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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03 09:07:04

스타더스트 나이트클럽 화재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파일:스타더스트 화재.jpg

1. 개요2. 사고 당시3. 사고 이후

1. 개요

Stardust Nightclub Fire

1981년 2월 13일 아일랜드 더블린의 스타더스트 나이트클럽에서 일어난 화재.

2. 사고 당시

스타더스트 나이트 클럽은 원래는 식품공장이었던 곳으로, 1948년 더블린 북쪽의 아테인에 지어졌다. 공장주는 Scott's Foods Ltd였다. 그러다 1978년, 건물주 버터리(Butterly)가 건물을 공장에서 생활 편의 시설로 바꾸었다. 구역을 나누어 공장 내엔 2곳, 기계실, 그리고 나이트 클럽이 들어섰다. 나이트 클럽은 1층에 댄스장, 2층에 램프방과 창고, 알코브 2곳이 있었다. 댄스장에는 의자와 테이블 등이 놓여있었고, 알코브는 북 알코브와 서 알코브로 나뉘었는데, 서 알코브에는 280명이 앉을 수 있었다.

사고 당일엔 발렌타인 데이 전날을 맞이해 841명이 건물 내에 모여 디스코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나이트클럽에선 발렌타인 데이를 맞이해 상금이 걸린 디스코 대회가 열렸고, 클럽에선 손님들에게 공짜 술을 대접했다. 사람들이 밤새 술을 마시고 춤을 추던 무렵 14일 오전 1시 30분 바를 닫았고 30명이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2층 창고 인근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창고엔 식용유 23리터를 비롯한 인화물질들이 가득했고, 불길은 인화물질들을 잡아먹으며 커졌다. 하필 창고로 쓰던 방의 벽을 내화벽으로 지은게 아니라 불은 순식간에 번져나갔다.

불이 더 커져 지붕을 뚫고 타올라 밖에서도 보일 정도였지만, 1층에선 아직까지도 불이 일어난 지 몰랐다. 화재를 신고한 것도 바깥에서 불을 목격한 사람이었다. 불은 점점 커지다 2층 바닥을 뚫고 1층 천장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DJ는 침착하게 출구로 나가면 된다 안정시키려 했으나, 1시 45분에 플래시오버현상이 일어나면서 불이 더더욱 커졌다. 내부 소화기로 불을 진화해보려 했으나 소용 없었다. 불길이 전선을 태우면서 전기가 끊겨 클럽 내부는 어두워졌고, 유독가스로 인해 숨도 쉬기 힘든 상황에서 천장에선 계속해서 불똥이 내려오다 아예 무너졌다. 댄스 플로어와 알코브의 탁자는 PVC로 코팅된 폴리에스테르 섬유 장식이 되어있어 불에 엄청 위험했고, 이들 마저 타면서 유독가스를 뿜어냈다.

사람들은 앞이 안보이는 상황에서 이리저리 해맸다. 간신히 비상구를 찾았으나, 비상구는 돈 안내고 들어오는 사람을 막겠다며 잠겨있거나, 체인으로 막아뒀고나, 의자 등 여러 물건으로 막아 두거나, 아예 바로 앞에 차를 주차해 막은 상태였다. 화장실의 창문 또한 아예 철봉으로 막아뒀다. 외부에선 한사람이라도 더 구조하려고 막힌 창문을 도끼와 망치를 동원해 부수기 시작했다. 하지만 워낙 단단하게 막아둔지라 이 마저도 소용없었다.

새벽 1시 51분, 신고를 받은 소방대원들이 도착했다. 소방대원이 화장실 철봉에 체인을 매달고 이걸 소방차에 연결한 뒤 소방차로 끌어당겨보기까지 했으나 실패했다. 어두운 실내에서 사람들은 방향 감각을 잃어 해맸고, 남자 화장실 문을 메인 출입구로 착각한 사람 30여명이 안으로 들어갔다가 길을 잃었다. 소방관이 직접 들어가 안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을 구해줘야 했고, 간신히 빠져나온 뒤 소방관과 같이 들어가 구조를 도운 사람들도 있었다. 더블린의 소방대원과 구급차가 최대한 동원됐고, 민방위와 적십자, 인근 공항의 구급차까지 전부 동원됐다. 라디오에선 인근 주민들에게 자가용이 있다면 부상자 이송을 도와달라는 방송이 나왔다. 인근 병원은 부상자들로 가득 찼다.

결국 사고로 48명이 사망, 214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고 당시에만 46명이, 이후 치료를 받던 2명이 3월 11일에 사망했다. 사망자 중 대다수는 유독가스로 인해 질식했다. 부상자 중 100명 이상이 중상이었다.

3. 사고 이후

경찰측에선 화재 원인을 방화라 결론지었다. 이 때문에 건물주가 60만 파운드 가량의 보상을 받았지만 유가족과 부상자가 받은 양은 많아야 명당 7500 파운드로, 건물주가 받은 돈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적어 논란이 일었다.

아일랜드의 가수 크리스티 무어(Christy Moore)는 사고를 다룬 노래 "그들은 집에 오지 못했네(They never came home)"을 발표했다.# 하지만 스타더스트 나이트클럽 건물주가 이를 명예훼손죄로 고발하면서 노래는 금지됐다.

2009년, 아일랜드 정부가 당시 방화에 대한 정확한 증거는 없었다 발표했으나, 진짜 화재 원인은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사고로 처벌받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1993년 9월 18일, 희생자를 기리는 스타더스트 메모리얼 파크가 더블린에 세워졌다.#