포기하지 않은 채, 또한 당시의 종교개혁 시대의 의미에서 Sola scriptura라는 원리를 견지할 수는 없다. 그것은 자기 모순에 빠지든가, 또는 결국은 오직 Sola scriptura가 아니라 둘째 것, 즉 인간의 불가피하고 실존적인 영의 체험을 유일한 신앙의 원리로 삼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사람은 이미 성서에서, 즉 구체적인 책들에서 참 성서(하느님 말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원리, 즉 고작 성서 형성의 동기를 부여하는 원리, 궁극적으로 성서를 형성하는 원리라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런데 성서 그 자체가 성서를 증언한 교회 내의 존재라는 것을 전제한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즉 성서에 쓰여진 것은 원래 모두 사도들의 선교이며 그밖에는 다른 어떠한 전통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Sola scriptura라는 원리를 지지할 수 있다. 가톨릭 그리스도인에게도 전통과 교도직의 이해는 오직 성서 안에서만 그 내용을 이해할 원천과, "다른 것에서 규범을 받지 않는 규범"을 가진다. 적어도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의 시대에서는 성서에서 이야기되지 않아도 사도시대부터 전해진 특정한 신앙 내용을 중개하는 그러한 전통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신학자도 많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이것은 가톨릭의 교도직이 구속력을 가지고 가르치는 바가 아니며, 이에 관해서 이론(異論)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러한 생각을 한다고 해도 아직도 그러한 전통이 성서를 규범으로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 그러므로 가톨릭이기 위해 Sola scriptura라는 원리에 이론(異論)을 주창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것은 가톨릭의 교의학에서 말해도 인정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정해야 할 원리인 것이다.
- 카를 라너(Karl Rahner). 『그리스도교 신앙 입문』(Grundkurs des Glaubens) 469-473쪽[15]

3. 정교회에서의 거룩한 전통

동방 정교회측은 거룩한 전통을 다르게 이해한다. 개신교가 거룩한 전통을 아예 인정하지 않고 성경만을 인정하고, 가톨릭이 거룩한 전통과 성경을 동등한 높이로 이해하여 인정한다면, 정교회는 성경 자체를 거룩한 전통의 일부로 이해한다.[16] 사도들 및 교부들에 의해 기록된 여러 경전들 중 무엇이 바른 성경에 속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교회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령의 전이라고 말하는 성경의 표현은 교회가 많은 제도들 중 하나로, 혹은 하나의 사회 구제 조직으로, 혹은 민족적 형제적 친교 단체로 생각하는 것 이상의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이는 것이다.

4. 기타

가톨릭과 정교회가 분열된지 [age(1054-01-01)]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인터넷 기술에 힘입은 것인지(...) 오히려 현대에 서로의 전승이 뒤섞이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선악과사과라는 전승은 고대~중세 기록을 보면 서방에서 멋대로 나타난 것인데, 현대에는 동방 정교회에서도 선악과를 사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왕왕 있다. 또한 예수를 유혹한 사탄의 이름이 루시퍼라는 말은 성경의 라틴어 번역 과정에서 나타난 오해다. 그런데 앞의 2가지 사항이 정교회 세계 총대주교가 쓴 정교회 교리 입문서에서도 그렇게 서술되어 있고 실제로 정교회 신부도 그렇게 얘기한다
[1] 윌리엄 슈니더윈드 저 <성경은 어떻게 책이 되었을까> 에코리브르, 2006년 및 존 바턴 <성서의 형성-성서는 어떻게 성서가 되었는가>비아, 2021년, 53~4쪽 및 136~7쪽.[2] <신, 구약성경 기초지식> 생활성서사[3] Sess. iv, 8, 1564년 4월 8일[4] Sectio 9[5] 뮈스테리온mystērion은 불가해(不可解)한 것, 혹은 바로 그 불가해한 것을 가리키는 '가시적 표지'(=성사)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뮈스테리온적 몸'이란, '가시적 표지로서의 그리스도의 성사가 되는 몸'을 의미한다. 따라서 가톨릭 교회론에 의하면, '교회'는 단지 법적이거나 인간적인 '법인'이 아니라 '성사적 단체'이며, 지상에서 그리스도를 정당하게 대리한다.[6] "우리가 여기에서 말하는 ‘성전’(聖傳)은 사도들에게서 유래하는 것으로서, 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모범에서 그리고 성령을 통하여 배운 것을 전달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리스도교의 제1세대에게는 아직 기록된 신약 성경이 없었으며, 신약 성경 자체가 살아 있는 ‘성전’의 과정을 증언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지역 교회에서 생겨난 신학적, 생활 규범적, 전례적 또는 신심에 관한 ‘전승들’은 사도전승과 구별해야 한다. 이러한 전승들은 독특한 양식들을 이루게 되는데, ‘성전’은 다양한 장소와 시대에 따라 적용된 여러 표현들을 이러한 양식 안에 수용한다. 이 전승들은 교회 교도권의 지도 아래 ‘성전’에 비추어 보존되거나 수정되거나 또는 폐기될 수 있다."

