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송기휴(宋基休) |
이명 | 송기우(宋基佑) |
본관 | 여산 송씨 |
생몰 | 1878년 11월 7일 ~ 1909년 8월 20일 |
출생지 | 전라도 흥양현 (현 전라남도 고흥군 대서면 화산리)[1]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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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송기휴는 1878년 11월 7일 전라도 흥양현(현 전라남도 고흥군 대서면 화산리)에서 태어났다.그는 1906년 최익현 의진에 가담하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 1908년 2월 전라남도 보성군에서 안규홍이 의병을 일으키자 그의 의진에 입대하여 참모관에 임명되었고, 안규홍 의진에서 2년여 동안 크고 작은 전투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08년 2월 파청(巴靑: 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 예당리 파청마을) 전투, 4월의 비둘기재(鳩峙: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고읍리 구치마을)의 전투, 5월의 문덕면 양가랭이치 그리고 운월치(雲月峙) 등의 전투에서 적에게 큰 피해를 주었을 뿐 아니라 많은 군수품을 빼앗아 재무장할 수 있었다. 다만, 이 전투에서 유격장 안택환과 서기 임정현이 전사하는 불행을 겪었다. 이때 그 뒤를 이어 송기휴는 유격장으로 임명받았다.
그는 1909년 7월 안규홍 의진이 해산될 때까지 보성·순천·광양·여수·돌산·곡성·남원·구례·장흥·순창 일대에서 안규홍을 보좌하였다. 그러나 세력이 약화되어 일단 의병을 해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안규홍·염인서·정기찬이 보성에서 체포되고 송기휴는 순천군 낙안면에서 일본군에게 체포되었으나 끝내 굴복하지 않고 8월 20일 사살, 순국하였다.
197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으며,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