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반적인 의미
2. 조선 과거 제도의 분류 小科
조선 시대의 과거에서 문과 가운데 생진과시(生進科試)를 말한다. 소과에는 초시(初試)와 복시(覆試)의 두 단계가 있어 여기에 합격한 자는 대과에 응할 자격을 얻었다. 보통 사극에서 생원, 진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면 소과에 응하여 그 자격을 획득한 이들을 말한다.위의 내용대로 초기에 의도는 그러하였으나 초장부터 이게 틀어졌다. 소과에 응시하지 않아도 대과에 응시하여 합격하는 학생들이 많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소과는 보지않고 대과의 문과만을 봐서 합격하는 관료가 전체 관료의 80퍼센트를 넘었다고 한다. 다만 소과가 대과의 문과보다 어려웠으므로 소과에 먼저 합격한 뒤에 대과에 합격한 관료는 승진이 빨랐다고 한다. 대과에 응시할 자격을 가지는 부류중에 소과 합격생, 유학, 현직 관료가 있는데 여기서 유학이 바로 "어떠한 시험도 친적이 없는 학생"이라는 뜻이다.
소과가 대과의 예비시험이 아니라는 증거는, 소과는 식년시(정기시험)와 증광시(국가에 커다란 경사가 있을때 보는 비정기시험)에서만 쳤지만 대과의 문,무과는 식년시와 증광시를 포함하고 나머지 비정기시험에서 전부 쳤다. 이렇게 친 비정기시험만 1년에 6번을 넘었다. 즉 소과보다 대과를 더 많이 쳤는데, 예비시험보다 본 시험을 더 많이 쳤다는것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소과에서 진사를 뽑는 시험과 생원을 뽑는 시험이 따로 있었는데 각각 제술과와 명경과의 잔재라고 볼 수 있다. 소과의 합격자들은 제대로 된 선비이자 양반으로 공인받을 수 있었다. 합격하면 성균관에 입학하거나 대과(문과)에 응시할 수 있었고, 시험을 치기 싫으면 종9품직을 얻을 수 있었다.
생원과는 사서오경에 대한 지식을 테스트하고, 진사과는 시나 부로 문예창작 능력을 테스트하고, 각각 통과하면 생원이나 진사라는 칭호가 붙여진다. 조선 후기로 내려오면서 경전에 대한 지식보다 문예 능력이 더욱 중시되었고, 이 때문에 생원보다 진사가 존경받게 되었다.
진사과와 생원과는 초시와 복시를 통해 100명씩 선발하였다.
1차시험인 초시는 한성시에서 200명, 지방의 향시에서 500명을 뽑아 700명을 선발했으며, 이 중 2차시험인 복시를 통해 최종적으로 100명을 뽑았다. 이 100명 중 1등급이 5명, 2등급이 25명, 3등급이 70명으로 나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