가톨릭 교리서 제83항
[7] 마티아스 아우제Matias Augé, 《전례란 무엇인가: 역사, 기행, 신학, 영성》Liturgia: Storia, Celebrazione, Teologia, Spritualita, 장신호 주교 • 윤종식 신부 번역,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22, p.72[8] 참고로 현대 가톨릭 성경 해석의 대헌장‘’Magna Carta''으로 평가 받는 비오 12세 회칙(1943년) 《성령의 영감》Divino Afflante Spiritu에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새로운 것은 무엇이나 새롭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배척해야 하고 의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과격한 논리를 혐오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들은 교회가 반포한 규범과 법들 가운데 신앙과 윤리에 관한 교리 문제가 있는데 성서에 포함된 무수한 문제들-예를들어 율법적이고 역사적인, 지혜에 관계되고 예언적인 문제들-과 관련하여 교도권에 의해서 그 뜻이 명확하게 정의된 성서 본문은 소수에 지나지 않으며 그나마 역대 교황들의 가르침이 이의 없이 그 정의를 받아들인 성서본문은 더욱 많지 않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중요한 많은 사정들이 아직도 재능과 기술을 갖춘 가톨릭 주석가들의 자유로운 토론과 해설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하여 주석가 개개인은 전체의 유익을 위해, 거룩한 교리의 항구한 발전을 위해, 그리고 교회를 보호하고 교회에 영광을 가져오기 위해 자신의 몫을 바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제47항)
[9] (발췌자 주석) 본 주해서의 이전판인 1968년판과 1990년판을 말함.[10]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 창세기》, 주원준 번역, 성서와함께, 2023, pp.14-15에서 발췌[11] (발췌자 주석) 공권력 주도적 종교개혁. 곧, 잉글랜드 성공회, 독일 루터주의, 스위스 개혁주의처럼 공권력(국왕, 영주, 시의회)이 주도한 종교개혁을 말한다.[12] 이에 대해 보통의 개신교는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라는 티모테오 2서 3장 16절을 근거로 들지만 이는 '성경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였기에 유익하다'는 내용일 뿐인 반면, 가톨릭과 정교회가 성경이 교회의 권위를 증언하는 것으로 여기는 구절은 티모테오 1서 4장 15절의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교회로서, 진리의 기둥이며 기초입니다."[13] 이러한 직접해석이 아닌 간접해석으로 인해 도출되는 가장 대표적인 그리스도교 교의가 바로 삼위일체론이다![14] 발췌자 주석: "오직 성경". 책에는 '성서지상주의'로 번역되어있으나, 발췌문에선 Sola scriptura로 옮겼다.[15] 라너의 주장은, 프로테스탄트 개혁가들의 Sola scriptura는 자기 지양적인(자기 파괴적인) 공리이지만 가톨릭의 관점에서는 Sola scriptura를 훨씬 단단하게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16] 바로 위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 '권위'가 아닌 '기원'에 관해서는 가톨릭의 이해와도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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