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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1 13:41:52

세설신어

世說新語
파일:external/image.digitalarchives.tw/ac.jpg

1. 개요2. 상세3. 번역본4. 관련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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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위진남북조유송(劉宋)시대에 무제 유유의 친조카인 임천왕 유의경이 쓴 지인소설(志人小說).

2. 상세

본래 이름은 '세설(世說)'이었지만, 남송 시대쯤에 '신어(新語)'가 붙어서 세설신어가 정식 명칭이 되었다. 제목의 의미는 세상의 이야기들. 당시의 명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각각의 주제에 따라서 장을 나눠서 기록해 놓고 있으며, 이야기는 대체로 짤막하다.

양나라의 유준(劉峻, 자는 효표(孝標))이 많은 문헌을 참고해서 주석을 담았는데, 마치 삼국지배송지 주처럼 주석의 내용이 더 풍부하고, 인용된 문헌들도 현대에 실전된 것이 많아 중요한 기록으로 여겨진다. [1]

일반적으로 지인소설(志人小說)의 효시로 여겨지며, 후세에 유사한 책들이 많이 나와 세설신어류라고 불렸다. 여기서 소설이라는 것은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것처럼 순수한 창작으로 이루어진 novel이 아니다. 유명인 일화를 모은 일화집, 어록집 같은 성격의, 말 그대로 자잘한(小) 이야기(說)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다. 세설신어는 본문과 주석 모두 정사나 다른 기록과 교차검증되는 일화가 대단히 많다. 물론 정확하지 않거나 믿을 수 없는 이야기도 있으며, 간보수신기처럼 지괴소설 적인 요소도 일부 있다. [2]

주된 내용은 후한부터 동진까지 사람들의 일화, 특히 서진에서 동진 초기까지의 청담사상에 근거한 당대 인물 품평과 언행록이며, 이 내용을 36개의 주제로 나누어 다양한 당시 인물의 면모를 보여준다. 저자 유의경이 남조 사람이다보니, 직전 왕조인 서진과 동진 인물에 대해 주로 다루고 있으며, 적국에 해당하는 오호십육국의 사람들은 부견이나 왕맹 같은 유명한 사람조차도 다뤄지지 않고 있다. [3]

주제는 다음과 같은데, 당시 인물의 장점만이 아니라 사치스러운 점[4], 인색한 점[5], 글자 그대로 비루한 점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덕행(德行), 언어(言語), 정사(政事), 문학(文學), 방정(方正), 아량(雅量), 식감(識鑒), 상예(賞譽), 품조(品藻), 규잠(規箴), 첩오(捷悟), 숙혜(夙惠), 호상(豪爽), 용지(容止), 자신(自新), 기선(企羨), 상서(傷逝), 서일(棲逸), 현원(賢媛), 술해(術解), 교예(巧藝), 총례(寵禮), 임탄(任誕), 간오(簡傲), 배조(排調), 경저(輕詆), 가휼(假譎), 출면(黜免), 검색(儉嗇), 태치(汰侈), 분견(忿狷), 참험(讒險), 우회(尤悔), 비루(紕漏), 혹닉(惑溺), 구극(仇隙).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도 많이 포함된 기록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신빙성 있는 1차 사료로 간주하기는 어렵지만, 묘사가 굉장히 생생하기 때문에 당시의 인물상, 생활상을 파악하는 사료로서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친숙한 인물의 일화도 여러 곳에 등장한다. 이 중에는 삼국지연의에서 채택한 것도 적지 않지만, 신선한 일화도 많이 있으므로 찾아보면 재미있다. 삼국지연의에서 양수의 꾀나 그 최후에 관한 이야기 등은 이 책에서 따온 것이다.

내용이 매우 많아서 편집한 경우도 있는데, 중국 명나라 때 왕세정이 세설신어와 하씨어림[6]을 축약하면서 결합한 세설신어보(世說新語補)라는 것이 있다, 세설신어의 체제에 맞게 재편집하여[7] 세설신어의 확장판에 가깝게 만들어 명나라 시기에 널리 유행했다. 조선 시대에는 내용이 매우 길기 때문에 그 인물에 관련된 일화에 기초해 인명의 가나다순으로 편집한 세설신어 성휘운본이 등장했는데, 그 덕분에 장점으로 내용을 찾아보기는 쉽지만 단점으로 세설신어에 있던 주석이 빠졌다는 문제점이 있다.

3. 번역본

4. 관련 고사성어



[1] 여담으로 배송지의 삼국지 주, 유효표의 세설신어 주, 역도원(酈道元)의 수경 주, 이선(李善)의 문선 주를 중국 고전의 4대 주석으로 부르기도 한다. 네 주석 모두 현대에 전해지지 않는 문헌을 많이 인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2] 당시 사람들은 현대 기준으로 있을 수 없는 일들도 사실로 여겼으니, 현대의 기준으로 창작이라고 단정하기는 곤란하다.[3] 적국이라 의도적으로 다루지 않았기보다는 이런 일화는 구전이나 사적인 기록으로 전해져오는 것이 많기 때문에 아무래도 정보가 부족해서 다루지 못했을 것이다.[4] 석숭왕개의 고사 등은 여기가 출처이다.[5] 왕융의 일화가 대표적이다.[6] 양한 때부터 송원대까지의 고사를 모은책, 세설신어와 겹치는 내용은 적지 않았다.[7] 세설신어에서 8할, 하씨어림에서 3할을 가져와서 총 1424조의 고사 중에 세설신어 쪽이 849조, 하씨어림 쪽이 575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